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보지 못한 길 (감은빛 서재) &gt; 삶의 흔적속으로</title><link>http://blog.aladin.co.kr/idolovepink/category/4088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읽기란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책 읽기란 가보지 못한 또다른 길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25 Oct 2026 03:49: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감은빛</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1630183387589.jpg</url><link>http://blog.aladin.co.kr/idolovepink/category/4088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감은빛</description></image><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차별에 맞선 혁명의 최후 - [모두를 파괴할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80544</link><pubDate>Sun, 30 Aug 2026 14: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805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838128&TPaperId=174805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60/1/coveroff/k5828381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838128&TPaperId=174805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두를 파괴할 힘</a><br/>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07월<br/></td></tr></table><br/>지난 번에 읽었던 [테세우스의 배]를 쓴 이경희 작가의 소설이다. 혹시 그 작품과 연결되는 것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읽다보니 익숙한 이름이 하나 나왔다. 바로 ‘트라이 플래닛‘ 이라는 대기업. 저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석진환이 회장 자리에 앉아있는 군수산업으로 성장한 엄청난 대기업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그 영향력이 막강한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몇차례 이름이 언급될 뿐, 핵심 이야기에 얽혀있지는 않았다.<br><br>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맨 뒤쪽 작가의 말 바로 앞에 있는 짧은 부록 ‘데비안트 능력에 대해‘ 부분을 잘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맨 앞에 나와있는 등장인물 페이지도.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랜 습관 때문에 앞, 뒤 양 표지와 책 날개 그리고 판권 면을 가장 먼저 읽은 후, 맨 뒤쪽 작가의 말 혹은 옮긴이 후기, 추천사나 해설 등을 먼저 읽는 편이다. 이번 작가의 말에는 그 맨 앞에 굵은 글씨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경고가 있었다. ˝세상에는 책을 펼치자마자 맨뒤로 달려와 후기부터 읽어대는 폭주족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경고. 이 경고에서 멈추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책을 다 읽고 이 후기로 돌아오라는 얘기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폭주족 같은 부류라고 지칭한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후기를 먼저 읽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스포일러 경고와 같은 효과일 것이다. 나는 스포일러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소설도 영화도. 그래서 언젠가부터 맨 앞에 스포일러 경고를 적는 것이 유행하는 상황이 좀 우스웠다. 원래 어떤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내용을 다룰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게 소설이던 영화던 그걸 쓰는 건 당연히 내용 중 일부를 드러내는 행위다. 당연한 걸 굳이 빨간 글씨로 그리고 굵은 글씨로 경고까지 해야하나?<br><br>다시 강조하지만,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꼭 사전에 복잡하기만 한 ‘데비안트‘ 라는 존재와 그들의 기이한 능력들을 꼭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점퍼, 텔레파스, 키넨시스, 보이안트 라는 네 가지 초능력을 지닌 데비안트의 유형과 그 각각의 유형이 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간단히 소개한 내용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br><br>일단 데비안트 라는 용어부터 낯설고 입에 붙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와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설명에도 뮤턴트 혹은 코리안 프릭 등 멸칭 대신 사용하는 공식명칭이라고 나와있다. 주로 2020년대 한국을 중심으로 많이 발현되었다고 했다. 이런 설정은 이 소설보다 더 이후에 출간한 [SF 보다 vol.2 벽]에 실린 첫 단편 소설 [아레나]의 설정과 거의 비슷하다. 듀나의 아레나에서도 주로 한국에서만 초능력자들이 나타난다는 설정이었다. 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듀나의 소설 두 개를 언급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둘을 읽어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설정도 영향을 받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br><br>맨 처음 엑스맨 1편을 보았을 때 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를 잘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영화에도 나오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억압, 일본 제국이 저지른 조선인에 대한 억압 등. 이 이야기에서도 데비안트 능력이 발현되는 청소년들은 수용소 같은 곳에 갇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나는 소록도를 떠올렸다. 일제가 한센인들을 격리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지옥. 최근 거의 모든 이슈를 삼켜버렸던 하영이라는 여배우가 자랑스럽게 언급했던 그 소록도. 그리고 예전에 소록도에서 읽었던 당시 학생들의 시집들과 일기들을 통해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소설의 초반에 주인공 화경이가 갇혀 지냈던 그 수용소 같은 학교 생활을 읽으며 소록도의 희생자들이 떠올라 괴로웠다.<br><br>엑스맨도 그렇고 이 소설도 평범한 인간과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가 나타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 차별의 문제까지 연결한다. 성별, 인종, 성 정체성, 장애 여부, 종교, 신념, 이념 등등. 등장인물들 중 일부는 데비안드이자 성 소수자이며 흑인이었다. 주인공 일행 다수는 여성이자 데비안트였다. 데비안트이지만 장애를 가진 인물들도 나온다. 이 사회에서 특정 개인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차별의 굴레에 처해있음을 잘 드러내는 지점이다. 예컨대 나는 중년 남성으로 사회적으로 절대 약자로 볼 수 없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라는 차별을 당해왔고, 경제적 가난이라는 구조적 차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br><br>엑스맨이 아주 다양한 초능력들을 보여주는 반면, 여기서는 네 가지 범주로 묶이는 한정적인 능력들이 발현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단 점프. 이건 아마도 영화 [점퍼]에서 개념을 가져온 것 같다. 순간이동이나 텔레포트 라는 단어 대신 점프 라는 단어를 쓴 것 부터 그렇고, 작중 점퍼들이 활약하는 모습들도 이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음은 키넨시스. 부록의 설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능력은 염력 혹은 염동력이라 부를만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영화 [푸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능력인 것 같다. 키넨시스의 다양한 능력들 중에 스윙은 스파이더맨에게서 따왔음을 암시해놓았다. 그리고 파이어스타터 라는 개념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중 등장인물인 리웨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비밀스러운 인물이라 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보이안트는 천리안 능력과 투시 능력이 결합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일 난해한 능력이 텔레파스다. 부록의 설명도 난해하고 모호하며, 작중 등장하는 주요 텔레파스들의 능력도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 이야기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능력이다.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세 명의 여성이 모두 이 비밀스러운 능력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다른 작품들에서 접했던 텔레파시 능력은 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 사람 혹은 여러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 작품의 텔레파스는 다수의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는 허브 능력과 상대와 심리적 매듭을 묶는다는 바인드 능력 그리고 상대의 기억을 읽고 지우는 능력 등이 있고 심지어 상대를 조종하기도 한다. 이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데비안트는 모두 텔레파스로 묘사된다. 제1차 텔레파스 전쟁의 팔레스타인 쌍둥이와 제2차 텔레파스 전쟁의 홍콩 출신 아이리스 쳉이 모두 아주 강력한 텔레파스였다. 그리고 주인공 신화경 때문에 제3차 텔레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주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강력한 텔레파스는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일종의 정신지배자로 보인다.<br><br>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데비안트들이 손을 잡거나, 신체접촉을 통해 서로 다른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현한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여기서부터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다.<br><br>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아서 인물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 작가는 여성 등장인물들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 일단 절대적으로 여성들이 많다. 주인공 일행 중 남성은 하태빈이 유일한데, 나는 중반까지 이 인물도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중간에 수염 묘사가 있어서 남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경의 엄마 동료들 중에서도 장 폴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다. 가장 악랄한 악역처럼 그려지는 급진주의 데비안트 단체 ‘여성들의 목소리‘ 주요인물들도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이다. 특히 무니야 알 바크르는 악녀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또 극초반과 극후반에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존재 최서윤도 전체 이야기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악역 여성이다.<br><br>이 많은 여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리야 사무체예바 이다. 아주 짧게 등장하여 비중이 별로 없는 인물이지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이리스 쳉 역시 인상적인 인물이지만, 마리야의 활약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br><br>주인공 3인방으로 칭할 수 있는 신화경, 조유영, 리웨이 이 세 여성은 좀 많이 답답하다.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이자 문제라고 느낀다. 이건 이 소설의 구조와 시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작가가 다른 구조와 시점을 사용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그려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br><br>이 소설에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 바로 시점이다. 맨 첫장면은 3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이 가장 자연스러운 서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1인칭 시점으로 서술 주체가 바뀐다. 부자연스러웠다. 바로 앞의 시작 부분이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그 부자연스러움이 더 잘 느껴졌다. 이거 등장인물이 엄청 많은데 매번 서술자를 바꿔가며 1인칭으로 가려나 하고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나니 다시 2인칭으로 바뀌었다.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서술자가 너, 바로 주인공 신화경 그리고 독자에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이건 앞서 1인칭 보다 훨씬 더 부자연스러웠다. 2인칭이라면 서술자가 계속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설명해야 한다. 주인공 옆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아니,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왜 2인칭으로 서술하지? 주인공 곁에 유영이 등장하는 것 조차 한참 후인데, 그보다 더 과거를 과연 누가 주인공에게 설명할 수 있지? 이건 일종의 오류이고 잘못된 서술 방식이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이후 다시 3인칭과 1인칭이 나오기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서술한다.<br><br>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내‘가 ‘너‘에게 하는 이야기다. 제가, 당신들에게.˝ 라고 적었다. 작가가 굳이 가장 중요한 시점의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고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작가의 의도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것이 문제이자 패착이라는 생각이 든다.<br><br>작가는 마지막 장면의 반전 효과를 노리고 2인칭 시점을 사용하며, 그 서술자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도록 정보를 차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조유영의 능력과 리웨이의 능력이 주인공 화경의 능력과 엮이며 뭐가 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전개를 그려낸다. 게다가 작가의 말 이후에는 쿠키 라고 결말까지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에 대해 리웨이 시점을 추가로 적어놓았다. 마블 시리즈 덕분에 쿠키 영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과 그 기능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했는데, 소설에도 쿠키 분량을 넣다니! 참신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br><br>이 소설의 가장 안 좋은 점은 세 개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2인칭의 과거 시점이자, 인터넷 방송 대본 및 댓글 형식을 차용한 2장의 서술 방식이다. 일단 너무 산만하고 쓸데없이 분량을 키운 방식이다. 이 책이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여기서 내용에 비해 공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본의 형태로 서술한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댓글들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달았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말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나는 작가의 욕심이 과했다고 본다.<br><br>두번째는 해방구였던 예카테린부르크가 함락되는 날의 최종 묘사가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이 강력한 텔레파스가 폭주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라고 보인다. 앞서 팔레스타인의 쌍둥이와 아이리스 쳉의 전례가 있었듯이. 그러면 이게 왜 어떻게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 에반게리온을 언급했던데, 가장 중요한 폭주의 순간을 화경에게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도록 수많은 글씨들을 중첩되게 겹쳐 인쇄한 방식으로 연출한 것이 에반게리온의 결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라는 질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br><br>마지막 문제는 주인공 3인방의 관계와 능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은 점이다. 유영은 조용하고 튀지 않으려던 화경이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수용소와 같은 학교를 지배하고 있던 존재임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인 것처럼 나온다. 그래서 유영은 이후에 마치 도장깨기 하듯 전국의 수용소와 같은 학교들을 해방하러 다닌다. 유영과 화경의 관계와 애증은 그래도 좀 드러나는 편이다. 하지만 일부러 꽁꽁 감춰두었던 리웨이와 화경 그리고 유영이 얽힌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화경의 엄마가 분신할 때 불은 붙인 존재가 리웨이임을 밝히며 리웨이가 왜 화경에게 집착하는지 그 단서는 보여줬지만, 본질적으로 리웨이가 화경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화경을 무조건 보호하려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예카테린부르크 함락 시점에서 화경을 죽이려 했던 리웨이가 나중에 달에서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것도 단순히 의뢰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 이 소설의 시작시점에서 화경이 느낀 명백한 살의는 리웨이가 거의 확실한데, 리웨이가 왜 이 우주선의 모두를 죽이려 한 것인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왜 유영의 능력인 몸을 바꾸는 것을 리웨이가 쓸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혹시 리웨이의 몸은 유영이 장악한 상태였던 걸까? 그래서 사실 죽은 것은 유영이 아니라 리웨이였던 걸까? 이런 부분들은 단순히 난해하다기 보다는 작가가 확실하게 드러냈어야 할 부분들을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br><br>이외에도 사소한 단점들이 몇가지 눈에 띄지만, 글에 반해 장점들도 명확한 소설이다. 일단 68혁명으로부터 68년 후를 시간 배경으로 정한 것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역사상 존재했던 대표적인 혁명을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혁명의 한가운데 해방구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담아내려고 애쓴 것이 인상적이다. 파리 꼬뮌, 68혁명,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홍콩 민주화 운동,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독립을 이끈 발트의 길 비폭력 저항운동 등이 이 해방구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살바도르 아옌데 등 남미의 혁명가들과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을 떠올릴 수 있는 상황들도 인상적이다.<br><br>사회의 부조리를 바꾸는 일을 주로 하는 활동가로서 전 지구적 혁명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화경이라는 엄청난 능력자가 만든 예카테린부르크 라는 해방구가 너무나도 멋진 무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해방구를 지키려 애쓰는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존재들을 떠올렸다. 한편으로 선의로만 가득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부조리한 인간의 본능을 마주하는 상황도 인상적이었다. ˝구제하지 못할 모순덩어리들. 독재에 맞서는 숭고한 존재인 동시에 누군가를 성적으로 음행하는 존재며,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왔으면서도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존재며, 퀴어 퍼레이드를 주관하면서도 인종이 다른 누군가를 우스개 삼는 존재며, 전쟁 난민을 포용하는 일에 기부금을 내면서도 타국에서 온 소녀의 몸을 돈으로 희롱하는 존재며, 자신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누군가의 가족을 파괴하는 존재며......˝<br><br>완벽한 인간이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숭고한 영웅이자 혁명가라고 해도 인간적인 결함들은 존재할 것이다. 그런 혁명가들이 아무리 선의로 해방구를 열었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온갖 부조리한 더러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혁명은 너무나도 가슴 뛰는, 매력적인 단어이지만 그 혁명의 이면과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촛불을 통해 내란 수괴를 몰아냈지만, 그 다음 대통령은 촛불과는 관계없이 기득권의 편에 서있다.<br><br>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글을 마치자. 소설을 읽으며 너무 오글거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예카테린부르크를 점령한 직후 노래를 이어부르는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발트3국 독립을 이끈 당시에 불렀던 노래라던가 프랑스 국가 라던가 혁명과 관려한 외국 노래들을 이어부르다가 한국인인 주인공 일행들로 순서가 이어지자 처음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더니 그 다음에는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시간 배경은 1968년으로부터 68년 후라고 했으니, 2036년이다. 2036년의 10대들은 여전히 소녀시대 노래를 듣고 부를 것인가? 이화여대 시위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고 들었고, 이번 윤석열 탄핵 시위에서 소녀시대 뿐 아니라 여러 아이돌들의 노래가 불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작가가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사용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60/1/cover150/k5828381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600159</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9289</link><pubDate>Mon, 24 Aug 2026 19: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9289</guid><description><![CDATA[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년<br>탈핵신문 기사를 읽고 오늘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주년이 되었음을 알았다.해당 기사 보러 가기:&nbsp;http://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2048<br><br>기사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던 2023년 8월 당시 약 134만톤의 오염수가 저장되어 있었고, 3년 동안 16만 7천톤을 버렸지만, 그 사이에 약 7만톤의 새 오염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후쿠시마에서 수소폭발을 일으킨 발전소 4기 모두 데브리 라고 부르는 녹아내린 핵 연료봉 다발이 어떤 상태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흘러 들어가는 지하수와 온도를 낮추려고 일부러 붓고 있는 냉각수 등이 매일 끊임없이 나온다. 핵폭발 사고가 일어난 것이 2011년 3월 11일인데, 지금 2026년 8월 중순까지 공기 중으로 그리고 지하수로 그리고 오염수 방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있다. 탈핵 강의를 할 때마다 반복하는 얘기인데, 아마 백여년이 더 지나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지금 이 4기의 발전소 잔해를 수습할 기술이 없는데, 사오십년 혹은 칠팔십년 지난다고 그런 기술이 금방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br>기사를 보니 일본의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가 어제 "어업인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계속되는 ALPS 처리수 해양 방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바다에 버리는 오염수는 일본의 동쪽 바다를 통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과연 일본 국민들은 안심하고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해산물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일본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살고 있었다면 못 먹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니다. 방사능은 계속 새어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새어나올 것이다. 현재 인류는 이걸 막을 기술 자체가 없다. 꾸준히 새어 나온 수백가지 방사능 물질들은 해양 생물들에게 축적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방사능에 오염된 해양 생물들이 태평양 전체를 돌아다니게 되므로 한국에서 먹는 해산물들이 완전히 안전한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해양 생물들이 한국 어민들의 배와 그물만 피해갈 리는 없으니까.<br>이재명 대통령은 2023년 8월 23일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방사능 오염수 방류 규탄 촛불집회 자리에서&nbsp;“대통령의 직무가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제일인데 대한민국의 영토와 바다를 오염시키겠다는 일본에 왜 우호적인 것이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본인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원전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방사능 오염이라는 현실에 대해 눈과 귀를 닫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통령에 대해 거의 기대하는 바가 없었기에 본인이 했던 말조차 안 지키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본인이 다른 정치인들을 비판할 자격은 절대 없을 것이다.&nbsp;<br>모기<br>며칠 전 차에 모기가 한 마리 들어왔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팔과 다리 등 여기저기 가려운 곳이 생겨 살펴보니 방금 막 모기에 물린 상태였다. 그때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사이로 유유히 날고 있는 모기를 보았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모기를 잡기 위해 휘저었다. 처음 몇 번의 시도는 계속 빗나갔지만,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 중일 때 모기도 잠시 차 천장에 내려 앉은 것을 보고 얼른 손을 휘둘렀다. 감각이 있었다. 모기는 죽었고, 내 손가락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모기 피가 아니라 내 피였다.<br>한창 더웠던 8월 초까지는 모기를 거의 보지 못했는데, 아주 조금 기온이 떨어지자 마자 모기들이 엄청 기승을 부리는 느낌이다. 거의 매일 대여섯 곳 이상 물리는 느낌이다. 대체로는 물리고 몇 시간 지나면 크게 가렵지 않고 물린 자국이 작아지는데, 가끔 물리자 마자 긁지 않았는데도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엄청나게 가려운 경우가 있다. 지금은 팔에 두 군데, 허벅지에 하나, 등에 하나 크게 부푼 자국들이 있다. 아무 미칠 것 같다. 참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벌레 물린 곳에 바르는 약을 사서 갖고 다니며 가려울 때마다 바르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 가렵지만 않으면 내 피를 좀 빨아먹는 것 정도는 참아줄 만한데, 가려워도 너무 가려워서 견디기가 어렵다.&nbsp;<br>다시 날이 더워졌다. 아마 9월 초 정도까지는 다시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날 것 같다. 가을이 오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가을을 기다리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2399</link><pubDate>Thu, 20 Aug 2026 2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2399</guid><description><![CDATA[반가움의 표현<br>배송 일을 하면서 간혹 아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아는 분의 집으로 배송을 가는 경우도 있고, 운전하는 중에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도 무표정인 경우가 많은데,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막 그렇게 반가운 표정을 짓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만난 것이 좋으니 웃기는 하지만, 그게 약간 억지 웃음처럼 활짝 웃는 표정은 아니고, 반가움의 표현 역시 그저 인사말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내가 그저 적당히 반가움을 표현할 때 상대방이 격하게 반갑다는 표현을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다. 이건 아마 성격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얼굴 표정에서부터 온 몸의 동작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사람들.&nbsp;<br>어제 그런 분들을 두 분이나 만났다. 한 선배 활동가는 내가 일터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유리로 된 작은 방에서 회의중이었다. 나는 회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내가 챙겨야 할 것들만 얼른 챙기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의 중이던 선배 한 분이 나를 보더니 양 손을 번쩍 들어 격하게 흔들었다. 얼굴도 활짝 웃는 모습. 그렇게까지 안 해도 그저 인사만 나눠도 서로 반갑다는 것은 전해지지 않을까?<br>그리고 한참 후에 일을 완전히 마치고 동네 헬스장으로 가고 있었다. 일을 마치면 한 삼사십분 가량 운동을 하고 씻기 위해 곧바로 헬스장에 가는 편이다. 한참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 일방통행 길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경차 하나가 내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열리더니 한 여성이 큰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에 양 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가끔 마주치는 동네 활동가 중 한 분이다. 자주 만날 때는 매주 마주치기도 했는데, 최근 몇 달은 그리 자주 만나지 못했었다. 서로 다른 일들로 바빴던 듯.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반갑다고 표현할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건 성격의 영향일 것이다. 이 두 사람 외에도 늘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는 몇몇 분들을 안다. 지금도 그 분들의 그 환한 웃음과 큰 몸동작들이 눈에 보일 지경이다. 누군가 나를 반가워 해준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나도 그 순간에는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누군가를 반가워하는 편이 아니라서 조금은 불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상대방이 저 사람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네 하는 오해를 할까 싶기도 하고.&nbsp;<br>근손실 이후<br>어제 운동하고 샤워를 마친 후 평소와 달리 탈의실에 사람이 없길래 잠시 거울로 내 몸을 관찰했다. 지난 세 달 가량은 꾸준히 운동을 열심히 했다. 7월부터는 폭염 때문에 달리기를 멈췄지만, 가끔 헬스장 트래드밀에서 달리기도 했다. 9월이 되어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 다시 밖에서 달려야지. 암튼 최근에는 벤치프레스와 케틀벨 운동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벌써 6년이 넘게 지난 교통사고 때문에 나는 긴 시간 운동을 할 수 없었고, 긴 시간 열심히 운동하며 만들어진 근육들이 사라졌다. 근손실 이후 다시 운동을 해도 되는 시점이 왔을 때 좀 열심히 운동을 했었는데, 과거만큼 효과적으로 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여러모로 의욕을 잃었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했던 몇몇 동작들을 할 정도의 근력과 유연성을 모두 잃어버렸던 영향이 컸다. 운동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제법 오랫동안 아주 간단한 맨몸 운동 수준의 가벼운 운동만 했다. 그 시기에 달리기를 좀 열심히 했고, 근력 운동은 손을 놓고 있었다.<br>최근 3개월 열심히 운동을 한 결과는 아직 몸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 어깨가 넓어지고 흉근이 드러나 보이는 느낌 정도. 근손실 이전에도 나는 근육의 크기가 큰 편은 아니었다. 이건 유전의 영향도 크고 또 펌핑 운동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근 선명도가 조금 좋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바벨 스내치, 케틀벨 스내치 등의 난이도가 조금 있는 운동들을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근손실 이후 이런 운동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근력과 유연성을 잃었다. 흔히 3대 운동이라고 부르는 무게를 늘리는 운동들,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이런 류의 운동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가끔 하기는 했지만, 자주 하는 운동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그래도 어려서부터 역도를 해서 흉근이 발달한 것이 내 자랑 중 하나였다. 근손실 이후로는 그런 자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가장 열심히 하는 운동 중 하나가 벤치프레스와 인클라인 벤치프레스이다. 사라져버린 내 흉근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br>어제 잠시 살펴보고 과거 운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잠시 생각해봤는데, 이대로 1년 정도를 열심히 운동한다면 근손실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어느 정도 지금보다 탄탄한 토대는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1년 후 정도에는 과거에 좋아했었던 스내치 운동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금 다니는 헬스장이 집에서 가깝고 깨끗하고 다 좋은데, 프리웨이트 공간이 좀 애매하다는 점이다.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게다가 퍼스널 트레이닝, 그러니까 트레이너가 붙어서 1대1 교육을 하는 이용자들이 주로 그런 공간들을 쓰고 있어서 빈 프리웨이트 공간을 쓸 기회가 거의 없다. 게다가 빈 바벨도 부족하다. 그래서 대체로 본 운동으로 벤치프레스와 간단한 덤벨 운동들을 하고 정리 운동으로 케틀벨 운동을 하고 끝내는 편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체력이 좋아지면 점점 더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아니면 일 마치고 바로 가지 않고, 좀 더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를 찾아본다던가 해야지.<br>쓰고 싶은 말들은 좀 더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읽고 싶은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 그리고 쓰고 싶은 글들과 써야 하는 글들이 있는데, 언제나 시간은 부족하다. 물론 좀 더 부지런해지거나, 좀 더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이것도 여름이 가고 조금 선선해지면 나아질지도 모르겠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북플이 바뀌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7029</link><pubDate>Tue, 18 Aug 2026 07: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702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8587892X&TPaperId=174570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00/37/coveroff/928587892x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553278118&TPaperId=174570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95/coveroff/055327811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제 낮에 피씨로 브런치에 썼던 글을 하나 옮기고 저녁에 긴 회의에 참여했다. 밤 늦게 해당 글을 북플에서 확인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다시 로그인을 하라고 나왔다. 로그인을 하고 보니 북플 앱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중에 계속 쓰다보면 다시 익숙해지겠지만, 지금은 메뉴가 완전히 바뀌어 무척 불편하다. 12시가 지나서 늘 그렇듯 ‘지난 오늘‘ 게시판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메뉴의 포맷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있어서 한참동안 못 찾았다. 나중에서야 결국 찾아냈다. 뭔가 더 좋아졌다는 느낌은 없고, 그냥 불편해졌다는 느낌만 든다.<br><br>닥터스<br><br>지난 오늘 메뉴에서 과거 오늘 내가 쓴 글들을 가볍게 살펴보다가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와 [닥터스] 를 언급한 부분을 읽었다. 통속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대중적인 소설이자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비슷한 이미지의 시드니 셸던이 많은 책을 낸 것에 비하면 이 작가는 딱 저 두 권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80년대 말에 당연히 저 두 권을 읽었었다. [러브 스토리]는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닥터스]는 역시 뻔한 이야기였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리고 문득 이 책을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에 이 책을 사서 읽었을까? 모르겠다. 서울로 가져온 책 중에 이 책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 집 책장에는 없다. 혹시 부산에 이 책이 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부산에 갈 때마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쓱 훑어보곤 하는데, 이 책은 없었다. 지금 이 책을 다시 구매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닥터스 라고 검색하니 책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럴리가! 이렇게 유명한 책이, 한때 엄청난 베스트 셀러였던 책이 없다고? 정말 없었다. 다시 에릭 시걸을 검색해보니 [러브 스토리]와 그 후속작인 [올리버 스토리]는 나오는데 [닥터스]는 번역본이 없고 영어 원서만 나왔다.<br><br>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책이 없으니 괜히 사람이 더 집요해졌다. 알라딘 앱을 열어서 중고책을 검색했다. 책이 나왔다. 당시에 1권, 2권 두 권으로 출간했었나보다. 1권은 중고조차 거의 없었다. 우주점이라 표현되는 전국 알라딘 중고 매장에도 거의 없었고, 판매자 중고로 표현되는 곳에만 물량이 좀 있었다. 2권은 우주점에도 다수 있었고, 판매자 중고에도 제법 많았다. 음, 우주점 중에서 1권과 2권을 모두 가진 매장이 있으면 구매할까 했는데 없었다. 각기 다른 매장에서 각각 따로 구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구매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 책 구매를 포기하고 나니 문득 그 당시에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던 책 광고가 기억났다. [러브 스토리]를 쓴 세계적인 작가 에릭 시걸의 신작 이라고 말하는 여성 성우의 음성이 머리 속에서 재생되었다. <br><br>어긋나는 사랑<br><br>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을 극장에서 봤을 때 서로 어긋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영화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앞서 [닥터스]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거였다. 서로 어긋나는 인연의 모습이 떠올라서.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 안타깝게도 서로 이어지지 않는, 어긋나는 인연을 그려보고 싶었다. 원래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은 비뚤어진 마음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다.<br><br>며칠 전에 한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가 나를 부러워한다는 얘길 했다. ˝형은 결혼도 해봤고 아이들도 있잖아.˝ 좀 충격이었다. 결혼을 해봤지만, 현재는 이혼한 늙은 홀아비일 뿐이고, 아이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게 뭐가 부럽다는 걸까? 물론 아직 결혼을 해보지 못하고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그 친구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나보다 한참 젊고 아직 얼마든지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야말로 이젠 늙은이 처지라 더는 연애 경험을 하기 어려운데, 오히려 내가 그를 부러워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br><br>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자. 내가 지금 현실에서 연애를 할 수 없다면, 내가 만든 세상 안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만들며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골방에 처박혀 소설을 썼던 시절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다. 내가 짝사랑했던, 현실에서는 이어지기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와 나를 투영한 주인공 캐릭터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그리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소설이라도 현실성을 감안해야지.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을 담고, 연애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하더라도 무조건 그냥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성이 없지 않은가. 시련이 주어지고 서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겠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어긋나는 것이 현실적인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에 썼던 단편들과 구상해놓고 써나가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던 장편들에서도 주인공들의 사랑은 대개 이어지지 못했었다.<br><br>고민들<br><br>누구나 그 시기에 혹은 그 나이대에 걸맞는 고민들이 있다. 이번에 아이들을 만났을 때 각자의 고민들을 들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작은 아이가 약속 장소에 한참 늦게 왔다. 큰 아이와 나는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지난 번처럼 이번에도 작은 아이는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도착하겠지 생각하며 천천히 먹었다. 큰 아이는 음식을 먹으며 재잘재잘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런 와중에 같이 알바를 하고 있는 동료들의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을 대하는 내 태도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이라 그로 인한 문제점들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이도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동료에게 짜증을 느끼는 부분들이 내가 과거 다른 동료들에게 느꼈던 지점들과 거의 같았다. 이런 성향도 유전일까? 아이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아이가 충분히 이야기 했다고 느낄 즈음에 내 과거 이야기를 전해줬다. 세상이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걸 늘 생각해야 삶이 조금 편해질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다. <br><br>큰 아이가 피곤하다고 집으로 들어가고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집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버스로 약 30분, 걸어가면 1시간 10분 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지난 번에도 아이가 걷고 싶다고 해서 같이 걸어갔었다. 그때는 중간에 길을 좀 잘못 들어서 훨씬 더 오래 걸렸었다. 걸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내가 다시 전철을 타러 이동하면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 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걸음이 빨라졌다. 작은 아이는 걸으며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도 산책하면서 여러 차례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는 친구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홀로 다른 학교에 진학해서 친구가 없었다. 새학교에서 새 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같이 약 한 시간을 걸으며 아이는 과거 친했던 친구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외톨이로 지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친한 척해야 하는 친구 같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작은 아이에게도 현실이란 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길 해줬다.<br><br>두 녀석이 각자의 고민으로 나름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의 고민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들을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며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나이 대에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고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고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 아이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기를. 아이들이 힘들때 언제든 아빠 하고 부르면 내가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내 남은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95/cover150/055327811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19582</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고속철도 폭탄 영화 두 편</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5850</link><pubDate>Mon, 17 Aug 2026 16: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5850</guid><description><![CDATA[이 글은 올해 3월 25일 브런치에 썼던 글이다. 