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공산당 트로이카


꽤 오랫동안 일제시대 조선 공산당 남성 트로이카인 김단야, 박헌영, 임원근 그리고 여성 트로이카인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 여섯 명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위 세 명이 개울물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진을 시작으로 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날 이후로 줄곧 생각해왔다. 물론 나는 작가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긴 시간 자료를 조사하고, 그 자료들 사이의 비어있는 시간을 추적해나갈 재주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여유가 되면 그 지난하고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작업을 한 번 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를 뺏겼다. 여성 트로이카 세 명의 삶을 담은 책이 나왔다. 당연히 그들과 얽힌 남성 트로이카 세 명의 삶도 일정부분 담았을 것이다. 선수는 뺏겼지만, 내가 과연 미래에 저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리고 이들의 삶을 담은 책을 내줬으니 아주 고마운 마음으로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긴 시간동안 이 여섯명의 삶은 나에게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처했을 그 엄혹한 시절의 운동과 현재 나태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나의 운동을 비교하며, 조금 더 힘내야지 격려하기도 했고, 신출귀몰했던 또 모진 고문을 이겨냈던 그들의 운동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자 노력했다.


자, 이제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이들의 삶을 돌아보자.

(아직 세남자는 안 나왔으니, 김단야, 박헌영, 임원근 이야기는 언젠가 내가 써볼까?)















찢어진 옷 꿰매 입기


1. 검은색 면 바지

 2년 전 가을 비탈길에서 뛰다가 콘크리트 균열에 발이 걸려 넘어져 찢어짐. 멀쩡한 옷이었고, 입고 다니기 편한 옷인데, 버리기 아까워 손 바느질로 꿰매 입었음. 당시에 귀찮아서 아니 갈갈이 찢긴 부위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꿰매다 보니 구김이 생기고, 삐뚤빼뚤 엉망으로 실밥이 드러남.



2. 분홍색 셔츠 

역시 2년 전쯤(아마도) 여름, 저녁에 집에 돌아와 땀에 젖은 옷을 벗는데, 몸에 붙어 잘 벗겨지지 않아, 억지로 잡아당기다가 상표를 붙여놓은 실밥 있는 부분이 살짝 찢어짐. 처음에는 별로 표가 나지 않아 그 상태로 계속 입고 다녔는데, 올해 여름 입으려고 보니, 그동안 옷 벗고, 세탁할 때마다 점점 더 찢어지면서 이젠 안 되겠다 싶을 만큼 찢어짐. 속이 다 들여다보이고, 찢어진 부위도 보기 싫어서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좋아했던 옷이기도 하고, 아직 멀쩡하기도 하고, 꿰매 입기로 결심함. 이번에는 좀 더 신경써서 꿰매려고 노력했으나, 바느질도 역시 기술이라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듯. 초보 솜씨로는 아무래도 삐뚤빼뚤 실밥 자국을 벗어나지 못함. 




 얼마전 저 검은 바지를 입고 어딜 가는데, 동행한 여성이 직접 꿰맨 거냐고 물었음. 당연히 삐뚤빼뚤 못난 실밥 자국 때문에 내 솜씨라고 알고 물었을 것으로 추정함.

그 전까진 별로 신경쓰이지 않던 꿰맨 자국이 이후로 신경쓰이기 시작함. 바느질을 좀 더 신경써서 잘 할걸 하고 후회했음


과소비


며칠 전 몇 달째 고민하던 걸 저질렀다. 지난 겨울 뱃살을 쏙 빼서 이제 공복에는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복근이 드러나는데, 그동안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아 전반적인 몸의 느낌은 별로였다. 요즘은 운동도 안 하면서 가끔 운동 동영상을 찾아보는 버릇은 여전해서, 볼 때마다 스냇치와 풀업이 정말 하고 싶었다. 스냇치를 하기 위해 헬스클럽을 끊자니 돈이 아깝고, 풀업을 하려고 철봉을 찾으니, 동네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뭔가를 사려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실내용 철봉(디핑 치닝 머신이라고 적혀있었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그래서 폭풍 검색을 시작. 몇 시간 동안 가격대와 규격과 기능을 살폈다. 대체로 10만원 초반대에 괜찮은 상품들이 있었다. 좀 저렴한 것은 8만원에서 9만원 사이도 있는데, 아무래도 조잡했다. 이왕 사려면 몇 만원 더 주더라도 괜찮은 걸 사야했다.


