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이야기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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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한 선배네 돌잔치에 다녀왔다. 막내아들의 돌이었다. 위로 딸이 둘 있고 아들이 셋째다. 덩치 큰 선배가 한복을 입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돌잔치를 치르는 아빠라고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였다. 실제로 나이가 많긴 하다. 40대 초반이니까 아마 우리 아버지 세대였다면 벌써 큰 애가 대학을 갔을 수도 있는 시기다. 실제로 예전에 나를 많이 아껴주고 챙겨주셨던 형님은 40대 초반에 큰딸이 대학생이었다. 그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고 덕분에 그 형님은 40대 후반에 벌써 할아버지 소릴 들었다.

 

요즘 전반적으로 결혼과 출산의 시기가 너무 늦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일찍 결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늦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사회의 분위기가 일찍 결혼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이른바 ‘3포 세대’ 라는 말을 청년들이 많이 한다고 들었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결혼과 출산은 뭐 개인의 선택에 따라 더 늦게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애마저 포기라니! 그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에 연애를 포기한다니! 게다가 연애를 포기하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니. 이 얼마나 서글픈 말인가.

 

게다가 대학과 대학원, 공무원 고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 및 취직 준비로 사회 진출 시기마저 점점 늦춰지고 있다. 최근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하려면 실제 나이에서 10살 정도 빼고 생각해야 적당하다고 했다. 확실히 요즘 서른 살 언저리의 후배들을 보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와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이 책에서 고미숙 선생은 [동의보감]을 인용하면서 “여성의 생체 주기는 7단위로 변화한다.”고 했다. 14세에 초경을 하고, 49세에 폐경이 된단다. 그리고 “남성은 8단위다.”라고 말하면서 16세부터 남자가 되고, 64세에 생식력이 그친단다. 그래서 여성은 14세, 남성은 16세부터 성인이라고 했다. ‘이팔청춘’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모두 이팔청춘에 혼례를 올렸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딱 그 나이 때 내가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만 갇혀서 어른들(부모와 교사들)이 바라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무척 끔찍했다. 쓸데없는 죽은 지식을 외우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버리기보다는,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싶었고, 몸을 써서 일을 하고 싶었고, 맘껏 놀고 싶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빨리 진급하기 위해, 좀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기 위해, 좀 더 넓은 집과 큰 차를 가지려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까? 이 끝없는 경쟁의 구조에서 한 발만 벗어나서 생각해본다면 이게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짓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십 대 후반이면 이미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다. 그렇다면 사회의 분위기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관계없이 알아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더 이상의 헛된 교육과 쓸데없는 준비는 필요 없다. 그저 온 몸으로 삶에 부딪쳐나가면 그 뿐이다. 상처가 났다가 다시 아물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면서 사는 것이 더 현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다 자란 청년이 아직도 덜 자란 어린이처럼 보호받고, 간섭받고, 스스로 인생을 결정하지 못하고, 서른 살이 넘어서야 사회 활동을 시작하고, 마흔이 다 되어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지금 현재의 모습은 참 비정상적이다. 이는 생태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엄청난 낭비인 셈이다. 이렇게 이 사회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질서로 돌아가고 있지만, 대개는 그것을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몸이 다 자랐으면 성인으로 받아들여서 모든 결정권을 줘야 한다. 투표권도 주고, 직업도 갖게 하고, 결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이미 이 나이 때의 학생들은 이성교제도 하고, 알바도 뛰고 있고, 어른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줄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도 물론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경쟁과 입시만을 위한 방식이 아닌 정말로 살아가는 것, 즉 삶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이 책은 몸을 화두로 해서 내 삶과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우리가 몸에 대해 참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가 각 개인이 몸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하지 못하도록 만들어가고 있다는 섬뜩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신문연재를 묶은 것이라 글 하나의 호흡이 짧고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꺼내다 만 느낌이라 아쉽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곁가지가 좀 뻗었다가 돌아오고, 곧장 가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쉽다는 느낌이 남는다. 어쨌거나 고미숙이란 이름만으로 이미 그 내용이 보장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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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몸에 대한 이야기
    from 가보지 못한 길 2013-03-06 15:34 
    추운 날 "아 뚜" 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 바람이 쌩! 아가는 금방 얼굴을 찡그리며 '아 뚜'를 연발한다. "우리 예쁜이가 추워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답한다. 비탈길을 내려간다. 아가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다시 한번 "아 뚜"하고 소리를 낸다. 아가의 소리에 대답하듯 나도 "아이 추워!"하고 과장이 섞인 말투로 따라한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 어린이 집에 도착할 때쯤되면 아가의 뺨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다. 희고 차가운
 