작년부터 브런치 라는 곳에 글을 연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정을 만들어 두었었다. 하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못했고, 일단 어떻게든 시작은 해보자는 생각에 올해 2월에 여기 알라딘 서재에 썼던 글들을 거기다 옮기며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다. 처음 생각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처럼 쓰려고 했다. 연재라는 제약을 두면 나도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영상매체들의 유사성이나 대조되는 측면들을 비교하는 글과 원작이 있다면 원작과 비교하는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늘 현실은 생각하는대로 되지 않는다. 브런치에 연재하고 싶다는 욕심과 달리 바빠서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고, 가끔 올린 글들은 모두 알라딘에 과거 썼던 글들을 가져간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2월부터 3월까지 몇 개 올리지 않은 글들 중에 브런치에만 쓴 글은 아래 글이 유일하다. 그리고 나는 약 5개월 동안 브런치를 잊고 살았다. 역시 익숙한 알라딘 서재가 제일 마음이 편했다. 브런치를 아예 포기하는 마음으로 아래 글을 알라딘으로 가져온다. 영상 매체들을 비교하는 글과 영상 매체와 원작을 비교하는 글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 알라딘에 계속 써야겠다.<br>**************************************************<br>고속철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를 떠올릴 수 있다. 007을 비롯한 무슨 첩보 액션 영화 같은 곳에서 아주 빠른 고속열차 안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들을 보여줬던 것이 생각난다. 우연히 폭탄이 설치된 고속철도를 다룬 영화 두 편을 비슷한 시기에 보았다. 일본영화 [신칸센 대폭파]와 대만영화 [96분]이다. 두 영화 모두 설치된 폭탄이 열차의 속도와 연동되어 일정 속도 이하로 달리면 터진다는 설정이었다. 이 설정은 곧바로 영화 [스피드]를 떠올리게 한다.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의 이 영화는 1994년 개봉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터지지 않는 폭탄이 설치된 설정의 고속철도 영화가 저 [스피드] 보다 더 재미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고속철도는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이다. 그것도 고속으로. 이미 고속으로 달릴 길이 보장된 고속철도에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한다는 제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 반면, 영화 [스피드]에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터지지 않는 폭탄이 설치되었던 건 버스였다. 버스는 도로를 달리고, 도로는 다른 차량으로 막혀 속도라 떨어질 확률이 높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영화는 일단 기본 설정에서부터 30년 전 영화보다 더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물론 열차는 정차역을 만나면 멈춰야 한다. 다만, 고속철도는 애초에 일반 철도보다 정차역의 수가 적다. 그리고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비상 상황이라면 정차해야 할 역을 지나치는 것이 물리적인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br>우리나라 고속철도인 KTX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하고 본론인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자. 우리나라 고속철도 사업을 처음 입안한 것은 학살자인 전두환의 친구이자 그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시절이었다. 처음 계획은 경부선 철도 옆으로 나란히 고속철의 선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구 경북 출신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 세력은 대구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기를 원해서 경주역을 집어넣었고, 덕분에 경부선 선로와 다른 노선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경주에서 부산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천성산과 금정산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이 큰 두 산을 관통하는 아주 긴 터널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경부선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노선과 달리 많은 자본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양산을 대표하는 천성산과 부산을 대표하는 금정산은 그 자체로 큰 환경적, 생태적 가치를 가진 명산이기 때문에 두 명산을 뚫어 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 시절에 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제 본격적으로 공사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기였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노무현은 공약으로 고속철도 사업 백지화를 공언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공사가 계속되는 상황을 방치했고, 결국 천성산의 내원사와 금정산의 범어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에서 대대적인 반대 운동에 나섰고, 크고 작은 환경단체들이 힘을 모아 고속철도 사업 강행으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정치적인 맥락으로 억지로 끼워 넣었던 경주를 제외했다면 답은 간단했을 것이다. 기존 경부선 옆으로 고속철도를 설치했다면 시간도 사회적인 자본도 모두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다 보았듯이 공사를 강행하여 개통했다. 그러면 고속철도 설치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더 편해졌는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나? 글쎄, 잘 모르겠다. 일단 철도공사는 KTX 개통 후에 기존 경부선의 열차들을 대폭 줄이고, KTX 만 대량 편성했다. 사실 선로 자체가 분리되어 있는데, 왜 고속철도를 개통했다고 해서 기존 일반 열차들의 편성량을 줄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 짓을 강행했다. 그리고 개통 초기 KTX 선로는 본인들이 자랑삼아 말하는 300 kmh로 달릴 수 있는 선로만 깔렸던 것이 아니었다. 고속열차가 300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은 일부 구간뿐이었고, 특히 대구 이후 부산까지는 경전선 선로를 깔아 뒀기 때문에 설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나중에 한참 후에야 모든 구간을 300kmh 가 가능하도록 개선했지만, 이때는 여기저기 더 많이 생긴 정차역들이 문제였다. 실제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예매해 보면 철도공사의 말대로 2시간 40분에 부산에 도착하는 열차 외에 다른 정차역들 때문에 3시간 이상 걸리는 열차들도 많다. 25년 9월 철도경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실제 KTX의 평균 속도는 시속 300km가 아니라 시속 165km라고 한다. 고속철도를 어렵게 만들어 놓고도 고속으로 운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br>잠시 우리나라 고속철도 설치 과정의 문제와 운행의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만 살펴봤는데, 이제 본론인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선 [신칸센 대폭파]는 같은 제목의 과거 영화를 리메이크 한 영화이자, 그 후속작의 성격도 겸한 영화라고 한다. 작중에서 주요 인물이 과거 영화 시점과 관련한 사람으로 나온다. 1975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과거 작품과 이번 작품의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겠지만, 일본인이 아닌 해외에서 저 옛날 영화를 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과거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보는 것에 지장은 없었다. 그냥 특정 인물이 과거 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어떤 특정한 상황 때문에 문제가 되어, 이번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흐름만 이해하면 상관없는 설정이다. 다만 일본 내에서 과거 영화를 보았던 장년층들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겠지.<br>영화의 첫 장면은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탐방온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인공인 타카이치 카즈야가 차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 배역을 맡은 배우는 쿠사나기 츠요시 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초난강으로 불리는 인기 있는 가수라고 나온다. 나는 이 사람이 국내에서 활동하던 당시에는 티비를 안 보고 살아서 이런 사람이 활동했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배우를 오랜만에 보아서 반갑다는 평들도 제법 많더라. 암튼 학생들에게 설명을 마친 후에 질문을 받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왜 차장이 되셨나요? 보통은 기관사를 꿈꾸지 않나요?" 라고. 음,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으로서 고속철도 승무원을 꿈꾸는 거라면 대개 기관사를 꿈꾸겠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차장을 비롯해 열차 내에서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챙기는 승무원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기관사를 꿈꾼다고 누구나 기관사가 될 수는 없는 법이겠지. 하지만 이 질문에 쿠사나기 차장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답을 한다.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갔다가 도착하면 흩어지는 뒷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나?" 차장이 된 이유를 물었기에 답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현실에서 과연 이런 답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다음 장면에서 젊은 차장이 다가와 학생들 상대하시느라 수고하셨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본인이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맡겠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아주 정색을 하면서 대하는 모습도 좀 이상했다. 초반에 이 등장인물이 원칙주의에 따라 철저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일 것 같은데, 그냥 썩 좋지 않은 상관이자 선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 두 차장이 경례를 하는 장면도 이상했다. 군인도 아닌 철도 승무원들이 경례를 하나? 일본은 그런가? 우리나라도 설마? 아니 장난처럼 경례를 하고 그를 받아줄 수는 있겠지만, 해당 장면은 장난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군인인 것처럼 아주 진지하게 경례를 하고 받아주는 모습이었다. <br>다음으로 아오모리 역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열차에 타서 자리를 잡는 모습들이 차례로 나온다. 이 영화처럼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라면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짧은 등장 장면에서 해당 인물의 주요한 특징들을 보여줘야 하니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역시 여성 정치인이었다. 아마도 중의원인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 보좌관과 함께 열차에 탔다. 그런데 그의 앞자리에서 뒤돌아 이 의원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갑자기 "마마카츠" 라는 단어를 말했다. 어! 최근에 본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파파카츠" 라는 단어를 계속 들었었다. 그리고 2월 중순에 알라딘 서재에 쓴 [내 몸을 빌려드릴까요] 의 서평에서도 파파카츠를 비롯해 렌탈 여친,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을 교묘히 오가는 일본의 성매매 문화에 대해 언급했었다. 파파카츠 라는 단어는 일본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을 말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에 중년 남성을 뜻하는 파파를 붙여 만든 것으로, 젊은 여성이 나이 많은 중년 남성들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고 경제적 혜택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게 미성년자라면 원조교제인 것이다. 여기서 파파를 마마로 바꿨으니, 이 여성 정치인은 젊은 남성과의 성추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이 정치인이 이후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빌런 혹은 민폐 캐릭터가 될 것인가? 상식적으로 행동하여 이미지 쇄신을 꾀할 것인가? 나는 후자에 걸고 영화를 계속 봤다. 이따가 배역에 대해서 따로 다루기는 하겠지만, 카가미 유코 라는 중의원을 맡은 배우는 오노 마치코 배우였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고 아는 얼굴이라 일단 반가웠다.<br>열차가 출발하는 장면에서는 각 역할을 맡은 직원들이 모두 손가락으로 확인 작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관제실의 관제사도 화면을 보며 주로 쓰는 손(아마도 오른손) 검지를 오른쪽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가 해당 공정의 특정 부위에 손가락을 움직여 지칭하는 작업을 하고, 이후 역무원이 승강장에서 같은 동작을 취한다. 다음으로 주인공인 다카이치 차장이 여러 차례 이 동작을 취한다. 이어서 기관사가 이 동작들을 취하며 열차를 출발시킨다. 마츠모토 치카 기관사는 아마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다. 여기서 젊은 여성 기관사와 중년의 남성 차장을 배치한 의도가 읽힌다. 맨 처음 언급한 [스피드]의 산드라 블록이 떠오리기도 하고. 자, 드디어 열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감독은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열차 출발 직후 범인은 관제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알린다. 그리고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폭탄을 다른 열차에 설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한 속도 이야기를 하는데, 다음 장면에서 그 다른 열차가 제한 속도(아주 낮은 속도)를 넘기자 폭발이 일어난다. <br>다음은 일본의 관료주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관제실에 고속철도 회사(JR 동일본) 간부, 관할 경찰, 정부 관계자와 총리실 보좌관 등이 모인다.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 중에 최고는 아마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질라]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이야기로 빠질 여유는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암튼 이후로 관제실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아주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거의 마지막까지 한 차의 오차도 없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총리실 보좌관은 딱 생긴 대로 무례하게 굴며, 책상머리 공무원의 한계를 보여주다가 나중에 각성하여 진정성을 보이고, 형사들도 이런 영화 특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담당 관제사와 관제소 책임자(찾아보니 종합지령소 총괄 지령장이라고 나온다.) 역시 딱 필요한 만큼의 역할을 하고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감동을 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했던 틀대로 흘러가는 것은 열차 안에서의 장면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며 폭탄 설치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처음 등장했던 승객들이 딱 외모와 성격에 걸맞은 행태를 보인다. 민폐 캐릭터가 나타나고, 이를 말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차장이 나타나 수습을 하고 기관사는 위기를 겪고 등등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br>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 인지도도 있고 연기력도 괜찮은 배우들이고 그에 걸맞은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1975년 개봉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JR 동일본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특히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선로를 갈아타면서 열차가 스치는 장면은 아주 멋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인 특유의 직업윤리를 보여주는 장면들, 위기 상황에서 기관사, 차장 등 승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런 장면들 때문에 JR 동일본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 것이겠지. 아, 그리고 승객 구출용 열차를 출동시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모두 구출하지 못하고 일부가 남을 수밖에 없도록 설정하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기는 했다.<br>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역시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부분이다. 일단 범인의 정체가 너무 어이없다. 여고생이라니! 수학여행 일정 중 하나로 견학을 온 여고생이 언제 어떻게 이 열차에 여러 개의 폭탄을 설치할 수 있을까? 속도 감지 장치는 어떻게 설치했을까? 이 열차뿐 아니라 초반에 아주 느린 속도에서 터진 화물열차에는 또 언제 폭탄을 설치했을까? 영화 중반에 폭탄을 제조한 기술자는 등장하지만, 폭탄을 실제로 설치한 다른 공범의 존재는 나오지 않는데, 이 고등학생이 혼자 이걸 다 했다고? 아니,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고등학생이 혼자 했다는 설정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br>1975년 개봉작을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이 후속작은 열차 승객들의 모습에서 현재의 사회를 잘 보여줬다고 본다. SNS 스타와 이슈만 쫓아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유튜버 등이 등장하고, 실시간으로 빠르게 정보가 유통되는 모습들을 잘 담았다. 너무 전형적인 모습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중에 한 50년 후에 또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때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찾아보며 저 시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될 수 있으리라.<br>자, 이제 배우들을 알아보자. 아, 먼저 감독부터. 히구치 신지 감독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신 고질라] 영화에도 안노 히데아키와 함께 참여했는데, 이 영화를 안노 작품이 아니라 히구치 신지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 감독 영화 중에는 저 [신 고질라]와 [일본 침몰] 이렇게 둘을 봤었다. 앞서 말한 주연 배우인 쿠사나기 츠요시는 아이돌 출신이라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찍었던데, 내가 본 것은 [일본 침몰] 밖에 없었다. 이번에 맡은 차장 역할은 전형적인 일본 직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연기는 아주 좋았다. 예전에 [일본 침몰]을 대충 봤었는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츠모토 치카 기관사는 논이라는 배우가 맡았다. 이 영화에서 열차 내 상황은 대체로 객실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기관사의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속도가 떨어지면 폭탄이 터진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는 장면 등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열차가 출발하는 장면과 폭탄이 설치된 후에 자동운행장치를 해제하는 장면 등에서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붙였다가 앞으로 내뻗는 동작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배우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던데, 내가 본 것은 드라마 [미스킹] 밖에 없었다. 일본식 장기인 쇼기(将棋)를 다룬 드라마로 이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고, 돌풍을 일으키는 장기 기사로 꽤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다. 위에서도 언급한 카가미 유코는 오노 마치코 배우가 연기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드리마 [아수라처럼] 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4자매 모두 좋은 배우들이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오노 마치코가 맡은 둘째였다. 앞으로도 믿고 볼 수 있는 좋은 배우라 생각한다. 토도로키 미츠루 라는 기업인이자 유명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인플루언서로 나오는 배역은 카나메 준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유명 배우라고 한다. 영화 [킹덤] 시리즈에 계속 나왔다고 되어 있는데, 솔직히 워낙 분장이 심한 영화라 누구인지 기억할 수가 없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도 출연했다는 정보가 있는데, 주요 인물이 아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일본 영화 시리즈와 한국 영화를 엮어서 글을 써볼 생각도 있는데, 나중에 다시 볼 때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관제실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총괄 지령장 카사기 유이치는 사이토 타쿠미 배우가 맡았다. 역시나 유명한 배우로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던데,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실: 인연의 시작] 하나밖에 없었다. 폭탄을 설치한 범인인 고등학생 오노데라 유즈키는 토요시마 하나가 연기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한 이 배우도 많은 작품에 출연했더라. 내가 기억하는 건 [치히로 상] 나오는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br><br>이제 대만 영화 [96분]을 살펴보자. 제목인 96분은 타이베이에서 가오슝까지 실제 고속열차 운행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대만에 대해 별로 관심 없이 살아서 지리를 전혀 몰랐었는데, 최근 대만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면서 조금씩 지리 감각이 생기고 있다. 타이베이는 대만 북쪽의 제일 큰 도시이자 수도이고, 가오슝은 남쪽에서 큰 도시인 것 같다. 대만 지도를 보면 서쪽 해안 쪽만 개발이 된 것으로 보이고, 섬의 동쪽에서는 큰 도시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 지형의 영향 탓이겠지. 암튼 우리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로 일종의 '부산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br>영화는 과거의 폭탄 테러 사건에서 폭탄을 직접 해체하는 폭탄처리반 특수 요원인 주인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 아니, 그 전에 터널에서 어떤 사고가 난 현장에서 당시 현장에 투입된 인력이 한계가 있으므로 우선 터널 밖의 생존자 먼저 구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방송 장면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한참 전에 이 두 영화를 봤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두 영화를 다시 봤었지만, 그 후로 또 갑자기 바빠져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영화를 보고 글을 쓸 수는 없어서 일단 쓰고는 있는데, 디테일이 기억이 안 난다. 암튼 이 장면이 나중에 범인의 범행 동기가 되는데, 영화를 두 번이나 보고도 이해가 안 가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데, 얼마나 크든 규모에 상관없이 사고가 나면 수습하기 위해 공권력이 투입이 되어야 하고, 그들은 적절한 전략을 세워 최대한 안전하게 최대한 많은 생존자를 구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너무 경솔하게 언론에서 떠드는 모습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과연 대만에서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br>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은 세 개다. 맨 처음 등장하는 터널 사고, 두 번째는 극장과 백화점에 동시에 폭탄이 설치되어 극장은 무사히 해체했지만, 백화점이 터져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 그리고 현재 벌어지는 고속열차에 폭탄이 설치된 사건. 이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과거의 사건에서 중요한 사람을 잃었던 범인이 경찰의 무능과 비밀을 파헤치고 국민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는 함정을 판 것이다. 그 첫 시도가 극장과 백화점 동시 폭탄 설치 건이었는데, 경찰은 하나만 막고 다른 하나는 막지 못해(영화 후반에 밝혀지지만 못 막은 것이 아니라, 막을 수도 있었지만 폭발이 일어나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음) 엄청난 인명 피해가 벌어졌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조작하여 폭파범이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진범이 아니었다. 진범은 다시 함정을 판 것이었다. 여기서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인명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맨 처음 터널 사고에서도 터널 안에 갇힌 생존자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현실적으로 거기까지는 무리라 우선 터널 밖의 생존자들부터 구하겠다는 입장. 그리고 두 번째 사건에서 이미 시민들은 대부분 대피하고 소수의 경찰들이 남아 있던 극장과 아주 많은 시민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던 백화점. 둘 중 하나가 무조건 희생되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두 개의 고속열차에 설치된 폭탄. 하나는 대다수의 승객이 내렸지만, 주인공인 폭탄해체 전문가가 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가족을 포함해 아주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는 상황. 이번에도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터진다고 하면, 어느 열차를 포기하고 어느 열차를 살릴 것인가?<br>이걸 다른 말로 하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운전자가 없이 무인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질문이 자주 보인다. 만약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갈림길을 만나 무조건 둘 중 하나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면 인공지능은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정해야 하는가? 직접 설정하지 않는다면 과연 인공지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람이라면? 당신이라면? 차를 바로 멈출 수는 없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두 명이 죽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열 명이 죽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조건 다수를 살려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소수는 그냥 죽어도 되는가? <br>이 영화의 핵심은 이런 내용일 텐데 사실 썩 그렇게 흥미롭게 풀어내지는 못했다고 본다. 일단 앞서도 터널사고 당시 방송 장면을 말하면서 언급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실에서 벌어질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하다못해 작중의 어떤 세계관에서라도 있을만한 일이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 몰입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열심히 노력했다. 그냥 오락 영화로는 썩 나쁘지는 않다. <br>대형 참사가 벌어진 후 추모제를 여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무안 공항 참사도 잊지 말아야지. 추모제 참가자들이 큰 노란 리본을 매고 있어서 특히 세월호 참사 생각이 많이 났다. 작중 7살 어린이가 희생됐기 때문에 범죄자의 편에 동조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사연을 보면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가만 보면 신파적 요소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은 무조건 관객을 울리기 위해 만든 것이고.<br>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폭탄이 터지는 조건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스피드]와 앞서 살펴본 [신칸센 대폭파]는 단순했다. 특정한 속도 이하로 떨어지면 터지는 것이었다. [신칸센 대폭파]에서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파한다는 상황이었기에 시속 300을 달릴 수 있는 열차를 120 정도에 맞춰 달리도록 만들어 시간을 벌면서 어떻게든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100 이하는 폭발하기에 정류장에 설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속도가 &nbsp;줄어들면 터지기는 하는데, 그 속도가 딱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두 번이나 봤는데도 정확하게 그 조건이 뭔지 알 수 없다. 대신 영화에서는 유명하고 유능하다는 물리학 강사를 등장시켜서 그가 그 속도를 계산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폭탄이 설치된 두 열차 중 하나의 속력을 가능한 한 줄여서 약 시속 30킬로미터로 달리면서 승객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라고 안내한다. 그 와중에 잘 뛰어내려서 별로 다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떨어지면서 다치고, 심지어 사람들이 미는 와중에 밟히는 사람들도 생긴다. 속도를 줄이는 와중에 사람들은 앞다퉈 출구 쪽으로 나가려고 밀고 난리가 나고, 사람들이 넘어져 밟히고 깔리는 장면은 이태원 참사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영화를 멈춰야 했다. <br>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려면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는 핵심 원인은 단순해야 한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그만큼 더 집중할 수 있다. 관객들이 모두 물리학자가 아닌데, 물리학자를 등장시켜서 폭탄이 폭발할 속도를 계산한다고? 어느 누가 그런 장면을 보고 몰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물리학 강사는 폭탄을 설치한 범인도 아닌데, 어떻게 그 원리를 그렇게 잘 아는지, 그렇게 자신있게 장담할 수 있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두 열차를 나란히 &nbsp;달리게 만들어서 주인공이 다른 열차로 건너가는 장면도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는 정말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되면 물리 법칙 따위 다 무시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시속 30으로 달리며 많은 승객들이 내린 이 열차에는 이젠 미처 뛰어내리지 못한, 뛰어내릴 수 없는 노약자들만 남아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지루해지기 시작하는데, 영화에서는 이걸 액션 장면을 커버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액션도 그닥 볼만하다고 볼 수 없다.<br>이쯤에서 이 두 영화를 비교하며 작품 속 설득력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이 두 영화 모두 두 개의 열차가 나란히 같은 속도로 달리며 무언가를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신칸센 대폭파]에서는 승객을 구출하기 위한 기자재들을 담은 짐을 옮기는 것으로 나온다. 시속 100 이하로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속도감과 함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잘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렇게 두 열차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게 하기 위해 관제소에서 관제사가 집중해서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96분]에서는 주인공인 사람이 나란히 달리는 열차 사이를 뛰어서 건너간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관제소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관제사의 지시도 없이 두 열차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릴 수 있나? 불가능하다고 본다. 설득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br>아, 앞서 이 영화는 선택의 문제를 강요한다고 했었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각각 폭탄이 설치된 두 열차에 두 쌍의 부부가 각각 나눠타고 있다. 자, 선택해. 누구를 죽일거야? 라고 묻는 느낌이다. 맨처음 주인공 부부(신혼여행 이야기는 나오는데, 결혼식 얘기는 없는 걸 보면 사실혼 관계일지도)가 탔던 열차에는 주인공의 아내가 &nbsp;있고, 물리학 강사가 있다. 주인공이 건너간 열차에는 주인공과 물리학 강사의 아내가 있다. 이렇게 일부러 설정해 놓고 하나가 터지면 하나가 산다는 설정은 참 잔인하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에는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시간이 좀 지나서 글을 쓰려고 보니 더 디테일을 따지고 드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br>어쨌거나 각본가와 감독은 주인공이 죽어서 속죄하는 그림을 원했다고 본다. 결국 영웅의 희생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남는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동안 좀 묘한 장면이 작은 화면에 펼쳐진다. 터널에서 무용수 아내를 잃은 진범의 존재 외에 공범이 있는 것처럼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이건 뭘까? 후속작을 예고하는 걸까? 해석해보려고 두어 번을 돌려봐도 알 수 없었다.<br>감독은 홍쯔쉬안이라고 한다. IMDB를 보면 5편의 영화와 1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으로 나온다. 각본을 맡은 것은 3편이었다. 이 영화 외에 본 것은 없었다. 주인공인 송캉런(宋康任 / 작중에서 아런&nbsp;阿任 으로 불림)은 린바이홍(林柏宏 / 우리말로는 임백굉)이 연기했다. 이 배우가 그 배우였는지 전혀 몰랐는데, 찾아보니 인상적으로 보았던 영화 [괴짜들의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저번에 글을 썼던 영화 [숨통을 조이는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와! 확실히 연기는 잘하는 배우였구나. 영화가 별로여서 그렇지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를 한 것이 확실히 맞다고 느낀다. 주인공의 연인이었다가 아내가 된 황신(黃欣)은 송윤화(宋芸樺) 배우가 맡았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 라는 영화가 유명하다고 하고, 그 외에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더라. 류카이 라는 물리학 학원 강사는 왕보제(王柏傑)가 연기했다. 이 배우는 저번에 소개한 영화 [백만 팔로워는 추리중] 이란 영화에도 나왔었다. 그때도 썼지만, 드라마 [화등초상]에서 보았었다. 또 최근에 본 영화 [역병]에도 출연했더라. 신기하게 내가 최근에 본 세 개의 영화에 출연했다. 주인공 아런의 상관으로 주인공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자, 폭발사건을 조작해 마치 범인이 현장에서 폭발에 휩쓸려 죽은 것처럼 조작한 경찰 그리고 막판에 그 모든 책임을 지는 것처럼 비참하게 죽는 리제 역은 리리런 배우가 맡았다. 이 사람도 왕보제 배우와 함께 [백만 팔로워는 추리중]에 나왔었다. <br>단순히 오락 영화로만 접근한다면 이 두 영화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폭탄이 설치된 고속 열차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이야기일테니까. 다만 사건을 다루는 디테일과 등장인물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가 훨씬 낫다고 본다. 그리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명확하고 단순한 구조라서 훨씬 더 몰입할 수 있다고 본다. [96분]은 감정적으로 사람을 많이 뒤흔드는 영화였다. 만약 오락 영화도 즐기며 적절한 감동과 눈물을 원한다면 이 영화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br><br><br style="color: rgb(51, 51, 51); letter-spacing: 0.8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7/pimg_63922580558765404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5850</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다시 꿈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2530</link><pubDate>Sat, 15 Aug 2026 1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2530</guid><description><![CDATA[<br>시간에 쫓기는 꿈<br>뭔가 마감일이 되면 시간에 쫓기는 꿈을 종종 꾼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한참 전에 기고문 하나를 요청 받았었다. 마감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휙 지나서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목요일 밤에 글을 쓰고 금요일에 한번 더 살펴보고 수정한 후에 보내야지 생각했었다. 목요일 저녁에 일을 마치고 글을 쓰려고 사무실에 갈 생각이었는데, 그날 회의가 하나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무실에 가면 무조건 회의에 참여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 회의는 내가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고, 회의에 참여하느라 글을 못 쓰면 이래저래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왔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씻고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에 깨서 사무실에 갈까 더 잘까 하는 고민을 한참 했는데, 결국 잠을 선택하고 말았다. 최근에 일이 좀 힘들었고, 계속 잠이 모자라서 많이 피곤했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선택한 나 자신을 변호했다.&nbsp;<br>금요일 밤에 무조건 글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금요일 저녁 회의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집중해야 할 회의였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할 회의라서 좀 힘들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팠고, 피로감이 컸다. 회의 중간에 한 친구 연락이 왔었다. 회의 중이라는 정해진 문장을 문자로 보냈는데, 나중에 답이 왔다. 추어탕 먹으러 가자고 할 생각이었다고.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나서 추어탕을 먹으러 갈 상황은 안 되겠지만, 일단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그 친구가 전화를 받으면 그 친구 집으로 가서 놀고, 만약 전화를 안 받으면 사무실에서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첫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래 글을 써야 해.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가서 김밥이라도 사올까 싶었다. 편의점으로 걸어가면서 두번째 전화를 걸었다. 이 친구가 전화를 받으면 친구 집에서 맛있는 걸 먹고, 안 받으면 그냥 김밥을 먹으며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편의점에 거의 다 와서 잠시 고민했다. 마감일은 토요일이다. 토요일 낮에 한 세시간 정도 집중해서 글을 쓰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긴 회의도 했고, 너무 힘든 하루였으니 그냥 맛있는 것 먹고 놀자. 이런 날 편의점 김밥이라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받았다. 본인 집으로 오라고 뭔가 만들어 놓겠다고 했다. 얼른 짐을 챙겼다.<br>아침 나절에 잠을 깼다가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때 몇 개의 꿈을 꾸었는데, 그 중 두어 개가 마감에 쫓기는 꿈이었다. 마감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나는 빈 문서 창을 두고 단 한 줄도 못 쓰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글을 쓸 수 없었다. 결국 기고문을 청탁했던 분에게서 왜 아직 글을 안 보내느냐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괴로워하다가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가? 원고료 언급이 없었으므로 아마 원고료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에 보내는 기고문이라 잘 써야 한다. 그냥 대충 쓸 수는 없었다. 대략 이런 흐름으로 써야지 하는 얼개는 잡아 놓았었다. 그런데 폰으로 미리 조금 써보려고 하니 미리 구상했던 아이디어가 생각보다 별로라고 여겨졌다. 아마 여기에서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된 것 같다.&nbsp;<br>암튼 점심 무렵에 사무실에 나왔고, 두어시간 동안 여러 자료들을 뒤지며 다시 글을 어떻게 구성할 지 고민했다.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뚝딱 해줄건데 뭐 그리 힘들게 하냐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지만, 내 자존심은 인공지능에게 글을 맡기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 맨 처음 구상했던 아이디어로 글을 한 번 써봤는데, 역시나 뭔가 잘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대로 쭉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거의 쉬지 않고 두드려서 분량을 채웠는데, 다시 읽어보니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 글을 그대로 두고 다시 맨 처음 구상했던 글을 열었다. 이건 이거대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다른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결국 완성한 글을 보내기로 했다.&nbsp;<br>외국인이 되는 꿈<br>며칠 전 꿈에서 나는 일본인이었다. 게다가 젊은 사람이었다. 꿈에서 거울을 보았는데, 젊고 잘생긴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꿈에서 깨면서 그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꿈 속의 친구들이 나를 일본인 이름으로 불렀다. 느낌으로는 흔한 일본인 이름 같았다. 그 거울을 보는 장면에서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꿈 속의 나는 친구들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었다.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기념하는 여행 같았다. 아마도 졸업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여행지에서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낯선 여성과 마주쳤고, 친구들을 버려두고 그 여성과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었을 때 내가 일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적은 많았지만, 외국인이 되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또 생각해봤다. 젊어지거나 어려진 꿈은 많았다. 이건 기억나는 것만 해도 수십번이었다. 그럼 혹시 성별이 바뀌어 여성이 되는 꿈을 꾼 적은 없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없는 것 같았다. 역시 명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br>생각해보니 외국어를 듣고 말한 기억은 제법 있었다. 영어가 제일 많았고, 일본어와 중국어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어로 대화를 나눴던 꿈도 기억났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인이 되었던 꿈에서는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았다. 예전에 외국어를 사용했던 꿈에서는 우리말을 쓰다가 특정한 시점에서만 외국어를 사용했고, 그게 외국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했었다. 이번에 일본인이 된 꿈에서는 나 자신이 일본인이라서 굳이 일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내가 그러니까 일본인인 내가 알아듣고 말할 수 있으니 한국인인 내 기준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서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우에노 주리 등장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인종, 성별, 연령 모두 변한다. 할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하며, 외국인이 되기도 한다. 어느날 일본인 여성이 된 우진을 여주인공 이수가 찾아오는데, 이때의 우진을 맡은 배우가 우에노 주리였다. 상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안 이수는 일본어로 묻는데, 오히려 우진은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또 말은 일본어로 했다. 말할 때는 일본어로 하고, 들을 때에는 한국어로 들어야 한다. 이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우진은 한국인이고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어서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우진이 일본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말하지 못화고 일본어로 말한다. 이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br><br>초능력자가 되는 꿈<br>이건 몇 달 전에 꾸었던 꿈인데, 당시에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지만, 잊고 안 썼던 것 같다. 꿈 속의 나는 아주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강풀 작가의 타이밍이란 만화에서 강민혁 이라는 인물이 10초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나오는데 아마 그 인물에서 영향을 받아서 꿈 속의 능력이 나온 것 같다. 정확히 10초라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호감이 있는 어느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뭔가 말이 계속 꼬이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말실수를 할 때마다 계속 시간을 되돌려서 벌써 수십번을 말을 걸고 있는 중이었다. 단순히 내 말실수 뿐 아니라 말을 하는 중에 이 여성이 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그냥 확 시간을 돌려버렸다. 