하지만 지금 생활비와 애들 양육비로 달마다 마이너스 재정인 상황이라, 섣불리 10만원 넘는 과소비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집이 좁아 이걸 들여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또 한 편으로는 이 집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왠만하면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데, 짐을 늘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만큼 싼 집을 찾기는 어렵고, 한동안 이사를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정적으로 내 맘이 움직인 건, 아침마다 거울을 볼 때, 점점 근육이 줄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과 "10만원짜리 빨랫대로 전락하면 어때? 가끔 매달려서 용쓰면 그걸로 된 거 아냐?"라는 친구의 말이었다.


그래. 당장 좀 쪼들리더라도, 평소보다 술 좀 덜 먹고, 그만큼 운동하자 하는 마음에 질렀다. 지르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제품들을 놓고 고민하다가 또 바벨에 눈이 갔다. 스내치를 하기 위해 비싼 돈 주고 헬쓰클럽을 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가 막심하다. 나는 사용하지도 않는 값비싼 머신 이용료를 내고서, 머신 때문에 저 한 구석에 아주 좁게 자리 잡은 프리웨이트 공간에서 몇 개 되지도 않는 바벨을 찾아 운동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몇 개 되지도 않는 바벨을 벤치프레스 혹은 각종 변형된 벤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먼저 쓰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바벨도 같이 사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바는 대봉으로 사고 싶었지만, 집이 좁으니 할 수 없이 중봉으로 고르고, 원판은 이왕이면 내 몸무게 이상 장만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한 번에 지출이 너무 컸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35kg만 샀다. 봉 무게와 합치면 42kg. 이 정도면 스냇치 연습하기에 괜찮은 무게다. 아니 이 년 정도 스냇치를 하지 않아서, 아마 저 무게도 다시 들어올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른다.


실내 철봉을 고르다말고 한참 바벨을 놓고 고민하다가 다시 철봉을 골랐다. 레그레이즈를 위한 등 받침이 있는 모델이 대부분이었는데, 경험상 저렇게 등 받침에 등을 대고 레그레이즈를 하면 자꾸 등이 굽더라. 차라리 등 받침이 없는게 훨 나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모델이 없더라. 풀업과 그에 이은 여러 응용동작을 위해서도 봉과 봉 사이가 뚫려 있는 것이 좋았다.


꽤 오랜 검색 끝에 등 받침도 없고, 가운데가 완전 뚫려 있는 모델을 찾았다. 게다가 이건 바닥 4면에 흡착판이 달려 있어서 훨씬 안정감 있게 철봉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오래 검색한 보람이 있었다. 완전 마음에 드는 모델을 찾아 결제했다.


그리고 토요일 낮, 둘 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철봉을 받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바벨(그러니까 바와 원판)을 배송한 기사님 표정은 그야말로 죽을 표정이었다. 이 더위에, 하필 이 무거운 걸 택배로 시켰냐? 뭐 이런 표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진짜 기사님께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다.


암튼 토요일 저녁엔 완전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스냇치와 클린 앤 저크, 데드리프트, 오버헤드 스퀏 등을 했고, 실내 철봉을 조립해서 풀업, 디핑, 레그레이즈를 비롯해 여러가지 응용동작을 해봤다. 한 두어시간 땀 흘린 뒤 온 몸이 나른하면서 근육이 땡기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한 동안 빡세게 운동하지 않아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


실내 철봉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마침 토요일이라 우리 집으로 온 아이들과 함께 조립했는데, 이것저것 미션을 주니, 신나게 참여했고, 다 만든 후에도 이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막 묻기도 하고, 내 동작을 보고 따라해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특히 작은 아이는 집안에 새 놀이터가 생긴 것처럼 철봉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일요일인 어제도 저녁 나절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린 후, 빨래를 널었다. 비가 와서 습한 날씨라 제습기와 선풍기 두 대를 모두 빨래에 양보했다. 그리고 빨랫대 만으로 공간이 모자라서 실내 철봉에 빨래 몇 개를 걸었다. 크기가 커서 빨래를 걸 수 있는 공간도 많았다. 친구 말처럼 10만원 넘는 빨랫대 처지가 되었다.


