눈물


얼마 전, 갑자기 작은 아이가 물었다. "아빠,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지?" 그러자 큰 아이가 곧바로 끼어들었다. "당연하지. 제일 좋아하니까 결혼했지." 아이들에게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사정이생겨 따로 살게 되었다고 말했을 뿐. 그리고 우리 부부는 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늘 둘 중 하나만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내가 바쁜 날엔 애들 엄마가. 애들 엄마가 바쁜 날엔 내가 아이들을 돌봤다. 아이들은 그 상황에 익숙했기에, 둘 중 한 사람의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쉽게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크게 동요가 없었던 것이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척 곤혹스럽다.


뭐라 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더이상 아빠를 사랑하지 않고, 아빠도 더이상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상황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조차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데.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밖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계속 울었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내가 못난 탓이다 라고 생각했고, 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생각과 달리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다.


청바지 이야기


그게 몇 해 전이었던가? 15년쯤 전이었던가? 처음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던 단체의 중간 간부 쯤 되는 국장님께서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지 말라고 나에게 경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럼 뭘 입어야 하냐는 물음에 기지바지 같은 걸 입고 오라고 했다. 기지바지 같은 옷을 전혀 입지 않던 나로서는 입을 옷이 없었다. 그 국장님은 나에게 애처럼 그런 옷을 입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옷 외에는 입을 옷이 없었다. 그렇다고 활동가가 어울리지도 않게 정장을 입고 다닐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가 고시원에 살면서 학원강사를 하던 시절에는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 바지를 몇 벌 사서 번갈아 입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은 맨날 같은 옷만 입고 다닌다고 뭐라고 했다. 그럼 나는 옷장에 같은 옷이 수십벌 있다고 뻥을 쳤다. 그땐 오히려 정해진 옷만 입고 다녀야 했으니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말마다 고시원에서 공동으로 쓰는 세탁기를 돌리고, 역시 공동으로 쓰는 다리미로 옷을 다리고 걸어두는 일이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아마 고3때였던 것 같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가려는데, 마침 벗어놓은 청바지를 어머니가 빨아버렸다. 입을 옷이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여동생에게 옷을 빌렸고, 허리쪽에 꽃무늬가 박혀 있는 여성용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 당시 내 허리는 여동생과 같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사이즈였기 때문에 가끔 여동생 바지를 입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옷이 거의 없었고, 여동생은 옷이 많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날은 찬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가을 무렵이었고, 데이트가 끝날 무렵 그 여자 아이가 목에 걸고 있던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서 내가 달려가서 주웠다. 스카프를 줍기 위해 쪼그려 앉은 순간, 허리 쪽에 프린트 되어 있던 꽃무늬가 보였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이게 뭐냐고 막 웃도리를 들추며 자꾸 놀렸고, 나는 여동생 청바지를 빌려 입고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 아이는 어떻게 여동생 옷이 들어가냐며 놀랐고, 내 허리를 껴안고 내게 몸을 기댄채 한참 시간을 보냈다.


지금 자주 입지 못하는 옷 중에 애들 엄마가 작어서 입지 못한다고 준 옷이 있다. 나한테 허리는 충분한데, 사타구니 부위가 불편해서 입기가 어렵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 수록 나팔바지처럼 퍼지는 모양이라 썩 모양이 예쁘지도 않다. 그래서 자주 입지는 않지만, 가끔 입을 옷이 없을 때 급하게 입기 위해 그냥 계속 갖고는 있다.


여름에 구매한 청바지는 허리는 남지만,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편한 옷으로 샀다. 쿨맵시라고 했던가. 얇고 편해서 좋았지만, 허리가 커서 불편했다. 난 평소 돌아다닐때 늘 뛰어다니는데, 뛸 때마다 바지가 흘러내렸다. 결국 십년 넘게 버려뒀던 허리띠를 찾아서 매야했다. 그렇게 허리가 큰 바지를 선택하는데 이유가 있었다. 바로 허리가 딱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면, 허벅지와 사타구니 부위가 꽉 쬐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허리가 맞으면 그 아래가 불편했고,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괜찮은 사이즈는 허리가 남았다. 


청바지 뿐 아니라 면바지라도 허리띠를 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아침에 옷을 입는데 하나의 단계가 더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고, 허리띠의 무게만큼 바지가 더 무겁다. 무엇보다 옷을 입으면 허리띠만큼 뽈록 튀어나와서 옷 맵시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허리띠가 필요없는 옷을 입으려하는데, 최근에는 게속 실패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반값 할인이라는 문구를 보고 1시간이 넘게 청바지를 입어봤으나, 허리가 맞으면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사타구니가 불편했다. 좀 편한 옷을 고르면 허리가 남았다. 허리띠를 매야 했다. 여름에 저 쿨맵시라는 청바지를 사고 후회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 결국 옷을 사지 못하고 돌아섰다.


또 며칠 전에 겨울 청바지 하나를 수선했다. 한 5~6년 전에 누군가에게 받은 청바지였다. 두꺼운 옷이라 겨울에 주로 입었는데, 한 4년 전쯤 단추가 날라갔다. 옷핀으로 고정하고 한 1년쯤 더 입었는데, 그게 무척 보기 싫었다. 어느 여성이 술자리에서 옷핀으로 고정했어도 다 보인다고 지적을 한 후에야 그 옷을 입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옷수선 가게에서 단추를 다시 달았다. 몇 년 만에 다시 입어보니 그 옷도 허리는 딱 맞았지만, 사타구니가 불편했다. 어, 예전에도 그랬던가? 그땐 내가 자주 입고 다녔는데, 이렇게 불편했는데 자주 입었던가? 잘 모르겟다. 허리는 최근에 뱃살이 빠져서 오히려 살짝 큰 느낌인데, 그 아래는 불편했다. 


허리띠 없이 청바지를 입고 싶은데, 왜 나는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없을까? 여동생이나 애들 엄마를 비롯해서 여성들이 입는 청바지도 허리 사이즈로는 충분히 입을 수 있는데, 다른 이유로 입을 수 없는 게 아쉽다. 유니섹스 시대라고 남녀 구분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다는데, 그 부위를 조금 널널하게 만들어주면 안 될까? 


더불어 청바지를 입다보면 유난히 그 부위가 빨리 해져서 못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 몸에 잘 맞고 색상도 맘에 들어서 좋아했던 청바지는 항상 사타구니 아래쪽 부위가 찢어져서 버렸다. 좀 튼튼하게 만들어주면 안될까? 이건 일부러 여기만 약하게 만든다는 오해가 들 정도로 늘 거기만 찢어지니 말이다.
