그래서 같은 장면에서 수십번째 반복 중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말을 해도 이 여성은 계속 거절할 거라는 것을 깨닫고 시간을 되돌리길 포기했다. 예상대로 여성은 거절했고 나는 깨끗이 승복했다. 이 장면은 아마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거 어느 특정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시간의 제한이 없고 횟수의 제한도 없다. 이 주인공이 잠깐 짝사랑 했던 먼 친척(?)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하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신청하는 장면이 나왔었다.&nbsp;<br>특정한 시점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는 능력은 비디오 테이프나 카세트 테이프를 뒤로 감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이렇게 쓰면 비디오 테이프와 카세트 테이프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느낌을 알 수 없겠구나. 영화 [테넷]의 인버전과는 약간 비슷한 느낌일 수 있지만 개념 자체가 다르기는 하다.&nbsp;<br>이 능력은 방금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중요할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으면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나버릴테니. 그리고 실수를 바로 잡으려 되돌렸음에도 다른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꿈 속 데이트 신청 장면처럼 계속 돌리고 또 돌려도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거겠지. 생각보다 썩 좋은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기는 하다.&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글 쓰기, 삶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43861</link><pubDate>Tue, 11 Aug 2026 0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43861</guid><description><![CDATA[생각해보면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을까? 무슨 근거로? 무슨 자신감으로? 뭐가 그리 잘나서?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어렸을 때 꿈은 책방 사장이었다. 지금은 안다. 책방 사장은 결코 마음대로 책을 읽고 사는 직업이 아닌 것을. 오히려 책방 경영과 생계 문제 라는 이중고에 부딪혀 훨씬 더 책을 읽기 어려운 직종의 사람이라는 것을.<br>암튼 어렸을 때 내 꿈은 서점 사장이었다. 어느 작은 시골 동네의 조그마한 책방 사장. 얼마나 낭만적인가 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했었다. 바보였지. 현실을 보지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이던 당시까지는 도서 대여점이라는 가게들도 동네마다 두세개씩 있었다. 가끔은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과 도서 대여점을 같이 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 당시에 조금 고민을 했었다. 도서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비디오 테이프랑 도서를 같이 빌려주는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그 고민의 뒷 배경에는 그 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난립했던 만화방과 무협 소설 및 무협 만화 양산소 시스템이 있다. 내가 한창 현실 감각 없이 대여점에 대한 고민을 했을 했을 무렵에는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왔던 판타지 소설(글로는 소설이라고 쓰지만 읽을 때는 쓰레기 라고 읽어야 한다.)들이 있었다. 암튼 그 90년대 초중반 무렵에 나는 현실 감각과 무관하게 내가 어느 조그만 시골 동네의 서점 주인 혹은 도서 대여점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br>이것도 조금 웃긴 이야기인 것 같다. 동네에서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나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감은빛 이라는 덧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어느 정도 쓴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건 그 이야기를 전달한 화자의 착각일 뿐일 것이고, 대중적으로 나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인간이다. 아주 가끔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정도. 암튼 최근에 의외의 인물들에게 글을 엄청 잘 쓰신다면서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글을 썼고, 20년 이상 남의 글을 고쳤던 입장이라 글을 못 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글을 잘 쓰는 것과는 1대 1로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서 절대 긍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최근의 나는 아주 긴 시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글을 못 쓰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br>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특정한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하고 꼭 필요한 일인지는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제로 아주 참신한,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몇몇 주제에서는 그렇다. 다른 주제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태도가 부담스럽다. 뭔가 내가 글을 쓰면 다를 거라는 그런 기대가 느껴져서 부담스럽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라고 특별히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타락한 천박한 사회에서는 돈이 있으면 특별한 방법이 생기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대한민국 전체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도 거의 손에 꼽힐만큼 가난한 사람이라 아무런 방법이 없다. 사실 그런 것은 알고 있다. 유명한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준비를 안 하고 특정한 분야에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많은, 정말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돈을 받는 다고 했다. 그래서 잠깐 동안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강사료가 거의 없어도 강의를 거절하지 않고 다 한다.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빈 말이라도 거의 무조건 다시 다른 강의를 청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건 내가 기후위기, 환경, 에너지, 자원순환 분야 다양한 이야기 꺼리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 30퍼센트 정도 약속을 지킨다는 느낌이다. 나는 거의 매번 내 강의에 만족한다. 물론 매번 조금씩 아쉬운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그리 크게 변하는 요소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은 중요하다. 나는 어느 특정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특화된 어떤 중요한 위치를 가진 강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사람이겠지.<br>아. 글도 말도 다 쉽지 않다. 나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제법 많이 받았지만, 말을 참 잘 한다는 칭찬 혹은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 나는 확신했다. 상대적으로 순간 기억력이 좋아서 남들의 말들을 잘 요약하고 전달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상대적으로 잘 기억해서 틀리지 않게 요약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 능력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억력이 좋아서 특정한 이슈를 만들어 낼 수 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br>최근에도 들었다. 글을 잘 쓰는 양반이 현실은 왜 그렇게 사냐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현실도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늙은이를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약간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멀어졌다. 나는 이미 늙었다. 그냥 좀 내버려 둬라. 글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쓸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내 나이가 점점 늘어날 수록 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수 밖에. 그냥 냅둬라. 좀.<br><br>&nbsp;]]></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사이버 펑크 - [테세우스의 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35526</link><pubDate>Thu, 06 Aug 2026 13: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355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636473&TPaperId=174355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017/29/coveroff/k4326364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636473&TPaperId=174355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테세우스의 배</a><br/>이경희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09월<br/></td></tr></table><br/><br>책 표지가 독특해서 일단 꺼내 펼쳐봤다. 그리고 제목도. 아테네 인들이 긴 시간동안 테세우스의 배를 보존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목재가 낡고 썩어서 새로운 목재로 교체하곤 했다는 이야기.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테세우스의 배는 처음 보존을 시작했던 때의 목재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새로운 목재로 교체했는데, 그렇다면 그 배는 과연 테세우스의 배가 맞는 것일까? 만약 교체되었던 낡고 썩은 목재들을 모두 모아 다시 배를 만든다면 어느 쪽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일까? 당신은 어느 쪽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것인가? 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소설은 그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존재와 정체성 그리고 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도록 만든다.<br>한국어 제목은 [테세우스의 배] 이지만, 책 표지에 적힌 영어는 Theseus's paradox 이다. 외국에서는 이 표현이 정식 명칙인 것 같고, 우리는 여기서 역설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인 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뒷표지에는 Cyberpunk is now 라는 문장이 크게 쓰여있다. 이 책의 장르가 사이버펑크임을 명시한 것이다. 사실 사이버펑크 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데, 그냥 머리속으로는 신체 개조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고, 괴상하게 생긴 기계 신체가 덕지덕지 달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 기계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리고 온 몸이 기계로 대체된 사람이 기계가 되기 전의 그 사람과 동일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제도도 등장한다. 그걸 증명하지 못하면 기계가 되기 전에 가졌던 재산과 가족관계 등을 모두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br>주제와 접근방식은 정말 좋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좀 아쉽다. 이 책에 대한 다른 100자 평들과 글들을 훑어보니 '클리셰 덩어리'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좀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 이야기가 너무 뻔하기는 했다. 한 편으로 조금 더 정교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과 다른 한 편으로 너무 손쉬운 소재만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결말은 조금 허무하기는 했지만,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해보니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아니 가장 무난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끝나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br>그리고 묘사도 조금은 아쉽다. 특히 이 소설이 사이버펑크라고 크게 써놓았는데, 미래의 공간 배경에 대한 묘사와 기계로 신체를 대체한 여러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적어서 아쉬웠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머리 속으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해보려고 하는데, 구체적인 묘사가 적어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하는 부분이 적었던 점이다. 마천루라는 초고층 건물들 안에서만 생활하고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미래 생활을 말하면서 건물 안에서는 주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수직, 수평 이동을 한다고 했고, 건물 밖으로 나올 일이 생기면 건물 간에 연결된 튜브카를 탄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게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외에도 다른 교통수단들도 등장했는데, 역시나 묘사가 별로 없었다.<br>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nbsp;우선 너무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인 주인공을 보자. 주인공 석진환은 거대 재벌 그룹의 회장이다. 상식적인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을만한 부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정략 결혼을 통해 딸을 낳아서, 아내와 딸이 있는데, 사고로 모두 죽었다. 그리고 본인은 그 사고로 크게 다쳐서 신체 대부분을 아니 전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옛날 영화의 주인공인 로보캅은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인데, 진환은 뇌 마저도 기계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노 머시기를 통해서 뇌세포를 1대1로 기계로 바꿨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신쳬가 계속 바뀌는데, 맨 처음 신체는 군용 스펙으로 키가 2미터가 넘고, 두꺼운 철판이나 콘크리트도 때려부술 정도의 팔다리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이야기의 중간쯤에는 일반 사람 체격이지만, 총알을 튕겨내는 몸체를 가진 신체로 바뀌고, 맨 마지막에는 실리콘인가 뭔가 사람처럼 부드러운 살결 같은 외관의 신체로 바꾼 것으로 나온다. 아마 필요에 따라 여러 신체를 바꿔 끼운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갈아탄다고 표현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br>이 이야기의 악역은 석진환의 배다른 여동생 석미진이다. 온갖 불법적인 짓들을 통해 거대 재벌 그룹을 일으킨 진환의 아버지가 러시아계 여성을 통해 얻은 딸이며, 금발에 파란 눈이다. 이야기의 공간이 한국이다 보니 평소에 금발을 갈색으로 염색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성인 진환보다 체격이 더 크고 힘도 좋은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안하무인에 아무것도 거리낌 없이 막나가는 인간이다. 사람 죽이는 것을 벌레 죽이는 것 정도로도 여기지 않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한 사람을 죽였다가 살렸다가 또 죽이기를 수십번 반복하는 것으로도 나온다. 아, 이 소설에서는 마침애 인류가 죽음을 극복했다며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기술이 나온다. 이 재벌그룹 안에서 진환이 주도하는 인공장기와 인공신체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과 미진이 주도하는 손상 신체를 되살리는 기업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두 사람 갈등의 시초다.<br>이 두 남매 외에 가장 비중이 높은 등장인물은 여울이라는 사람이다. 진환이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살려보려고 전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의료, 생명과학 분야 기술들을 섭렵하고, 그중 가장 뛰어난 연구소나 기업을 사들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때 만난 사람이다. 그때는 아직 미혼이었던 진환이 여울에게 빠져들어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이 과거 시점으로 나온다. 그리고 현재 어떤 무리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기며 갈 곳이 없었던 진환이 의지해서 찾아가는 사람이다. 여러모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지하세계에 어지간한 대기업 연구소보다 훨씬 더 기술력이 뛰어난 인물들과 설비가 있고, 진환을 그들에게 연결해서 새로운 신체를 구매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 여울이라는 인물 역시 신체 대부분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원격 조정하는 자신의 대체 신체를 사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는 이 이야기 전체의 최종 승자로 나온다. 다 좋은데, 조금 더 정보를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마 작가가 마지막 반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덜 주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감정 이입을 할 기회가 적은 인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br>그 다음으로 비중있는 인물은 현석이다. 석진환 회장의 심복으로 등장한다. 배다른 동생이 장악해버린 회사에서 단 한 명 믿을 수 있는 인물이자, 개인적인 일들까지 모두 처리해주는 가장 의지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초반에는 이 인물이 조금 더 많은 비중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울이 등장한 이후로는 비중이 확 줄어버렸다. 그러다 되살아난 진환 때문에 다시 조금 비중이 늘어날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비중이 더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 모습은 너무 뻔한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nbsp;<br>친족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동생들, 즉 삼촌들은 세트로 등장한다. 이 거대 재벌 기업에서 지분으로 따지면, 진환, 미진과 거의 대등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손쉽게 제압당해버리면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다만, 그들이 갖고 있었던 차명 지분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그룹 내 권력 다툼 결말을 결정지을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이 부분도 이 이야기가 너무 뻔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br>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비중이 없는데, 꼭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 있다. 다섯명이던가 여섯명이던가 다수가 다수의 몸을 함께 사용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이름이 아니라 그냥 '교수'라고 불린다고 한다. 처음 여울이 진환에게 소개할 때는 아직 어린 여성의 신체를 가진 사람인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중에 다른 인격들이 자꾸 튀어나와 여러 차례 말하는 주체가 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인물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쩌다 여러 인격 혹은 여러 존재가 되어버린 진환이 결국에는 이 인물처럼 함께 공존하는 결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신체도 여럿이고 그 신체들을 공유하는 인격도 여러 명인데, 어째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개념이 떠올랐다. 하나의 몸에 여러 영을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는 '군령자' 라는 존재인데,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했다. 이 군령자는 죽음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나온다. 군령자의 몸에 흡수되거나 자의로 합류하면 계속 몸을 옮겨 다니며 계속 살아가는 개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역사 속 위인으로 분류될만한 여러 인물들이 의외로 군령자의 영들 중 하나로 나오는 부분에서 의외라는 반응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아주 용맹한 장군이 죽음을 앞두고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자." 라는 유혹에 빠져 군령자의 몸에 합류를 한다던가, 어떤 훌륭한 성취를 이룬 과학자나 예술가가 평생의 업적을 이루기 직전에 죽음을 앞둔 상황이라면 영이 되어서라도 그걸 이루고 싶어서 군령자에 합류한다던가 이런 개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긴 시간을 살아온 군령자는 그만큼 수많은 영을 거느리고 있기에 어떤 영들은 그 하나의 몸에서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라는 인물은 각자의 장점이 필요한 순간 서로 몸을 옮겨 다니며 활약할 기회가 충분하리라. 아, 지금 막 생각났는데, 워쇼스키 자매가 오래 전에 제작했던 드라마 시리즈 [센스8]도 8명의 주인공이 짧은 시간 동안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몸을 공유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처음에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 몸이 바뀌기도 하는데, 나중에는 이런 능력을 활용해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자신들과 적대하는 세력에 맞서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배우 배두나는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무술인으로 등장하는데, 무기를 든 다수의 적들을 상대할 때면 어김없이 배두나가 등장해 적들을 쓰러뜨린다. 또 남미쪽 인물 중 카 레이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적들에게 쫓기는 상황이면 반드시 이 인물이 등장하여 경이적인 실력으로 자동차 추격전을 펼친다. 주인공 일행이 8명이나 되다보니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고, 이 8명이 서로 몸을 바꿔가며 위기를 극복해간다는 설정이 신선해서 즐겨 봤었는데, 세번째 시즌까지 찍은 후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막대한 제작비 때문이 아닐까 싶다.<br><br>이&nbsp;이야기가 펼쳐지는 도시는 평택인데, 이 미래 시대의 평택은 평택혁신도시라고 불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간 같은 느낌이다. 책 속 설명에 의하면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미군 기지가 축소되고, 그 자리에 한미연합군사연구소가 들어서고,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첨단 기술들을 연구하고 그 성과를 시험하는 공간으로 신기슐에 대한 모든 규제를 면제하는 특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설정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nbsp;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총격전이 벌어지는데, 경찰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중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잔인한 살인극들이 등장하는데, 공권력의 개입은 아예 없다. 마지막에 검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국가 권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구나 싶기는 한데, 여러모로 우리나라가 배경인데, 이렇게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br>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우리나라 모습이 아니라 첨단 기술에 대한 대부분의 규제가 사라진 좁은 영역, 특구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단서를 잊지 말아야 조금 억지로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특구 안에서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았다는 진환과 미진의 아버지 덕분에 그들이 비정상적인 재력과 권력을 손에 쥐었다는 부분도 전제조건으로 달아놓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설정들이 너무 손쉬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이야기가 뻔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는 부분인 것이다.<br>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진환의 존재는 두 번 더 등장한다. 즉 막판에 진환은 세 명이 된다. 이 세명 중 누가 진짜 진환인가? 우리는 과연 누구를 진짜 진환이라고 인정할 것인가? 여기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등장한다. 의식이 계속 이어져 온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계 몸을 가진 진환이 진짜 진환인가? 소설에서는 이 인물에게 컨티넘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시점의 진환의 의식을 백업해 놓은, 그러나 신체는 없이 메모리 칩으로만 존재하는 의식(몸이 없으니 인물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어색한 느낌)이 진짜 진환일까? 이 녀석의 장점은 가장 완벽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며, 그래서 메모리로 불린다. 그리고 기계로 완전히 대체해버런 진환이 가졌던 원래 신체 부위들을 모두 가져다가 다시 소생시킨 진환이 존재한다. 이 진환은 그러나 기억이 아예 없다.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 모습으로는 이 인물이 가장 완벽한 진환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차명 지분이 담긴 태블릿을 열기 위해서는 신체 인증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미 기계 몸으로 바뀐 진환은 이 신체 인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암튼 이 진환은 보디라고 불린다.<br>일단 의식을 백업 받아놓은 메모리는 제쳐두고, 원래의 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기계 몸의 진환이 진짜 진환일까, 아니면 기억은 없지만 원래 신체를 그대로 갖고 있는 진환이 진짜 진환일까? 처음에는 너무 당연히 컨티넘으로 불리는 의식이 이어진 진환이 너무 당연히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막판에는 정말 그게 너무 당연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 지점에서 이 이야기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싶다. 그리고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이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br>이 소설 초반에도 언급되는 내용인데, 실제로 인류가 노화라는 현상의 원인으로 밝힌 유전자 텔로미어를 유지하거나 복구하는 기술들이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 언젠가는 인류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또는 이 소설에 나온 것처럼 점점 기계로 신체를 대체하는 미래가 올 수도 있겠지. 그런 미래가 되면 이 소설은 일종의 예언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현재의 과학기술들도 아주 오래 전에 SF 소설에 나온 개념들을 살린 것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SF를 읽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017/29/cover150/k4326364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017293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내 몸은 그저 그릇일 뿐 - [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5397</link><pubDate>Mon, 16 Feb 2026 06: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5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693&TPaperId=17095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7/19/coveroff/897012969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693&TPaperId=17095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a><br/>사토 아유코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7년 08월<br/></td></tr></table><br/>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빌려 준다는 의미<br>이 책을 다 읽고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있다. 마야는 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몇 가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성별의 한계가 있겠다. 나는 현재 중년 남성으로서 젊은 여성의 생각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시공간의 한계다. 이 소설은 1996년 "가와데 문학상"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이야기다. 나도 물론 90년대 중반에 청춘을 살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여러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은 SNS와 각종 영상 등을 통해 각 나라의 사회상황과 문화를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일본 문화를 직접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세번째로는 계급 혹은 계층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약간 억지로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인 도쿄대학을 다니고 있다. 비록 마야가 보디 렌탈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내용은 없다. 아마 굳이 보디 렌탈이란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대학을 다니며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알바를 통해 용돈을 벌 수 있다. 실제 작중에서 마야는 그 용돈 벌이의 목적과 보디 렌탈의 고객 모집을 위한 목적으로 바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한다. 암튼 공부도 잘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 나는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공부를 그리 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시민운동 판에 뛰어든 가난한 활동가일 뿐.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르다. 이 지구에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결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모두 이렇게 다름에도 불완전하게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쨌든 마야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상해보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br>사토 아유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일터에서 가까워도 한동안 가지 않았던 알라딘 중고서점을 그날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별 생각없이 책들을 살펴보다가 정보라 작가의 책 하나를 고르고 우연히 집어든 책이 [도쿄대학 살인사건]이었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문구에 비운의 천재 작가라고 적혀 있어서 구매했었다. 이 책은 약 1/3 정도 읽었는데, 진행이 좀 느리고 생각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토 아유코 작가의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이 [보디 렌탈] 이라고 하길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덮어두고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보디 렌탈]이고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판본도 이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다시 출간된 책이 지금 제목으로 나왔다. 암튼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알라딘 앱에서 중고 책을 검색했다. 세 곳의 매장에 이 책이 있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 2만원 어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료 2,500원을 아끼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인데, 평소 다른 온라인 쇼핑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책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한다. 그래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책이니까.&nbsp;<br>이 소설이 "가와데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 회의는 무려 4시간이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통상 문학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사전에 심사위원들이 대략 그 범위를 좁혀 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토론을 이어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는 뜻이겠지. 이 책의 맨 뒤에 수록된 두 편의 해설과 옮긴이 후기에서도 반복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의 평론가 진노 토시후미는 이 소설을 포함한 사토 아유코의 작품들을 "초현실주의 실험"으로 보며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김미현 평론가는 "하루키의 경쾌함, 뒤라스의 관능성, 쿤데라의 위악성이 혼합된 묘하고 대담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옮긴이 김진욱은 사토 아유코가 "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그렸다고 언급했다.<br>이 책을 한 번 완독하고 두번째로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을 한 내 솔직한 마음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않고, 생각만큼의 문제작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3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겠지. 그럼에도 김미현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하루키와 뒤라스와 쿤데라를 불러올 정도는 아니다. 아, 확실히 경쾌함이 있고, 관능적이고, 위악성이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잘 어우러져 있는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의문이 든다. 요컨대 핵심은 이거다. 이 글의 맨 앞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자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떠올릴 질문, 그래서 대체 왜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를 빌려주는 걸까? 그것도 젊은 여성이 돈 많은 중년의 남성들에게 고액의 돈을 받으며 남들이 매춘이라 부를 행위를 하는 것일까? 확실히 돈 때문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쾌락 때문도 아니다. 뭔가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저항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왜일까? 책을 덮은 후로 꽤 긴 시간을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br>진노 토시후미는 매춘을 "상실을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내 몸이지만, 이 몸이 내 신체라는 감각을 상실하는 것. 이것을 위해 보디 렌탈 이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이 일본인 평론가는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우연한 계기로 신체감각을 상실할 계기로 매춘을 선택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해설은 아마 일본에서 출간된 96년 판본에 실린 글일 것이다. 사토 아유코는 2008년 [꽃들의 묘비]라는 작품을 출간하며 자신과 언니가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신체감각의 상실을 위해 매춘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미현 평론가는 글에서 보디 렌탈의 이유를 딱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텅 빈 그릇이 되어 그 속에 허구나 망상, 유희 만을 담기 위해 의식이나 반성, 이성 따위 자의식을 몸에서 파낸다."는 문장을 썼다. 그리고 이 평론가는 소설 후반부에 마야가 유일하게 가학 충동을 느껴 먼저 유혹하는 우치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결국 마야가 "완전한 물건이 되기에는 그녀의 자의식이 철저하게 제거되지 못했기에 분열을 일으켰다."고 표현했다. 이어서 "물건이 스스로 물건임을 모르면 진짜 물건일 수 밖에 없다." 라며 "자신이 물건이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미 물건이 아니다." 라고 했다. 우리 마야는 자의식조차 없는 물건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의식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아사히 신문의 서평에 실린 마야의 목적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치유" 라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몸을 남자들의 욕정의 기호로 삼아 철저히 세련되게 만들면서 거꾸로 그 같은 욕정의 세계에서 정신을 이탈시킨다는 식의 '야릇한 치유법'" 이라고 적어놓았다.<br>이 소설에는 마야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현재 대학생이면서 남몰래 부유한 중년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 살고 있고, 그 고객인 여러 남자들과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 구성처럼 등장한다. 마야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그 과거를 알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왜 이런 작중 주인공인 마야의 삶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려야 했을 것이고, 자신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작가는 비운의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괴물에게 학대 당한,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nbsp;<br>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자의식을 철저하게 지워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로 여러 번 썼었고, 언제나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꼭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군에 입대할 당시에 나 스스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만약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도저히 그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낱 미물이며, 감히 인간 따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온갖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견뎌내야 했다. 만약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탈영을 했을 것이다.<br>이제 작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작품 자체만 놓고 몇 가지만 더 얘기해보자. 일단 확실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자극적인 주제다. 다만 글에는 섹스 묘사도 없고 야릇한 분위기조차 없기 때문에 포르노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마야가 말하는 보디 렌탈이란 개념 자체가 그렇듯이 이 글에서 중년 남성들이 마야를 빌려서 하는 여러 행위들은 철저히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을 배재하고 그저 이런 일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를 배제한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짓을 너무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 전반에 상당한 블랙 유머와 해학이 깔려있다. 소설 초반에 와타나베 조교수가 강의에서 한 말인 "인간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br>정말 독특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너무 거리낌 없이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글이 경쾌하고 거침이 없기도 하며, 그러면서 또 위트와 해학을 갖춘 글이다. 앞서 김미현 평론가의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말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확실히 이 소설의 결말은 좀 많이 아쉽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 아쉽다. 병렬적으로 여러 구매자들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큰 줄기의 이야기가 너무 약하다. 앞서 언급한 그 우치다 이야기가 이 소설 전체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일텐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nbsp;<br>이 이야기에서 이어서 생각할 거리들도 제법 많다. 일단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파카츠"가 이 책에서 묘사된 보디 렌탈과 매우 유사하다. 부유한 중년 남성이 젊은 혹은 어린 여성이랑 놀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결국은 이것도 매춘이고,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텐데, 거창하게 방과후 동아리 활동을 뜻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를 파파랑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이해하려면 조건 만남이라고 해야할까?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청춘시대] 에서 강이나 라는 캐릭터가 중년의 남성들을 만나면서 원하는대로 돈을 펑펑 쓰는 생활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본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들이 이 파파카츠로 돈을 벌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자신의 '최애'에게 갖다 바치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던 것 같다.&nbsp;<br>그리고 일본에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또 다른 형태가 있더라. 바로 렌탈 여친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 말로 여친 대행 서비스 라고 하면 되려나? 일본 드라마 [내일,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 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드라마로 시즌 1을 보았고, 시즌2는 앞 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다. 원작 만화가 있다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 설명에 의하면 이 만화에 렌탈 여친, 파파카츠,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며 통용되는 매춘 행위들이 총 망라된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곧바로 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이 책이 나왔던 96년에는 책 내용이 충격적인 문제작이었겠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류의 매춘이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br>이 책과 이 드라마를 연결해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드라마를 가볍게 보고 넘겨 버려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디즈니 플러스를 딱 한 달만 구독해서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보았기 때문에 더 기억이 안 나는 듯하다. 다시 보려면 다시 구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좀 아깝다. 혹시 [무빙]의 후속 시리즈로 강풀 작가의 세계관을 구현한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나오면 그때 다시 구독할 예정이라, 그때 다시 보고 글을 쓸까 싶은데, 어쩌면 그때쯤 되면 이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nbsp;<br>사토 아유코는 2013년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을 병용한 급성약물중독이라고 나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겨웠을 작가의 삶을 감히 생각하면 참 뭐라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작품 써준 덕분에 이렇게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 이제 꽤 오래 방치해뒀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다시 읽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7/19/cover150/897012969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5571964</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가로 막고, 가리는, 정신적인 혹은 물리적인 벽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6537352</link><pubDate>Sat, 21 Jun 2025 1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65373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268&TPaperId=165373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88/83/coveroff/893204226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얇은 책이다. 벽을 주제로 쓴 6편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4편은 SF임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두 편은 잘 모르겠다. 