 
blanca 2013-03-0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 전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남편이 40대 초반이었답니다.^^;; 축가를 불러주는 친구들 머리도 희끗희끗했어요. 아직 결혼 안한 친구들도 제법 있고요. 점점 성인이 되는 나이도 부모로 독립하는 나이도 늦어지는 것 같은데 이게 사회의 추세이긴 하지만 몸의 성숙이나 노화 나이와는 분명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수명도 늘어가고 있긴 하지만 노화 그 자체의 속도가 늦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고미숙 씨 글은 술술 잘 읽히는 것 같아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잘잘라 2013-03-0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이 책 읽어요. 화장실에서 한개씩 읽기 딱 좋아요. ^^;;

감은빛 2013-03-08 12:29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화장실에서 한 꼭지씩 읽기 딱 좋네요.
이게 원래 신문 연재꼭지여서 그런 듯 해요.

단발머리 2013-03-07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저도 이 책 읽고 있어요. 재미있어서 한 개씩 아껴써요.
생체 주기 이야기 너무 실감나요. 고미숙님 해석이 수긍이 되구요.
저는 곧 성인 자녀를 둔 중년 주부 되나요? ㅍㅎㅎ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그럼 안녕히~~~

감은빛 2013-03-08 13:0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단발머리님.
하나씩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죠.
나중에 관련있는 꼭지만 찾아 읽기도 좋구요.

자녀가 곧 청소년기에 들어서나요?
스스로의 권리와 책임을 잘 알려주고,
친구같은 부모가 되시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부모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글 읽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북극곰 2013-03-0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 책 읽고 있어요. :)
지난 번 감은빛 님 페이퍼에서 보고 사놨다가 요즘처럼 정신없는 와중에 후다닥 읽고 있지요. '나운설'이랑 '..누드 글쓰기'를 재밌게 읽었는데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저도 요 책은 살짝 아쉬워요.

잘 지내시죠?
저는 큰 아들 초등입학에 작은 딸 유치원 입학에 아주 정신없는 나날입니다.

감은빛 2013-03-08 13: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북극곰님.
아, 제 글을 통해 구매하셨다니, 조금 책임감을 느끼게 되네요.
네, 말씀하신 것처럼 중복되는 내용들이 좀 있죠.
저자 스스로 말한 것처럼 '동의보감'이란 하나의 재료를 갖고,
3번째 쓴 책이라서 아마 더 그런 것 같아요.

아들과 딸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아이들도 부모도 정신 없는 날이겠어요.
저희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학기라 선생님이 바뀌어서 아이도 부모도 모두 적응해야 하니까요.
큰아이는 1학년때는 거의 정년퇴음을 앞둔 나이많은 선생님이었는데,
이번 2학년에는 젊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작은아이는 작년에 같은 반의 친구 숫자가 적었고,
선생님도 한 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이 확 늘어났고, 선생님도 두 분으로 바뀌었구요.
작은아이는 선생님이 바뀐 영향이 바로 나타나네요.
요며칠 계속 집에서 짜증을 많이 내고, 어리광을 많이 부리네요.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그때까지 잘 쓰다듬어주고 도닥여줘야겠습니다.

