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연휴 전에 잔뜩 밀린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더니, 연휴 끝나고 복귀하자마자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일이 몰려든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월요일 아이들과 1박2일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사무실로 출근했다. 다음날 있을 워크숍 발제문을 쓰기 위해서였다. 대략 내용은 구상해놓고 있었으나, 막상 쓰다보니 구체적인 문장과 수치 등을 쓰기 위해 자료들을 뒤져야 했다. 밤늦게 내 자료를 기다리던 선배님께 메일을 보내고, 이왕 출근한 김에 밀린 일을 하면서 새벽까지 일했다. 다음날 워크숍에서 발제하고 저녁까지 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또 야근. 그날은 아예 밤을 샜다. 다음날인 수요일 아침, 멍한 정신에 오후에 있을 워크숍에서 할 발제 자료를 만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제정신이 아니라 그랬는지 거의 다 만든 자료를 저장하는 과정에서 잘못 눌러 다 날려버렸다. 워크숍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정말 급하기 다시 만들었다. 중요한 내용 한 두가지는 다시 쓸 시간이 없어서 생략하고, 딱 필요한 내용만 채워 완성해서 워크숍 장소로 뛰었다. 걸어서 12~15분 거리였지만, 뛰어서 4분만에 도착. 그래도 발제는 차분하게 잘 했다.


연휴 끝나고 업무 복귀하자마자 이틀 연속 발제. 그리고 이어지는 각종 행정 업무들, 각종 회의들, 각종 행사들. 아이들과 만나는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그 야근 중 절반은 밤을 새야했다. 금요일 밤새 일하고 토요일 아침 집에서 씻고 옷만 갈아입고 바로 행사를 진행하러 갔다. 행사 내내 목이 터져라 떠드느라 엄청 힘들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배들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끝나고 수고 많았다고 술 한잔 하자고 했다.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가서 김치찌게에 소주를 마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과 함께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면서 맥주를 마셨는데, 어느 순간 보니 졸고 있었다. 아이들은 영화 후반부에 잔인한 장면이 나와 무섭다며, 알아서 다른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일요일에는 작은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 방과후 협동조합에서 야유회를 갔다. 일요일 아침에 정말 죽을 것 처럼 피곤해서 꼼짝도 하기 싫었지만, 작은 아이 손을 잡고, 미리 사둔 간식을 챙겨 집을 나섰다. 난지 한강 공원에서 7가족이 모여 놀았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기도 했고, 아빠들은 맥주를 마셨고, 엄마들은 커피 혹은 맥주를 마시며 서로 얘기했다. 한참 후에 아이들이 축구를 하자고 졸라서 어쩌다 끌려 나왔는데, 상대편 아빠들이 둘 다 발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반면 나와 우리편 아빠는 둘 다 축구에는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축구를 시작하고 몇 분 되지도 않아서 그 사실을 금방 깨달았는데, 그렇다고 편을 바꾸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발재주는 없어도 축구경기를 하면 열심히 뛰어다니는 걸로 내 몫을 채우는 편이다. 중학교 때는 그 열심히 뛰는 것만으로 대회 MVP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한 경기에 몇 골씩 터트린 공격수보다 최종 수비수였던 내가 모두의 지지를 얻어 받은 상이었다. 당시 우리팀은 매 경기 거의 골을 먹지 않았다. 상대 공격수가 나를 제치면, 짧은 순간 재빨리 돌아가서 최종 수비수를 제쳤다고 방심하고 있던 공격수의 공을 뺏곤 했다. 체력과 순발력 덕분이었다. 


이제 순발력도 체력도 없는 상태에서 발재주도 없으니, 축구 경기가 엄청난 중노동처럼 느껴졌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차서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죽도록 뛰어다니긴 했다. 하지만 좁은 공터에서 한번 나를 제치고 나간 상대를 다시 따라 잡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체력이 딸리는 탓에 시야가 좁아져서 공을 잡은 후 패스나 슛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우리 팀이 넣은 골의 대부분은 내가 넣었다.


축구를 해본 게 얼마만이던가? 12년쯤 전에 오마이뉴스와 시민단체 활동가들 친선 경기를 뛰어본 게 아마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랜만에 뛰어서 하늘이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땀을 닦고 있는데, 상대팀 아빠가 캔 맥주를 내밀었다. 몇 모금 마시고 나니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 학창시절에 운동장에서 전체 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올라가다가 계단에서 갑자기 어지러워서 쓰러졌던 날의 느낌과 같았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잠시 누워서 쉬고 나니 괜찮아졌다. 비록 몸은 무척 피곤했지만, 작은 아이가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날 축구 후유증은 정확히 이틀 후인 화요일 허벅지 통증으로 나타났다. 그때쯤 그 부위에 근육통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거의 정확했다.