월요일인 오늘은 운동을 하루 쉬고 술을 마셔야지. 이렇게 비가 오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술잔을 기울여줘야 한다. 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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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에 감은빛님이 선물하신 김성동 씨의 <현대사 아리랑>, 소중히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은빛 2017-07-12 18:36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잘 간직해주셔서, 그리고 이렇게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무해한모리군 2017-07-1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여자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아이이름 단야로 짓고 싶었더랬는데 ㅋㅋㅋㅋㅋ
자자 실내철봉 URL도 공개하셔야죠

감은빛 2017-07-12 18:39   좋아요 1 | URL
아래 주소로 들어가면 4개 버전의 전신운동기구가 있어요.
저는 그 중 3번째 상품을 구매했어요.
1번과 2번은 바닥 흡착판이 없어요.
4번은 벤치까지 딸린 제품인데,
저는 이미 벤치가 있어서 필요가 없고,
여기 딸린 벤치는 좀 부실해보였어요.

며칠동안 사용해보니 흡착판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지 차이인 것 같아요.

http://www.wemakeprice.com/deal/adeal/2214828
 

사람이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존감일 것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편에 속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공부도 안 했고, 폭력 사건 전과도 달았지만, 대학은 무난히 들어갔고, 학생운동하면서 간부가 되었다. 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뭔가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 내게 뭔가를 바란다. 나는 늘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사이의 틈이다. 자존감 높은 잘난 어떤 가상의 상태의 나와 현실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이런저런 일에서 내가 남들보다 더 통찰력을 발휘하거나, 남들이 생각 못 한 어떤 역할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분명 아니다!

엊그정 인연을 맺게 된 어느 분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무척 조용하고, 지적인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 이야기 듣고 나니, 완전 개구장이에 머리 굴리는 사람으로 보여요˝

그 여성에게 내가 뭐라고 옛날 얘길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폭력전과를 달았던 시절 이야기 였겠지. 난 상황에 따라 완전 설치기도 하고, 완전 조용하기도 하다. 암튼 머리를 굴리는 편인건 확실하다.

토요일이라 일찍 만난 후배가 벌써 2시간 30분 넘게 정신을 못 차리고 졸고 있다. 나는 2시간 30분 넘게 대화상대가 없이 심심하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다른 후배를 불렀다. 그 친구는 오고 있는 중이다.

할 말도 많고, 쓰고 싶은 말도 많은 날들이다. 오직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근데 내가 대체 왜 시간의 허락을 받아야 만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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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내 친척이나, 친구나 지인이 아니라 애들 엄마의 친척, 친구, 지인이다. 어느때인가, 어디에선가 잠깐씩만 만났던 인연이라 이름은 물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난 원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난치병, 아니 불치병에 걸린 터라, 내가 그 사람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몇몇 이들은 얼굴이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까지 기억해내진 못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만났던 사람이구나 기억해냈다. 이건 내 입장에선 기적에 가깝다.

어떤이들은 먼저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한다. 그럼 나도 머리를 굴리며 일단 아는 체를 한다. 분명 낯익은 얼굴이긴 한데, 역시 확실하게 언제, 어디서 만난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맞이하는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그정도가 아니라 그 역할을 수행한다면 제대로 해내길 기대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나는 직업 정치인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지역구 어느 의원은 단 한 번 만난 이도 잘 기억해내더라.

나 같은 이는 장사도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잘 기억해서 자주 주문한 메뉴라던가, 취향을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텐데, 얼굴도 기억 못 할테니까.

최근 마을 활동가, 도시재생 활동가들을 자주 마주친다. 상대방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분명 낯익은 얼굴인데, 누군지 어디서 만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다시 알게 될 계기가 생길테고, 일부는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잊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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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모르는데, 얼굴만 봐도 누군지 기억할 때가 있어요. 정말 신기해요.