관심 있는 책이 나왔다. 공동 저자 중에 한 사람은 아는 사람이다. 소위 하위 문화라고 불렸던 B급 문화와 철학은 연결시켰다. 내가 딱 좋아할만한 성격의 글이다. 동네 서점에서 사서 읽어야 겠다. 


어제 집회에는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교정을 많이 보지도 못했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집회에 갔으면 좋았을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민중 총궐기인 12일엔 아침부터 발전소 청소를 가야 한다. 그 전날엔 아이들이 와서 자는 날이어서,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빌리기로 한 트럭을 찾아서 사다리를 빌려서 발전소로 가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없을만큼 바쁜 일정이 될 거다. 발전소 청소 역시 만만한 일정이 아닐거다. 지난 번에 해보니 허리가 무척 아팠다. 그래도 오전에 청소를 끝내고, 오후엔 잠시 쉬고 집회를 나가야지. 열심히 싸워야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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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xing moon 2016-11-08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흥미로운 내용의 글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쓰고 싶은 생각에 글을 적어봅니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가 고시원에 살면서 학원강사를 하던 시절에는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 바지를 몇 벌 사서 번갈아 입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은 맨날 같은 옷만 입고 다닌다고 뭐라고 했다. 그럼 나는 옷장에 같은 옷이 수십벌 있다고 뻥을 쳤다. 그땐 오히려 정해진 옷만 입고 다녀야 했으니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말마다 고시원에서 공동으로 쓰는 세탁기를 돌리고, 역시 공동으로 쓰는 다리미로 옷을 다리고 걸어두는 일이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한 때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지만 패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도 하나의 공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귀찮더군요, 겉치장하는데 집중하면 다른 곳에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스티브잡스는 똑같은 옷을 번갈아가면서 입는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네요. 인간이 쓸 수 있는 뇌와 시간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겉치장에 너무 과도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 오로지 ‘패션’에만 몰두하게 되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나 지혜를 쌓는 것을 못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유독 한국이라는 나라는 패션에 민감하고..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과도하게 참견을 하기 때문에 자신보다는 상대의 눈치를 보는 일이 많기 때문에 겉치장하는 것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남의 옷 입는 것에 뭐 그리 참견이 참 많은지.. 옷 사는데 100원도 투자해주지 않았으면서요..








“ 아마 고3때였던 것 같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가려는데, 마침 벗어놓은 청바지를 어머니가 빨아버렸다. 입을 옷이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여동생에게 옷을 빌렸고, 허리쪽에 꽃무늬가 박혀 있는 여성용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 당시 내 허리는 여동생과 같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사이즈였기 때문에 가끔 여동생 바지를 입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옷이 거의 없었고, 여동생은 옷이 많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날은 찬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가을 무렵이었고, 데이트가 끝날 무렵 그 여자 아이가 목에 걸고 있던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서 내가 달려가서 주웠다. 스카프를 줍기 위해 쪼그려 앉은 순간, 허리 쪽에 프린트 되어 있던 꽃무늬가 보였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이게 뭐냐고 막 웃도리를 들추며 자꾸 놀렸고, 나는 여동생 청바지를 빌려 입고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 아이는 어떻게 여동생 옷이 들어가냐며 놀랐고, 내 허리를 껴안고 내게 몸을 기댄채 한참 시간을 보냈다. “





여성용 청바지를 입으셨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꽃무늬로 자수된 청바지를 입고 나가셨군요...

그래도 그러한 일(어머니께서 청바지를 세탁하신)을 계기로 좋은 시간을 보내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되나요.

물론,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마음 졸이면서.. 정신적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한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 여름에 구매한 청바지는 허리는 남지만,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편한 옷으로 샀다. 쿨맵시라고 했던가. 얇고 편해서 좋았지만, 허리가 커서 불편했다. 난 평소 돌아다닐때 늘 뛰어다니는데, 뛸 때마다 바지가 흘러내렸다. 결국 십년 넘게 버려뒀던 허리띠를 찾아서 매야했다. 그렇게 허리가 큰 바지를 선택하는데 이유가 있었다. 바로 허리가 딱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면, 허벅지와 사타구니 부위가 꽉 쬐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허리가 맞으면 그 아래가 불편했고,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괜찮은 사이즈는 허리가 남았다. ”





유독 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 것 같은데 허벅지는 굵고 허리는 얇은 것 때문에 걱정이신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적당한 바지가 있습니다.



밴딩 바지라고 허리는 프리사이즈로 자유롭게 조절가능하고, 허벅지는 굵으시다니 좀 큰 사이즈로 구매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허리띠도 필요 없고 면바지뿐만 아니라 밴딩으로 된 청바지도 있습니다.




“허리띠 없이 청바지를 입고 싶은데, 왜 나는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없을까? 여동생이나 애들 엄마를 비롯해서 여성들이 입는 청바지도 허리 사이즈로는 충분히 입을 수 있는데, 다른 이유로 입을 수 없는 게 아쉽다. 유니섹스 시대라고 남녀 구분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다는데, 그 부위를 조금 널널하게 만들어주면 안 될까?




더불어 청바지를 입다보면 유난히 그 부위가 빨리 해져서 못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 몸에 잘 맞고 색상도 맘에 들어서 좋아했던 청바지는 항상 사타구니 아래쪽 부위가 찢어져서 버렸다. 좀 튼튼하게 만들어주면 안될까? 이건 일부러 여기만 약하게 만든다는 오해가 들 정도로 늘 거기만 찢어지니 말이다.“




예... 맞습니다...유니섹스 시대에 남녀구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옷들이 평균적인 몸매를 지닌 이들의 기준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수선을 하지 않고서는 입을 수 없는 것 같더군요.

바지 길이가 짧으면 바지의 폭도 줄어들고 바지 길이가 길어지면 바지의 폭도 늘어납니다.

다리가 짧고 다리가 굵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바지 구매하는데 있어 상당히 많은 고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더군요..







솔직하면서도 유쾌하지만 씁쓸함(공감하기 때문에)을 느낄 수 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꾸밈이 없는 솔직담백한 글이 상당히 인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솔직하게 글을 쓴다고 쓰지만 모든 치부(부끄러울 수 있는 흑역사와 콤플렉스)를 드러내지는 않으니까요.






섬세한 아버지, 따뜻한 아버지, 정의로운 아버지, 멋을 아는 아버지, 휴머니즘이 물씬 풍기는 아버지로서 남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요일 주말 아침 즐겁고 평온하고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6-11-08 18:5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김영성님.

