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남자친구


"아빠, 냥이 남친 생겼어요."


지난 주 금요일 퇴근 후 아이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겠다고 순대국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한창 사춘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감정을 앞세우게 되는 큰 아이가 건넨 말이다. 냥이는 큰 아이가 자기를 가르켜 칭하는 말이다. 평소 말을 건네면, 짧게 '냥"이라고 답하곤 한다.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네"와 같은 말이다. 


갑작스런 아이의 말에 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곧바로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어떤 아이인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아이는 언젠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제일 먼저 아빠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던 내 말 때문에 알려주는 거라 했다. 그게 언제였는지,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했던 건 확실히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난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고, 무슨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아빠에게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큰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 때, 그러니까 두세살 즈음에 어린이집에서 사귄 남자친구가 떠올랐다. 아직 이름도 그래도 기억난다. 그 어린이집 아이들 중에 유독 둘이 친했다.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가면 먼저 와있던 그 남자아이가 매일 현관으로 마중나왔다. 머리에 손수건을 얹고(마치 면사포처럼) 둘이서 "딴딴따단~ 딴딴따단~" 노래하며 결혼식 흉내도 많이 냈다고 들었다. 당시 내가 장난으로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엄마 다음이 그 남자아이였고, 그 다음이 나였다.


그리고 네살 혹은 다섯살 무렵 어린이집을 옮겨다니다, 다른 어린이집에서 그 둘은 다시 만났다. 남자 아이가 먼저 그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고, 우리 아이는 다른 곳을 다니다가 중간에 옮겨왔다. 그 둘에 대한 소문은 이미 그 어린이집에 쫙 퍼져 있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 등원 첫 날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아이는 낯선 공간에 처음이라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그 남자아이는 옆 반이었는데, 우리 아이 담임이 옆 반 담임에게 말했던 건지, 옆 반 담임이 그 남자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기대와 달리 서먹하기만 한 두 사람. 거기에 옆 반 담임이 그 남자 아이에게 새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한 마디 했고, 우리 아이 담임이 우리 아이에게 "질 수 없다!"며 힘내자고 했다.


당연하겠지만, 지금 아이는 당시에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그 아이 이름을 들려줘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그때부터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어떤 기분일지를 가끔 생각해보곤 했다. 막상 그 때가 되니 별 다른 감흥은 없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있는 나이라고 여기는 걸까? 어쩌면 좀 더 자란 후에 들었다면 다른 기분이었을까? 모르겠다.


어제 만난 큰 아이는 남친이랑 10일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의 얘길 들어보면, 주로 같이 지내는 건 친한 친구들, 즉 여자아이들끼리 어울려 지내는 듯 하다. 그 또래 아이들의 연애란 무엇일까? 아이는 나에게 아빠는 언제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었냐고 물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짝사랑은 했지만, 여자친구는 없었다. 여자친구를 사귄 건 고등학생 때였다. 어떻게 만났냐고 묻길래 남녀공학이 아니라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우리는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고 했다. 등하굣길, 교회, 독서모임 등이 여성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물론 나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그런 자세한 내용은 생략했다.


아이는 아빠의 청소년 시절 연애를 궁금해했고, 아빠는 아이의 연애가 어떨지 궁금하다. 서로 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기겠지.


사춘기 딸과의 소통


작년 언젠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평소에 사진과 별로 친하지 않기에, 거의 사진도 안 올리고 가끔 이동시간에 시간 때우러 들어가보곤 한다. 가끔 사진을 올릴 때는 아이들과 놀러갔을 때,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 사진을 찍고, 그 공간에 올려둔다. 얼마전 큰 아이가 페이스북에 가입해서 나에게 친구신청을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에 가입해서 또 내 계정을 팔로하고 내가 지금까지 올린 모든 사진에 다 좋아요를 눌렀다.


자주 들어가보지 않기에, 그 사실을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혹시 아이가 보면 안 될 사진이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그러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말했듯이 내가 올린 사진이 많지 않기에 쭉 살펴보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런 사진은 없었다. 음식이나 술 사진이 몇 장, 책 사진이 몇 장, 하늘과 구름 사진이 또 몇 장, 나머지는 아이들 사진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랑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인스타 계정도 굳이 먼저 팔로하지 않는다면 내가 알 길이 없을텐데, 이렇게 먼저 치고 들어와서 친히 내 모든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시니 참 요즘 아이답지 않구나 싶었다. 