순오기 2017-06-04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난 사람을 잘 기억하는 것도 재능이라 생각해요~^^
 

하나


지난 토요일 아이들과 불광천을 걸었다. 햇빛도 쬐고, 꽃도 보고, 애들과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고, 철봉에 매달려 운동도 했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아이들과 신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한참 걷다가 완전 기분을 망치는 일이 생겼다. 안철수 후보 선거운동 차량이 다리 중간에 주차하고 불광천을 즐기는 시민들을 향해 마이크로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뭔가 떠들어대는데 그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서 무척 시끄러웠다. 듣기 싫은 목소리, 듣기 싫은 말투,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저 안철수 이름만 반복하는 상투적인 유세였다. 무척 거슬렸지만 그저 꾹 참고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바로 불평하기 시작했다.


"산책하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어떡하냐?", "왜 하필 불광천에서 난리냐?", "소중한 불광천을 돌려달라!", "행복한 휴일 보내라면서 자기가 우리 행복한 휴일을 망치고 있는 것도 모르다니 바보인가보다"


큰 아이가 불평하는건 당연하다 싶었는데, 작은 아이도 또박또박 불만을 제기하는 걸 보니 신기하고도 대견했다. 특히 불광천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오히려 피해를 주는 거라는 내용의 불만이 작은 아이의 입에서 나와서 어느새 아이가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다리 중간에 저렇게 차를 대놓고 선거유세를 하는 건 불법이 아닌가? 선거운동 차량이라 괜찮은 건가? 지나는 행인들이 소음에 대해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듯 했다. 마이크를 쥔 이가 연설을 하다가 간혹 작게 "죄송합니다"라고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안철수 후보를 찬양하던 아저씨가 녹색이 자연의 색이니, 녹색을 찍어달라고 했다. 확 열이 올랐다. 남의 당 색깔을 맘대로 쓰면서 자연의 색 운운하다니! 그들이 단 하나라도 자연을 위하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았다면 이렇게 우습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안철수 후보 선거 벽보를 보는 순간, 이건 혹시 우리 벽보를 보고 베낀거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3년 전 갑자기 다니던 출판사에서 해고당하고, 곧바로 결합해서 활동했던 선본에서 많은 고심 끝에 만들었던 벽보와 무척 유사한 컨셉이었다. 천편일률적인 선거벽보 디자인을 벗어나 확 눈에 띄는 벽보를 만들어 지역에서 꽤 인정받았던 벽보였다.



당시 벽보 이미지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자료를 백업 받아두었던 외장하드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만 그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역 당원 중에 한 명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안철수 선본이 우리 벽보를 베낀 거 같다고 당시 공보물 표지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위 사진은 그 당원이 올려준 선거공보물 표지) 그 글을 많은 동네 주민들이 공감하고, 댓글도 달아주었는데, 같은 생각을 했다는 분들이 꽤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또 베꼈다고 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 보기에 기본이 되지 못한 후보가 비슷한 컨셉을 써서 기분이 나쁠 뿐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당 색깔까지 비슷해서 더 기분이 나쁠 뿐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선본은 명심하시길. 초록색은 녹색당이 2011년 가을 발기인대회를 할 당시부터 사용한 당 색깔이며, 양손을 치켜든 벽보 컨셉은 2014년 선거에서 녹색당 선본에서 먼저 사용했음을.



엊그제는 새벽에 미군과 경찰이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를 반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대선을 치루기 전인 대행체제에서 기습적 사드 배치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가? 게다가 연로한 어르신들과 원불교 성직자들이 대부분인 소수의 항의를 8천여명의 병력으로 제압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많은 주민들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주민들의 차량을 파손했다. 이것만으로도 하루종일 화가 났는데, 나중에 페이스북에서 본 사진 때문에 거의 미칠 뻔 했다. 항의하며 울부짓는 어르신들을 비웃으며 영상을 찍고 있는 미군 얼굴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미개한 식민지 원주민들이 떼를 쓰는 것으로 보이는 걸까? 뭐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라는 건 법적 사실을 아닐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도 없는 이 시국에 기습적으로 작전을 펼치고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


녹색당에서 낸 규탄 성명을 보니 지난 20일 해당 부지를 주한미군에 공여했다는데, 그걸 결정한 주체는 또 누군가? 게다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장비를 반입하다니! 아직 설계도 다 끝나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도 이뤄지지 않았다는데, 주민 동의도 없이 불법적으로 장비를 들이다니! 이게 나라인가? 이 꼴을 보려고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가?