집에서 나와 살기 전까지는 여동생이 잘 입지 않는 바지를 제가 종종 입었어요.
그땐 청바지 딱 한 벌로 그 옷이 찢어져 버리기 전까지 입고 지냈거든요.

허벅지가 그렇게 굵은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허리에 맞는 사이즈를 입어보면 불편하더라구요.

알레프님은 누구시죠?
잘못 쓰신거죠? ㅎㅎ

저 또한 모든 치부를 드러내며 글을 쓰진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요.
수위조절을 잘 해야겠지요.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칭찬을 읽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네요. ^^

waxing moon 2016-11-08 19:41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드립니다. 감은빛님








“ 집에서 나와 살기 전까지는 여동생이 잘 입지 않는 바지를 제가 종종 입었어요.
그땐 청바지 딱 한 벌로 그 옷이 찢어져 버리기 전까지 입고 지냈거든요.“






남동생의 바지가 아닌 여동생의 바지를 입으셨다고 하셔서 매우 신기했습니다.ㅎㅎ

남성과 여성의 신체구조가 달라서 인지 제가 체형이 커서 그런지 저는 절대 여성복을 입을 수가 없거든요..ㅎㅎ










“허벅지가 그렇게 굵은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허리에 맞는 사이즈를 입어보면 불편하더라구요.“







보통 허벅지와 허리는 평균적인 체형을 기준으로 나오는데 혹시.. 허리가 많이 가늘어서 그런 것이 아닌지요..ㅎㅎ

허리가 맞는 경우는 작은 사이즈라서.. 허벅지가 끼고..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괜찮은 경우는 사이즈가 큰 편이라 허리가 남고..

참 애매하네요..ㅎㅎ

아무튼 감은빛님 블로그에 몸매나 옷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관련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알라딘에서 보기 힘든 주제이기도 하고요..ㅎㅎ









“알레프님은 누구시죠?
잘못 쓰신거죠? ㅎㅎ“






아 제가 이런 실수를 다 하네요..ㅎㅎㅎ

보통 이웃 분들의 아이디를 헷갈리는 경우가 드문데 감은빛님과 너무 비슷한 느낌의 알라디너분이 계셔서요.

알라디너 ‘알레프’님이라고 감은빛님과 느낌이 비슷하신 분이 있으십니다..ㅎㅎㅎ

감은빛님 프로필 볼 때 마다 알레프님 생각이 나서 그랬나봅니다..ㅎㅎㅎㅎ








“저 또한 모든 치부를 드러내며 글을 쓰진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요.
수위조절을 잘 해야겠지요.“





예.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닐 테니까요..

다만 제 글과 비교했을 때 감은빛님의 글이 더 솔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ㅎㅎ










“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칭찬을 읽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네요. ^^ “





저도 감은빛님의 솔직하고 재미있는 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섬세함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헬조선에서 살아남는 방법은..섬세함을 버리는 것인데..

섬세하지 않아서 헬조선이 된 것이라면...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섬세한 것이 이상하게 되는 세상..

지금 모든 것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으니.. 분명 세상이 틀린 것이겠죠..



감은빛님과 같이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이 동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삶에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힘든 시대를 살아가면서 섬세함과 소신을 잃지 않고 정의를 위해 힘쓰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한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mira 2016-11-0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으면서도 감성적인 글이네요 화이팅입니다

감은빛 2016-11-08 18:47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토요일 아침


토요일 아침.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다. 잠시 일본어를 들여다보다가, 조금 더 자고 싶어서 눈을 감고 아이들 곁에 누워서 이마에 입을 맞추고 꼭 껴안았다. 녀석들은 귀찮다고 몸을 돌려버렸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안와서 포기하고 일어났다. 어제 세탁기를 돌렸다가 아이들 씻느라 마지막 헹굼을 못 했던 걸 떠올리고, 우선 빨래를 다시 돌렸다. 쌀을 씻어서 불리고, 뭘 만들지 고민하면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어제 저녁에 된장찌게를 끓이려고 두부와 애호박을 사놓았다. 그리고 야채 몇 가지가 있으니, 샐러드를 만들어야 겠다. 며칠 전에 사놓은 곤약을 썰어서 끓는 물에 데치고, 쌈채소와 깻잎을 씻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파프리카를 씻어서 썰었다. 큰 그릇이 없어서 재료를 많이 썰지 않고 적당히 양 조절을 해야 한다. 곤약을 찬 물에 헹궈서 다시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소스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간장, 다진마늘, 참기름, 식초, 매실액, 후추를 섞었다. 준비한 재료 위에 뿌려서 섞은 후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다. 뭔가 조금 아쉬운 느낌도 들긴 했지만, 없는 재료로 만든 것 치고는 이만하면 괜찮은 거지 뭐. 된장이 끓을 무렵 충분히 불은 쌀을 압력밥솥에 넣고 물을 맞춘다. 밥 맛은 무조건 물조절이다. 기준선 근처에서 조금 따랐다가 다시 조금 부으면서 맞추고 불에 올렸다.


밥이 다 되고, 된장찌개가 다 끓고, 샐러드가 완성되었다. 녀석들은 오늘따라 늦잠을 잔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으니, 빨래를 널었다. 라디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를 듣고 있는데, 알라니스 모리셋의 'Thank you'가 나왔다. 20년 전에 무척 좋아했던 가수였다. 잠시 옛 추억에 젖었다가 방으로 돌아오니, 두 녀석이 깨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들어가서 한 팔에 하나씩 껴안았다. 


왜 하필 나를


며칠 전 어느 단체를 책임지는 사람에게 자기 후계자로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단체 회원일 뿐, 아무런 업무 연관성도 없는데, 왜 하필 나를. 또 며칠 전 어느 회의에 꼭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솔직히 내가 굳이 가지 않아도 될 회의라서 안 갈 생각이었는데, 부탁을 받고 보니 안 갈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나에게 와달라고 요청했던 선배 말고 다른 선배가 나를 꼭 원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 회의 논의 내용과 크게 관계가 없는데, 왜 하필 나를.