이런 류의 주제별 모음집은 수록 작품들의 편차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취향으로만 봐도 그렇고, 구조와 밀도를 생각해도 그렇다.<br><br>첫 소설인 듀나 작가의 [아레나]는 이 책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할만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미국의 코믹스나 영화 같은 곳에서나 나올 법한 초능력자들이 엄청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K팝 아이돌 문화를 엮었다. 초능력자 아이돌이 공연도 하고 악당들도 물리친다. 그 장면들은 드론으로 촬영되어 전 세계로 영상을 퍼뜨린다. 하지만 모든 장면을 다 드론이 찍을 수는 없는 일. 카메라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일이나 잘 보이지 않는 장면들은 각색되어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초능력자들의 전투 장면들은 초기에는 사실이 거의 대부분 발표되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은 그저 하나의 선택할 수 있는 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br><br>˝재미를 위해 양념을 치고, 이미지를 미화하고 몇몇 중요한 사실을 감추기도 했지만, 사실의 큰 덩어리는 남아있었다. 하지만 전투와 오락을 구분할 수 없게 되고 회사마다 쌓아놓은 비밀들이 많아지자 사실은 점점 존재감을 잃었다.˝(본문 33쪽)<br><br>수십명의 초능력자 무리가 주인공이 일하는 회사를 습격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투에서 죽었지만, 전투가 끝나자 회사의 작가들이 살아남은 초능력자들에게 다가가 인터뷰 하면서 처음엔 사실을 묻고, 그 다음엔 생각을 묻고, 마지막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말았으면 하는지를 묻는다고 했다. 이렇게 회사에 고용된 작가들이 만드는 공식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전세계 팬들이 각자 만드는 팬픽들도 있다. <br><br>이제 진실 혹은 사실은 그 힘을 잃고,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 버리는 설정과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들만 유통되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제목 아레나는 고대 로마 시대에 검투사들이 싸우던 원형 경기장을 말한다. 소설의 첫 문단에서 2033년 7월 14일 대구 도시철도 공사장에서 진홍색 젤리로 가득찬 지층이 발견되고 끔찍한 전염병인 적사병이 유행하고 남한은 이제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독특한 생태계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적사병의 원인인 프로스페로 생태계는 소수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초능력자로 만들었다고 나온다. 아레나는 이렇게 초능력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소이고, 대한민국이란 나라 전체가 관중석으로 고립된 경기장처럼 전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거대한 아레나가 되었던 것이다.<br><br>작품의 주인공인 남성은 청소년기에 강한 초능력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자 강한 히어로였지만, 성인이 되면서 회사 경영진이 되어 얼굴 마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회사 경영은 다른 동료들이 하고, 그는 그저 앞에 나서서 웃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제 초능력자들의 전투에도 나서지 않는다. 성인이 된 그와 동료들은 경영자와 중간 간부가 되고, 다시 어린 청소년들이 나서서 전투를 한다. 이런 시스템도 한국의 케이팝 아이돌과 그 기획사의 문화를 가져다 썼다. 현실에서도 각 기획사마다 연차가 오래된 아이돌들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고 회사 중간 간부가 되거나, 얼굴 마담이 되는 것 같다.<br><br>듀나의 이 짧은 단편은 흥미로운 소재와 다양한 초능력을 지니고 또 사연을 품은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책을 처음 펼쳐든 독자들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졌다. 이 정도의 설정으로 이렇게 짧은 이야기만 펼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중편이나 장편으로 다음 이야기를 계속 써주거나 연작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br><br>두번째 소설인 아밀 작가의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은 제목에도 나온 것처럼 4차원을 다룬다. 3차원 밖에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이 4차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해도 인간인 우리가 그걸 잘 느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음악, 그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다룬다. 읽다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잠깐 생각났다.<br><br>세번째 소설은 이산화 작가의 [깡총]이다. 맞다. 깡총 깡총 뛰어다니는 그 동물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그 동물 덕분에 멸종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 이야기 왠지 익숙하지 않나? 그렇다. 이건 호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가져와 더 흥미로운 설정을 덧붙였다. 긴 싸움을 이어가는 두 종족의 싸움이라는 설정도 좋고, 연구자와 사냥꾼이라는 두 인간 주인공의 조합도 좋았다.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이 기가막히게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이산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큰 발견이다. 이 소설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마틴 옹의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장벽과 같은 길고 높은 벽이 나온다. 사이비 종교에 미친 광신도 집단도 나온다.<br><br>이서영 작가의 [월담하려다 접천]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처음 소개한 듀나의 [아레나]에서 남한 전체가 고립된 상황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서울이 하나의 고립된 섬 같은 상황이다. 벽에 갇힌 도시 같은 느낌. 여기 서울은 전능하신 방패님이 다스리는 나라다. 뭐든 방패님의 말씀을 따라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방패님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나오지 않는데 내 느낌에 한 사람의 독재자인 것 같지는 않고 소수의 엘리트 고위 공직자 집단이거나, 종교 집단의 지도자들이 아닐까 싶다. 이 독재국가에선 사람들이 특정한 지역의 출산센터에서 태어나 유아센터, 초등센터, 중등센터, 고등센터를 옮겨 다니며 자란다. 주인공은 역촌동 출산센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같은 출산센터에서 태어나 같은 유아센터 등을 함께한 친구는 나오지만 부모나 가족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공동 시설에서 다함께 자랐으리라. 어렸을 때 북한에 대해 들었던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공동 작업장에서 일을 해야하고 아이도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자란다. 방패님의 말씀을 통해 평생 서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듣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는데, 코딩을 통해 우연히 외부 네트워크의 존재를 알게되어 접촉했다는 이야기. 후반부에 갑자기 이야기의 규모가 너무 커지는데 비해 적절한 묘사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고, 결말이 좀 많이 허무하다. 방패님이란 기묘한 느낌의 독재자 이미지가 재미있고 신선했는데 갑자기 너무 큰 이야기를 흘러가버려서 많이 아쉽다.<br><br>이유리 작가의 [무너뜨리기]는 마음의 벽 아니 서로를 허물없이 생각하는 어떤 경계를 다룬 소설이다. 작중 7년차 부부인 남녀 주인공이 더는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게 되고, 방귀도 아무렇지도 않게 뀌게 되는 상황에서 남자가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는데, 리빌딩이란 이름의 일종의 최면 치료 같은 것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이야기가 제법 괜찮았다. 그런데 후반부에 갑자기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좀 황당하게 끝난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br><br>마지막 소설은 정보라 작가의 [무르무란]이다. 아마도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고대 흔히 우리가 신석기 시대라 부르는 돌도끼와 돌칼을 쓰던 시절의 이야기. 선조로부터 지혜를 벽화를 통해 배워 익히고, 이 시대의 지혜를 또 벽에 새겨 후대에 남기는 삶을 다룬다. 사냥에 대한 장면을 기대했으나 묘사가 안 나오고, 주술의식에 대한 묘사는 길게 나오는데 그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br><br>소설집 [저주 토끼]를 통해 읽었던 정보라 작가 다운 글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생각보다는 크게 와닿는 지점이 없는 소설이었다.<br><br>여섯 작품 모두 저마다 다른 위상과 층위의 벽을 상정하고 이야기를 펼친다. 듀나 작가와 이서영 작가가 고립된 국가와 도시를 둘러싼 벽을 그렸고, 이산화 작가는 인간이 만든 인공물로서 거대한 장벽을 그렸다. 아밀 작가는 차원의 벽을 상정했고, 이유리 작가는 심리적인 벽을 가정했다. 정보라 작가는 유일하게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암벽을 주제로 글을 썼다.<br><br>다양한 이야기 꺼리들이 여러가지 다른 주제로 생각을 넓혀주는 기분 좋은 독서였다.<br><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88/83/cover150/89320422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888387</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비밀 소설과 영화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6193473</link><pubDate>Fri, 31 Jan 2025 2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61934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54153867&TPaperId=16193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135/80/coveroff/915415386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9197845&TPaperId=16193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68/coveroff/897919784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외국 작품을 읽을 때 항상 가장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것은 원작의 제목과 그 뉘앙스이다. 내가 출판사에 일했을 때에도 그랬고, 늘 그랬겠지만, 외국 작품들을 우리나라로 가져올 때 제목을 바꾸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제목이 바뀌면서 원제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제법 많다. 아, 이 글의 시작을 좀 잘 못 한것 같다. 실제로 제목이 바뀐 경우에 이렇게 글을 시작해야 적절한 설명이 되었을텐데, 이 경우엔 실제로 제목이 바뀌지 않고 똑같으니까, 이렇게 시작하면 쓸데없이 분량만 잡아먹는 꼴이 된다.<br><br>그런데, 아니 그럼에도 이렇게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나는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봤었다. 그리고 그 영화 내용이 거의 하나도 기억도 안 날 때쯤 이 소설을 읽었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영화를 봤고, 그리고 소설을 빠르게 한 번 더 읽고 이 글을 쓴다. 맨처음 이 영화를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때 혼자 봤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봤던 것은 맞고, 조금은 불확실하지만, 혼자 봤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누군가 다른 사람과 같이 보고 그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남아있다. 분명 같이 봤던 사람은 여성이었고, 그는 내게 만약 남자 주인공이었다면 어떨 것 같냐고 극중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 구체적인 내용과 내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나도 그에게 여주인공의 입장이면 이라는 가정으로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역시 그의 답변도 그닥 기억나지 않는다.<br><br>처음 영화만 봤을 당시에는 이 작품의 원제가 비밀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다른 제목이었을텐데 그냥 배급사에서 편하게 정한 제목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정말 이상하게 지은 외국 영화 제목이 많았다. 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정말 뜬금없는 제목들이 많다.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이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 비밀이 아니라고 느꼈냐면, 영화에서는 마지막 결론의 그 비밀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막판에 드라나는 가장 큰 반전이자, 제목을 의미하는 그 비밀이 원작에 비해서는 비중이 너무 적어서 그닥 와닿지가 않기 때문이다.<br><br>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게다가 책에는 분명 히미츠 라고 알파벳으로 일본어 원제가 적혀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에 이 영화를 봤던 기억에 다른 건 다 몰라도 히로스에 료코의 표정들만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대략의 흐름에 대해서는 남아있었다. 그 상태로 책을<br>읽기 시작했다. <br><br>음, 왜 지금에서야 이 소설을 읽었느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겠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새책 보다는 중고책을 많이 샀다. 예전에 비해 알라딘 온라인 중고 상품은 거의 없고, 내가 어떤 책을 검색하면 우주점이라고 표현한 전국 어딘가 매장에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해당 매장에서 2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배송료가 없어지더라. 그 배송료가 아까워서 나는 일단 처음 검색했던 책을 담아놓고 다른 책들을 추가로 담아서 2만원을 넘기려고 하는데, 꼭 세 권 이상 담아야 하더라. 이런 경우 제일 무난한 방법이 검증된 작가의 책을 추가로 담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많이 담은 검증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 였고, 이 책 [비밀]도 그런 와중에 내게 오게 되었다. 책을 받고 보니 처음 구매하려고 검색했던 책보다 이 책에 손이 먼저 갔고, 그래서 읽었다. 다행히 영화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흔히 스포일러라고 말하는 요소는 없었다. 물론 대략 어떤 흐름이라는 건 남아있었는데, 내게 그 정도는 몰입을 방해하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다.<br><br>그럼 책과 영화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두드려보자. 일단 책 먼저. 일단 나는 시작하는 방식이 좋았다. 이야기의 화자인 남편 스기타 헤이스케가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혼자 아침을 먹으려 하는 장면이었는데, 이 방식이 아주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습관과 성격을 보여주었다. 나도 야간에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혼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잠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내 공감이 더해져 이 도입부가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도입부에서 사고 장면에 대한 묘사 없이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접하는 것도 좋았다. 이걸 나중에 깨달았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철저하게 헤이스케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헤이스케가 직접 겪지 않은 그 사고와 같은 내용은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직접 다루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가령 병원 장면은 조금 그랬다. 아내인 나오코와 딸인 모나미가 얼마나 다쳤는지, 지금 얼마나 위독한 상황인지 곧바로 보여주지 않고 의사의 언급으로만 간접적으로, 그러니까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이 소설에 상대적으로 시각적 묘사가 적은 듯 느껴진다. <br><br>나오코가 죽고 모나미만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딸인 모나미의 몸에 아내인 나오코의 의식(영혼이라고 쓰려다가 왠지 이 단어가 더 적절한 것처럼 느껴졌다.)이 깃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헤이스케의 모습은 처음에는 위화감이 적었는데, 두번째 읽을 때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저항해야 현실적인 것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화도 소설도 이 부분이 너무 무난하게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나미가 알 수 없는 나오코와의 첫 데이트와 (아마도) 첫 관계가 있었을 나오코 집에서의 첫 날의 기억 등으로 과연 모나미의 몸 안에 나오코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어떻게 처음 만나고 서로 호감을 가졌는지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자세하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br><br>사고로 희생된 많은 승객들의 유가족들이 호텔에 모여 대책 회의를 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일본인들 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그런 장면들을 보았으니. 사고에 대한 묘사가 없었기에 독자는 사고 원인에 대한 정보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이 회의를 통해 접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거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좀 답답했다. 물론 나중에 헤이스케가 이 부분을 파고 들긴 하는데, 정말 명쾌하게 원이 밝혀지기까지 몇 년이나 걸리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삿포로까지 가서 졸음운전을 했던 운전사의 전처의 아들을 만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었을 때, 나중에 전처를 만나야 결론이 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그 일이 정말 그렇게 나중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br><br>사고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최근 제주항공 참사가 떠올랐다. 철저하게 헤이스케 중심의 이야기 전개라서 다른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는 않는데, 그래도 호텔의 회의 장면들과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 아주 조금의 정보들이 나온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쌍둥이 딸을 잃은 아빠(이 아저씨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다시 책을 찾아보기는 귀찮네)를 다루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차에 매달린 인형을 보는 헤이스케의 시선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나오코의 죽음과 방금 얘기한 것처럼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희생자들 이야기와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는 울음이 나는 걸 참기가 어려웠다. 아까 말했듯이 세월호 등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명들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이 사고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나온다. 애초에 스키여행을 위해 운행한 셔틀버스 성격이었으니 당연하겠지. 당시 일본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건지, 작가가 다른 비슷한 사고를 보고 넣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작가가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고였다. 다만 운전사가 돈 때문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고 무리해서 사고가 났다는 설정은 너무 손쉬운 설정이라는 생각이었다. 눈길이었고, 차량의 결함이 있을 수도 있고, 길 자체가 위험한 구간이었을텐데 그냥 정말 다른 이유 없이 졸음 운전으로 결론이 나는 것은 좀 이상했다. 물론 이 소설의 핵심이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여기에 분량을 할애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왜 운전사가 졸음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나 라는 의문만을 밝히려 하는 태도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br><br>일본 지리를 잘 몰라서 도쿄에서 나가노까지 얼마나 먼지 모르겠는데, 그 거리가 버스 기사 두 명이 교대 운전을 할 정도인가는 의문이다. 내 경험에 명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로 17시간 이상 걸린 적도 있고, 10시간 이상 걸린 적은 수도 없이 많다. 당연히 버스 기사님은 한 분이었고, 그 분이 그 긴 시간 휴식 없이 운전대에 앉아 계셨다. 교대 기사 따위 없었으니까. 교대 기사까지 있는데도 버스 기사가 졸았다는 것. 아무리 돈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는 설정이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해당 기사가 졸려할 때 다른 기사 한 명은 뭘 한 걸까?<br><br>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영화의 모나미, 그러니까 히로스에 료코는 그렇게 어리지 않았기에 처음 모나미가 초등학생이라고 했을 때 좀 놀라웠다. 고등학생이라면 어른이나 마찬가지니 위화감이 좀 적었겠지만, 5학년이라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인데, 그 몸에 30대 어른이 들어가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겠지. 작가가 영리하게 적절한 나이를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나미는 딸이지만, 나오코는 아내였으니 지금 나오코는 모나미의 몸에 있어도 아내라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인데, 이 어린 아이가 학교도 다니면서 집안 일을 모두 다 한다. 저녁거리를 사와서 매일 저녁을 준비하고, 설겆이와 뒷처리도 모두 혼자한다. 청소와 빨래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는데 헤이스케가 한다는 묘사도 없으니 역시 혼자 다 한다고 봐야겠지. 헤이스케는 집에서 하는 일이 없다. 야구 보고 다른 티비 프로그램 보고 가끔 맥주나 마시고 목욕하고 잔다. 아니 그 어린애가 학교 마치고 장보고 돌아와 서둘러 밥을 준비하고 설겆이까지 다 하는데 왜 아빠이자 남편이란 인간은 아무것도 안 하지? 왜 엄마가 죽고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헤이스케가 밥을 하는 장면은 단 하루도 없지? 한 두번 혼자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도 혼자 먹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내라고는 해도(아니 아내여도 마찬가지지만) 외형은 어린아이인 딸인데 왜 단 하루도 집안 일에서 휴식을 주지 않는 걸까?<br><br>게다가 부부관계 즉 밤 일에 대한 부분은 참 어이가 없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끌고 간 것이겠지만, 딸이지만 아내니까 부부관계도 할 수 있다. 뭐 이런 논리인 것이겠지만, 그리고 결국은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참 정신이 아득해지는 장면들이었다. 만약 여기서 선을 넘었다면, 그냥 이 책 집어던지고 더이상 안 읽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 부부라면 싸우고 나서 그 방법으로 해소하는 상황이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작가도 딱 그런 생각으로 이 장면을 만들었겠지만, 그리고 독자들이 딱 지금 내가 생각하듯 생각하길 바라고 넣은 것이겠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영화로 이 장면을 봤는데, 다행히 영화에서는 옷은 안 벗었더라만(아마 심의 등급 등을 고려해 벗을 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 자체로 화가 나는 것 마찬가지였다. 이것과 함께 목욕 장면도 정도는 좀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다. 이것 역시 영화에서는 가볍게 넘어가는데, 소설에서는 헤이스케가 나오코와의 목욕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오코가 혼욕을 거부하고 나가자 화를 내는 장면에서 이게 일본이라서 당연한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그랬던 건가? 궁금해졌다. <br><br>2000년 즈음에 사막화 방지 운동 차원에서 일본 대학의 시민단체와 함께 몽골에 갔을 때 처음으로 깨달았었다. 정말 일본은 남녀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봉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구나 하고. 그때 함께 어울려 놀던 대학생들 중 어느 남학생이 내게 작은 실수를 했었는데, 나중에 이 학생의 여자친구가 일부러 나를 찾아와 사과했었다. 그것도 그냥 말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 무릎까지 꿇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었다. 아니, 잘못은 남자애가 했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여학생이 사과를 하나! 며칠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대충 보니, 늘 남학생들은 뭐든 마음대로 하는 편이고, 여학생들은 늘 뭔가 제약에 묶여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나와 우리 학생들은 반대에 가까웠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남학생들을 짐꾼이나 일꾼처럼 부려먹었고, 남학생들은 큰 불만없이 대체로 요구하는 대로 따랐다. 그렇다고 우리 여학생들에게 불만이나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랬다.<br><br>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일본에서 성인 남성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남존여비라는 생각이 박혀있었던 건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였고, 우리나라도 과거에 심각했지만,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은 그래도 달라지고 있고 제법 달라졌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통해 느낀 일본의 모습은 새삼스럽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 시절 일본에도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집안 일을 함께하는 남성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중의 문제였겠지.<br><br>나오코는 그러니까 딸의 몸에 들어가 다시 청소년기를 겪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오코는 거의 초인처럼 느껴졌다. 대체 어떤 아이가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실제 일본의 여성 청소년들은 다 그런가? 식사와 청소와 빨래 등 모든 집안 일을 다 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잘 하고, 그러면서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회 활동도 다 하고. 이게 나오코가 이미 이 시기를 한번 겪었던 어른이라서 이미 모든 집안 일을 달인 수준으로 잘 한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모든 집안 일은 아무리 달인이라도 시간이 걸린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잠을 잘 수 없어야 하고 그러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니 아기였을 때 나와 애들 엄마는 아무리 열심히 집안 일을 해도 늘 시간에 쫓겼다. 퇴근하고 둘이 쉼없이 집안 일을 해도 마치면 새벽이었고, 지쳐 잠이 들어도 아기들은 새벽에 꼭 깨기 때문에 금방 다시 깨야했다. 가능하면 애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자도록 내가 일어나 아기에게 분유도 먹이고, 트림도 시키고, 기저귀도 봐주고, 안아서 재우고 다시 잠을 자기도 했지만, 어떤 날엔 아기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애들 엄마가 내게 좀 어떻게 해보라고 아무리 깨워도 모르고 잠들어있었던 날들도 있었다. 이 소설에선 아기를 키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집안 일들 모두가 고스란히 딸의 몫이 된다.<br><br>나오코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다는 측면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리플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고민할 가치조차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내가 다시 젊은 혹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마 다시 살아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냥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목표는 남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경제적 성공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이 성격과 성향과 기억을 그대로 갖고 어려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여전히 나는 공부를 그닥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여전히 수학을 못 할 것이고, 아마도 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다. 아, 여기서 소설 속에 재미있는 설정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오코는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을 잘 하지 못했었다. 전형적인 문과 뭐 이런 느낌. 이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헤이스케는 이과라 수학도 과학도 잘 했었다. 그 딸인 모나미는 아빠를 닮아서 수학을 꽤 잘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나오코는 갑자기 잘했던 수학을 못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봐 걱정하는데, 의외로 헤이스케가 알려주니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의식은 나오코지만, 뇌는 모나미의 뇌니까 수학을 잘 하는 모나미의 뇌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니 잘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논리였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까 [리플레이] 소설을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정확히 특정 시점의 본인에게 의식이 들어가는 혹은 돌아가는 개념이라 몸이나 뇌가 바뀌지 않는데, 이 경우는 딸의 몸으로 들어간 것이니, 그렇다면 전혀 다른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br><br>음, 좀 더 세부적으로 할 말이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이쯤하고 이제 결론인 반전으로 가보자.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좀 어이없고 딱히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소설은 아! 하고 한번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금방 다시 의심이 들기는 했다.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얘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시시콜콜한 것들을 다 기록해두면서 그렇게 중요한 걸 전해주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나오코와 모나미의 기이한 공존이 이상하다고 여긴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것일수도 있다. 이건 각자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몫이라고 여긴다. 암튼 여기서 작가가 얼마나 영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초반에 짚었듯이 이 소설은 철저히 헤이스케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헤이스케의 생각과 시선 안으로 갇힌 느낌이다. 그 바깥의 시공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헤이스케가 나오코와 모나미의 공존 기간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면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믿을 수 밖에 아니 대부분 믿게 만들어진 구조다. 반면 반지 때문에 헤이스케가 이 모든 것이 나오코가 의도한 긴 시간동안 연출한 상황이라고 깨닫는 순간, 독자들도 일정부분 그 생각에 따르도록 만들어진 구조인 것이다. 사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이성교제를 비롯해 여러모로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시점에, 갑작스레 모나미의 의식이 깨어난다고 하는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마의 의식이 딸에게 들어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이건 이 소설의 세계관이자 핵심 설정이고, 여기서 모나미가 의식을 찾으려면 이 부분에 대한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br><br>자, 시간에 쫓기니 영화 이야기는 원래 의도와 달리 짧게만 다루자. 일단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설과 달리 시각적으로 인물과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2시간 이내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큰 제약이 있다. 그래서 모나미가 초등 5학년이 아니라 고등학생으로 시작한다. 초반에 사고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연출이 좀 별로였다. 확실히 옛날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그 비극적인 느낌을 거의 살리지 못해서 차라리 소설처럼 남편이 뉴스로 소식을 접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거나, 그냥 버스가 눈 덮힌 산길을 달리는 장면에서 사고 장면을 건너뛰고 남편 장면으로 넘어가기만 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br><br>게다가 시간이 짧으니 등장인물을 다 잘라내고 운전사의 아들을 직접 등장시킨 것은 정말 큰 패착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랬다면 이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잘 살렸어야 하고 나오코가 이 인물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줘서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했다.<br><br>무었보다 중간 과정의 인물들이 다 빠지면서 나오코가 얼마나 현명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모나미의 담임과 헤이스케와의 관계도 많이 생략된 것이 아쉽고. 아, 이게 드라마도 있다고 하던데, 드라마라면 분량이 충분할테니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br><br>딱 하나 영화 시나리오에서 영리하게 잘 한 것이 있다면, 평소 나오코가 헤이스케의 턱을 들게하고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는 습관이 있다고 설정한 것이다. 이건 말그대로 습관이라 무심코 튀어나올 수 있는 행동이고, 이건 일부러 모나미가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하기 쉽지 않은 행동이다. <br><br>그래서 책을 두번째 읽고 생각해보니 소설보다 영화의 반전이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와! 처음에 별로 반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중에 보니 오히려 훨씬 괜찮은 반전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br><br>음, 더 할 말이 많지만, 자꾸 연락이 오고 있어서 딱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 소설에서는 정확한 시기가 나오지 않지만, 가전제품과 그 부품들 이야기로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이라서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발표한 시점이 1998년이고,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일 것 같다. 영화는 99년에 제작되었는데, 딱 그 시대로 설정한 것 같다. 중간에 소마 선배가 모나미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소설에서는 휴대폰이란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다. 소마 선배가 4시부터 모나미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린다고 했었다.<br><br>아, 전화 이야기로 또 한참 옛 추억을 더듬어 떠들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써야겠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딸이자 아내인 모나미의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자꾸 특정한 볼펜이 생각나서 몰입을 방해했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그 모나미는 프랑스에 Mon ami 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br><br>정말 마지막으로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히로스에 료코다. 다른 거 다 필요없이 그냥 그가 연기하는 모나미, 아니 나오코의 의식이 깃든 모나미를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끝.<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68/cover150/89791978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06869</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알게 되는 수많은 아버지의 얼굴들 - [아버지의 해방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5879831</link><pubDate>Thu, 26 Sep 2024 20: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58798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832&TPaperId=158798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8/51/coveroff/893643883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832&TPaperId=158798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버지의 해방일지</a><br/>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09월<br/></td></tr></table><br/><br>이 책을 구매한 건 우연히 본 어떤 장면 때문이었다. 친한 선후배 활동가들과 여름에 어느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다. 수영을 못 하기도 하고,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것 외엔 별로 할 일도 없다 느껴서 나는 물가에 앉아 긴 시간 책을 읽고 있었다. 대부분 물놀이를 즐겼고, 일부는 조금 놀다가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창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던 한 사람이 내 옆에서 책을 읽던 다른 동료 활동가가 잠시 놓아둔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nbsp;그때 내가 읽었던 책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nbsp;그 순간&nbsp;물놀이도 잊고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 기억은 아마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엔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많이 재미있고, 많이 팔린다는 정도만 알았다. 이 소설의 지은이가 [빨치산의 딸]을 쓴 그 정지아라는 것도 몰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평생을 돌아보는 내용이라는 것도 몰랐다.<br>나중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야 그때 그 선배가 왜 그렇게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 조금 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겼다. 그건 그 선배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가 담담하게 들려준 몇 가지 이야기들 덕분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여름 시점에서 비교적 최근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라는 점이 하나의 몰입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 들은 기억은 없지만, 일단 그는 운동권이었고, 활동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좌익과 진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 당사자로서의 공감도 컸을 것이다. 또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의 동질감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당시 그는 장례식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도 꺼냈었다.&nbsp;딸인 자신이 아픈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다보니 자연히 아버지의 성기를 보았던 것이고, 자신의 존재의 기원인 그곳을 본 것이 참 묘한 기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이 소설 안에서도 주인공인 딸이 아버지의 성기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과 아버지가 성별이 다르다고 느낀 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극적인 기억이 남아있을지 혹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우리 딸들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와 같은 여성이지만, 아빠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는 어떤 순간이.<br>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빨치산의 딸] 1권과 2권을 다 읽었다. 이것도 참 우연한 기회였다. 사실 [빨치산의 딸]을 읽지 않았다면 곧바로 이 책을 찾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에어컨 없이 선풍기 두 대만으로 열대야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혼자 사는 친한 지인들의 집으로 피서를 다녔다. 그 중 한 친구 집에 며칠 연속 머물 때였다. 주말 낮에 책을 읽으러 카페에 가자고 하길래 따라 나서려는데, 자기 집 책장에서 책을 꺼내오라고 했다. 음, 뭐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눈으로 책장을 훑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 책 읽었어요? 물으며 꺼낸 것이 [빨치산의 딸] 1권이었다. 당연히 그 옆엔 2권도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지는 못했었고 그의 권유대로 그 책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삼일만에 2권까지 다 읽었다. 정지아 작가가 부모님의 기억을 바탕으로 썼을 [빨치산의 딸]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 느꼈고, 제목엔 딸이 들어가지만,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각각의 삶을 담고 있는 본문에는 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 나는 각각 다른 조직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 모두 산에서 내려오게 된 부분에서 끝난다. 이 궁금증은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야 풀린다. [빨치산의 딸]을 읽을 때 전투와 생존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강인한 의지와 열망 등을 읽으며 흥분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버지 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몇몇 여성 동지들 중 누가 어머니인가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어머니 편을 읽으면서는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고, 두 사람의 접점이 거의 없어서 의아했었다.<br>앞서 [빨치산의 딸]이 소설이 아닌 역사책에 가까운 것이라고 썼다. 그에 비해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소설로서 훨씬 더 짜임새를 잘 갖춘 훌륭한 작품이라 느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겪는 이야기들 속에 아버지 평생의 인간관계와 신념과 소탈한 모습 등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점점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과거 회상들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애초에 이 소설은 그것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그 답답함은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nbsp;<br>이 책이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인 딸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의 힘이 크다고 느낀다. 말맛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렇게 잘 살릴 수 있을까 감탄을 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정말 잘 살리는 작가가 이시백 선생이라면, 전라도 사투리는 단연 정지아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잘 알지 못해서 멋진 대사들을 감칠맛 나게 읽지 못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 고향을 구례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br>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한 점은 어머니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빨치산의 딸]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그려지는 어머니의 어떤 냉철하고 강인한 이미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정지아 작가가 어머니를 주로 그리는 이야기를 꼭 쓰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br>[빨치산의 딸]과 [아버지의 해방일지]까지 주욱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나는 참 부모님들께 잘 못하고 살았구나. 이제부터라도 좀 달라져야지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현실은 또 언제나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자주 연락이라도 드려야지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아빠로서 우리 딸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하는 점에서 또 많은 좌절과 후회를 하게 된다.&nbsp;<br>나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내가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활동가라는 삶을 살아온 이유로 아버지를 들고 있다. 아버지는 노동조합 조합장으로서 노동운동을 하셨고, 독재에 저항해 싸운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하셨다. 