새벽 기습 작전 소식을 듣고 바로 떠오른 것은 2006년 5월 4일 새벽 5시에 있었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었다. 이날 동원된 인원은 경찰 110개 중대 1만1500명, 수도군단·700특공연대 2개 연대 2800여 명, 용역업체 직원 600명이었다. 당시 군인들의 진압 장면은 80년 광주항쟁을 다시 보는 것처럼 무지비하고 잔인했다. 역시 페이스북에는 그날 대추리 진압 장면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역시 그날을 떠올렸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집에 티비가 없고, 보면 왠지 열만 받을 것 같아서 단 한번도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본 적이 없다. 엊그제 저녁 토론회에서 '성소수자' 차별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가 잘못된 발언을 했나보다. 소성리 사드 배치 문제로 가득했던 내 타임라인이 갑자기 성소수자 이슈로 싹 바뀌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바쁜 일정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열었던 페이스북에서 활동가들의 연행 소식을 보았다.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었고, 그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대선후보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연행이라니! 


더 황당한 일은 문재인 후보를 감싸고 도는 사람들의 태도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그 사람을 옹호하는 것은 올바른 지지자의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소위 '빠'라고 부른다. 박근혜를 옹호하기 위해 태극기 집회를 열었던 분별없는 사람들과 지금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의 행동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어제 녹색당사는 하루종일 문재인 지지자들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이나 문재인 지지자들이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을 써가며 성소수자 활동가들과 녹색당을 비난했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었다.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의사 표현이 아닌 자신이 믿고 있는 후보에 대한 감정에 휘둘린 비난이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평소 좋아했던 혹은 공감하는 의견을 많이 냈던 몇몇 오피니언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문재인 후보가 잘못된 표현을 한 것은 맞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아니다." 혹은 "홍준표에게 말려서 그렇게 되었을 뿐,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등의 의견을 냈다. 


어쩌다 읽은 댓글을 보고 또 충격을 받았다. "왜 홍준표에게는 항의하지 않고, 문재인만 문제삼냐?"는 얘기였다. '돼지발정제'로 강간을 모의했다는 홍준표와 문재인을 같은 급으로 취급하라는 건가? 홍준표 후보에게(후보라고 붙이고 싶지도 않지만) 항의를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녹색당은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이에게는 아예 후보 사퇴를 하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 사진에 나온 이들은 모두 인권변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후보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매우 중요한 이력으로 내세우고 있고, 그를 향해 무지개 깃발을 들고 가는 장서연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하는 인권변호사다. 그는 다음 순간 경호인력들에게 저지당했고, 이후 연행되었다. 두 사람은 인권변호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 명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발언했고, 또 한 사람은 그 발언에 항의하고 사과를 받기 위해 행동했다가 연행당했다.


인권 활동가들이 문재인 후보의 멱살을 잡았다는 가짜 뉴스가 지지자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데, 우리가 이명박과 박근혜와 싸우며 그들이 끊임없이 유포했던 가짜 뉴스들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누구도 존재를 반대할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니! 또 성소수자 차별에는 반대한다면서 동성혼 합법화에는 반대한다니! 설마 이게 모순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변호사 출신 유력 대선후보가 저 단순한 모순도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이번 대선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국민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했건만, 특정 정당과 특정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은 이런 선거는 재미가 없다. 여전히 원내에 진입하지 못한 정당은 전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선거이고, 원내에 진입했지만, 의석이 많지 않은 소수 정당도 차별받는 선거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특정 정당과 특정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만큼 이번 선거에서는 소위 말하는 '사표 심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뿐이다.