순오기 2013-03-10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이웃 작은도서관 동아라 '역학연구회'에 추천했는데...
제가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고요.^^

감은빛 2013-03-11 13:20   좋아요 0 | URL
글의 호흡이 짧아 쉽게 읽히는 책입니다.
일단 시작하면 금방 읽으실 거예요.
 
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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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비를 흠뻑 맞은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젖은 머리칼이 자꾸 이마에 달라붙었다. 코로 흡입하는 산소로는 도저히 터질듯한 허파를 채우지 못해 입으로 가쁜 숨을 쉬어야 했다. 한발 한발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무거운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눈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기 위해 손등을 가져가는 동작조차 힘겨웠다. 무엇보다 목이 타들어 갔다. 물은 다른 일행의 배낭에 들어있었다. 내 배낭엔 쌀과 참치캔 등 식사거리만 잔뜩 들어있었다. 설마 다른 일행들과 떨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물을 딱 한 방울만 마셔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철퍼덕 바닥에 쓰러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한발씩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읽다가 오래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와 그의 친구 카츠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숲과 언덕을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그날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대학 1학년 때, 설악산이었다. 어려서부터 산동네에서 자랐고, 산을 자주 오르내렸기에 산행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행과 떨어져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곧 페이스를 잃어버려 거의 탈진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초반에 카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조소를 보내며 읽다가, 곧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는 부끄러워졌다. 또 산행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상황들이 등장할 때마다 다른 기억들도 떠올랐다. 영하의 날씨와 폭설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읽을 때는 군대에서 겪었던 한겨울 혹한기 훈련이 생각났고, 며칠씩 비를 맞아가며 걷는 모습을 읽을 때는 여름 유격훈련이 생각나기도 했다.

 

빌 브라이슨과 카츠가 시도했던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험난한 산길을 3천 36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다. 역자 후기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면 대략 1천 400킬로미터 가량 될 거라고 한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빌 브라이슨 스스로 걸었다고 밝힌 거리와 거의 비슷하다.(그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1천 392킬로미터 걸었고, 그건 전체 길이의 39.5%밖에 안 된다고 한다.)

 

비록 도중에 차를 얻어타거나, 택시를 타고 일부 구간을 건너뛰기도 했고, 바쁜 일 때문에 몇 달을 집으로 돌아와 지내기도 했고, 결국 종착지인 캐터딘을 밟지 못했지만, 그들은 온 힘을 다해 걸었다. 그것은 분명 그들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친하게 지냈던 후배는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는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껏 막대한 등록금과 시간을 바친 학교를 떠났다. 그 결단을 내리기 전에 부산에서 강원도 양구(자신이 군 생활을 했던)까지 걸었다. 당시에 나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후배는 더위에 시달리고, 비를 맞으며 약 한 달을 걸었다. 돌아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교를 정리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빌 브라이슨과 카츠와 그들이 만난 수많은 종주객들과 양구를 행해 걸었던 후배가 부러워졌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제주 올레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걷는 길이 유행되는 현상도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걷다보면 절로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결심을 굳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6개월이나 애팔래치아를 걸을 수는 없겠지만, 가깝게 갈 수 있는 산과 숲을 자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추천한 책이었다. 단순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경험만을 담아낸 책은 아니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잘 알 것이다. 특유의 위트와 유머 그리고 방대한 지식과 성찰이 엮인 훌륭한 작품이다. 그와 카츠의 좌충우돌 여행기도 재미있지만, 국가 정책이나 자본주의 문명 자체를 시니컬하게 비판하는 대목들도 흥미롭다. 가끔 등장하는 마치 신문기사 같은 느낌의 구체적인 사건사례나 역사적 지식들도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감초 역할을 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숲과 자연을 존중하는 그의 철학적 태도와 사색들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여러 지식과 그를 관통하는 위대한 사색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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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걷다보면 절로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결심을 굳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맞아요. 저는 아주 춥거나 비 많이 오는 날을 빼면 거의 하루 한 시간을 걷는 날이 많은데, 생각 정리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되어요.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고 의사가 말하던데요, 그건 걸으면서 심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어서래요. 걷는 건 한가롭게 머리를 식히는 행위라고 하네요. 산책의 효용이 되겠죠. 걸으면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요.
걷는 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2005년부터 걷는 취미를 가진 자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감은빛 2013-03-06 15:44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나게 늦었네요! 죄송!