비록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 다른 곳을 바라보고 계시지만, 과거의 아버지는 그랬다. 나는 그 과거의 아버지가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내 비록 평생 노력해도 그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나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은 운동가, 활동가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nbsp;한때 같이 일했던 후배 활동가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나를 '성골 빨갱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근데 엄밀히 말하면 성골은 양친이 모두 왕족이어야 하니, 진골 빨갱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해본다.<br>점점 나이가 들면서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도 돌아가실테고,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게 이렇게 생각하거나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간다. 평생을 속만 썩이며 살았는데, 뭐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마는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봐야겠지.<br>이 책은 조만간 큰 아이 책상 위에 말없이 두고 올 생각이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펼쳐볼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관심을 가지면 엄청 기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8/51/cover150/89364388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485187</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짧지만 재미있는 독서였다. - [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4295963</link><pubDate>Wed, 25 Jan 2023 2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42959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365&TPaperId=142959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910/79/coveroff/89364343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365&TPaperId=142959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a><br/>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04월<br/></td></tr></table><br/>독특한 전개와 시점 변화<br><br>하나의 살인 사건과 이 사건 당사자들(피해자와 피의자)의 친구와 가족인 세 명의 여성들 이야기.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은 아니다. 그 사고로 인해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이들의 이후 삶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 당시 이야기는 담고 있지 않다. 살인 사건이 나기 전의 상황은 세 명의 목격자(한만우, 신정준, 윤태림)가 경찰 조사를 받았을 당시의 내용으로 일부 담고 있는데, 실제로 담긴 내용은 두 사람(한만우, 윤태림)의 내용이고, 더 정확하게 따지면 한만우의 목격담만 담겨있고, 윤태림의 목격담은 그 중 가장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쟁점인 옷차림에 대한 부분만 담겼다.<br>이 책을 다 읽고 다른 이들의 평들을 여럿 찾아 읽어 봤는데, 두 가지 특징을 깨달았다. 일단 평이 안 좋고 별점이 낮은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대체로 살인 사건 자체가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또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인 시점이 계속 바뀐다는 점 때문에도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본질적으로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살인 사건 자체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독자들의 평은 크게 나뉜다고 볼 수 있다.<br>작품의 화자는 세 명이다. 피해자 김혜언의 동생인 다언,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였던 김상희, 역시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이자 목격자 신정준의 여자친구였던 윤태림 이렇게 세 명이다. 독특한 점은 이 세 명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가며 반복된다는 것이고,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각 장의 화자가 누구인지조차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 점이 이 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한다.<br>반면 그 점이 이 책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세 명의 서로 다른 화자가 1인칭 시점에서 펼쳐가는 이야기는 그저그런 뻔한 전개를 예방하는 조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의를 기울여읽지 않으면 각 장의 화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에 독서에 더 깊이 몰입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 점이 이 소설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내 기준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br><br>사건 이후의 이야기<br>이 소설은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살인 사건 자체는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별로 없다. 이야기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이야기를 주욱 그려나가고 있다. 처음에 나는 이 이야기가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 점은 다른 독자들도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유독 평이 좋지 않고 별점이 낮은 평들을 읽으며 그 점을 느꼈다.&nbsp;<br>우리는 뉴스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한다. 그렇게 사고가 일어난 시점에서 며칠 혹은 몇 주 정도 그 사건에 관한 소식들을 접하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레 그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간혹 법정에서 어느 정도의 형량이 구형되고 선고되었는지를 나중에 언론에서 다루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 잠시 그 사건을 떠올리고 다시 잊는다.&nbsp;<br>이 이야기는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이 그 사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고 있다. 결코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평생 그 사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대부분이 잠시 관심을 두었다가 잊어버리곤 하는 그 사건들을 남은 생애 내내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br>사회 구조와 복수<br>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은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을 내게 건냈던 큰 아이도 그래서 처음에 한번만 읽었을 때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읽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읽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머리 속으로 핵심적인 내용들을 정리해봤다.<br>일단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살인 사건의 진범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건 한 번 밖에 안 읽어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궁금했던 건 복수였다. 이 점은 내 기준에서 가장 쉽게 읽히지 않았던 윤태림 시점의 이야기와 다언 시점 이야기 초반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가 조금 더 생각을 하다가 이해했다. 그리고 내 생각과 큰 아이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면 작가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사회 구조의 모순과 불합리한 현실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nbsp;<br>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불러도 좋고, 권력과 돈을 가진 자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쉽게 처벌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좋겠다. 어쨌든 이 소설은 그런 현실의 모순을 잘 그리고 있다.&nbsp;&nbsp;<br>아쉬움<br>이 이야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피해자 김혜언에 대한 내용이다. 아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는 점,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엇다는 점, 속옷을 잘 입지 않았다는 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점 외에 더 알 수 있는 내용이 없다. 살인 사건 역시 피해자가 속옷을 입지 않고 집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집을 나섰다가 피해를 당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야기 초반에 이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옷차림 부분에 작가가 이토록 큰 비중을 부여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아름다운 여성이 속옷을 입지 않은 부주의가 살인의 이유라고 말하는 듯해서 이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br>가해자는 속옷을 잘 챙겨 입고 부주의하게 행동하지 않은 여성이었더라도 그런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피해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점, 현실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울만큼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점, 속옷을 입지 않고 다니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깨닫지 못할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 등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판타지처럼 느껴진다.<br>또 복수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이었다면 그렇게 손쉽게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철저하게 점검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늘 불확실한 무언가에 의해 의외의 일들이 벌어지곤 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설사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긴 시간 그 진상을 들키지 않고 살아갔을 리 없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다언이 어떻게든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듯이 그 복수 역시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 당연할 것이다.<br>마지막으로 제목 이야기를 해야겠다.&nbsp;2016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단편으로 실었을 때 이 이야기의 제목은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였다. 이야기의 분량을 조금 더 늘려 단행본으로 내면서 제목을 [레몬]으로 바꿨다. 이야기의 중간에 레몬과 복수라는 단어가 나오며 제목의 의미를 시사해주기는 하지만, 독자로서는 선뜻 이 이야기를 대표하는 단어가 레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단어는 이 살인 사건과 그 이후 삶의 과정 그 무엇과도 이미지가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br>아,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피해자가 죽은 이후에 피해자의 어머니가 이름을 바꾸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는 한 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이면서도 너무 사족처럼 느껴진다는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경상도 사람이라 해은이라는 이름이 혜언으로 바뀌었다는 설정은 좀 많이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의 우리 아버지 세대 이전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겠지만, 혜언이 나이 대의 이야기로는 많이 어색하다. 그러니까 단순히 출생신고가 잘 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꾸 부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전혀 자연스럽제 못하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딸을 잃은 엄마가 집착스럽게 이름을 고치는 장면들의 처절함과 처연함은 잘 그렸다고 느낀다.<br>큰 아이가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건네준 책이 무척 얇고 글씨도 크길래 대략 1시간 반이면 다 읽겠구나 싶어서 읽기 시작했고, 1시간 40분 정도 걸려서 다 읽었다. 몰입해서 읽으며 재미있고 좋았던 점들도 제법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쉬움도 많이 느꼈다. 아마 내가 가진 선입견도 있었을 것이고, 큰 아이의 설명과 이 책에 대한 여러 평들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아쉬움들은 달리 보면 이 이야기의 장점이 될 수 도 있음이 분명하다.&nbsp;아마 내가 원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분명 좋은 이야기와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짧지만 재미있는 독서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910/79/cover150/89364343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9107920</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어쩌다 외국어 - [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1514164</link><pubDate>Wed, 19 Feb 2020 1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15141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532246&TPaperId=115141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437/77/coveroff/k1525322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532246&TPaperId=115141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a><br/>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05월<br/></td></tr></table><br/>1. 말이 빠른 아기<br>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걷지도 못하는 쪼끄만 놈이 말은 어찌나 빨리 배우는 지. 어찌나 얇미웠는지 모른다아이가." 다른 아기들은 이미 걸어다녔을 시기에 나는 걷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요구가 많은 아기였다는 것이다. 다른 아기였다면 직접 몸을 움직여 했을만한 일을 나는 직접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어른들을 부려먹어서 얇미웠다는 얘기다.&nbsp;<br>그런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가 들어 아이 둘을 키워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큰 아이는 꼭 나를 닮았는지 말을 일찍 배웠고, 걷는 것이 느렸다. 그 녀석은 뒤집기도 느렸고, 배밀이도 늦었고, 기어다니는 일도 비교적 느렸다. 그런데 유난히 말을 일찍 배웠다. 녀석 보다 한참 늦게 태어난 아기들도 아장아장 걸어다니는데, 녀석은 조금 걸으려고 시도하다가 멈추고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아나." 라고 말했다. 어서 와서 나를 안아서 옮기라는 얘기다. 녀석에게 아빠는 자신을 안아서 옮겨주는 캐리어(이동수단)였다. 그제서야 왜 엄마가 나를 얆미웠다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br>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는 달리 일찍부터 몸을 잘 쓰는 편이었다. 녀석은 이를테면 행동파였다. 힘이 어찌나 쎈지, 걸어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자기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 물건들을 번쩍 번쩍 들고 다녔다. 큰 아이와 비교하면 오히려 말이 느린 편이라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큰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아이는 처음에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늦다고 여겼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훨씬 빨리 배운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언니의 존재 때문이었다. 언니가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어른과는 달리 자신과 비교적 가까운 존재가 사용하는 언어를 늘 함께 듣기 때문에 말을 익히는 속도가 빨랐다.<br>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면, 몸을 쓰는 쪽과 말로 해결하는 쪽 둘 중에 나는 말을 선호하는 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일종의 성향이나 개성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일종의 외국어라고도 볼 수 있는 사투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접하는 것이 재미있었다.<br>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들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예행연습처럼 가볍게 자판을 두드려 보련다.<br>2. 언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고 익히는 것<br>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공부하듯이 배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냥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 모국어다. 하지만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혹시 환경이 여러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국어는 공부하듯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그렇게는 잘 익혀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방법. 그것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이번 생에서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꿈을 꾸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조금씩 엿보고, 맛보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다.<br>3. 영어와의 첫 만남<br>역시 시작은 영어였다. 영어와의 첫 만남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국민학교 때는 여름방학마다 동생과 함께 한동안 외갓집에서 지내곤 했다. 외갓집에 놀러오면 딱 하루 정도만 재미있고, 나머지는 지루했다. 친구도 없고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막내 외삼촌만 결혼 전이어서 외갓집에만 오면 늘 막내 외삼촌에게 놀아달라고 보채곤 했는데, 어느 날 너무 버릇없이 구는 조카를 견디지 못한 외삼촌이 내게 손찌검을 했고, 나는 또 나대로 화가 나서 어른인 외삼촌에게 덤벼들었던 사건이 벌어졌다. 그 후론 더더욱 방학 때 외갓집에 오면 심심해졌다. 그런 어느 날 외삼촌이 티비를 보고 있는데, 뭔 알아듣지도 못할 말만 잔뜩 나오는 것을 보았다. 화면만 보아서는 뉴스인 것 같았는데,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알파벳을 국민학교 6학년에 처음 배웠고, "헬로"나 "하우 아 유" 같은 인사말도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배웠다. 그보다 한참 어렸던 국민학교 저학년 때의 내가 영어가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br>아마 당시 막내 외삼촌은 일종의 영어공부로 AFKN을 봤던 것 같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는 그 채널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외삼촌이 없을 때에 그 채널을 찾아 보려고 동그란 두 개의 채널을 이리 저리 따라라락 돌려댔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당시엔 나오는 채널이 진짜 몇 개 되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는 채널의 수는 뭐가 그리 많았는지 동그란 채널의 손잡이를 쥐고 이리저리 찾아봐도 그 채널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기억이 난다.<br>주말 아침에는 그 AFKN 채널에서 만화가 나왔다. 배트맨과 슈퍼맨과 원더우먼과 그외 이름을 알 수 없는 근육질의 아저씨들이 이상한 색깔의 쫄쫄이 옷을 입고 나오는 만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저스티스 리그의 만화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나와 동생은 주말 아침마다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해서 그 만화를 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재미있었다. 가끔 외삼촌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몇 마디 번역을 해주기도 했다.<br>4. 공부가 아닌 영어<br>앞에서 말했듯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건 중1때였고, 그때부터 영어는 시험과 하기 싫은 공부라는 느낌으로 연결되는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nbsp;다시 영어에 눈을 뜬 것은 팝송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여성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알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 여전히 영어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고, 공부 한다는 행위 자체를 워낙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노래를 듣고, 가끔 가사를 찾아보는 것 외에는 영어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br>다시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온 후에 이제 나도 슬슬 영어 공부를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슬슬 들었다. 남들은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나 토익, 토플 공부를 한다는데,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라 토익, 토플은 시도 조차 할 생각을 못했고, 어학 연수는 가끔 꿈을 꾸지는 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나마 비정기적으로 몸쓰는 일을 해서 용돈을 벌거나,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다가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 큰 맘 먹고 회화 학원을 다녔던 것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br>그 학원에서 만난 여러 선생 중 두 명의 선생이 내게 큰 복이었던 것 같다. 레벨 테스트를 거쳐 처음 만난 선생은 교포 출신 강사였는데, 정말 수업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고, 친절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 덕분에 영어를 대하는 태도를 공부가 아닌 익힘의 방향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레벨이 올라가서 만난 여러 원어민 강사들 중에 또 한 명, 내게는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나보다 서너살 정도 나이가 많았을 것 같다. 키가 크고 덩치가 엄청나게 컸고, 옅은 금발 머리칼의 미국 남성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학생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우리는 같이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면서 친해졌다.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그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읽히는 행운을 얻었다.<br>그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자신이 생겼다. 비록 그의 말을 금방 다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차분하게 그가 원하는 것을 같이 찾아줄 수 있었다. 그 무렵 해운대나 광안리 등에서 처음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영어를 잘해서 말이 잘 통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해변의 분위기와 약간의 알코올과 약간의 친절함과 조금 자만심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br>지금도 기억나는 한 무리는 대학 미식축구팀이라고 했는데, 정말 키가 크고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어쩌다 광안리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국인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내가 구경하다가 끼어들어서 말렸고, 다행이 주먹다툼까지 이어지기 전에 경찰들이 출동해서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해 맥주를 권했고, 나는 그들에게 소주를 권했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잘 통하지도 않는 영어에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오래 나눴다.<br>5. 외국어 익힘의 한계<br>대학에 복학한 후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영어가 멀어졌다. 꾸준히 영어를 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들과 영어 펜팔을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좋아하는 팝 가수들의 홈페이지에 등록된 팬들의 이메일 주소를 골라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10통을 보내면 절반은 답이 왔고, 길지 않은 메일을 대여섯 차례 주고 받은 후에는 2명 정도만 남았다. 그럼 다시 10통 가량을 대륙 별로 골고루 배분해서 보내기를 반복했다. 내 목표는 꾸준히 대화를 주고 받는 외국인 여성을 각 대륙별로 1명 이상씩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여러 통의 메일을 주고 받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내 영어가 얼마나 미천한 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어휘력이 딸려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소화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대륙 별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영어 외에 그들의 문화와 모국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br>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2002년 아마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을 월드컵의 감동이 있었던 그 해, 나는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었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 영어 통역으로 자원활동을 신청했는데, 의전팀으로 발령을 받아서 귀빈들 요즘 말로하면 VIP를 주로 모시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남들보다 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유명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의전팀 내에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온 후배들도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나서서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의전팀 내의 다른 언어 통역들과 친해져서 여러 나라 말들을 야금야금 조금씩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당시 의전팀에는 4개 언어 통역 자원활동가들이 있었는데,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였다. 나는 지금도 당시에 배웠던 간단한 인사말 표현들을 잊지 않고 있다.<br>그렇게 재밌게 지내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 영어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따라 의전팀에 일이 많았다. 여러 나라 귀빈들이 연달아 방문해서 영어를 잘 하는 후배들이 대부분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갑자기 영어 통역 요청이 들어왔다. 한 기자가 동티모르 축구팀 취재를 하는데 통역을 부탁한 것이다. 원래는 이런 일은 의전팀 업무가 아니므로 거절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제대로 통역 공부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데, 나는 어떻게 등이 떠밀려 통역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 볼만한 수준의 대화가 오갔는데, 점점 국제 정세와 정치적인 내용들이 오가며 내 수준을 한참 뛰어 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결국 제대로 말을 옮기지 못하면서 동티모르 축구팀 감독과 우리나라 기자 사이에서 얼굴이 빨개져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고작 이 정도 수준 밖에 안되면서 내가 영어를 하겠다고 설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언론사에 일했던 그 기자가 아마 당시의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 했을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영어를 향한 내 관심을 아예 끊어버렸다.<br>6. 중국어<br>대학 시절 중국에서 교양 수업을 들으며 교환학생으로 온 중국인들을 가끔 접했다.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 그룹으로 중국어 스터디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스터디 비용을 마련하면 우리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원어민에게 수업을 들을 기회가 생기고 그에게는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바쁜 학교 생활이 이어지며 점점 스터디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와 나 둘만 남는 사태가 벌어졌다. 애초에 나 혼자서 그에게 약속한 비용을 다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곧 그 스터디는 없어졌다.<br>하지만 그에게 중국어를 배웠던 그 몇 달이 꽤 재미있었다. 그는 한국어를 제법 잘해서 의사소통에 크게 불편함이 없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꽤나 쌓았다. 그는 "오빠" 라는 발음을 "어빠"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특유의 억양으로 대화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그가 늘 "어빠는 발음이 좋아요." 라고 자주 칭찬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중국어를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자만심을 갖고 있다.<br>한 가지 근거 있는 자만심을 들어보자면 부산 출신이라 중국어 성조에 유리하다. 이건 유명한 중국어 강사(이 사람도 부산 사람)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라 나름 근거가 있다 여긴다. 실제로 나는 성조가 헷갈리긴 해도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일 큰 한계는 한자다. 우리가 어려서 배운 한자도 아니고, 지금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는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br>암튼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중국어를 붙들었다가 다시 그만두고, 다시 붙들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지금도 책장 한 구석에는 그와 함께 공부했던 교재가 있다. 언젠가 독학으로 중국어를 마스터 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이다.<br>7. 일본어<br>지인 중에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라고 해야할까? 그들의 영향 덕분에 나도 일본 만화를 제법 보았다. 종이 만화책과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은 화려한 그림과 함께 성우들의 연기를 듣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한 후배 중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애니를 워낙 많이 봐서 내용을 다 외울 정도인 녀석이 있다. 당시 녀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에반게리온이 녹화되어 있는 비디오 테이프였다. 정식 발매된 비디오도 아니어서 화질이 조악하기만 했던 그 이십여개의 비디오 테이프들을 녀석은 목숨보다도 아꼈다.<br>그때 그 후배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다 늙어서 그러니까 30대 초반 쯤에 건담에 빠졌다. 컴퓨터에 건담 애니를 잔뜩 받아놓고 하나씩 정복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점점 일본어가 들렸고, 몇몇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이후에는 몇몇 일본 영화와 다른 장르의 애니에도 관심이 생겼고, 조금씩 조금씩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일본어에 익숙해졌다.<br>하지만 이상하게 일본에 대한 관심은 딱 거기에 머물렀다. 다른 언어는 가끔씩 미치도록 빠져드는 순간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일본어는 그런 기억이 없다. 하지만 영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접한 영상물이 바로 일본어였다. 주위에 일본어를 공부한 친구나 후배들도 많고, 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배우지만, 거기서 한 발씩이도 더 나가기는 정말 어려운 언어가 일본어라고 하더라. 뭐, 나는 그 일정 수준까지도 못 가본 입장이지만, 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양가 감정이 든다. 영어를 제외하면 아마 가장 잘 알아듣는 말이 바로 일본어일텐데 말이다.<br>8. 독일어<br>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신승훈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 시작할 때 "Ich liebe dich so wie du mich am A bend und am Morgen" 이란 가사 알아듣는 것 외엔 아무런 쓸모도 재미도 없었던 것이 독일어였다. 물론 한 때의 겉멋에 취해 철학을 공부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철없는 시절 얘기였다.<br>대학에서 맑스(예전엔 마르크스라고 불렀는데, 뭐가 맞는 표기인지 모르겠다.)를 공부하던 선배들이 자본론을 원서로 읽는다는 원대하고도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하던데, 한때 나도 그런 헛바람이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철없는 시절 한 때였을 뿐이었다.<br>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환경운동단체에서 활동가의 삶을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유명한 환경운동가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유람선을 타고 부산항에 들어와 이틀을 머물며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첫날 강연 전까지 꼭 경주를 가보고 싶다고 했단다. 경주까지 그를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신입활동가였던 내가 제일 시간이 많았고, 영어를 쪼금 할 줄 아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새벽에 부산항으로 마중을 나가니, 그 분이 아내와 함께 유람선을 내려왔다. 아주 젊잖은 노부부였으며, 자신들을 위해 내가 시간을 내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br>그들 부부와 아침 일찍부터 저녁에 강의 시작 전까지 같이 지내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그들처럼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고, 재생에너지 분야의 선진국인 독일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들을 경주의 유명한 문화재들로 안내하면서 내 짧은 영어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그냥 일상적인 의사소통만 간신히 가능했다. 지금은 관광지에 영어를 비롯한 다국어 안내 책자가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던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다.<br>암튼 그 날 이후로 독일어를 다시 공부해야지 생각했지만, 바쁜 활동가의 삶에 공부라는 사치를 부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독일어 번역가를 만나서 연애를 했고, 그와 결혼을 계획하면서 여러가지 시나리오 중에 하나가 독일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독일에서 두어 차례 공부를 하고 왔는데, 여전히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다시 공부하러 가고 싶어했고, 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와 환경운동의 경험을 쌓고 싶었다. 비록 당장 경제력이 없어서 쉽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젊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br>그렇게 나는 남산 자락의 괴테 인스티튜트에 등록해 독일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법 재미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아예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었는지 기본적인 문법들은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든 독일에 가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지만, 역시 사람 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더라.<br>우리는 각자 일들로 바빠졌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괴테 인스티튜트를 중단했고, 여자친구에게라도 배우겠다던 아니 혼자서라도 조금씩 익히겠다던 다짐도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키웠고, 둘째를 낳았고, 키웠고 그리고 이혼했다. 그 긴 시간 어딘가에서 종종 우리는 독일에서 같이 공부하자던 생각들을 다시 되새기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기에도 너무 바빴다. 게다가 둘 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돈 버는 일 외에도 자기 관심 분야의 다양한 활동들을 놓지 않고 살았다.<br>최근까지 일부러 독일어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독일어를 생각하면 그때 괴테 인스티튜트를 다니며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 생각나고, 그러면 괜히 서글퍼져서 그랬다. 몇 달 전에 외국어 공부 어플에서 다양한 언어들을 선택해서 놀면서 독일어를 한 번 해봤는데, 확실히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거라서 훨씬 재미있다 여겨졌다.&nbsp;<br>이제 아마도 남은 평생동안 독일에 공부하러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비행기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방출을 생각하면 여행으로도 독일은 가면 안 될일이다 싶다. 그냥 천천히 조금씩 독일어 단어와 표현들을 알아가는 재미로 살련다. 이젠 그런 것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br>9. 힌디어<br>한때 같은 단체에서 일했던 선배 활동가 중에 인도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분이 있었다. 그 양반 덕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인도 영화에 조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의 인도 영화를 접한 후 나는 그 선배보다 더 인도 영화에 빠져들었다.&nbsp;<br>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들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는 모두 인도영화일 것이다. 이상하게 다른 영화들은 반복해서 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인도영화는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꾸츠 꾸츠 호타 해]는 수십 번 봐서 특정 구간은 인물들의 행동을 다 외울 정도다. 인도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힌디어를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br>예전에는 정식 개봉한 인도 영화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자막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자막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힌디어를 공부해보겠다고 책을 하나 샀는데, 문자를 보는 순간 그냥 바로 포기했다. 이건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이걸 어떻게 외우고 익힐 수 있단 말인가!<br>그래서 그냥 문자를 익히는 일은 포기하고 순전히 재미로 발음으로만 힌디어를 조금씩 들여다보며 따라한다. 어쩌다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단어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br>몇 달 전 외국인 채팅 앱에서 대화를 나눈 인도 여성과 힌디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것과 몇몇 인도 영화와 배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br>10. 스페인어<br>지금은 가수도 곡명도 기억나지 않지만, 80년대 말에 반복해서 들었던 스페인어 노래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그 노래가 너무 너무 듣고 싶어져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구절로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그 노래를 찾지 못하겠다. 이 바쁜 시기에 이 긴 글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그 노래를 찾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또 사로잡혀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결국 포기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 옛날 들었던 카세트 테이프는 벌써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고, 지금와서 그 노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기는 불가능 할 것 같다. 앞으로 평생 그게 누구의 노래였는지, 제목이 뭐였는지 궁금해 하면서 살아야 하다니! ㅠㅠ)&nbsp;&nbsp;<br>영어와는 또 완전 다른 그 어감이 참 좋았다. 그래서 막연히 언젠가는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로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리마에서 자주 스페인어를 들었다. 뭐 그렇다고 그 분량이 많았던 것은 아닌데, 잊을만하면 듣고 떠올리게 만드는 빈도라고 해야하나.<br>애들 엄마와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아직 이혼 하기 전, 같이 살던 시절 그가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독일어, 영어를 이미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배웠고, 점점 다른 언어들로 관심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지금은 그 후로 또 어떤 언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br>스마트 폰 언어 익힘 앱을 깔고 위 다른 언어들을 야금야금 배우면서 조금씩 천천히 다른 언어들로 확장해 나가야지 생각하면서 스페인어를 해봤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무척 재미있었다. 독일어보다 쉬워 보였고, 프랑스어만큼 발음이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속도로 익혀 나간다면 영어를 제외한 유럽 언어들 중엔 스페인어를 제일 빠르게 익힐 것 같다. 조금 찾아보면 콘텐츠 찾기 쉽고 많아서 문화적으로 즐길 요소도 많을 것이다.<br>11. 인도네시아어<br>채팅 앱을 통해 대화를 나눈 외국인들들 중에 친하게 지낸 사람 중 한 명이 인도네시아 여성이었다. 그를 통해 인도네시아 공용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가 비교적 배우기 쉽다는 말을 들었고,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어를 빨리 배우는 편이라는 말도 들었다.<br>호기심에 한 번 시도해봤는데, 발음이 어렵지 않고 문장 구조가 단순해서 익히기가 어렵지 않아보였다. 게다가 특유의 억양과 느낌이 좋았다. 한 번은 무료 인터넷 강의를 몇 개 연달아 봤는데, 강사가 설명을 무척 효과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라 기초를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어쩌면 오래 붙들고 있었던 중국어나 일본어 보다 인도네시아어를 더 익숙하게 여길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br>12. 터키어<br>채팅 앱을 통해 만난 터키계 독일 여성과 대화하다가 터키어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한국어랑 어순이 같아서 금방 배울 거라는 얘기였다. 그의 말만 믿고 시도해봤는데, 총체적으로 어렵더라. 발음도 쉽지 않고 단어들이 긴 편이고, 단어의 변화가 무쌍해서 문법부터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손대가 쉽지 않아 보였다.<br>그냥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니 천천히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에만 만족하며 새로운 단어들을 접하는 재미를 즐기려 한다.<br>13. 프랑스어<br>한때 좋아했던 프랑스 영화들을 보면서 저 언어는 어떻게 저렇게 섹시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언어는 프랑스어가 아닐까 생각한다.<br>이 책 [아무튼, 외국어]의 저자도 불어불문과를 전공해 그나마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중에는 프랑스어를 제일 좋아하고 잘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순서와 비중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br>그런데 프랑스어 발음은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하다. 조금 노력해봤는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알아듣고, 이걸 어떻게 발음하나 난감할 때가 많다.<br>다 늙어가는 처지에 가장 섹시한 언어 따위 제대로 익힐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냥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재미 중심으로 보련다.<br>14. 러시아어<br>북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언어들을 조금씩 욕심을 내려고 할 때, 문득 든 생각이 그럼 러시아어는? 그랬다. 살면서 한 번도 러시아어를 배워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 일단 내지르는 마음으로 시작했다.<br>바쁜 삶에 워낙 많은 언어를 동시에 찔끔 찔끔 보고 있으니, 가장 나중에 그것도 흥미가 생겨서가 아니라 왠지 러시아어 정도는 한 번씩 봐줘야지 싶은 의무감에 보는 거라서 가장 속도가 느리거나 거의 안 볼 확률도 높을 것 같다. 