많은 이들이 후보들을 평하고, 정책을 논했지만, 내 기준에는 그닥 와닿는 이야기가 없었다. 뭔가 말을 더 보내는 것은 내 입만 아플 뿐, 현재의 이 답답한 시국을 바꾸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저 위에 쓴 것처럼 안철수 후보의 벽보에 대해서만 개인적인 푸념을 늘어놓았을 뿐, 선거가 끝날 때까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도 하지 않고, 반대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습적인 불법 사드 배치와 돼지발정제 강간모의와 동성애 반대 발언과 활동가 연행 사건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진심을 다해 이 국면에 대해 고민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음을 지적해야겠다. 


마치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소한 이명박과 박근혜의 시대와는 다를 거라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나는 본다. 아마 다르긴 하겠지.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질까? 노무현 정권이 친 삼성 정권이었고,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고(그 과정에서 김선일씨의 죽음을 방조했고), 새만금 갯벌과 금정산, 천성산을 파괴했고, 핵폐기장을 짓겠다고 부안을 무법천지로 만들었고, 한미FTA를 추진해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했고(그 과정에서 국민적 반대운동을 무력 진압했고, 허세욱 열사가 분신하게 만들었고), 농민대회에서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을 살해했고, 평택에 미군기지를 짓겠다고 저 위에 언급한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펼쳤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섯


내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용민이라는 사람이다.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그가 오래전 막말 방송을 했음이 밝혀졌을 때, 이미 인권의식과 성평등 의식이 없으며, 그저 말로만 진보를 내세울 뿐인 정치인이라고 여겼는데, 아래 글을 보니 그 스스로가 본인이 말하는 입진보임을 깨닫지 못하는 구나. 그것 밖에 안되는 인간이구나 싶다.





혹시 나를 입진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자유겠지만, 내가 지난 십수년간 여러 투쟁현장에서 함께 싸웠음을, 입만 열면 수구 꼴통 세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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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인수위 준비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해야돼서 누가 되든 간에 임기 시작부터 혼선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벌써부터 대통령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세력도 있을 겁니다.

2017-04-28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길에서 김밥 먹기


오전에 편도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곳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점심시간 직후 4월 초에 있을 탈핵 행사 준비를 위한 현장답사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급하게 나오는데,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선배 한 분이 나를 붙잡는다. 나는 시계를 보며 마음이 급했지만, 차마 그 분의 말씀을 끊을 수 없어서 1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빠른 편이고, 차근차근 순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내용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편이라 그 분이 말씀하실 때에는 맥락을 잘 살피며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와르르 쏟아내듯 말씀하신 내용들을 들으며 적절한 반응일거라 여기며 대꾸했다. 마음은 계속 늦었다는 사실에 머물러 있었고, 시선은 자꾸만 손목시계로 향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으며 그 분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10여분이 참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 분과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을 탔다. 돌아가는 시간도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약속시간과 이동시간을 고려하니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배가 고파서, 벌써부터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약속 장소 근처에서 김밥이나 라면이나 잔치국수나 뭔가 금방 나오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그럴만한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는 시간도 돌아오는 시간도 무척 지겨웠다. 하필 이어폰을 놓고 나와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최근 바쁜 일정에 쫓겨 페이스북을 거의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왕복 3시간 이동하면서 계속 페북만 들여다봤다.


마침내 약속장소 근처에서 시계를 보니 5분 가량 여유가 있었다. 어디라도 식당에 앉을 시간이 안 될 듯 했다. 김밥 한 줄을 사서 걸어가면서 먹었다. 하필 걸어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세 명이나 만났다. 다들 김밥을 손에 들고 먹으며 걷는 나에게 "왜 길에서 먹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김밥을 씹으며,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을 세 번 듣고, 같은 답을 세 번 해야 했다. 아마 곧 동네에 소문이 날 지도 모르겠다. 저 양반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길에서 김밥을 먹으며 다닐 정도로 바쁘다고.