걷는 취미를 갖고 계시다니, 좋네요!
저도 평소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두세 개 거리는 걸어다녀요.
좀 빨리 걸으면, 그리 시간차이가 나지도 않더라구요.

걷다보면 자꾸 글감이 떠오르는데,
빨리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 두드리고픈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서 앉으면 또 멍하니 빈 화면을 보고 있기도 합니다.

순오기 2013-02-1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쁘지 않으면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걸어갑니다.
생각도 정리하고 운동도 하는 일석이조의 시간이죠.
이 책 우리 도서관에서도 구입해야겠어요.
3월부터 11명의 숲해설가들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매달 1회의 숲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생태관련 도서를 더 장만하려는데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두 공주님들은 어린이집 잘 다니고 있지요? 많이 컷겠네요.^^

감은빛 2013-03-06 15:56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순오기님도 많이 걸으시네요.
생태관련 도서를 저도 많이 읽으려하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게으리기도 하고 생각만큼 잘 안되네요.

큰아이는 초등 2학년이구요.
작은아이는 어린이집 잘 다니고 있어요.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바다맛 기행 -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 기행 1
김준 지음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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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배경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가진다. 제일 크게는 성별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고, 성씨에 따라서(전주 이씨나 경주 김씨 등)도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업성적 그리고 직업 등이 아마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고향과 현재 사는 지역에 따라 갖게 되는 정체성도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부산싸나이’였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서울남성이다. 말투도 바뀌었고,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가끔 고향 친구나 가족과 전화할 때는 예전의 그 억센 말투가 다시 나오곤 하지만, 평소에는 부산 사투리를 쓸 일이 없다. 빠르고 거친 말투가 차분하고 느려지니까 성격도 확실히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가장 자주 들었던 얘기는 ‘해산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부산에서 왔으면 회 좋아하겠네. 다음에 회 먹으러 같이 가자고. 내가 한 잔 살 테니.” 한때 내 직속상관이었던 분은 본인의 부산출신 친구 얘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 해산물을 그리워했다고 과장해서 말하곤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일부러 데리고 가준 횟집이 나는 영 별로였다. 요즘은 새벽에 잡은 해산물이 곧바로 서울로 온다지만, 그래도 바닷가에서 먹는 거랑 서울 시내에서 먹는 거랑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건 아무리 말로 설명해줘도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확실히 맛은 그저 혀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이 바로 그런 점이다. 그냥 그저 먹는 것과 잘 알고 먹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단순히 술안주로 먹어왔던 수많은 해산물들이 다르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겨울에 즐겨 먹었던 굴이었건만, 실은 그때가 가장 맛있는 때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사람들이 ‘가을 전어’라고 말할 때에도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 왜 가을에 맛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뿐인가 올겨울 과메기를 맛있게 많이 먹었건만, 왜 구룡포 과메기가 유명한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밴댕이가 사실은 반지라는 이름의 생선이라는 것. 오징어가 기후변화 때문에 동해를 떠나 남해안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잡초로 여겨지던 함초(퉁퉁마디)가 사실은 부작용이 없는 명약이었다는 것. 김 양식장에서 김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 웬수로 여겨졌던 매생이가 요즘은 청정무공해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 등 처음 알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적 호기심을 마구 자극했다.