암튼 일단 시작했으니 시작이 반이다.<br>15. 그래서 어쩌라고?<br>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절대 제대로 언어는 익히는 일도 아님을, 언어를 익히는 가장 나쁜 방법 중에 하나임을 안다. 그러니 이쯤 와서 내 목표는 저 많은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해야겠다.&nbsp;<br>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긴 글을 두드리는 것은 그냥 나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단어와 새로운 문장을 접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또 다양한 언어들을 비교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기 위함인 것 같다.&nbsp;<br>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나도 외국어를 주제로 한 책 한 권 낼 기회가 생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욕심은 마음 속 깊숙히 남겨둔다.<br><br>마무리는 요즘 완전 자주 듣는 노래로 하자.<br><br>&lt;내용 추가&gt;<br>16. 몽골어<br>글을 다 쓰고 생각해보니 중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아니면 일본어 뒤에 몽골어가 들어갔어야 했다. 몽골에서 보낸 강렬한 기억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다양한 몽골인들과 소통했던 이야기들. 내 또래였던 몽골 경찰과 밤새 몸짓으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 한국, 몽골, 일본 3개 국가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교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해프닝들.<br>테렐지와 고비사막의 멋진 경치들과 고비 사막에서 추위에 떨었던 밤의 기억 등. 짧은 시간에 비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nbsp;<br>하지만 결정적으로 몽골어도 프랑스어, 러시아어와 마찬가지로 발음의 벽을 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러시아 키릴 문자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꽤 오랫동안 가장 배우고 싶은 외국어 1순위는 늘 몽골어였는데, 여전히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은 남아 있는데, 진입장벽이 무척 높은 언어이고, 현재 나는 그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여유가 부족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437/77/cover150/k1525322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4377723</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지도의 종류와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9071558</link><pubDate>Sat, 21 Jan 2017 19: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90715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434912&TPaperId=9071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518/31/coveroff/k88243491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제목처럼 세상의 모든 지도를 보여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려면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야 하겠지. 아니 말 그대로 모든 지도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겠지. 저자가 모든 지도를 다 알 수도 없을테니. <br><br>실제로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서양의 지도에 비해 동양의 지도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그래도 몇점을 다루는데, 우리나라는 단 한점 그것도 일본 지도를 베낀 것만 다루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 중동 지역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br><br>재미있는 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었다. 저 지평선 너머, 저 바다 너머의 세상을 상상만으로 그렸던 걸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br><br>이런것도 지도인가 싶은 것도 많았다. 단순한 그림인 것 같은데 지도라고 소개하고 있었다.<br><br>매머드의 상아에 그렸다는 구석기 인이 만든 지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라고 한다. (만약 이걸 지도라고 인정한다면) 또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 기록한 이탈리아의 벽화 지도도 흥미로웠다. 문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그 옛날에도 지도를 만들어 남겨두었구나 싶었다.<br><br>중세 이탈리아인이 그린 지도에는 일부러 사람을 그려 이슬람 전사들이 군사용으로 정보를 취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저자가 소개했다. 이슬람 교리에는 인간의 형상물을 보지 못하게 규정했다고 한다. 정말로 당시 이슬람 군인이 이 지도에 그려진 사람 형상 때문에 보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런 역사적 사실들은 재미있다.<br><br>중반 정도까지는 그야말로 다양한 지도를 볼 수 있어서 진짜 푹 빠져서 봤는데, 뒤로 갈수록 좀 지루해기도 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어느 곳을 소개한 지도가 계속 반복 되는 것은 지겨웠다. 세부지도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br><br>다양한 세계지도는 한창 지겨울만한 때에 딱 등장해서 다시 흥미를 되살려주었다. 중국은 역시 자기 땅을 딱 중심에 두고 전 세계가 다 작고 길게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걸로 그렸고, 유럽인들은 항상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도를 그렸고, 아프리카 북부와 서아시아 일부까지만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다.<br><br>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소위 말하는 대항해시대에 해안선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서 침략을 돕기 위해 지도가 사용되고 지도를 그리는 기술이 더욱 발전했다.<br><br>유럽 중심의 시각이 아닌 좀 다양한 지도를 담은 다른 책도 보고 싶다. 특히 아시아 여러 지역의 지도 라던가, 유목민들의 지도라던가 이런거 소개한 책은 없으려나?<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518/31/cover150/k8824349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5183122</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론스타 먹튀 사태의 진실? - [검은 머리 외국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7597619</link><pubDate>Mon, 15 Jun 2015 17: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75976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533351&TPaperId=75976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32/21/coveroff/60008476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533351&TPaperId=75976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검은 머리 외국인</a><br/>이시백 지음 / 레디앙 / 2015년 05월<br/></td></tr></table><br/><br>이 책을 읽기 전에 이야기의 배경이 이 나라가 아닌 저 멀리 어딘가의 이름도 생소한 나라가 되어버린 이유를 들었다. 아니 근데 까멜리아라는 나라가 있기는 한가? 글을 쓰려고 검색해보니 없다. 아니 저자가 글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시시각각 새로운 나라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니 어쩌면 '실제로 있는지 알수 없지만 검색한 결과에는 없었다!'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서두에 나오는 까멜리아의 역사를 읽으면서 역시 이시백이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짧은 글에 이시백 선생의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해학의 정신이 모두 잘 담겨 있었다. 아 정말 이래서 이시백 선생의 글은 무조건 읽을 수 밖에 없다.&nbsp;<br>역대 독재자들을 외국 이름으로 바꿔 놓았는데, 쓱 보면 누굴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승만은 '세이만'으로, 박정희는 '다사오 준장'으로 표현했다. 글머리에는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언급도 있다. "대머리가 벗겨진 군인 출신이 제 동기와 번갈아 대통령 자리를 해먹다가 쫓겨났다."는 문장이다. 본문에는 이름도 나온다. 낯선 이름이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이름과 직접적인 연관을 쉽게 찾지 못해 그냥 넘어갔는데, 내용 중에 제 식구를 잘 챙겨서 절과 감옥에 잠시 갇혀 있어도 주위 측근들이 끝까지 충성하는 누군가와 아무도 챙기는 이 없이 늙고 병들어 있는 누군가를 비교하는 부분이어서 이들이 바로 전두환과 노태우로구나 싶었다.<br>본격적인 이야기는 노조원으로 은행 매각을 반대하다가 해고당해 이리저리 구르다가 현재 사채업자가 된 주인공 루반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실제 사채업자가 이렇게 돈 없이 궁상맞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루반은 참 찌질하고 궁상맞게 살아간다. 이혼 당해 아이와 떨어져 살면서 양육비와 생활비를 제때 챙겨주지 못한다고 전처에게도 잔소리를 듣는다. 이야기의 배경은 IMF로 어려운 시기인데, 그 시기에 사채업자들도 저렇게 어려웠으려나? 오히려 합법적인 금융권보다 훨씬 더 형편이 좋지 않았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뭐 실제로 어떠했는지 지금 알 수 없으니 넘어가자.<br>루반과 같이 은행을 다녔던 옛 동료들을 중심으로 은행 매각에 앞장섰던 이,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이, 반대하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동료가 해고당할 때 속으로 미안한 감정만 느꼈던 이 등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실체를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들 각자는 권력과 탐욕 그리고 정의와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이야기 전개 역시 이시백 선생이 가진 장점이라 볼 수 있다. 개성이 강한 다양한 인물들,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인물들, 그들이 이리저리 얽혀서 예측할 수 없게 진행되는 이야기 덕분에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br>미국계 사모펀드이자 산업자본인 유니온페어가 재정상태가 건실한 까멜리아 은행을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수치를 조작하고, 주가를 조작해 헐 값에 날로 먹은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 엄청난 이득을 취한 뒤 팔고 빠지는 이야기, 그래놓고 유니온페어가 국가를 상대로 ISD(투자자-국가 소송) 소송을 걸 예정이라는 이야기, 초기 은행 매각 승인 당시에 외자 유치라고 떠들어댔지만 사실 매각에 쓴 돈은 국내 재계 유력 인사들의 비자금이었다는 이야기<br>이거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까멜리아라는 어디있는지도 모를(아니 존재하는지도 모를) 나라 이야기가 왜 론스타 이야기와 똑같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꿀꺽 했다가 다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겨 도망간 후,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ISD 소송을 걸었다. 그 1심 재판이 최근(2015년 5월) 있었지만, 정부는 모든 정보를 통제해 국민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자금이 외국 자본이 아닌 국내 유력 인사의 돈이었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가?<br>긴장감 있는 전개와 두껍지 않은 분량 덕분에 책을 손에 쥔 후, 거의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중간에 아이들 밥 챙겨주느라 한 20여분 손에서 놓았다.) 한 3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읽는 중에 어려운 경제 용어와 개념들 덕분에 조금 머리가 혼란스럽긴 했다. 그래도 큰 줄기를 따라가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이시백 선생도 원고 쓰시면서 많이 어려웠겠다는 생각을 했다.<br>책을 덮고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떠다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딱 뭐라고 할만큼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도 그 상태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땡길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 재계 유력 인사들(바로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각각 누구를 모델로 등장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매각 저지 공대위에 속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대략 모델이 되는 사람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설령 작가가 그렇게 현실의 인물을 모델로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위기 상 매치되는 인물들이 떠올랐다.<br>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죄 외국 이름이라 게다가 문학에서 흔히 접하는 익숙한 영미권 이름이 아니라서 좀 거슬렸다. 나라 이름과 기업이름 등도 낯설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맨 앞에서 말했듯 왜 가상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상정하고 글을 썼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그냥 우리 이름으로 썼으면 훨씬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겠다 싶다. 예를들어 아까 말한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내용도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자칫 그게 군부독재 절친들 이야기라는 걸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br>아직도 이시백 선생의 이름을 보면 지하철에서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를 읽다가 난데없이 웃음보가 터져 주위로부터 일제히 묘한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아, 정말 이 책을 공공장소에서 읽는 것은 '나 미친 사람이오!' 하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가 말을 죽였을까]는 절대 공공장소에서 읽지 않고, 집에서 야금야금 읽었다. 이런 류의 책은 단번에 읽어줘야 맛인데, 야금야금 찔끔찔끔 읽으려니 도무지 맛이 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이시백 특유의 해학 코드가 숨어 있어서 반가웠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는데, 옆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던 큰 아이와 동화책의 그림을 보고 있던 작은 아이가 "왜?", "아빠 왜 웃어?"라고 물었다. 왜 웃긴지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이 녀석들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 이 책을 잘 보관해둘테니 나중에 읽어보거라. 왜 웃을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932/21/cover150/60008476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322153</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과학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현대과학·인문학·SF를 통섭하는 재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7277289</link><pubDate>Sun, 14 Dec 2014 06: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72772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502246&TPaperId=72772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32/4/coveroff/89945022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502246&TPaperId=72772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현대과학·인문학·SF를 통섭하는 재미</a><br/>원종우 지음 / 생각비행 / 2014년 11월<br/></td></tr></table><br/>어떤 고백<br>이 글은 은밀한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은밀한이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이미 몇 차례 술자리 안주로 이 고백을 써먹은 기억이 나서,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경우 이런 류의 고백은 부끄러운 경험이 되기 마련이니,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전혀 이 경험이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다시 다른 수식어를 떠올려본다. 나로서는 직접 겪은 일이고, 그럴수도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겨지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 황당한 고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충격적인 고백? 아, 모르겠다. 그냥 앞에 수식어를 빼고 고백이라고 해야겠다. 다시 시작해보자.<br>이 글은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번에는 너무 밋밋하다. 분명 저 고백이란 단어 앞에 무언가가 들어와야 딱 느낌이 살 것 같은데, 이 첫 문장에서부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벌써 몇 시간을 이 한 문장을 두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늦은 밤, 자꾸 눈은 감기고, 이 글은 꼭 쓰고 자고 싶다. 단 한 줄을 적어놓은 빈 문서를 노려보다가 문득 배가 고프다. 아니 입이 심심하다. 두뇌회전에는 견과류가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땅콩 몇 알을 주워먹고 돌아와서 다시 쓴다. 이번에는 지금 겪었던 과정을 일단 쓰고 보자고 생각한다.<br>이렇게 장황하게 첫 문장의 표현을 두고 고민한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이 책 5장에 나오는 '시간 여행과 평행우주'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내 선택을 강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의 첫 시작을 장식할 수식어 선택을 놓고 여러가지를 고민한다. 이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우주가 갈라져나가는 것이 바로 '평행우주'라고 한다.<br>이미 술자리 안주로 써먹어서 은밀하다고 표현하기에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글을 읽을 이들은 대부분 모르는 이야기일테니, 그냥 '은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는, 실제로 부끄럽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대개 부끄러워할 거라는 판단에 '부끄러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우주에서 각자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아진다. 어법에 맞지 않는 어떤 단어를 그냥 나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예 수식어를 빼고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첫 문장을 다른 말로 바꿔버릴 경우도 있을 것이다.<br>그래서 그 고백은 뭐냐고? 아! 그걸 잊어버렸네. 그냥 말 안하고 넘어가면 안될까? 평행우주를 하나 더 만들어내는 셈치고 그냥 첫 문장을 바꿔야겠다. 다시 시작하자.<br>종교 논쟁<br>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내세 혹은 다음 생이라고 부르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냥 살아가면서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뇌에서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뇌가 기능을 멈추는 순간 나라는 존재도 아예 사라진다고 믿는다. 나는 꽤 어려서부터 우리가 신이라고 믿는 초월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답답했다. 아니 신기했다.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데 어떻게 믿는 건지 궁금했다. 진짜로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저 사람들도 사실은 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 믿는 척 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삶에 잘 어울린다고 여기고 남을 따라 믿는 척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중에 아주 믿음이 강한 신자를 만나면 저들은 남을 속이려다가 도리어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br>대부분이 믿는 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크게 잘못된 판단이라고 깨달았던 것은 사람들과 신의 존재와 종교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살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로 꼽을 수 있는 녀석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어른이 된 이후에도 간혹 만났으니, 오래 사귀기도 했다. 이 녀석이 아주 독실한 기도교 신자였다. 녀석은 나를 걱정해준다며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자꾸만 권했고, 나는 녀석이 걱정되어 사실은 신은 없고, 종교는 인간이 만든 허상일 뿐이라고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시작한 토론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셀 수 없다. 늘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그냥 각자의 생각을 각자 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nbsp;<br>그 친구 외에도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끝없이 이어졌다. 더 많이 알아야 하기에 종교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구해 읽어야 했다. 이 알라딘 서재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읽은 흔적이 제법 있다. 아무리 논쟁을 하고, 책을 읽어도 본질적인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내세를 믿을까? 왜 초월자의 존재를 믿을까?<br>이 책을 읽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이 책의 6장에서 '자아'는 인간이 육체안에서 성장해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가는 것이라고 깨닫고 해주고, 7장과 8장을 거치면서 꿈과 환상, 정신적인 활동과 실제 시간 간의 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1장에 나오는 소설이 비록 저자의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해왔던 지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다!<br>세상이라는 흥미로운 재료<br>책의 3장에서 저자는 학생운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과학 서적에만 몰두하고, 현실에서 전혀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 선배들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의 저자보다는 한참 후배지만, 나는 오히려 저자가 지적했던 선배들의 태도로 살아온 것 같다. 아마 학창시절에 주입식 교육을 받은 부작용일거라 생각하는데, 물리학과 생물학 등 과학 계열의 지식은 어렵기만 할 뿐, 전혀 관심을 두기 어려웠다.<br>앞서 말하려고 했던 고백은 사실 수학과 과학 성적에 대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 0점을 두어번 받았다. 실제로 0점 시험지를 돌려받은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 수학 선생님이나 주위 친구들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확률적으로 그냥 찍어도 한 문제는 맞출텐데, 어떻게 0점을 받을 수 있냐는 태도였고, 심지어 모든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일부러 0점을 받은 거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수학과 과학을 제외하면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받는 편이어서 황당한 그 의심을 갖는 친구들이 있었다. 두 과목을 뺀 나머지 평균과 합한 평균이 터무니없이 달랐기 때문에 선생님도 괘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게 더 충격적일텐데 나는 모든 문제를 다 풀려고 노력했고, 대부분의 문제를 풀어서 틀린 답을 골랐다. 수학을 싫어하긴 했지만, 시험 시간에 문제를 풀려는 노력 없이 그냥 답을 찍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br>애초에 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려 했던 이유는 학교 교육이 수학과 과학에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도록 만들어, 어린시기부터 전혀 과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접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분명 살아온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더 많을텐데, 이제서야 과학이 사실은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였구나 깨달아서 너무 아쉽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이 책이 이제 막 나온 책이니까, 당연히 그 전에는 만날 수 없었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이 글에서 꼭 드러내고 싶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32/4/cover150/89945022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32046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무기를 들어야만 하는 젊은 목숨들을 위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7052347</link><pubDate>Thu, 26 Jun 2014 17: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705234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60222&TPaperId=70523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8/17/coveroff/896436022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nbsp;
GOP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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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아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만 얼핏 보았을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22사단이란 부대명을 보고서야 깜짝 놀라 찾아봤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아래 칼럼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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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232045505&amp;code=990303
<BR style="TEXT-ALIGN: left; TEXT-TRANSFORM: none; BACKGROUND-COLOR: rgb(255,255,255); TEXT-INDENT: 0px; FONT: 14px/20px Helvetica, Arial,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WHITE-SPACE: normal; LETTER-SPACING: normal; COLOR: rgb(55,64,78); WORD-SPACING: 0px; -webkit-text-stroke-width: 0px"><BR style="TEXT-ALIGN: left; TEXT-TRANSFORM: none; BACKGROUND-COLOR: rgb(255,255,255); TEXT-INDENT: 0px; FONT: 14px/20px Helvetica, Arial,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WHITE-SPACE: normal; LETTER-SPACING: normal; COLOR: rgb(55,64,78); WORD-SPACING: 0px; -webkit-text-stroke-width: 0px">이 글에선 임병장이 전입되어 온 병사라고 했다. 그리고 잔류와 전입 등이 육군본부도 잘 모르는 변칙과 편법이라고 했다.<BR style="TEXT-ALIGN: left; TEXT-TRANSFORM: none; BACKGROUND-COLOR: rgb(255,255,255); TEXT-INDENT: 0px; FONT: 14px/20px Helvetica, Arial,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WHITE-SPACE: normal; LETTER-SPACING: normal; COLOR: rgb(55,64,78); WORD-SPACING: 0px; -webkit-text-stroke-width: 0px"><BR style="TEXT-ALIGN: left; TEXT-TRANSFORM: none; BACKGROUND-COLOR: rgb(255,255,255); TEXT-INDENT: 0px; FONT: 14px/20px Helvetica, Arial,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WHITE-SPACE: normal; LETTER-SPACING: normal; COLOR: rgb(55,64,78); WORD-SPACING: 0px; -webkit-text-stroke-width: 0px">난 22사단 출신이다. 이등병 때 GOP에 올라갔다가 나중에 페바에 내려왔는데, 병장이 될 무렵 다시 GOP 투입에 대한 소문이 돌았으나, 다행히 내가 제대한 후에야 우리 대대가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당시 매우 비정상적이면서 큰 규모의 부대 이동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대급 규모의 부대 하나가 사라지면서 해당 부대 병사들은 여기저기 쪼개져서 흩어져 남의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에 대략 한 개 소대 규모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nbsp;<BR><BR>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편에선 GOP 경험이 없거나 적은 부대에, GOP 경험이 풍부한 부대원들을 무더기로 몰아준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부대를 곧 투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얘기와 함께<BR><BR>즉, 내가 있었던 당시에도 GOP 투입을 앞두고 임병장과 같은 전입 병사가 대거 들어왔단 얘기다. 그리고 당연하게 큰 혼란이 이어졌다! 군생활은 무조건 서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갑작스레 들어온 여러명의 전입 병사들은 기존 소대원들의 서열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들은 전혀 뒤섞이지 못하고, 서로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BR><BR>당시 우리 소대에 GOP를 경험한 병사는 서열상 내가 마지막이었다. 내 뒤로는 모두 페바에 있을때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서열상 내 바로 뒤에 여럿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원래 소대에서 내 바로 뒷 서열이었던 상병들은 갑작스럽게 자기 앞으로 끼어 들어온 전입 병사들을 고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동안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BR><BR>이 글을 쓴 사람의 주장이 무조건 옳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경험과 임병장의 경험이 전혀 관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nbsp;이 글을 읽으니, 당시 그 어이없던 대규모 전입 사태가 왜 일어났던 것인지는 조금 이해가 간다. 육군본부조차 모르는 편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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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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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이 더 대단하다고 여기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여성들은 가본적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이 바로 군대 얘기다. 즉, 해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는 얘기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풀어놓자면, 군 생활하는 동안 위험한 경우가 제법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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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대배치를 위해 전방으로 투입되는 날, 사상 최악의 지뢰 폭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전방으로 들어가는 포차 안에서 말이다. 휴일이라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고 들었다.&nbsp;축구공이 공터를 벗어나 길 옆 풀밭으로 떨어졌고, 평소에 늘 다니던 길에서 불과 몇 발짝 더 벗어났을 뿐이라 아무 생각없이 공을 주으러 갔다. 축구를 하던 중이었으니, 당연히 여러 명이 우루루 공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고, 그 중 가장 가까이 있던 혹은 제일 계급이 낮은 한 명이 공을 주으러 풀밭에 들어가서 공을 집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M16이라는 대인 지뢰가 사람 머리 보다 더 높이 튀어올랐다. 다음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 죽었다고 들었다. 머리 위에서 터진 지뢰가 사람 몸을 찢어 놓아서 시신 수습도 어려웠다고 들었다. 그런 얘길 들으면서 앞으로 경계 근무를 서게 될 소초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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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받은 소초의 소초장은 한 마디로 미친 인간이었다. 신병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경계근무에 바로 투입되지 않고, 순찰을 다니는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을 따라다니는 임무를 받았다. 소초장은 길이 아닌 곳으로 함부로 돌아다녔다. 또&nbsp;버젓이 '지뢰지대'라고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곳을 가리키며 저기에 과연 지뢰가 있을까 없을까를 물었다. 그 인간 말은 이랬다. 사실 지뢰는&nbsp;방심한 적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인데,&nbsp;저렇게 해골을 그려놓거나, 지뢰지대라고 써놓으면 누가 들어와서 밟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즉, 저건 가짜로 만들어놓은 지뢰지대이고, 저기엔 지뢰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신병이었던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와 "네 그럽습니다!"만 크게 외쳐댔는데, 그 인간이 실제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보고 들어가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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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들었던 소식은 실제로 주변 초소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 때문에 유독 지뢰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소초장이 진심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nbsp;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했으니까. 나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 인간은 자신이 먼저 들어가 볼테니, 나도 꼭 따라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뢰지대라는 안내판이 붙은 철조망을 가볍게 넘어서 안 쪽으로 서너 발쯤 조심스레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건 정말 미친짓이야를 머리 속으로 외치면서도 그가 밟았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려 애쓰며 딱 그가 갔던 곳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수명이 줄었다는 관용어구를 정말 이럴 때 써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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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피에서 경계 근무를 나갈때는 실탄과 수류탄을 받는다. 적과 조우할 수 있는 위험지역인만큼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실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병장이 하나 있었다. 서열은 대략 5위 정도 였던가.&nbsp;나는&nbsp;화기분대 탄약수로 배정받았고, 그 병장은 화기분대 기관총 사수였다. 화기분대에는 기관총 사수가 두 명있는데, 그는 내 사수는 아니었고, 다른 한 명의 사수였다. 소초로 발령받아 온 지 며칠이 지나면서 슬슬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간다 싶을 때쯤에 그 병장이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갈군다는 말이 아마 사투리였던가? 잘 모르겠다. 암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대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냥 괴롭힘이었다. 온갖 모욕과 수치를 견뎌내며 하루 하루 지나던 날들. 나는 신병이었기 때문에 맞아도 참아야 했고, 욕을 들어도 참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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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로 위 탄약수는 일병이었는데, 키가 크고, 골격이 크고, 얼굴도 시원하게 잘 생긴 사람이었다. 지오피는 처음 들어올 때 인원을 꽉 채워서 오기 때문에 들어와서 한참동안 신병이 들어올 일이 없다. 그는 꽤 오랜동안 소초 막내였다. 그리고 내가 들어와서야 막내를 벗어났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내게 참 잘해줬다. 뭐든 다 챙겨주고, 가르쳐 주고, 지저분한 일들, 누구라도 꺼릴 일들을 척척 해내곤, 씩 웃곤 했다. 나는 맏이라서 형이 없는데, 만약 가족 중에 형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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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 일병은 화기 분대의 선임 사수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선임사수와 앞서 소개한 또 한 명의 사수, 그 병장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우리 사수는 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했건만 그 병장은 자주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임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하니까 그 밑에 있던 사람들, 부사수와 두 탄약수를 괴롭혔다. 이것이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그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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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별일도 아닌 걸로 트집을 잡아 나와 그 일병을 밖으로 불러내 굴리기 시작했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엎드려 뻗쳐 등등 얼마나 굴렀을까, 지쳐서 가쁜 숨을 내 쉬느라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군화발이 날아왔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은 얼차려를 받았던 일병이 뭐라고 했던가? 아니면 그냥 눈빛만 보냈을까? 아픔 때문에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그 병장은 이게 감히 어디서 개기냐며, 일병을 패기 시작했다. 아,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 붓고, 할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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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뒤, 한 밤중에 경계근무를 나가 있었는데, 순찰조가 우리 근무지로 접근했다. 근무지에 누군가 접근하면 암구어를 외치고,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멈추게 한 다음, 포박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그가 내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계속 접근해온다면 경고한 후에 사격하도록 되어있다. 멀리 있을 때는 알수 없었으나, 대화가 될 정도로 가까이 오고 보니, 순찰조는 부소초장과 그 병장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를 외치고, 곧이어 암구어를 불렀다. 평소대로 였다면 곧바로 답이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한번 더 암구어를 불렀다. 또 답이 없었다. 걸어오던 부소차장이 힐끔 그 병장을 쳐다보았다. 암구어를 외우는 것은 늘 후임의 몫이다. 언제나 2인 1조로 움직이는 전방에서, 선임은 암구어 따위 신경도 안 쓰고, 후임이 외우도록 되어있다. 평소라면 늘 선임이었을 그 병장은 아마 암구어 때위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그리고 부소초장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고. 두 사람은 멈추지도 않고, 속도도 줄이지 않고 우리 쪽을 향해 왔다. 나는 세 번째로 암구어를 불렀다. 역시 답은 없었다. 같이 경계를 서고 있던 선임을 쳐다봤다. 그도 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고, 누군지 알는 상대이므로, 암구어를 모른다고 굳이 포박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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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조는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 때 내 머리속에는 그 병장을 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살인 충동. 조준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암구어를 불렀던 순간부터 나는 계속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왼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병장을 겨눴다. 조준경의 막대 위에 그의 얼굴이 올라왔다. 이제 장전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그를 꿰뚫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증언 할 것이다. 구름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어두웠고,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안 보였습니다. 그리고 암구어를 세 번 부를 동안 답이 없었고, 멈추라는 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총을 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증언한다면 나는 죄가 없는 것이다. 라는 상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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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 병장은 손을 들어 내 화이바를 내려쳤다. "이 새끼야, 암구어를 세 번 대는 동안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어? 왜 가만히 있는거야?" 어이가 없었던 나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암구어를 안 외운 것은 본인 실수인데,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고 나를 때리다니. 몇 번의 욕을 듣고, 몇 번의 구타가 이어진 후 부소초장은 슬쩍 그 병장을 말렸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암구어가 뭐냐고 물었다.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경계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다음 근무지에서 또 암구어를 댈 수 없을 것이고 또 망신을 당할테니까. 그 병장은 대답을 빨리 안한다고 나를 한 대 더 때렸고, 보다못한 우리 경계조의 선임이 암구어를 알려줬다. 다음 근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는 그 병장을 쏘아보며,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쏴 버릴걸 하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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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낀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내 사격 실력은 나쁘지 않았고, 그는 내 조준경 안에 들어와 있었고, 손가락만 까딱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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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군대 얘길 하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애초 생각보다 글이 훨씬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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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군대와&nbsp;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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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연이었을까? 최근 읽고 있던 책이 바로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였다. 작년 지역의 시민신문에 글을 연재하면서 때로는 소액의&nbsp;도서상품권을 원고료로 받았고, 때로는 책을 받기도 했다. 또 때로는 신문사 측에서도 잊어버리고, 나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연재를 마칠 때쯤 신문사에서 보유하고 있던(여기저기서 기증받았던) 도서 목록을 공유하면서 필자들에게 책을 신청하라고 연락해왔는데, 그때 딱 눈에 들어온 책이 저거였다. 책을 받으러 가겠다고 말해놓고는 거의 반 년동안 신문사를 찾아가지 못했다. 얼마 전 선거가 끝나고 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오후 시간에 신문사를 찾아가서 편집장님과 잠시 수다를 떨고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대략 3분의 1 정도를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글이 어렵고, 번역 상태와 교정 상태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도 몰랐던 사실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한참 전쟁과 군대 그리고 남성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을 접하고, 그 옛날 군대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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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유난히 많은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군대의 경우 '사고 사례 전파' 등을 통해 몇 차례 접했던&nbsp;GOP 총기 난사 및 수류탄 투척 사건들이 기억났다. 