예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적이 많았다. 왜 사람들은 나처럼 못난 인간을 좋게만 봐줄까? 그건 본질을 잘 모르고,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거나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보는 면이 어떤 것들인지 한번 생각해봈다. 우선 외모에 대한 건 대부분 착하게 생겼다는 얘기다. 인상이 좋다. 순한 인상이다. 뭐 이런 얘기들. 다음으로 태도. 사람들의 이야기나 의견을 주의깊게 열심히 듣는 편이라 그런 점에서 좋은 평가를 자주 받는다. 잘 듣는 사람. 그래서 후배들이 고민 상담을 청하는 경우도 많았다. 말할 때는 차분하게 진지하게 신중하게 말한다. 내 말 한 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속 생각하면서 말하는 편이다. 학원 강사를 했던 시절부터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상대방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면 그 생각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쉬운 설명과 자신감 있는 태도 등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내가 잘 하고 또 좋아하는 건, 강의나 발표인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잘 알고 있는 뭔가를 알기 쉽게 알려주는 일이 좋다. 아이들 대상으로 한 강의도 좋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좋았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나 자신은 좀 많이 멋있어 보이고, 재밌게 설명을 잘 한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 또 글쓰는 일도 좋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업무와 관련된 글이거나 청탁받은 글이라서 부담감이 생겨서 그렇지. 평소 내가 원해서 쓰는 건 재밌다.


활동가가 되고 나서 제일 많이 한 일은 아마 회의가 아닐까? 수많은 회의들이 늘 나를 기다리고 있다. 회의를 잘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선 그 회의의 성격과 안건에 대해 충분히 알고 들어와야 하고, 자신이 아는 것만 떠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듣고, 자신의 의견을 핵심적인 내용만 짧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의 주최자가 되면 또 입장이 달라진다. 그때는 빅마우스(말이 많은 사람)를 견제하고, 입을 잘 열지 않는 사람들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 분위기를 읽고 흐름이 끊기지 않으면서 원활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잘 조율해야 한다.


최근 누군가 나를 '회의쟁이'라고 불렀는데, 예전에 누군가는 '회의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라고 그 많은 회의를 원해서 다니겠나? 회의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회의 결과에 따라 늘 해야할 일이 따라온다. 몇 해 전, 녹색당 초창기에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다보면 늘 이야기가 산으로, 바다로, 엉뚱하게 흘러가곤 했는데, 그런 흐름을 바로 잡고 제대로 논의를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나에게 많은 역할이 주어지고, 많은 일을 떠안게 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몇몇 연대단위 회의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일을 자꾸 떠안게 되어서 이젠 웬만하면 회의에서 안 떠들고,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잘못 흘러간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내가 잘 못하는 일들, 나의 단점도 무척 많다. 우선 나는 다소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다. 이게 어떨 때에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단점으로 작용한다.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보니, 어떤 일을 두고 판단할 때, 이게 완벽하게 될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잘 손을 대지 않게 된다. 그게 꼭 필요한 일이고, 급한 일인데, 내 판단에 아무리 봐도 완벽하게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으면 하기가 싫고, 자꾸 피하게 된다. 또 해야할 일들의 목록 중에서 우선 순위가 높아도, 아직 이 일이 완벽하게 풀려갈 상황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경향도 있다. 그렇게 일을 미루는 것은 매우 나쁜 버릇인데, 이 완벽을 추구하는 기질 때문에 쉽게 고치지 못하고 있다.


또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쉽게 지치고 상처받는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와 예민한 성격 탓에 별거도 아닌 상대방의 말이나 태도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이건 다음에 또 일 때문에 그를 만날 때,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그 불편함이 결국은 그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느긋하고 여유있는 삶을 좋아한다. 어쩌다 이렇게 정신없고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본성은 그런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이불 속에 누워 하루를 보내는 주말이 제일 좋다. 평소엔 잠을 못자고 밤 늦도록 일을 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지만, 늘 바쁘게 뛰어다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을 해야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쯤은 푹 자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디에도 가지 않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야만 이 삶을 버틸 수 있다. 


이렇게 단점이 많은데, 업무 연관성도 없는 곳에서 나를 원하는 건, 그저 보이는 모습이 괜찮아 보이고,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기 때문이겠지. 그냥 단순히 사람 좋아 보이고, 일도 괜찮게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겠지. 어쨌거나 돈 많이 줄 수 있는 곳에서 나를 원했으면 좋겠다. 20대 후반에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늘 나를 원하는 조직은 돈이 없는 조직이었다.


이런 삶, 슬프다
















강수돌 선생의 [여유롭게 살 권리]를 읽고 있다. 늘 원하는 건, 그런 삶이다. 여유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고, 그 책에 대해 충분히 느끼고 고민할 시간도 가질 수 있는 삶. 그 고민과 느낌을 글로 풀어낼 여유가 있는 삶. 또 그 고민과 느낌을 주위 사람들과 만나 함께 나눌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삶.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삶. 누군가를 만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고, 일상의 고단함과 현실의 비루함을 한탄할 수 밖에 없는 삶이다. 


이 책에는 일중독을 일종의 질병으로 생각하고 본인이 일중독에 거렸는지 아닌지 스스로 진단하는 테스트가 있다. 읽어보니 나는 분명히 일중독이더라. 이 병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가 바뀌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사회가 바뀌어야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건 개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펴고, 조금씩 인식을 바꿔나가다보면 조금씩 사회도 바뀌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일 때문에 어느 협동조합 활동가에게 연락을 했다. 퇴근시간을 살짝 넘긴 6시 5분쯤이었다. 그는 '의무 정시퇴근날'이라 사무실을 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의무 정시퇴근날'이라. 나도 그렇고 대다수 협동조합은 열악한 상황에서 많은 일들을 해야 하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근을 자주 할 수 밖에 없다. 얼마나 야근이 일상이면, 정시 퇴근을 의무 사항으로 정한 날이 따로 있겠나. 


요즘 너무 바쁜 시기인데, 너무 일이 하기 싫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어디 아무도 모를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래야 할까? 그럴수 있을까? 모르겠다. 


오늘 백남기 어르신의 노제가 열렸고, 저녁엔 집회가 있을 예정이다. 낮동안은 아이들과 지내야 하니, 나가지 못하지만, 저녁에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마음은 당연히 집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나는 급한 교정 일거리를 맡아 일정에 쫓기고 있다. 오늘밤 교정을 보지 못하면 인쇄 일정을 맞추지 못한다. 일을 해야겠지. 아무리 집회에 나가고 싶어도 꾹 참고 일을 해야겠지. 비록 토요일 밤이지만 꼼짝말고 일을 해야겠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삶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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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5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많이 알수록 그 상대방의 감정을 최대한 맞추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저도 쉽게 지치는 편입니다. 진짜 감정을 표출하고 싶은데, 괜히 제가 불리해질까 봐 꾹 참고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힘든데, 제 자신의 소극적인 행동에 한 번 더 괴로워집니다. ^^;;

감은빛 2016-11-08 18:43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람에 따라 꽤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인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이젠 좀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이런 건 좀 불편하다는 느낌을 주거나,
이런 태도는 좀 아닌 것 같다는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겐 좀 쿨하게 대할수 있게 된 것 같아요.

samadhi(眞我) 2016-11-06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엘라니스 모리셋 노래 좋아해요. 엊그제 같은데 그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요. 목소리가 정말 예쁜데. 너무 빨라서 차마 따라 부르지는 못 하고.