 

안타까운 사실들도 많았다. 드넓었던 갯벌을 게판으로 만들었던 칠게가 무분별한 개발과 어민들의 과욕 때문에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철새들도 발길을 끊었다는 것. 과메기의 원조였던 청어가 더는 잡히지 않아 이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는 사실. 그 흔했던 명태를 더 이상 구경하기 어려워 현상금까지 걸렸다는 사실 등을 읽으며 언젠가 우리가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려운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책에 의하면 전어도 몇 해째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흑산도 홍어도 남획으로 어장이 사라졌다가 간신히 회복되는 중이라고 했다. 과메기는 다행히 비슷한 맛이 나는 꽁치로 대체되었지만, 이제 청어 과메기는 더는 맛보기 어렵다.

 

이 책에는 다양한 해산물들에 대한 지식도 들어있지만,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도 들어있다. 이게 또 무척 흥미롭다. 과연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이들을 먹었던 건지. 당시에는 어떻게 먹었던 건지 하는 것들 말이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 바로 정약전의 [자산어보]다. 정약용의 형으로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어부들에게서 듣고 배운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해산물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서울 사람들이 전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전복이나 밴댕이를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따로 관리를 파견하여 관청을 두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단순히 바다생물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점이 무척 반갑고 좋다.

 

바다맛 기행은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여행 책이 아니다. 생물에 대한 지식과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다 읽고 보니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저자가 말한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해산물을 찾아 먹어봐야겠다. 여름에는 양반들만 먹었다는 민어복달임을 꼭 먹어보고 싶고 또 송도에서 된장빵으로 병어도 먹어보고 싶다. 칼로 썰지 않은 전복을 그대로 베어 먹으면 진짜 더 맛있는지도 궁금하다. 아! 생각만 해도 자꾸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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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2-1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은빛님 리류를 읽으니 절로 침이 입에 괴네요.저도 이책 읽어봐야 될것 같아요^^

감은빛 2013-02-18 12: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생각만해도 자꾸만 침이 흘러요. ^^
한번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2013-02-18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8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인 까닭에 -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 불혹을 넘긴 은숙씨를 선동한 그이들의 낮은 외침
류은숙 지음 / 낮은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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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순간이었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누군가 칭찬해주거나, 추켜세워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리고, 뭔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말이다. 수년간 이런저런 사회운동 판에서 변두리를 맴돌다 보니, 그럭저럭 이 판이 돌아가는 모양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을.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가끔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꼭 누군가의 칭찬을 듣게 되고(그이의 칭찬이 진심이었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대꾸였던 상관없이), 나는 꼭 우쭐한 기분을 느끼며 더욱 말이 많아지곤 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 맨날 잘난 척한다는 말은 나를 보면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말로만 잘난 척하는 나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간사 혹은 활동가 영어로는 Activist 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말하듯 87년 체제 이후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는 이유로, 많은 사회운동의 역량이 그전까지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부문 운동으로 흩어진 결과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 활동가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반갑고 또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어느 분야나 보편적으로 가진 어려움과 장벽이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주 어렵고 힘든 분야도 또 있게 마련이다. 운동 판에서 보자면 철거투쟁 활동가들과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가장 어렵고 힘든 분야에 있다고 아마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이 두 영역을 모두 포괄한 활동을 한다(물론 인권운동은 이 둘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를 읽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그 뒤에 서술되는 구체적인 이유를 읽기 전에 나는 벌써 고개가 끄덕여졌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두려웠다(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현장에서 마주쳤던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반갑게 읽고 싶기도 했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한때 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던 처지라 저자의 활동 영역과 그 치열한 활동에 대해 모를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운동영역들 중에서 인권이란 영역에 대해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단순히 그 운동이 물리적으로 힘이 더 들고, 경제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에 잘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로만 판단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는 인권 활동이라는 영역이 어렵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일본 인권교육가 아와노 신조오 씨의 프로그램에 대해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자기 인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10명만 적으라.’고 했단다. 저자는 ‘열 명? 그까짓 거!’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가족들 외에는 쉽게 이름을 적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 역시 가족들을 빼고 나면 써넣을 이름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친구들과 현재 자주 만나는 이들 몇몇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과연 이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소중하고 귀중한가?’ 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도 내가 소중하거나 귀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여기서 더 충격적인 질문들이 던져지지만, 나는 도저히 거기까지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부족한 존재이므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저자 류은숙은 인권이 ‘개인의 발굴’이라고 했다. 어려운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삼아, 이제부터라도 나라는 개인과 내 주변의 여러 개인들을 발굴해내는 일을 해봐야겠다. 비록 모자라고 더디겠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련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연대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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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무대 위의 문학 1
하타사와 세이고.구도 치나쓰 지음, 추지나 옮김 / 다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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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조용한 아이였다. 목소리도 작았고, 늘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친구가 별로 없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혼자 책상에 앉아 학급문고를 열심히 읽었다. 당시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 않는 내가 참 이상하다 여겼던 듯하다. 지금도 기억나는 편지가 하나 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혹은 5학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에서 가장 활달하고,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가 보낸 편지였다. 아니 편지라기보단 쪽지에 더 가까웠다. 겨울방학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반 아이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받은 쪽지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삐뚤빼뚤 적혀있었다. “너는 왜 피구를 같이 하지 않니? 너를 처음 봤을 때 피구를 잘 할 거 같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대략 저런 얘기였다.