최근 잘 쓰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이 망가져서, 새로 사려고 알아보다가 겨울이라 날이 추우니 헤드폰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친구 하나가 겨울이면 늘 헤드폰을 끼고 다녔던 기억이 났다. 하나 걸렸던 건 안경을 쓰고 헤드폰을 착용하면 귀가 아플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오래 착용하면 어쩔수 없다 싶었다.


암튼 퇴근 후 긴 시간 동안 온라인 마켓에 올라온 온갖 제품을 검색하다가, 적절한 가격에 디자인도 꽤 괜찮고, 음질도 나쁘지 않은 제품을 골랐다. 다음날부터 외출할 때는 늘 헤드폰을 쓰고 다닌다. 귀가 정말 따뜻했다. 뺨은 살을 에이는 바람에 시려워도 귀만은 따뜻했다. 그래서 일터 건물 계단 큰 거울 앞에서 헤드폰 착용 사진을 찍고, 사진을 올렸다. 올해 겨울 별로 좋은 일이 없지만, 유일하게 좋은 일은 이 헤드폰을 산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인가 큰 아이가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아빠 ㅋㅋ 왜 그걸 귀마개처럼 쓰고 다녀요? ㅋㅋㅋㅋ" 뭐 이런 식이었다. 귀마개로 쓰려고 산 거니, 귀마개로 쓰는 거지. 게다가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귀마개라니 좋지 않니? 뭐 이런 답글을 달까 하다가 그냥 뒀다.


그리고 최근 아이들이 오는 날, 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보일러를 켜고 따뜻한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이가 '그림톡'이란 앱을 깔라고 했다. 그걸 깔고 보니 서로 그림으로 퀴즈를 내고 맞추는 게임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그려서 힌트를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 맞출 수 있을지 없을지는 천차만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 한번씩 번갈아 퀴즈를 내고 맞추는 방식이라 마치 편지처럼 메세지를 주고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 친구 신청, 인스타그램 좋아요, 그림톡을 통한 퀴즈 주고 받기가 모두 아이가 아빠에게 말을 거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아이는 지금 아빠와 소통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무심한 아빠가 그걸 잘 못 받아준 건 아닌지 뒤늦게 조금 후회가 된다.


아빠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 좀 미안하구나! 그래도 경상도 남자 치고는 아이들과 장난도 잘 치고, 자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자부한다. 이젠 조금씩 시간 내서 아이가 올린 사진에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줘야겠다. 이젠 손 편지 대신 이런 게 소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서점에서 구매한 책


 비록 잘 아는 처지는 아니고, 안면만 있는 정도이긴 하지만, 저자 두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라 출간 당시에도 사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바로 구매했다. 


일상기술연구소라는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든다. 적정기술처럼 우리 일상에서도 많은 기술들이 필요하다. 잘 읽고 이것과 비슷한 기획을 더 만들어보면 좋겠다.








 이것도 컨셉이 참 좋다 싶었다. 대충 훑어봤는데, 여기에 담은 영화들이 아주 대중적인 작품들은 아니라 조금 실망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담긴 수많은 차별 이야기를 묶어보는 것. 정말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빌려서 1번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2번 읽었으니 총 3번 읽었다. 정유정의 장편은 다 읽었는데, 이 책이 제일 좋았다.


 언젠가 이 책과 [7년의 밤]은 자세한 서평을 쓰려고 공책에 몇 쪽에 걸쳐 자세한 분석도 해봤었는데, 결국 바빠서 글을 쓰지는 못했다.


내가 다시 장편소설을 쓴다면 이 책의 구성을 참조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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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12-1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무뚝뚝한 경상도남자 아니신 것 같은데요 ^^
저는 아예 제 아들 페이스북에 들어가볼 생각을 안하고 있지만 제 남편은 수시로 드나들다가 (그리고 드나든 티를 내다가) 아들에게 친구 차단 당했답니다 ㅠㅠ

감은빛 2017-12-16 00:50   좋아요 0 | URL
저런! 차단까지 당하셨다니!
저는 정말 아이의 SNS 를 찾아볼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친히 찾아와서 친구신청하고, 팔로할 줄은 몰랐어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되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2017-12-16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8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