공원에서 김밥 먹기


이주일쯤 전에는 소공원 벤치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다. 오전에 한 서너군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분이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아 기다리다가 밥 시간을 놓쳤다. 그 분은 점심시간 직후에 연락이 닿아 만났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무척 배가 고팠다. 근처에서 뭔가를 먹고 가고 싶은데,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배는 고팠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돌아다니다가 김밥 파는 가게를 하나 찾았는데, 앉을 자리가 아예 없는 포장 판매만을 하는 가게였다. 즉 테이크아웃 전문점인 셈이다. 그 가게 외에는 달리 식당을 찾기 어려워 일단 김밥 한 줄을 샀는데, 길에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소공원이 있어서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아무리 먹을 곳이 없어도 찻길 근처에서 자동차 매연과 소음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뭔가를 먹고 싶지 않았건만, 그 소공원은 크기가 작아서 도로의 매연과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적당히 안쪽에 사람이 없는 벤치를 골라 앉아 김밥을 먹었다. 아, 그런데 내가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공원을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유독 내 주위를 자주 스쳐가는 느낌, 그 어르신들이 유독 나를 쳐다보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여기가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공원도 아니고, 점심시간이 좀 지난 오후에 여기서 홀로 불쌍하게 물도 없이 김밥을 씹고 있는 젊은이(어르신들 기준에서)를 보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모르게 씹는 속도가 빨라지고, 순식간에 김밥 한 줄을 뱃속으로 몰아넣고, 자리를 일어섰다. 시간을 재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김밥 한 줄을 먹는 시간으로는 신기록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 옛날 새만금 방조제에 기습 침투했던 날, 꼬박 스무 시간 가까이 굶었다가 나오자마자 김밥 열 줄 이상을 흡입했던 날의 기록은 깨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사실 어렸을 때 소풍가는 날을 제외하면 김밥은 그리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다. 어렸을 때 소풍 때에도 소풍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김밥도 좋았던 것이거나,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일년에 한 두 번 소풍가는 날에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지, 김밥 자체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비교적 싼 가격에,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서 찾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비교적 싱겁게 먹는 입맛 탓에 모든 김밥은 내게 너무 짜다. 김밥을 바로 말아서 싸는 집에서 주문할 경우에는 단무지를 빼달라고 주문하지만, 미리 싸서 은박지에 포장까지 되어 있는 김밥을 받아나오는 경우에는 어쩔수 없이 단무지만 빼고 먹는다. 그래도 내겐 짠 음식이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밥은 잘 먹고 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작년 여름 혼자 살게 된 이후 주변에서 지인들이 걱정어린 시선으로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가끔 밥을 사주거나, 술을 사주거나 한다. 뭐 나라고 잘 먹고 싶지 않겠나? 바빠서 잘 못 챙겨 먹거나, 입맛이 없거나, 배는 고프지만 딱히 먹고 싶은게 없는 날들이 대부분이라 대충 때울 수 밖에 없는 날이 많다.


그놈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대충 때우는 날이 많을 것이다. 가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한 몸 사는 데는 그리 큰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매일 출근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가끔 이런저런 비정기적인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고, 가끔 강연을 나가서 강사료를 받고, 가끔 외주 교정일을 해서 교정비를 받고, 가끔은 몸을 써서 일을 하기도 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 양육비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매일 출근해야 양육비를 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은 내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들 먹이려고 하는 일인 것 같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먹고 사는 일은 참 어렵고 구차하다. 그러나 오늘도 또 내일도 그 어렵고 구차한 일을 이어가야 한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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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7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31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 입대하기 전에 새벽에 알바를 한 적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 식사를 일찍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김밥을 많이 먹었어요. 일하기 전에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을 김밥 서너 줄 사옵니다. 계속 먹게 되니까 김밥이 짜게 느껴졌어요.

감은빛 2017-04-27 17:26   좋아요 0 | URL
사먹는 김밥은 대체로 밥의 양에 비해,
안에 들어간 재료가 많아 짠 편이죠.
저는 오래전부터 남들보다 싱겁게 먹는 편이라,
김밥을 사면 백 프로 짜다고 느낍니다.
예전엔 짠 것을 참으며 그냥 먹었는데,
요즘은 단무지를 빼고 먹어요.
그자리에서 바로 김밥을 싸주는 집은 단무지를 빼달라고 하는데,
그런 요청을 받으면 이상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아서 귀찮기도 하더라구요.

한 달 늦은 답글이네요.
시루스님,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