 

암튼 나는 그닥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상태를 요새 말로 하면 ‘왕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처음 ‘왕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건 어릴 때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맘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친구들이 나를 ‘따’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친구들 모두를 ‘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친구들이 말을 시키거나 귀찮게 해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다.

 

그러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 때 나름의 괴로움과 고민이 있겠지만, 그런 과정은 그냥 성장통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단계가 단순한 따돌림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동반된 괴롭힘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를 폭력의 길로 이끈 것도 그런 과정들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려서부터 조용한 아이였지만, 누가 나를 건드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지만, 깡다구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주위에서 소문난 깡패학교였다. 일부 덩치 큰 아이들이 매일 키 작은 아이들에게 푼돈을 뺐거나, 도시락 반찬을 뺏어 먹거나, 학용품을 빼앗았다.

 

중학교 1학년 때 1년 동안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는데, 도시락 반찬을 뺐거나, 누군가 툭 건드리거나, 욕하거나 놀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때그때마다 맞대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녀석들도 내 성질을 알게 되어 더는 건드리지 않았는데, 학년이 바뀌면 또 새로운 녀석들이 또 나타나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3학년 때는 싸움의 횟수가 확실히 줄긴 했는데, 1ㆍ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안 건드렸던 것도 있었고, 나의 일화를 소문내줬기 때문이기도 했고, 초기에 태권도부에 속한 한 놈을 박살 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학교 태권도부는 전국대회에서 늘 상위권에 오르는 나름 실력 있는 운동부였다.) 아, 그리고 늘 작았던 키가 중2 때 확 크면서 신체적인 조건이 좋아졌던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폭력에 맞서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학창시절은 보냈지만, 내 주위 키가 작았던 아이들 중에는 상습적으로 돈을 뺏기고,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이때는 아직 왕따나 빵셔틀 따위의 말도 없었고, 그런 개념도 없었는데,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 아이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작은 놀림과 푼돈을 뺏기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나처럼 예민하지만, 나처럼 폭력으로 맞서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시절을 버티기가 참 어려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폭력 중에는 교사들이 휘두르는 폭력도 비중이 높았다. 몇몇 교사들은 깡패가 알면 친구 먹자고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남자교사들뿐만 아니라 여자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여자교사는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매일 했는데, 그것을 아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또 나이 많은 한 여교사는 남학생의 생식기를 쥐고 손톱으로 힘껏 누르는 체벌을 주기도 했다. 남자 교사들이 각목이나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것은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학교 자체가 거의 변태와 깡패들의 소굴이었다. 그런 교사들을 견디는 것도 사실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왕따와 아이들의 자살과 학교 폭력과 교실 붕괴에 대한 소식들을 들으면 양가감정이 든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교육환경과 현실을 겪게 해서 미안하고 같이 아프다가도, 내 학창시절과 비교해가면서 그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뭐 어쨌거나 아프다. 우리 아이들이 곧 자라서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더욱 아프고 답답하다.