세월호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군대에서의 죽음은 평소에도 늘 있었던 일이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만 유독 무장 탈영과 저항으로 이어져서 알려진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땅에서 무기를 들어야만 한는 젊은 목숨들을 위해 잠시 기도해 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28/17/cover150/89643602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81710</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공부를 잘해도 문제아 -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773919</link><pubDate>Thu, 26 Dec 2013 13: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7739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001227&TPaperId=67739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7/29/coveroff/89810012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001227&TPaperId=67739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a><br/>고야스 미치코 지음, 임영희.이연현 옮김 / 밝은누리 / 2011년 05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자주 듣던 노래 중에 &lt;문제아&gt;라는 동요가 있다. 부산 감전초등학교 김형창 어린이가 쓴 시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였다. ‘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 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 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교육 문제의 핵심을 짚을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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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 작가의 『문제아』라는 동화책도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오덕 선생이 『어린이 책 이야기』에서 높게 평가한 글을 읽고 찾아본 책이었다. 여기 실린 10개의 글이 대체로 다 좋은데,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특징이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어린이들에게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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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교는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쉽게 문제아로 낙인을 찍고, 온갖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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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에서 아주 특이한 문제아를 발견했다. 1970년대에 고야스 후미라는 아이가 독일 뮌헨에 있는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를 다닌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후미와 같은 반 친구인 파우스트는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포함해 주위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 그런데 파우스트는 이 학교에서 문제아다. 선생님이 학부모 회의에서 이름을 언급해 지적할 정도이고, 부모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학부모들은 너무 머리가 좋은 아들을 둔 그 부모를 오히려 위로한다. 머리가 좋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위로를 받을 만큼 나쁜 뜻이 되기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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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일반적인 교육환경에서라면(독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단한 우등생으로 떠받들어질 만한 학생이다. 파우스트의 담임인 불프 선생님은 “일반 학교를 다녔다면 두세 번은 ‘월반’할 아이입니다. 그리고 열다섯에 대학에 들어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또 그의 엄마는 “파우스트같이 머리가 너무 좋은 아이, 이건 정말 문제예요.”라고 말을 시작해서 “이런 아이는 계속해서 영재 교육을 받게 되죠. 어른이 되면 어떨까요? ‘문제 어른’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설명한다. 파우스트가 왜 문제아인지 짐작이 간다. 앞에서 언급한 &lt;문제아&gt;란 동요에 가사로 넣는다면 ‘공부를 잘해도~♪ 문제아♫’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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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도 천재가 한 명 있었다. 전교 1등이었고,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가끔 전국 1등도 하는 친구.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다 배우고 들어와서 수업시간에는 별로 집중해서 듣지도 않았다. 가끔 수학 선생님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선생님도 못 푸는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 선생님을 긴장하게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당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나머지 50여 명의 학생들은 마치 그를 위한 들러리 같았다. 그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서울대를 들어갔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파우스트 엄마의 말처럼 문제 어른이 되었을지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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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은 문제 어른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와 자본이 원하는 대로 남들과 똑같이 노동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어른. 획일적이고 편향적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가 없고 시험이 없는 학교에서 삶에 대해 배우고 성찰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이 나라의 교육 문제가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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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77년 고야스 후미가 뮌헨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에 돌아온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전에 후미가 슈타이너 학교를 다녔던 내용은 『독일의 자존심 발도르프 학교』라는 책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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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nbsp;과연 고야스 후미는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77년에 13 혹은 14살이었으니 지금은 50쯤 되었을텐데. 여러 방면으로 검색을 해봐도 이 책의 저자이자 후미의 어머니인 고야스 미치코가 쓴 책들만 나올 뿐 그외의 정보는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더 궁금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7/29/cover150/89810012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572919</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환경호르몬의 습격 -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 질병의 역습과 인체의 반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680279</link><pubDate>Thu, 07 Nov 2013 14: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6802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4983&TPaperId=66802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6/55/coveroff/89560549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4983&TPaperId=66802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 질병의 역습과 인체의 반란</a><br/>이은희 지음 / 해나무 / 2010년 12월<br/></td></tr></table><br/>2006년 9월에 방영된 SBS 스페셜 &lt;환경호르몬의 습격&gt;을 뒤늦게 봤다. 첫 장면부터 충격이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울고, 벽을 손톱으로 긁고,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생리통이 심한 아이들이 30%가량이었고, 이들은 ‘자궁내막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자궁내막증은 밖으로 배출되어야 할 생리혈이 나가지 못하고 자궁에 고여 있거나 나팔관으로 역류하는 등의 증상을 말한다. 취재팀은 10대 청소년들과 20대 미혼 여성들 그리고 출산을 경험한 주부까지 생리통이 매우 심한 여성들과 함께 자궁내막증을 치료하고 생리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 방법은 매우 큰 효과를 거둬, 실행한 첫 달에 모든 참여자가 생리통이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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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약을 먹거나, 수술이나 시술을 받지 않았다. 단지 모든 플라스틱 용기, 일회용품, 샴푸, 합성세제, 화장품, 합성섬유 등을 사용하지 않고 유리 용기와 천연 제품만을 사용했다. 자궁내막증과 극심한 생리통의 원인은 바로 환경호르몬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셀 수 없이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과 인공적으로 합성된 온갖 화학물질들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우리 몸을 공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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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에 소개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남성호르몬을 공격해 태아의 남성 생식기를 작게 만들거나 아예 여성의 생식기 모양으로 만든 국내외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미국의 한 소아과 의사는 "남성이 점차 여성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또 여성 어린이들의 성조숙증도 환경호르몬의 영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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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본 후 이 책에서 다시 같은 내용을 만났다. 책에 나온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닐스 스카케백 교수의 연구는 충격적이다. 세계 20개 지역에서 50년 동안 조사된 문헌을 비교 분석한 끝에 1990년대의 남성은 1940년대 남성 보다 정자 수는 50% 감소하고, 정액은 25% 감소하는 등 전반적으로 생식능력이 저하되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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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는 내분비계 장애물질, 이 책에서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소개된 환경호르몬은 과거에는 없던 물질이다. 석유화학 제품의 급격한 발달과 싼 가격으로 여러 천연 물질들을 밀어내고 우리 주변에 널리 퍼진 후에야 우리는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환경호르몬들이 우리 몸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다 밝혀지지 않았다. 저자는 20세기 중반 이후 늘어나고 있는 각종 암과 아토피성 피부염 역시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영향이라는 의혹에 관해서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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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질병의 원인이 박테리아(세균), 바이러스, 원생생물(원충), 진균류, 중금속, 독성화합물질, 내분비계 교란물질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과 함께 종류별로 감염되는 질병과 치료방법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설명은 의학의 발달과 전문화로 인해 오히려 내 몸과 건강이 나에게서 소외되어버린 이 아이러니한 시대에 무척 값지고 귀중한 정보다. 평생 병원에서 뭔지 모를 암호 같은 말만 듣다가 이제야 비로소 질병과 내 몸에 제대로 된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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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라는 필명이 무척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인도 신화에서 창조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가 등을 맞대고 결합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생물학과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국내에 몇 안 되는 필진 중 하나다. 앞으로도 저자의 활발한 활동을 바라며, 또 저자와 같은 일을 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26/55/cover150/89560549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65533</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녹색 잔다르크를 기억하며 - [미래가 있다면, 녹색]</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676430</link><pubDate>Tue, 05 Nov 2013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6764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55310004&TPaperId=66764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9/84/coveroff/11553100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55310004&TPaperId=66764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래가 있다면, 녹색</a><br/>최백순 지음 / 이매진 / 2013년 05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2000년 설날,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를 봤다. 늘 가던 친척 어른댁에 안 가게 되어 갑자기 시간이 남았는데, 마땅히 할 일은 없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밀라 요보비치의 얼굴이 그려진 극장 간판을 보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2011년 가을, 밀라 요보비치 못지않은 미모에 잔 다르크로 불렸던, 페트라 켈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때였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었기에 잔 다르크라고 불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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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는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 말기에 궁지에 몰린 프랑스를 단숨에 일으켜 세운 영웅이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간 프랑스 땅을 휩쓴 전쟁 덕분에 대다수 민중들은 어려운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었다. 천사의 계시를 들었다는 16세의 소녀는 기적과도 같은 승리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잔 다르크는 희망과 믿음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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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녹색당의 전신인 SPV(Sonstige Politische Vereinigung) 만들어지고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때, 페트라 켈리는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SPV에 참여했던 여러 단위들에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음에도 그가 비례 1번이 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70년대 반핵, 평화운동 진영에서 그가 국제적으로 많은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알린 것도 이유일 테고, 68혁명의 상징인 루디 두치케와 함께 제도권 정당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는 정당이었기에 젊고 참신한 인물을 내세웠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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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녹색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2개 주(브레멘 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주 의회에 진출하고 또 1982년 3개 주(니더작센 주, 함부르크 주, 헤센 주)에서 주 의회에 진출하기까지 켈리는 당을 대표해 많은 활동을 했다. 1983년 연방의회에 27명의 의원을 보내면서 그 자신이 연방의원이 되었다. 이때 이미 녹색당이란 이름은 자연스레 페트라 켈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켈리 역시 희망과 믿음의 상징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쟁의 시대, 핵발전의 시대에 평화와 반핵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이름. 도무지 승산이 없을 것만 같은 제도권 정치에 겁 없이 뛰어들어 기적과도 같은 연방의회 진출을 얻어낸 이름. 과연 잔 다르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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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녹색당은 1998년 적록연정이라 불리는 사민당과의 연정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집권당으로서 다양한 환경정책을 실현했다.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통해 궁극적으로 탈핵을 이룰 것을 천명했고, 인간의 존엄성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연방법에 올렸다. 또한 캔과 병 제품에 환경부담금을 매기는 ‘반 공해법’을 시행하는 등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책들을 펼쳤다. 독일녹색당의 활약상을 전해 들을 때마다 부러움과 막막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날이 올까? 개그가 따로 없는 정치 현실을 볼 때마다 그런 희망은 쉽게 절망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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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은 페트라 켈리의 기일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4대강의 녹조는 해결되지 못하고,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는 이 가을, 페트라 켈리를 기억하며 이 땅에도 새로운 정치, 녹색 정치가 널리 퍼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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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말에 쓴 글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9/84/cover150/11553100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98482</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인간의 호기심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 지옥 -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570406</link><pubDate>Thu, 05 Sep 2013 18: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5704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137018&TPaperId=65704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99/51/coveroff/89971370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137018&TPaperId=65704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a><br/>로브 레이들로 지음, 박성실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2년 05월<br/></td></tr></table><br/>&nbsp;<!--StartFragment-->
1907년 3월 일본 ‘도쿄권업박람회’의 학술인류관에서는 조선인, 류큐인(琉球人), 아이누인 그리고 대만의 고산족(高山族) 등을 진열하여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충격적이다. 인간을 마치 물건이나 동물처럼 진열해두고 구경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을 전시한 유럽의 사례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오타 벵가라는 피그미족 청년은 만국박람회에서 전시된 후 동물원으로 팔려가서 오랑우탄의 우리에 함께 갇혔다. 미국과 유럽과 일본의 야만적인 제국주의에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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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때만 해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나중에 G. A. 브래드쇼의 『코끼리는 아프다』와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등을 읽으면서 그때 놓쳤던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가두면 안 되고, 동물은 구경하기 위해 가둬두어도 괜찮은가? 우리는 오타 벵가 뿐 아니라 그와 함께 갇혀 있던 오랑우탄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에 대해서도 함께 분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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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Wild Animals in Captivity’다. ‘창살에 갇힌 야생동물’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저자인 로브 레이들로는 생물학자이자 운동가로 특히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들에 관심을 두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동물원을 찾아다니며 그 안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을 지켜보았다. 이 책은 인간 사회에 그 실상을 고발하는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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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이 있다. 북극이 아닌 열대지역인 인도네시아의 한 동물원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다. 뜨거운 태양과 무더운 날씨를 피하고 싶겠지만 갈 곳은 없다. 그저 좁은 우리 속에서 그늘을 찾아다니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다. 그런데 한낮이 되어 우리 안의 그늘이 사라지자 북극곰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한쪽으로 걷다가 방향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걷기를 반복했다. 이런 행동을 스테레오타이피(stereotypy), 즉 비정상적 반복행위라고 한단다. 동물원에 갇힌 많은 야생동물이 이런 무의미한 행동을 온종일 반복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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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것은 새하얀 북극곰의 털이 초록빛과 누런빛으로 얼룩덜룩한 모습이었다. 더러워진 것일까? 목욕을 안 시켜주나? 북극곰의 겉 털 안쪽에 녹조류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란다. 올여름 낙동강과 영산강을 뒤덮은 죽음의 녹조가 떠올랐다. 새하얀 얼음나라에서 새하얀 털을 바람에 날리며 살아야 할 북극곰이 바람 한 점 없는 습하고 뜨거운 곳에서 물감으로 장난치고 안 씻은 것처럼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을 보며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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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맨 처음 들려주는 두 마리의 도마뱀 이야기처럼 갇혀 있는 존재는 그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좁은 우리에 갇힌 채 인간이 갖다 주는 먹이에 의존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예전의 자유로웠던 존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사자를 철창 안에 가둬두고 지켜본다면 그건 생김새만 사자일 뿐,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사자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런 사자를 지켜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자의 생김새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영상물로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직접 보고 싶다면 사자가 사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제 더는 인간의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이용한 돈벌이 때문에 야생동물들을 콘크리트 지옥에 가둬두지 않기를 바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99/51/cover150/89971370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995183</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새벽 네시, 바람 한 점 없네요.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544325</link><pubDate>Fri, 23 Aug 2013 19: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5443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5338&TPaperId=65443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19/coveroff/89546053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5338&TPaperId=65443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a><br/>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04월<br/></td></tr></table><br/>그렇다.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현실의 가족이나 친구보다는 실체도 보이지 않는 온라인 상의 인간 관계가 더 소중하고 깊을수 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처음 인터넷을 통해 채팅이란 걸 경험해보고, 이메일 계정이란 걸 만든 이후로 온라인을 통해 얼굴 모르는 이들과 감정을 나눈 경험은 생각보다 많았다. 부모나 친구에게는 말 못할 은밀한 고민도 낯 모르는 채팅 상대에겐 편하게 털어놓을 수도 있었고, 친구들이라면 잘 들어주지도 않을 별 것아닌 일상 얘기를 펜팔(이메일 친구)에게 메일로 장황하게 풀어놓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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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상대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느끼게 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를 잘 몰랐기 때문에, 상대와 내가 접해있는 면이 아주 작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의외로 낯선 사람들과 낯선 분위기에서 아주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해가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만약 일상에서 만난 여성이었다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쉬하지 못했겠지만, 온라인을 통해 알게된 인연이어서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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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인연을 맺어 사귄 여성이 두 명이다. 한 명은 아주 우연히 채팅으로 시작해서&nbsp;전화 통화를 하다가 다음날 만나서 사귀게 되었다. 대략 5시간 동안&nbsp;채팅을 했고, 5시간 동안&nbsp;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란 인사말을 주고 받은 지 10시간 만에 우린 서로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과 현재 그리고 미래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nbsp;이런 대화는 (당연하지만) 막연하게라도 서로에 대한 호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막상 손가락과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던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그 호감이 깨어질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서로 외모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았나보다. 한번 사귀어 보기로 결정했고,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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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연은 한때 몸담았던 문학동호회에서 알게된 사람이다. 글을 아주 매혹적으로 쓰는 사람, 글에서 아주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댓글과 채팅을 주고받다보니 약간의 친분이 생겼다. 점점 자주 채팅을 했고, 쪽지나 메일도 주고받았다. 어느날 채팅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그이가 사는 도시를 찾아가겠노라고 말했고, 그이는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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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을 통한 인연은 좁은 면적의 접점으로 시작한다. 그 관계가 진행하면서 점차 넓어지겠지만, 그 관계가 넓어지기 전에 단순히 호감만으로 시작한 연애는 생각보다 험한 길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현실은 정말로 복잡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자꾸만 끼어든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가진 채로 그냥 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내 경우엔 둘 중 하나는 살짝 후회가 되었고, 하나는 그래도 제법 오래 착실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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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약간 뻔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재미가 있었기에 처음 손에 쥔 상태로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세 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맥주를 마시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여유있게&nbsp;한 손에 책을 쥐고 눈은 책에 둔 채 나머지 손으로 맥주를 홀짝 거렸지만, 나중에는 맥주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이 빠르게 책장을 훑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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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에미에게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남편보다 어쩌다 인연을 맺게 된 펜팔에게 더 감정을 쏟는 부분에 대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의 말투와 태도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당히 밀고 당기면서도 절대 쎄게 밀거나 놓지 않는 모습을 보아 나 못지 않은 선수임이 틀림없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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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 책을 다 읽은 시간이 세 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nbsp;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찾아보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이 책의 후속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이대로가 더 좋을 듯한데, 후편은 왠지 이만큼의&nbsp;감동을 주기 어려울 것 같은데, 사야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문득 [비포 썬라이즈]가 생각났다. 무척 감동적으로 본 영화였고 그래서 오랜 후에 [비포 썬셋]이 나왔을때 무척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최근 마노아님을 통해 [비포 미드나잇]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금방 마음이 정해졌다. 일단 구매는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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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켠 김에, 메일함을 뒤져 한때 펜팔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찾아봤다. 대략 10여 년 전 캐나다 여고생과 주고 받은 메일을 어딘가 백업해 둔 것으로 기억했는데, 찾아보니 없었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네이티브 스피커와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이 좋을텐데, 현실에서 그런 친구를 찾기 어려우니 온라인에서라도 만들어보자 싶어서 좋아했던 가수 '알라니스 모리셋'의 홈페이지에서 찾은 이름과 이메일로 무작정 연락해서 얻은 펜팔이었다. 내 어줍잖은 영어가 많이 답답하고 시시했을텐데, 의외로 이 친구가 친절하게 대해줘서 한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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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생각이 나는 건 군대에서 인연을 맺은 여중생이었다.&nbsp;DMZ에 있을때&nbsp;한 달에 몇 차례 통일전망대(강원도 고성) 주간 근무를 나갔다. 4월과 5월에는 전국 각지의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왔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수학여행은 일정부분 반공여행의 성격이 있어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에는 수많은 학교들이 끝없이 몰려왔다. 우린 철책선 안쪽에서 원래라면 해안을 감시해야 할&nbsp;배율이 좋은 쌍안경으로 7번 국도를 올라오는 수학여행 차량이 여학교인지 남학교인지를 살폈다. 만약 여학교라면 학생들이 도착해서 전시용 탱크 앞에서 사진을 찍을 무렵, 군복 매무새를 잘 다듬고 총을 거꾸로 메고 철책 문을 열고 내려가는 것이다. 원래라면 근무지 이탈로 징계감이지만,&nbsp;당연한 임무를 수행하는 듯 전시용 탱크 주변을 살펴보는 것처럼 어슬렁 거렸고, 금방 여학생들에게 둘러쌓여 사진 한번 같이 찍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럼 슬쩍 한번 튕겨줘야한다. 근무 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굵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총을 고쳐 메고 자리를 뜨는 것처럼 굴어야 하는데, 당연히 여학생들은 팔짱을 끼고 매달린다. 그럼 어쩔수없이 해주는 것처럼 사진을 같이 찍어주고 여학생들이 신나서 탱크 앞을 떠날 무렵, 사진을 보내달라고 주소를 적어준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여중생과 장장 5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았다. 물론 내가 제대하고 그 친구가 여고생이 된 이후에는 뜸했다. 뜸했어도 연락이 끊기지는 않았다. 종이로 편지를 쓰기가 귀찮아서 나중에는 이메일로도 연락을 주고 받았다. 결국 완전히 연락이 끊긴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루한 군 생활을 견디게 해주었고, 무료한 일상에 웃음을 주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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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메일을 뒤지다보니 지금의 아내와 연애시절에 주고받은 메일이 나왔다. 내가 보낸 메일은 거의 안 남아 있었지만, 받은 메일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남겨두었다. 우린 기차로 한 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살았으니 나름 장거리 연애였다. 금요일 밤에 기차역에서 만나서 주말을 함께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nbsp;기차역에서 헤어졌다. 마치 주말부부 같았다. 평소에 보고 싶어도 자주 못보는 마음을 전화와 이메일로 달랬다. 다시 하나하나 열어본 메일에서 아내는 무척 낯설었다. 아! 당시에는 이랬구나. 이 사람이 당시에는 날 이렇게 생각했구나. 신기하고 낯선 느낌에 적지 않은 이메일을 하나하나 열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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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펜팔 인연들을 추억하고 또 아내의 편지를 읽느라 시간을 보내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를 살짝 넘겼다. 푹푹찌는 열대야는 이 늦은 시간까지도 기승이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선풍기에선 오히려 더운 바람이 나오는 듯 했다. 새벽 4시 바람 한 점 없는 밤, 어느 낯선 이에게 엉뚱한 메일 한통 보내보고 싶은 밤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19/cover150/89546053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31910</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아침 9시의 담배는 공허함이다. - [통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522711</link><pubDate>Tue, 13 Aug 2013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5227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6352&TPaperId=65227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8/82/coveroff/89827363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6352&TPaperId=65227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통역사</a><br/>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09월<br/></td></tr></table><br/>&nbsp;
아침 9시의 담배는 공허함이다.&nbsp;차가운&nbsp;가을비가 내리는 날씨 혹은 지하철 역 앞 맥도날드 앞이 아니었다면 담배를 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nbsp;오랫동안 담배를 피웠지만, 정오가 되기 전에 담배를&nbsp;꺼내 무는 일은 드물었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그러니까 거의 가족이 아직 한국에 있을 당시에 아버지는 일이 없었다. 가끔 막노동일을 나가기도 했지만,&nbsp;평소에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nbsp;새벽에&nbsp;어머니가 일을 나가고, 늦게 일어난&nbsp;언니와 그가&nbsp;배가 고파 부엌을 뒤질 무렵 깨어난 아버지는 이불 위에 앉아 담배부터 찾아 물었다. 성냥갑을 열고, 성냥 하나를 치익 그어 불을 붙이고 천천히 담배에 대고 불을 당겼다. 어린 그는&nbsp;단칸방 아래켠에서 눈치를 살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담배에서 연기가 올라오면 아버지는 손을 휘저어 성냥불을 끄고 재떨이에 던졌다. 천천히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 아버지는 아주 깊은 한숨처럼 연기를 내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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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다섯 걸음 옆에 있었다. 그 역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었고,&nbsp;아주 이른 시간의 외출이었다. 통역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일을 받는다면, 목표는 어떻게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뭔가 숨겨진 돈이 없다면, 묵고 있는 방의 월세와 지금 입고 있는 값비싼 옷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nbsp;