감은빛 2016-11-08 18:46   좋아요 0 | URL
세월이 참 빠르죠!
[You Oughta Know]를 매일 들었던 게 96년이었던 것 같아요.
완전 빠져있던 가수였어요.
 


멋쟁이 얼어 죽는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마땅히 입을 겉옷이 없어서 좀 망설였다. 분명 추울텐데, 그렇다고 겨울 잠바를 꺼내입기는 좀 그렇고, 이맘때 입을 만한 옷이 없네. 시청에 가서 공무원을 만나야 해서 조금은 격식을 갖춰야 하는데, 뭘 입어야 할까? 몇 해 전 누군가에게 얻은 얇은 검은색 코트를 입고 나왔다. 나올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낮에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는 오히려 덥기도 했다. 계속 뛰어다녔으니. 그런데 해가 떨어지고 나서는 찬 바람에 많이 추웠다.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서는데, 동네 형님과 마주쳤다. 쓱 보더니. 멋있다고 한 마디 하신다. 그냥 웃으며 지나치려는데, "멋쟁이는 얼어 죽는다"고 한 마디 하신다. 아니 그러니까 난 멋쟁이는 절대 아니고, 그저 입을 옷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얻은 낡은 코트를 입었을 뿐이라구요. 하지만 찬 바람 맞으며 식당을 찾아 나서는데, 진짜 추웠다. 얼어 죽을 것 같았다. ㅜㅜ


그제와 어제 입었던 옷은 분명 겉옷, 즉 잠바였는데, 나한테 완전 꼭 맞아서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입으면 지퍼가 잠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퍼를 열고 다니면 완전 안 어울리는 스타일이라 입을 수가 없었다. 이 옷도 몇 해 전에 누군가가 준 것인데, 이런 옷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이사올 때 옷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다. 이런 옷이 있었네. 내가 돈 주고 살만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못 입겠다고 판단하고 다시 옷걸이에 걸어 두려다가 생각했다. 티셔츠를 안 입고 입으면? 그래서 셔츠를 벗고, 속옷(런닝셔츠)만 입고 그 위에 입어봤다. 지퍼가 간신히 잠겼다. 다행히 요즘 배가 쏙 들어가서 입을 수 있었다. 숨을 좀 깊게 쉬면 가슴이 부풀어올라 가슴이 꽉 쬐는 느낌이 들만큼 내 몸에 딱 붙었다. 이건 쫄티가 아니라 쫄잠바라고 불러야 하나. 


안감이 기모로 되어 있어서 따뜻했고, 겉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셔츠 안 입고 다닐 수 있겠구나. 그러고 이틀 동안 돌아다녔는데, 난방이 잘 된 실내에 있으면 더워서 땀이 났다. 그렇지만 이 옷을 벗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속옷만 입고 있을 수는 없으니. 밤이 되어 찬 바람이 불면 배 밑으로 찬 바람이 들어와서 또 추웠다. 이 옷도 참 입기 애매한 옷이구나. 


거울 보는 것이 즐겁다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거울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제 거의 결혼 전, 그러니까 20대 후반 몸매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공복일 때 그렇다는 얘기. 식사를 하고 나면 배가 좀 나온다. 아직 아랫배가 살짝 나왔고, 옆구리에 조금 군살이 있는데, 이건 아마 술 때문일 듯. 술을 좀 적게 마셔야 완벽한 몸매가 될텐데, 지금 이 삶에서 술마저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 술이 있어서 그나마 지금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계속 입맛이 없어서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아침과 점심은 거의 거르고, 저녁엔 술을 마시며 안주를 조금 먹었다. 밥을 안 먹었더니, 이제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어제는 너무 힘이 없고, 자꾸 몸이 축 쳐져서 늦은 점심을 김밥 하나로 때웠는데, 세상에 김밥 한 줄을 다 못 먹겠더라. 삼분의 이 정도 먹고 나서 배가 부른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김밥에 라면까지 다 먹어도 모자랐는데.


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은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요 며칠은 계속 못하고 있다. 바쁘기도 하고, 의욕이 안 생기기도 하고. 내 목표는 옷맵시를 위해 뱃살을 빼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막 근육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전체 근육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근육을 키우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래서 늘 하는 것이 스내치 운동이다.


지금은 바벨을 들 기회가 없어서 케틀벨로 스내치를 익히고 있는데, 아직 자세를 충분히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들기에는 무게가 좀 무겁다. 좀 더 가벼운 무게로 하나 사고 싶은데, 지금 집에서 언제 이사 나갈지 몰라 짐을 늘리는 것이 또 한편으로 부담스럽다. 이미 들어올 때보다 짐이 많이 늘었다. 그래서 덤벨로 마치 바벨을 든 것처럼 스내치를 하는데, 그러기엔 바벨이 또 너무 가볍다. 이래저래 운동에 흥미가 잘 안 생기는 상황이다.


마치 속옷 모델처럼


집을 나와 산 지, 몇 달이 지났다. 제일 먼저 한 일이 전신거울을 사는 거였다. 그리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옷을 벗고 거울 앞에서 운동을 했다. 운동을 마치면 내 몸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그 사진들만 놓고 보니, 마치 속옷 모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속 속옷만 입은 채로 사진을 찍었으니, 다른 건 바뀐 게 없이 매번 다른 속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 속으로 부업으로 속옷 모델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으나, 그러기엔 얼굴도 안 되고, 키도 작았다. 근 선명도가 좋은 편이라 보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근육이 큰 편이 아닌 것도 문제다.


그래도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속옷 상자에 실린 사진에는 얼굴이 안 나온다. 키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겠다. 그저 복근이 선명하고, 허벅지 근육이 탄탄하면 좋겠다. 복근은 뱃살이 빠지면서 많이 선명해지긴 했지만, 아직 좀 부족하다. 허벅지는 음 글쎄. 예전부터 워낙 하체 운동을 등한시해서 그닥 자신이 없다. 역시 안 되는 구나. 속옷 모델.