내 머리를 믿을 수 없다.


10월 말과 11월 초에 강의가 몇 개 잡혀있다. 강의 확인 전화를 받을 때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얼버무리다가, "나중에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라고 말한다. 요즘은 누군가와 어떤 논의를 하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둘 중 하나다. 내용은 기억하는데, 누구와 얘기했던 건지 기억을 못 하거나, 누군지는 기억하는데, 내용을 기억하지 못 하거나. 왜 이러는 걸까?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며칠 전에는 제주에서 강의 요청 전화가 왔다. 얘길 들으며 분명 두달쯤 전에 제주에서 전화를 받았던 것 같긴 한데, 그 기억이 정확한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번에 전화한 사람은 처음 전화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어서 누구에게 강의 청탁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청탁했던 건데, 내가 덜컥 맡아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 발 물러섰다. 일단 전화를 끊고 한참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는 내 이름을 대면서 "예전에 강의 청탁을 수락 하셨네요."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날짜가 정해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후로 나는 청탁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11월 초 평일 저녁 제주에서 강의가 잡혔다. 오후에 출발해서 제주에 갔다가 강의 마치고, 밤 비행기로 바로 돌아오게 생겼다. 제주까지 가서 아무것도 못 하고 강의만 하고 돌아와야 하다니! 욕심으로는 다음날 하루 연차를 쓰고 단 몇 시간 만이라도 놀다 혹은 쉬다 오고 싶은데, 한창 바쁠 예정인 11월 초에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제는 또 다른 분에게 11월 초 강의와 12월 초 강의 확인 연락을 받았는데, 12월 초 일정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11월 초 강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일정표를 보니 메모해 두었더라. 이게 정말 바쁜 일정 탓에 정신이 없는 건지. 잦은 음주 탓에 뇌가 기억력을 점점 잃어버리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고! 내 머리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신고리5,6호기 백지화, 탈핵의 첫 걸음


지난 번 글에도 썼듯이 대통령 잘못 만나서 죽도록 고생 중이다.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느라 주말도 없이 뛰어다녔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9월 말 국회에서 한 번, 오늘 청와대 앞에서 한 번. 청와대 앞 분수대까지 들어가 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대통령이 바뀌긴 바뀌었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다. 다만 그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론화를 선택하는 바람에 전국의 탈핵 활동가들이 죽을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약처럼 신고리5,6호기를 취소하기만 해준다면 용서해 줄 수 있다.


제발 내일 공론화 위원회 결과가 잘 나오기를, 꼭 신고리5,6호기를 취소하고, 밀양에 지어놓은 거대한 괴물, 765송전탑도 철거하기를 바란다!


운동하고 싶어!


인권활동가 류은숙 님이 새 책을 냈다. 이 '아무튼'은 시리즈인 것 같다. 다른 책들은 자세히 보지 못 했는데, 이 책만은 꼭 사야겠다. 일단 내 주요 관심사 중에 하나인 운동에 관한 것이고, 예전부터 읽었던 류은숙 님의 글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서러운 기분이 살짝 들었다. 연휴 전에 다친 어깨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다. 평소엔 크게 문제가 없는데, 그래도 팔을 높이 들거나, 뒤로 젖힐 때에는 통증이 느껴진다. 가끔 어떤 날엔 통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벌써 얼마동안 운동을 못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명절 연휴 때 부모님 덕분이 엄청 잘 먹어서이기도 하지만, 운동을 못해서이기도 한 내 배를 보면서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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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10-20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전찬성하는 인간들 마당에 소형발전기를 하나씩 놔주고 싶습니다. 그 카이스트교수나 보수정치언론인들 말이죠.
저는 원래 스포츠에는 소질이 없어서 다들 잘하는 농구 축구는 거의 안했고 혼자하는 운동이 그나마 낫더라구요. 고등학교때까지 태권도, 대학말년부터 한 십년 검도를 하다가 다친 이후로는 weight와 cardio를 하고 있습니다. 검도는 지금도 로망인데 아직도 겁이 나네요.ㅎ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