그가 공허함을 달려려고 담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것과 달리 다섯 걸음 옆의 목표는 담배를&nbsp;몇 번 빨지 않고 그냥 타들어가게 내버려 두고 있다. 뭔가 고민하고 있는 듯 보이던 목표가 갑자기 맥도널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는 마지막 한 모금을 깊이 빨았다가 내뱉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목표를 따라 걸었다. 목표가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냈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유리창 너머로 목표를 주시한다. 목표는 계산대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다. 한 참 후에야 커피 한잔을 받아 들고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마침 한 남성이 맞은 편 빈 자리를 권한다. 목표와 같은 동양계 남성이다. 어쩌면 목표와 그리고 그와 같은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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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일은 맡은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뒤를 밟고, 정보를 캐고, 감시하는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경험을 쌓아&nbsp;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우연히 목표와 같은 나라 출신이고, 목표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며, 급하게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 일이 훨씬 더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고, 돈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각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는 평범했다. 목표는 외출이 거의 없었고, 간혹 외출을 해도 특이사항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거금을 들여 목표를 감시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의뢰인에게 그 이유를 물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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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목표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이 밖으로 나온다. 둘이 대화를 나눈 것 같지는 않았다. 남성은 자리를 권했지만, 목표가 앉자마자 신문을 펼쳐들고는 내내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nbsp;그는 둘이 비밀 접선을 했을 가능성을 떠올려본다.&nbsp;아니. 곧바로 머리를 가로젖는다. 그는 목표에게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권했다. 비밀 접선이라면 그렇게&nbsp;눈에 띄는 행위를 했을 리 없다. 남성은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늘 아침&nbsp;뉴욕 변두리에서 공허한 동양인을&nbsp;또 만난다. 그는 중년 남성의 눈빛에서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눈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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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나서 머리 속에 외전 격의 곁이야기가 떠올랐다. 수지를 감시하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 그 그림자는 그레이스가 고용했을 수도 있고,&nbsp;해마다 아이리스를 보내는 누군가가 보냈을 수도 있다.(그 누군가가 그레이스 아니라면)&nbsp;혹은 KK단의 누군가가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민국의 누군가가 고용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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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소설에서 그림자의 존재는 확실치 않다. 다만 수지가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착각일수도 있고, 실제일수도 있다. 나는 그 그림자가 실제이고, 그가 수지와 같이 한국에서 어릴때 떠나온 젊은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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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미로운 책에 뻔한 미사여구로 감상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쓴 함량미달의 글이 이 책에 폐를 끼치겠지만, 나로서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것이라는 점을 알리며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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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8/82/cover150/89827363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88291</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침몰 직전의 배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488142</link><pubDate>Thu, 25 Jul 2013 15: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4881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63X&TPaperId=64881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4/88/coveroff/899027463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63X&TPaperId=64881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a><br/>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04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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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침몰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타이타닉이 밤에 전속력으로 항해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고, 망루에 망원경이 없어서 육안으로 전방을 관측했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또 몇 차례 빙산과의 충돌 위험을 보고 받고도 안일하게 대처한 선장을 탓하기도 한다.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이타닉은 눈 앞에 다가온 빙산과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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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와 인류는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의 고갈, 기후변화, 사막화, 식량위기, 핵폭발의 위험(핵폭탄 혹은 핵발전소의 폭발), 전 지구적 차원의 파괴와 오염 등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출간했고, 같은 해 스톡홀름에서는 ‘유엔 인간환경회의’를 개최하여 이 날을 ‘세계 환경의 날’로 지정했다. 이처럼 우리는 1972년에 이미 지구 환경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2013년이 된 지금 우리는 위기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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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지구를 타이타닉에 비교해보자. 우리는 현재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퍼올리고, 핵 발전소를 짓고, 산을 깎고, 숲을 파괴하고, 갯벌을 매립하고, 강을 막고, 흙과 공기를 오염시키며 발전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눈 앞에는 석유고갈, 해수면 상승, 핵폭발, 식량위기 등 여러 이름의 빙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 계속 속력을 높이다가는 이들 빙산에 충돌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빙산이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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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타이타닉호의 승객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침몰이 자명한 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뛰어내릴 것인가? 선장을 설득해 배를 멈출 것인가? 힘으로 배를 장악하고 속도를 늦출 것인가?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침몰을 기다릴 것인가? 침몰의 순간까지 장렬하게 음악을 연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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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을 위해 지구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대부분 타이타닉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처럼 안일하게 여기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두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이 경제성장이라는 종교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저자는 1949년 1월 20일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 처음 사용된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밝혀낸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경제성장이라는 신앙은 사실 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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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아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친 후 미국은 다른 나라를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업화시켜 전 세계적인 착취구조를 완성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산업화가 어떻게 착취구조가 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증거들을 살펴보면서 그동안 가려졌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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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식이 되어버린 ‘성장 이데올로기’ 대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과 소비 등 경제활동을 줄이고 문화와 여가를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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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외에도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고 그 결과 더 많은 국민들이 국가의 폭력으로 희생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내고,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 방식이 사실은 공화주의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해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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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는 이 책의 제목을 ‘21세기의 상식(커먼센스)를 위하여’라고 짓고 싶었다고 한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던 토마스 페인의 『상식(커먼센스)』처럼&nbsp;사회를 바꾸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저자의 바램처럼 더 늦기 전에 상식이 바뀌는 날이 오기를 나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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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에 이 책을 읽은 후 지금까지&nbsp;읽은 책들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이 되어버렸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책 소개를 원하면 0순위로 소개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부족하기만한 원고를&nbsp;실었던 [100인의 책마을]에 소개한 책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책도 이 책이다.&nbsp;최근 마을의 공부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해서 책을 찾았더니 없었다. 누군가에게 빌려준 기억도 없는데 왜 없을까? 며칠을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 더미를 뒤졌지만 못 찾았다. 결국 개정판을 새로 사서 읽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널리 알리고픈 마음에 소개를 쓴 후로 또 몇 년이 지났다. 여전히 지구는 빙산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 샌택을 해야할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4/88/cover150/899027463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348828</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스와라지로 세계를 구하자! -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486190</link><pubDate>Wed, 24 Jul 2013 1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4861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613&TPaperId=64861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6/46/coveroff/89902746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613&TPaperId=64861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 개정판</a><br/>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03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세계를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혁명? 군대?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아마 이런 답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하나의 정치적인 결단이나 사건으로는 세계를 바꾸거나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보다 더 보편적인 사건, 이를테면 수많은 개인들의 자발적인 변화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여기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인도의 위대한 영혼(마하트마) 간디다.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간디라는 단어가 입력되면 나의 뇌는 자동으로 비폭력, 무저항, 인도 독립 등의 단어를 내놓는다. 간디는 내게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끈 독립운동가 혹은 민족지도자 정도로 인식되어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디가 단순한 독립운동가는 아니라고 깨닫는다. 그는 서구 자본주의와 산업의 발달이 인류를 파멸로 끌고 가리라고 예상했고, 그에 맞서 세계를 구원할 대안을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사상가이자 이를 몸소 실천하고 전파한 실천가였다.
&nbsp; <o:p></o:p>
이 책의 핵심 단어는 스와라지와 스와데시이다. 스와라지는 정치적 의미의 자치를 뜻하고, 스와데시는 경제적인 자립을 뜻한다. 간디는 서구 산업자본주의가 착취구조를 바탕에 두고 점점 더 사람들을 못살게 만든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 단위의 자치와 자립을 제시한다. 마을은 자치와 자급자족이 가능한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구조다. 권력과 부의 축적과 폭력과 강제가 없이 모두가 자발적인 경제활동과 협력을 통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이다. 얼핏 들으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그리는 듯한데, 간디는 이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각 개인의 역할과 같은 작고 세세한 부분부터 마을 연맹과 국제 교류와 같은 큰 부분까지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놓았다. 단순히 그림만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해나가면서 이를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정도쯤 되면 쉽게 불가능한 상상이라 몰아세우기 어렵겠다.
&nbsp; <o:p></o:p>
책에는 비노바 바베와 간디가 주로 주장한 ‘나이탈림’이라는 새로운 교육운동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배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함께 읽던 아내가 말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책을 읽고도 어떻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어?” 나이탈림은 수공예를 통한 교육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학교에서 배우는 죽은 지식이 아닌 삶 속에서 배우는 살아있는 지식을 말한다. 간디는 아이들이 물레로 실을 잣는 방법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산수와 역사와 생물학과 경제학과 지리와 농업 등에 대해 알아간다고 했다. 매일 아이의 산수 숙제 때문에 끙끙대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또 실천해보고 싶은 내용이다.
&nbsp; <o:p></o:p>
군대와 경찰을 대신할 비무장, 비폭력의 집단을 설계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평화 여단’, ‘비폭력 자원부대’ 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들은 종교분쟁을 평화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거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거나, 비상 시에 다친 사람들을 돕고, 전쟁 및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간디&nbsp;자신이 인정했듯이 이 방법이 실현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무척 높은 도덕성과 살신성인의 정신과 종교적 헌신이 요구되는 이런 집단이 과연 마을마다 만들어질 수 있을까?&nbsp;분명 현실적인 한계가&nbsp;명확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무척 대단하고 또 흥미롭다.
&nbsp;
이 책의 훌륭한 내용과 별개로 아쉬움도 제법 있다. 우선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 구성 상 여러번 나올 내용이라면 앞에는 간단히 다루고, 뒤에 자세히 설명하던가, 반대로 앞에서 자세히 설명하면, 뒤에는 언급만 하고 지나가야 할텐데, 앞에서도 또 뒤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이 여럿 있다. 이건 간디가 직접 하나의 책으로 작업한 것이 아니라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글을 묶은 편집자가 손을 봐야 할 몫이었다고 본다. 번역 후에 교정 과정에서 이 지점을 간과한 우리나라 편집자도 역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번역의 문제다.&nbsp;이번에 읽은 책은 개정판이어서 그래도 수정이 많이 되었던데, 그 전의 번역은 훨씬 더 심각했다.&nbsp;내가 무척&nbsp;좋아하는 녹색평론 책들이 대체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아쉽다. 마지막으로 내용 설명을 하다 만 것처럼 끊기는 문제다. 구체적인 개념으로 들어가면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조금 설명하다가 끊기거나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점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간디가 여기저기 필요에 따라 쓴 글을 모았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일텐데, 거의 하나의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해내면서 사소한 부분들에 신경을 덜 쓴 느낌이다. 이건 좀 과한 바램일 수도 있지만 좀 더 꼼꼼한 설명이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이 있다.
&nbsp; <o:p></o:p>
요즘 ‘사회적 경제’, ‘마을 만들기’, ‘협동조합’ 등의 단어들이 자주 들린다. 시골의사 박경철도 마트가 아닌 동네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했다. 거의 한 세기 이전에 인도에서 쓰인 이런 개념들이 지금 이 나라에서 유행하는 의미를 곰곰 곱씹어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6/46/cover150/8990274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16468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평화의 섬 제주에 보내는 연애편지 - [그대, 강정 -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385549</link><pubDate>Mon, 27 May 2013 1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3855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190749&TPaperId=63855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8/14/coveroff/89631907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190749&TPaperId=63855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대, 강정 -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a><br/>북멘토 편집부 엮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3년 04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얼마 전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이들과 간 여행에서 잊고 있던 노래를 들었다.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제목의 노래로 2004년 평택 반전평화축제에서 문정현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에 평화활동가이자 가수인 조약골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다.
&nbsp;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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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보면 노동, 여성, 장애, 환경 등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부분에서 당시 평택에서 미군기지 때문에 내쫓겨나게 된 농민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단순한 노래 가사 하나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고, 따라부르기 쉬워서 참 잘 만든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활동 이후로 잊고 지내다가 뜻하지 않게 다시 듣게 된 그날, 밤늦게까지 기타를 튕기며 이 노래를 여러 번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자꾸만 떠오르는 이름이 문정현과 강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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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님을 떠올리면 몇 개의 지역 이름이 떠오른다. 길 위의 신부라고 명성에 걸맞게 부안, 평택, 용산, 강정 등의 지역이 차례로 생각난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평택 미군기지확장 반대운동, 용산 철거민 참사 대책위 활동,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등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거쳐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는 이들 곁에서 함께 싸우고 계신 분이다. 위에 언급한 지역들중에서 지금도 군대(해군)와 경찰이 일상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아름답고 훌륭한 자연환경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곳이 있다. 바로 강정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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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0명의 작가(43인의 글작가, 7인의 사진작가)가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에 대한 애정을 담아 만든 연애편지인 [그대, 강정]을 읽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글과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와 해군이 공사를 강행하기 전에도 강정마을 앞바다 범섬 일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2002)했으며, 해양수산부에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2002)했고, 환경부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2004)했으며, 특히 이곳의 연산호 군락지는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442호로 지정(2004)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강정마을 앞바다는 전국 곳곳에서 몰려온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활동가가 되어 평화를 위해 싸우는 아름다운 연대의 장이 되었다. 과거 평택 대추리가 그랬듯이 이젠 강정마을이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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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을 포함한 서귀포 앞바다는 강한 바람과 조류 때문에 항구로 적절치 않다. 실제로 작년 여름 태풍 볼라벤은 해군이 공사를 위해 투하한 케이슨 7개를 무너뜨렸다. 케이슨은 길이 38ｍ, 너비 25ｍ, 높이 20.5ｍ에 1개 무게가 8800t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이다. 이번에 파손된 케이슨은 하나 당 대략 50억 가량의 제작비가 든다고 하는데, 350여억의 혈세가 강정 앞바다에 수장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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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강장 앞바다의 파괴는 주민들의 문화와 생활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서 살아가던 생물들을 죽이는 행위다. 앞서 말했듯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연산호를 비롯하여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 기수갈고둥, 나팔고둥 등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고, 구럼비 바위를 화약으로 폭파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물들에게 피해를 주었을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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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2년 3월 7일 구럼비 발파가 시작된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한동안 강정마을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주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강정앓이’중이었다. SNS로 강정의 상황을 공유하고, 귤을 팔아 후원금을 모으고, 평화대행진에 참여하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행동하고 있었다. 이 책에 참여한 50명의 작가들처럼 나도 강정 앞바다와 구럼비 바위에게 연애편지를 하나 써보련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8/14/cover150/89631907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281438</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인간의 진화를 부정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 [자연 모방 - 언어와 음악은 어떻게 자연을 흉내 내고 유인원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359331</link><pubDate>Fri, 10 May 2013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3593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02280&TPaperId=63593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1/95/coveroff/89966022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02280&TPaperId=63593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연 모방 - 언어와 음악은 어떻게 자연을 흉내 내고 유인원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을까?</a><br/>마크 챈기지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3년 03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요즘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자랑하느라 바쁘다. 고양이를 키워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자꾸 고양이 사진을 보고, 얘기를 듣다 보니 나도 흥미가 생겼다. 모래에 대소변을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사실이나, 평소에는 본체만체하다가 캔 따는 소리만 들리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달려온다는 얘기를 듣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양이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다가 전혀 뜻밖의 책에서 또 고양이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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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자인 마크 챈기지는 ‘매일 생선과 물 주기’와 ‘변기 옆에 모래 상자 두기’ 이 두 가지 조치만으로 우리는 ‘수억 년에 걸쳐 진화한 야생동물 고양이’를 ‘대소변을 가리고 제 몸을 씻을 줄 아는 유해조수 사냥꾼’으로 곁에 둘 수 있다고 한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인간에게 길들었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집의 구조를 고양이에게 자연스럽게 바꾸었기 때문에 곁에 머무는 것이다. 고양이는 길드는 것이 아니라 ‘응용’된다. 인간이 야생 고양이의 본능과 재능을 방향만 달리하여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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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간도 고양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해서 지금과 같은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이 아니란다. 인간은 유인원과 같은 상태이지만, 문화가 인간의 본능과 재능을 응용해 언어와 음악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즉, 인간에게 언어를 만들고 배우는 언어 본능이나, 음악을 만들고 배우는 음악 본능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고, 진화한 것은 언어와 음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자연응용(nature-harness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이 책의 원제인 'Harnessed(응용된)'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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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독창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증거들을 보여준다. 그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보고 듣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보고 들은 결과와 그것을 의식적으로 이해하는 결과는 다르다. 내가 하나의 물체를 본다면, 첫 단계의 시각 체계는 단지 각각의 윤곽을 본다. 중간 단계의 시각 영역은 윤곽 몇 개가 조합된 것을 보고, 물체 자체를 보는 것은 가장 높은 단계의 시각 영역이다. 이제 비로소 나는 물체를 지각하고 의식한다. 그러나 나의 의식적 자아는 낮은 단계의 시각 구조를 좀처럼 의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설명은 저자의 전작인 『우리 눈은 왜 앞을 향해 있을까?』(뜨인돌, 2012) 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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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듣기에서도 우리는 소리의 기본이 되는 낮은 단계의 음향 구조를 의식하지 못한다. 분명히 낮은 단계의 청각 영역은 그것을 들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언어와 음악, 그리고 글자 역시 낮은 단계에서 자연을 닮았다. 자연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소리가 나며, 유인원은 생존을 위해 그 자연의 소리를 이해하고 어떤 사건인지 순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언어는 그 자연의 소리(사건)를 닮았고, 덕분에 인간은 이를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 유인원은 생존을 위해 듣는 것만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동작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음악은 인간의 동작을 닮았다. 덕분에 인간은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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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분에 인간은 한순간에 수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인원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자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흥미로운 설명들 덕분에 차츰 설득당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1/95/cover150/89966022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91956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주식회사는 주주의 재산이 아닌 노동자의 것이다! -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340798</link><pubDate>Tue, 30 Apr 2013 16: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3407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573383&TPaperId=63407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96/98/coveroff/89925733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573383&TPaperId=63407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식회사 이데올로기</a><br/>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3년 03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nbsp; <o:p></o:p>
나는 자주 ‘빨갱이’라고 불린다. 한 후배 녀석은 나를 ‘성골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아버지께서 노동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듣더니, 나름 빨갱이 중에서도 족보 있는 빨갱이라고 그렇게 부른다. 그 단어가 녀석이 생각해도 재밌는지, 아주 열심히 부른다. 그 외에도 꼭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불리는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도 스스로 빨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종북좌파’라고 불렀다면 화를 냈을 거다. 나는 좌파는 맞을지도 모르지만 종북은 아니기 때문이다.
&nbsp; <o:p></o:p>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빨갱이라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에게 시사문제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 내 의견을 들려주다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 등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개는 현상에 대해서는 체감하고 있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숨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순과 부조리를 깨닫지 못하는 걸까? 깨닫기를 원하지 않는 걸까? 깨닫기를 원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걸까? 혹은 깨달았음에도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모르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nbsp; <o:p></o:p>
오래전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 우리과에는 아주 독특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조선일보를 1면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고, 우리나라 어지간한 대기업 총수들 이름을 다 외우고, 그뿐 아니라 그 총수들의 성공스토리도 대체로 다 꿰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랑 대화를 나누면서 불편했던 건 대기업을 회장 개인의 소유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친구랑 논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논쟁은 늘 평행선을 달리가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방식으로 끝났다. 결국 불편함을 참지 못해 그 친구와의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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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 이 책이 나왔었다면, 그리고 내가 읽었더라면 훨씬 더 논리적으로 그 친구와 논쟁을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고보니 이 책은 과거에도 나왔었다고 한다. 2001에 미국에서 [Divine Right of Capital]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2003년에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가 다시 절판되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같은 책의 2003년도 판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nbsp;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번 책에는 저자인 마조리 켈리의 한국어판 서문이 실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책이 처음 나온 후 지난 10년간의 대략적인 변화를 짚어주고 있다. 그리고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미국과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소득 불평등이 높은 나라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큰 틀에서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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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대학시절 친구와의 논쟁을 소개했지만,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기업의 주인을 경영자와 주식을 가진 주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대기업은 일개 개인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럼 그 기업에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무엇일까? 기계나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일까? 그래서 실제로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실컷 혹사당하다 나중에는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인가? 그래서 기업을 운영해서 남는 수익을 주주들이 사이좋게 나눠가지고, 노동자는 아무것도 받아가지 못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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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종업원이 창출한 부를 투기꾼에게 주는 것은 분명히 시장 원칙을 무시하는 짓이다.” (여기서 종업원이란 표현을 노동자로 바꿔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번역자가 굳이 종업원이란 단어를 쓴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해법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재산권을 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사실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워커즈 콜렉티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노동자 공동체가 운영하는 기업과 거의 비슷한 개념이다.
&nbsp; <o:p></o:p>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루기에는 매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제도적, 법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식회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고, 그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작은 반란을 일으켜 대중의 열의를 결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 계층들을 위해 ‘반란을 위한 설명서’를 적어놓았다. 
&nbsp; <o:p></o:p>
저자는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인 ‘주가’라고 말한다. 나도 자본주의가 후기로 갈수록 극심해지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 덕분에 필연적으로 금융위기는 온다고 생각해왔다. 저자는 그런 내 생각을 거의 그대로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다만 진단에 그쳤을 뿐, 그 원인인 주식회사의 형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책 덕분에 한단계 더 실마리가 풀렸다고 생각한다.
&nbsp; <o:p></o:p>
개인적인 이유로 책을 읽는데 오래 걸렸다. 책을 막 읽을 때에는 빨리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 글을 쓰는데 또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어쨌든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책을 알리고 싶었다.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은 후, 당장 내일부터 이 회사의 주인은 회장이나 사장이 아닌 나를 포함한 노동자들 모두라고 생각하고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은 단위에서라도 서로 모여 논의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나가면 좋겠다. 물론 당장 법과 제도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고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뭔가 더 변화의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nbsp; <o:p></o:p>
이 글을 읽는 모든 일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당장 이 책을 구해 읽으시라!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96/98/cover150/89925733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969894</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채식의 틀을 넘어 지구를 보자! - [채식의 배신 -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267522</link><pubDate>Thu, 28 Mar 2013 1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62675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2877&TPaperId=62675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90/44/coveroff/89605128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2877&TPaperId=62675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채식의 배신 -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a><br/>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3년 02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외국 영화나 책이 국내에 소개되면 꼭 원제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Vegetarian Myth’다. 우리말로 옮기면 ‘채식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채식의 배신’과 비교해보면 느낌의 차이가 크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신문, 방송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 이 책이 언급되고, 여기저기서 이 책을 두고 말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채식을 하는 여러 지인들이 이 책을 언급했다. 그만큼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제목이다.
&nbsp;
이 책의 저자는 거의 20년간 비건(Vegan) 채식을 했다. 비건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채식의 단계를 알아야 한다. 페스코(Pesco) 채식은 해산물은 먹지만, 육고기를 먹지 않는다. 오보(Ovo) 채식은 해산물과 육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지만, 계란은 먹는다. 락토(Lacto) 채식은 해산물과 육고기와 계란은 먹지 않지만, 우유와 유제품은 먹는다. 비건(Vegan) 채식은 우유와 유제품을 포함하여 모든 육식을 하지 않는다. 내 주위에도 아내(락토)를 비롯하여 채식인들이 제법 된다. 그중에 페스코가 대부분이고 락토는 거의 없으며, 비건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선정적인 제목 때문에 채식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글쓴이가 20년간 비건이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차근차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nbsp;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제목처럼 ‘채식의 배신’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채식만으로는 모자란다는 내용이다. 채식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제였던 ‘채식의 신화’는 채식주의자들이 각자가 빠져있는 신화에서 빠져나와 진실을 보기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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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도덕적인 이유로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주로 농업 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단순히 동물을 먹지 않는 것으로 도덕성을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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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흥미로운 주장은 농업의 본질은 파괴라는 내용이다. 농업은 흙을 죽이는 일이며, 강을 마르게 하고, 숲을 없애고, 목초지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 농업 때문에 지속적으로 표토가 사라지는 현상은 전 지구적 위기로 인식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 이 부분은 [흙](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 삼천리 / 2010년)을 읽으면서도 살펴봤던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자가 텃밭에서 민달팽이와 겪었던 일화는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주는 좋은 내용이었다.
&nbsp;
두 번째는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환경운동가나 공장식 축산에 대한 거부로 채식을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도 2008년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계기로 이 정치적 이유의 채식이 많이 늘었다. 여기서 저자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단순히 사료로 쓰이는 곡물의 양을 지적하는 것을 오히려 문제 삼으며, 채식이라는 행위 즉, 농업을 통해 얻은 곡물을 먹는 행위가 해답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nbsp;
아울러 저자는 인류의 수가 너무 많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현재의 농업으로는 그 많은 인류를 다 먹여 살릴 수 없으며,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이 텃밭에서 실행했던 바와 같은 다년생 혼작과 더불어 가축을 사육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특히 표토의 복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자연의 기본적인 패턴 안에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nbsp;
마지막은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이다. 앞의 두 부분도 충분히 논란과 논쟁이 될만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이 현재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가장 첨예하게 논쟁 할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여기에 대한 비판의견을 여럿 접했다. 저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상황과 조건에 따라&nbsp;틀린 말이 될수 있다고 본다.
&nbsp;
어쨌거나 ‘채식’이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크게 관심 두지 않을 주제로 논쟁을 일으켜, 주의를 환기하고 다양한 정보와 주장을 들려준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저자의 여러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그저 ‘신화’(맹목적인 믿음 혹은 어리석은 믿음)로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이 책은 농업 문명과 흙의 문제를 환기시켰고, 채식보다 더 근본적인 실천을 강조한 점에서 한번 읽어볼 만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90/44/cover150/89605128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90448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