관심 도서


누구한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늘 혼자 운동을 하다보니 책을 읽으며 자꾸 배워야한다. 동영상도 계속 찾아봐야 하고. 운동 관련 책은 늘 비싸서 사려면 부담스럽다. 도서관에도 책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지 않고, 빌려 읽어서는 또 아쉽운 점이 많다.


한동안 맨몸 운동에 집중했을때, 데스런 동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전에는 맨몸 운동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완전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맨몸으로도 엄청난 강도로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책은 어떨지 궁금하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재밌어하는 운동은 온 몸의 힘을 코어에 집중해야 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방법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늘 나오는 프랭크와 복근 운동 몇 가지 외에도 더 재밌고 다양한 운동이 있을테고,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책이 있었네.


요거 조만간 구해서 따라해 봐야겠다.







바벨 운동은 어렵고 힘들다.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맞지 않고,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어 한계에 가까운 무게를 들어올리는 기쁨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기초를 탄탄히 다져야 실력이 꾸준히 늘텐데, 어릴 때 약수터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돌 역기를 들어올리는 방법을 배운 게 다였고(다행히 인상과 용상 둘 다 배우긴 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바벨 운동을 안 하면서 다 잊어버렸다. 


스내치에 미쳐서 운동에 다시 흥미를 가진 게, 2013년이었던가? 그때부터 4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별로 실력이 늘지 않았다. 좀 안정적인 집을 구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바벨을 사는 것. 지금까지처럼 띄엄띄엄 헬스클럽에 등록했을 때에만 해서는 당연히 실력을 늘릴 수 없다. 가까이 두고 자주 해야 그만큼 더 늘겠지.


그냥 덜컥 구매하기엔 책 가격이 좀 부담스럽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한 번 살펴본 후에 구매를 결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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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나린 2016-11-02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 아침부터 눈이 즐거워지는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근데 감은빛님 글케 식사를 제때 안하고 거르심 나중에 위염으로 마니 고생하실수도 있으니 저염식 다이어트 식단으로 될수있음 꼭 챙겨드세요.여의치 않으심 닭가슴살과 과일.채소 만이라두요^^

감은빛 2016-11-02 12:1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매너나린님.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평소엔 잘 챙겨먹는 편이예요.
요즘 좀 유난히 입맛이 없어서 그랬네요.
말씀하신대로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매너나린 2016-11-02 12:25   좋아요 0 | URL
멋도 좋지만 감기 걸림 멋있긴 커녕 더 추레하게 보일수 있으니 옷도 따뜻하게 챙겨 입으시구요^^
꼭 빈속에 술과 안주로 때우는 일은 없으시길 바래요!건강한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16-11-02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위에 매너나린 님 말씀처럼 나중에 위염으로 고생하시지 않게 끼니 잘 챙겨드세요.

2. 거울 보는 게 즐겁다니, 부럽습니다. 저는 언제나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외치고 있는데요 ㅠㅠ
뻐킹 다이어트 ㅠㅠ

3. 운동 화이팅!!

감은빛 2016-11-02 12:2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1. 잘 챙겨 먹을게요.

2. 다이어트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뱃살은 빠졌네요.
잘 먹고 사는게 좋은 거죠. 다이어트 따위 신경쓰지 마세요.

3. 아무래도 조만간 케틀벨을 사야겠어요.
바벨을 사긴 어려우니, 케틀벨 스내치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려구요.

cyrus 2016-11-0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 관련 책까지 살 정도로 꾸준히 운동하는 감은빛님의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게으른데다가 만약 운동을 한다고 해도 운동 관련 책은 사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감은빛 2016-11-05 13:06   좋아요 0 | URL
혼자 운동을 하다보니 늘 불확실하고 모르는 게 생겨요.
누구 물어볼 사람도 없고,
검색은 늘 한계가 있으니, 책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벌써부터 좋은 책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름


                                이한주


우리말 갈래사전을 사고

선생인 네 이모네 반 출석부를 몰래 훔쳐보며

특별한 이름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이름

떵떵거리며 출세하는 이름보다는

메아리처럼

나즈막히 들리는 이름 어디 없을까

네가 평생 간직할 나의 첫 선물

네 얼굴만큼 선한

어디 그런 이름 없을까

벌써 며칠째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고

책방을 둘러보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평생 멍에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것만큼 부당한 것이 있을까?' 시인은 시를 소개한 바로 다음 페이지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그래. 내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려워 가끔 좀 더 부드러운 발음의 이름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적도 있다. 이젠 가수라기 보다는 코메디언에 가까운 <호랑나비>의 가수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한때 내 별명이었던 '나비'는 그 <호랑나비>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내막을 모르는 친구들은 그 '나비'가 흔히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이라 생각하고, 내 외모가 고양이를 닮은 것도 아닌데 왜 나비라고 불리는 지 묻기도 했다.


내 이름은 '나라에서 으뜸'이 되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큰 아이가 태어날 때 나도 아이에게 멋진 뜻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명법을 공부하고, 한자를 찾아 익히기도 했다. 사실 나와 아내는 서로 합의해 놓은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양쪽 집안 어른들의 반대도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 쪽 집안에서는 불교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싫다고 하셨고, 다른 쪽에서는 발음이 이상하다고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작명법에 따라 다른 이름들을 몇 개 더 지어봤다.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기도 했고, 국어사전을 뒤져서 순 우리말 이름을 찾아보기도 했다. 몇 개의 새 이름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솔직히 우리 부부에겐 미리 정해놓은 이름 외에는 그닥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나는 우리가 정한 이름을 어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뜻을 그 이름에 붙여서 최대한 설득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결국 출생신고를 마감 시점인 한 달까지도 이름을 정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도중에 어른들께서 제안한 이름도 몇 개 있었으나, 너무 흔한 이름이거나, 촌스러운 이름이어서 다 거부했다. 마지막 날 나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냥 우리 생각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른들은 마지못해 승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아이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끔 아이가 자라서 나를 원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좀 더 예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냐고, 친구들이 놀린다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엄마와 아빠가 이 이름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이야기 해줘야지 생각하곤 했다.


나중에 작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도 쉽지 않았다. 큰 아이의 이름이 워낙 특별한 느낌이라 그에 맞는 적절한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5년 만에 다시 작명법을 새로 공부하면서 한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기도 하고, 내 폰에 저장된 온갖 이름들을 다 써보고 불러보고 했다.