 

이 이야기는 처음에 연극대본으로 세상에 나왔다. 일본에서 문제작으로 떠올랐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는 먼저 낭독회를 열었다. 연극 공연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단지 낭독회를 열었을 뿐인데, 많은 관심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극본을 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라고 한다. 일련의 과정이 흥미롭다. 그만큼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주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제목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뒤표지에도 적혀있듯이 설마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 싶은 의심이 들다가도, 현실은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던 몇몇 사례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짧은 이야기이고, 등장인물도 몇 안 되고, 장소는 단지 방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과연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짧은 내용 속에서 이렇게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나 싶다. 애초에 소설이 아니라 연극 대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갈등구조가 더 잘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 아이들 그리고 아이의 고통과 고민을 덜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부모들이 한 번쯤 읽어보고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싶다. 이 책이 어떤 해결책을 내주기 때문에 권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딱 이거다 선언할 해결책은 없다! 정부와 교육 당국이 제시하는 해결책만 바라보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좀 더 다각적인 고민이 우선 필요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실제로 노력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친구를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그런 현실에 내몰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부모들이고, 교사들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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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2-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네요. 이 책이 아니라 앞부분의 이야기요 ^^ 제가 소설가라면 한번쯤 주인공으로 써보고 싶은.
이 책도 재미있을까요?

감은빛 2012-12-28 11:56   좋아요 0 | URL
오! 영광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찍어주셨으니, 이제 쓰시기만 하면 되겠네요! ^^
이 책은 흥미롭지만, 솔직히 재밌다고 하기는 어렵네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니까요.
이런 일이 절대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이 2012-12-2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데요.
분명 저도 문제가 꽤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냈건만 어른이 되고보니 무심하네요;;
그때의 어른들처럼, 반성해야겠어요.

감은빛 2012-12-28 13:03   좋아요 0 | URL
정도의 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춘기에 조금씩 반항을 하지 않나 싶어요.
하필 그 중요한 시기에 학교에 갇혀서 압박을 받아야 하니 말예요.
이 심각한 문제를 어찌 풀어야 할지 막막하네요.

마녀고양이 2012-12-2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책 주문했는데, 그 전에 이 리뷰를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읽고 싶네요...

감은빛님, 편안한 연말되시고 즐거운 일 듬뿍 생기는 새해 되셔요.

감은빛 2013-01-02 11:36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어느새 새해가 되었어요.

달여우님, 올해 좋은 일이 가득가득 몰려오기를 바랍니다!

뽀로롱 2013-01-3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교우관계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지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학창시절이 좋았고 돌아가고 싶다는 말들을 하지만, 아니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동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감은빛 2013-02-04 10: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뽀로롱님.
동지를 만난 기분이라니, 무척 반가운 말씀이셔요! ^^
먼저 인사 남겨주셨으니, 저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리랑 2013-03-18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보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말도 없으면서 동시에 힘도 없어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중 한명이었습니다.ㅠ 님의 글을 보니 학창시절의 어려웠던 기억이 좀 나네요^^ 하지만 그래도 학창시절 추억할수있는 리뷰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역시 당시 선생님의 체벌도 심했었는데 저희 학교에도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하면서 즐기는 여자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영어선생님이었는데 매일 스무명 이상씩은 1인당 3대 이상씩 맞았던 것 같은데 맞으면서 중간중간 눈떠보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있어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감은빛님과 제가 같은 선생님을 만났던것은 아닐지 모르겠네요.

감은빛 2013-03-28 13:5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것은 아닌지,
조금은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양손으로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렸던 여 선생님이
아마 수학이거나 생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영어는 아니었어요.
같은 선생님은 아니니, 그 시절 그런 식의 체벌을 '즐겼던(!)'
여선생님이 한 명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군요.
스트레스를 아이들 뺨에다 풀었던 그 여선생님은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이젠 많이 늙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