의외로 작은 아이의 이름은 예상치 못하게 쉽게 지었다. 맨 처음 큰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를 생각했다. 아이의 이름은 독립운동가의 호에서 따왔다. 사회주의 계열이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었다. 아니 이 사람은 스스로 바꾼 이름이라고 봐야 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호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이 엄마와 나도 모두 지금까지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작은 아이의 이름은 그 독립운동가의 친구이자 동료인 독립운동가의 호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 사람은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이지만, 호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처음에 그 제안은 내가 했지만, 나는 제안을 하고서도 왠지 익숙치 않은 느낌이라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아내는 마음에 든다고 적극적으로 그 이름으로 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적극적인 태도가 정말 다행이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아이들 이름을 물어본 후 예쁜 이름이라고 누가 지었냐고 묻는다. 둘 다 내가 짓긴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의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가 있었다. 지금 그 두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아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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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10-30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편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 이름을 한글 외자로 지었어요. 여태 그 이름을 쓸 기회(?)를 만들지 못 했지만 ㅋ

감은빛 2016-11-02 00:13   좋아요 0 | URL
이미 이름을 지어놓으셨군요.
˝쓸 기회를 만드셔야겠네요.˝
라고 답하면 너무 참견하는 것에 되겠죠?
외자라면 성과 연관되어 발음과 뜻에 영향을 미치겠네요.

2016-11-02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2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2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4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5 1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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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가 저자다


지난 번에 페이퍼에 썼던, 담배를 엄청 태워가며 쓴 에너지협동조합연합회의 홍보 소책자가 나왔다. 책자를 딱 보는 순간 무척 기분이 좋았다. 예전부터 이렇게 쉽게 쓴, 대중적인 홍보 책자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구성은 내가 평소 강의하는 순서로 잡았다. 나는 늘 글을 쓰던, 강의를 하던 쉽게 풀어 설명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쓰는 것이 목표였다. 바쁜 상황이었고, 도무지 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쓰겠다고 했던 건, 이런 거 꼭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기회도 좋았다. 프로젝트로 홍보물을 만들 돈이 있었고, 실력있는 디자이너가 있었다. 디자이너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믿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연합회 사무실에서 실물을 딱 처음 보는데, 와! 완전 색감이 예뻐서 만족스러웠다. 편집자로서 그리고 공동저자로서 책을 여러권 내봤지만, 이 소책자만큼 만족감을 준 적은 없었다. 완전 기분 좋았다. 홍보 담당자로서 나에게 원고 독촉을 하다가 "오늘 안 주시면 저 울어버릴거예요" 라고 협박까지 했던 여성 활동가가 나에게 저자 싸인을 해달라고 네임펜을 갖고 왔다. 무슨 책도 아닌데, 저자냐구. 시끄럽다고 무시했건만, 이 친구 내 옆에 딱 버티고 서서 싸인해 줄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계속 몇 쪽 되지도 않는 책자를 보고 또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내가 도무지 싸인을 해 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 친구가 자꾸 내 칭찬을 한다. 평소 옷차림이나 외모에 대한 지적질을 당했던 처지라 칭찬을 해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어지간하면 못 이기는 척 해줄수도 있지만, 난 엄청난 악필이고, 내가 글씨를 쓰는 순간 또 뭔가 지적질을 하며 놀림을 당할 게 뻔했다.


결국 옆에서 보고 있던 처장님이 이 친구를 밀어내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저 자가 저자다. 싸인을 받고야 말겠다." 이러는 거다. 무슨 젊은 여성이 아재 개그를 다 하냐? 외부 일정 때문에 몇 부만 챙겨서 일어서는데, "살이 찌셨나? 아님 부으신건가?" 이런다. 평소 이 친구에게 옷과 외모에 대한 지적 혹은 놀림을 많이 당했던 터라 그냥 무시했다. 어쨌거나 난 소책자가 예쁘게 나와서 무척 기분이 좋았고,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던 별로 상관이 없었다. 


마침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창립 7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열어, 이쪽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거기서 친한 연구원에게 소책자를 보여줬더니 좋아했다. 그리고 그날 만난 여러 사람에 보여줬더니 쉽게 잘 썼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다. 아, 나 칭찬을 받으면 완전 우쭐해지는 인간이라. 그렇지. 내가 좀 잘났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 글도 잘 쓰고 강의도 잘 하는 사람이야. 막 이런 생각하면서 혼자 완전 들떠 있었다.


열심히 많이 뿌려야지. 그래서 얼른 다 소진하고 또 찍어야지. 그땐 주위 사람들에게 냉정한 의견을 듣고 반영해서 더 잘 만들어야지. 기분이 너무 좋다!


기대고 싶은 사람


최근 몇 달 동안 힘든 일이 많았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길은 술 밖에 없었고, 술은 잠시 그 모든 문제를 잊게 해줬지만, 술이 깨고 나면 그 모든 문제는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었다. 힘들었다. 괜히 나를 원망했다. 나라는 인간, 왜 이렇게 멍청하고 바보같고 못난 걸까? 남들은 이 나이에 버젓이 잘들 살던데, 난 뭐하나 제대로 하는 일도 없이 이렇게 살고 있나! 운동을 20년을 넘게 했는데, 뭐 하나 이룬 것도 없이 이러고 살고 있나!


스스로 이렇게 힘든데, 자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고 의지하려는 것이 보인다. 누군가는 전화를 걸어 몇 십분씩 통화를 하면서 어려운 점을 이야기한다.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그 마음을 이해하니까. 하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난 그 사람이 아니니까. 


어떤 이는 오래전 업무 때문에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당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욕을 하고 다녔던 사람이다. 얼마나 욕을 하고 다녔는지, 친하게 지냈던 조금 멀리 살던 사람이 날 만나면 내 걱정에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막 묻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몰아내기 위해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주고 받았다고 했다. 그들에게 나는 공적이었다. 살면서 참 적을 많이 만들고 살았다. 그런데 그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요즘은 또 나에게 엄청 잘 대해준다. 그러면서 나에게 약간 기대는 느낌이 든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나한테 전화를 걸고, 뭔가 본인이 잘 모르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항상 나를 찾는다.


그래. 오래전부터 나는 늘 후배들,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좋은 상담자였다. 잘 들어주고, 섯불리 조언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잘 들여다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경험상 이렇게 해보면 조금 나아질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비록 성별은 달랐지만, 난 예민한 성격이었고, 내가 겪었던 불편함과 어려움을 그들도 그대로 겪고 있었다. 에전엔 유난히 여성 후배들이 날 많이 찾았건만, 요즘은 여성 선배들조차 그런다. 


하지만 실은 나는 늘 내 삶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한심한 처지다. 지금의 나는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내 처지가 나아질 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발 지금 말고 좀 나중에 기대면 안 될까? 내 앞가림이라도 좀 제대로 하게 되면, 그땐 더 열심히 들어줄게. 뭔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줄게. 그러면 안 될까?


한 숨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자주 한 숨을 내쉬는 버릇이 생겼다. 몇 해 전 출판사에서 일할 때, 내 자리에서 제일 멀리 앉아 계신 사장님이 어느 날 지적했다. 왜 그렇게 한 숨을 자주 쉬냐? 무슨 일 있냐? 내가 그런 줄 의식하지 못했기에, 좀 놀랐다. 그랬구나. 나 자주 한 숨을 쉬는 구나.


공무원을 만나고 돌아와 일정이 계속 늦춰지는 상황을 걱정하며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며, 해야할 일들을 머리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는데, 하나하나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한 숨이 나왔다. 에휴! 왜 이렇게 일이 많나? 이 많은 일들을 다 언제 하나? 일은 많은데 왜 이렇게 하기가 싫나? 미치겠다. 휴!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자꾸 한 숨이 나온다. 웹자보 하나를 수정하면서 한 숨. 업무 메일 하나를 보내면서 한 숨. 공문을 받아 출력하면서 한 숨. 연락해야 할 명단을 작성하면서 한 숨. 해야할 일들 목록을 죽 훑으면서 계속 한 숨. 아, 진짜 나 왜 이렇게 사는거냐?


pretend


고등학교 3학년의 나, 여성을 만나기 위해 잠시 교회를 다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들 나에게 잘 해줬는데, 여름 수련회를 가서 다들 내가 제일 착해 보인다며 짧은 연극에서 예수 역을 나에게 시켰다. 난 못 이기는 척 예수 역을 맡아 연기했다. 


대학 1학년의 나, 흥부전을 각색한 영어 연극에서 주인공 흥부 역을 맡았다. 착하게 생겼다는 이유 만으로. 놀부 마누라 역을 맡은 동기 여자아이에게 주걱으로 뺨을 수십차례 맞고, 키 크고 잘생긴 놀부 역을 맡은 남자 동기에게 수십차례 두들겨 맞았다. 아, 진짜 주인공인데, 왜 이렇게 맞아야 하는 거야? 그 영어 연극을 본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 너 생각보다 연기도 잘 하고, 잘 어울리더라.


최근에 만난 어떤 사람은 내가 거짓말을 못할 사람이라고 얘기했지만, 그렇지 않다. 난 거짓말도 잘하고 연기도 잘 하는 사람이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겐, 혹은 어떤 순간에는 도저히 거짓말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나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인간이 나라고 생각한다. 


palpitate


연말이고 금요일이라 행정업무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손 댈 틈조차 없었다. 왜 그리 일이 많은 건지. 일이 많으면 하나씩 빨리빨리 처리를 해야 하는데, 머리 속에서는 자꾸 최근에 만난 사람과의 즐거웠던 순간이 불쑥 떠오른다. 그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도 모르게 그와 주고 받은 문자를 열어 하나씩 하나씩 읽어본다. 어쩌면 별 것도 아닌 말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뛰고, 설레는 감정이 든다.


영화 [라빠르망]에서 리자(모니카 벨루치)가 막스(벵상 카셀)를 만나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리자는 공원에서 막스가 자신을 부르자 몸을 돌려 뒤돌아 선 후 눈을 감는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후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막스를 향해 몸을 돌린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뒤 돌아서서 눈을 감으면 그를 향한 내 마음이 좀 정리가 되나? 아님 더 사랑하는 감정을 갖기 위해 그런 걸까?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어떤 기분이 들지. 얼마 전 좋아하는 사람이 지하철 역에서 내려 올라오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척 설레였다. 이런 기분 얼마만인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멀리서 그가 보일 때 차마 뒤돌아 서진 못하고, 그냥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떳다. 그 짧은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다가왔을 때 활짝 웃고 싶었다. 바보같은 얼굴 근육이 어색한, 이상한 표정을 만들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눈을 잠시 감고 있으니 정말 셀레는 감정이 폭발하듯이 커지더라. 오! 이런 느낌이구나. 이번에는 좀 민망해서 몸을 돌리지도 못했고, 아주 짧게 눈을 감았다 떴지만, 다음엔 더 제대로 느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는 중에 계속 그의 빨간 입술이 생각 났고, 내 손을 잡았던 그의 손의 감촉이 생각났다. 


 


책 이야기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교정을 보거나 글을 쓸 때 도움을 많이 준 책이다. 지금은 집에 책상이 없지만, 예전엔 책상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자리.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이 책을 두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특별판이 나왔다고 계속 사라고 하네. 난리를 치네. 과연 구판과 신판은 어떻게 차이날까? 특별판이라면 뭐가 달라지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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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9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

감은빛 2016-11-02 00:10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만들고 싶었던 책자였기 때문에,
글 쓰는 것 자체는 고생은 아니었어요.
다만 많이 바쁘고 정신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쓰려다보니 좀 힘들었어요.

samadhi(眞我) 2016-10-2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나는 소책자인데요. ㅋㅋㅋ 귀여워요.

감은빛 2016-11-02 00:10   좋아요 0 | URL
진아님께도 보여드리고 싶네요. ㅎㅎ

samadhi(眞我) 2016-11-02 00:12   좋아요 0 | URL
주세요 ㅋㄷㅋㄷ 정식 출간되는 거면 사고 싶네요.

yureka01 2016-10-2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의 모순이 석화에너지의 불균형에서 나온다는 평소 생각인데..솔라 에너지라..의미가 상당할듯합니다.표지도 깔맞춤인데요..

감은빛 2016-11-02 00:10   좋아요 0 | URL
표지가 참 예쁘고 귀여워요.
마음에 꼭 들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10-2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문장 강화가 이렇게 세련된 디자인으로 나오다니요.. 사야겠네요.. 집에 노란 문장강화 있는데..ㅎㅎ. 글구... 작은책 표지 정말 마음에 듭니다..

samadhi(眞我) 2016-10-29 09:38   좋아요 0 | URL
저도 노랑 문장강화 있는데 새 책 욕심나네요. 이건 출판사에 낚이는건데...

감은빛 2016-11-02 00:11   좋아요 0 | URL
저도 계속 고민 중이지만,
당분간은 책을 안 사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언제 다시 사버릴지도 모르겠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10-2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문장 강화가 이렇게 세련된 디자인으로 나오다니요.. 사야겠네요.. 집에 노란 문장강화 있는데..ㅎㅎ. 글구... 작은책 표지 정말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