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안심


주사 4방의 약효는 하루쯤 지나 나타난 듯 하다. 어제 오후가 되니 통증이 확실히 줄었다. 먹는 약은 시키는대로 잘 먹고 있는데, 아침을 안 먹기 때문에 아침 약을 점심때 먹었다. 대신 저녁 약은 확실히 늦은 밤에 먹고 있으니 괜찮겠지.


그제 저녁에 들어와 혼자 티셔츠를 벗으려니 통증 때문에 팔을 뺄 수가 없었다. 누구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아픈데 옷 벗고 눕지도 못하는 구나 싶어서 좀 서러웠다. 통증을 참고 억지로 팔을 빼고 옷을 벗었더니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어제 아침 전날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통증에 좀 놀라고, 도저히 팔을 움직일 수 없어 씻기도 어려웠고, 또 옷을 입기도 어려웠다. 사무실은 하루 빠지기로 마음 먹고,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일 대신 전화로 조율해야 하는 일을 주로 했다. 마침 에너지 슈퍼마켓 건과 태양광 발전소 추진 건으로 급한 통화를 해야 했다. 거래처와 시공사와 관련 공무원 등 통화해야 할 사람들은 많았다. 20통 이상의 통화를 했고, 통화 시간은 대부분 5분을 넘겼고, 가장 긴 통화는 40분 가량이었다.


다행히 전화 업무를 통해 해결하려던 부분들은 대부분 잘 풀렸다. 출근을 하진 않았지만, 퇴근 시간 무렵 나도 자체적으로 일을 접었다. 밀려 있는 엄청난 서류 작업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전화로 해결한 일들이 있으니 마음이 아주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어제보다 훨씬 더 증상이 좋아졌다. 드디어 조심스레 팔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절대 올려지지 않던 팔이 이젠 귀에 닿을 만큼 올라갔다. 몸을 일으켜 친구가 보내준 볼빨간 사춘기의 신곡들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노래는 아직 귀에 익지 않아서인지 아주 좋은 줄 모르겠는데, 목소리는 참 좋다! 왠지 저 목소리로 들으면 뽕짝이라도 아주 좋을 것 같다.


노트북을 켜고 급한 메일 확인하고 간단한 업무를 하면서, 통증이 줄어서 다행이긴 한데, 이거 또 일하다보면 다시 근육이 굳을테고, 그러면 또 아픈거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든다. 여전히 승모근의 피로는 그대로였고, 손을 대기만 해도 아팠다.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연휴가 끝나면 몰려들 그 어마어마한 일을 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연휴 시작!


어쨌거나 연휴 시작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애들을 만나는 날이다.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애들이랑 재밌게 놀아야지. 이번에는 부산에 가서도 부모님과 잘 지내고 돌아와야지. 아버지와 정치 얘기로 다투지 말고, 어머니와 종교 문제로 다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본다.


벌써 꽤 오래 전. 애들 엄마가 부산에 따라가지 않으면서 명절마다 혼자 애들을 데리고 부산을 다녀왔는데, 그러다 재작년쯤 본인도 명절에 애들과 집에 가고 싶다는 애들 엄마의 요청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그도 명절을 애들과 보내고 싶을 거란 생각을 못했다. 장모님은 가까이 사시니, 평소에도 자주 만나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명절 두 번과 여름 휴가 한 번, 일년에 겨우 3번 밖에 아이들을 못 보니, 당연히 명절은 부산에서 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애들엄마의 요청은 당연한 것이어서 곧바로 수락했다. 여름 휴가를 다녀오면 오래지 않아 추석이 오니, 설은 부산에서 보내고, 추석은 서울의 처가에서 보내기로 약속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자 부산에 갈 예정이다. 아이들이 없으니 기차표를 구하는 것도 한결 더 여유로웠다. 정 안되면 입석이라도 타도 된다 싶었다. 이번엔 연휴가 워낙 길어서 뒤늦게 알아보아도 표가 있었다. 평소엔 애들 때문에 고려도 하지 못했던 새마을과 무궁화를 중심으로 알아봤다. 고속열차에 비해 1시간, 2시간 가량 늦게 도착하지만 비용은 훨씬 더 쌌다.


그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기차를 예매해두었는데, 고향 친구(대학 동기)와 통화 하다가 그들 형제가 일요일 새벽에 차를 몰고 내려간다는 얘길 들었다. 애들이 없다면 새벽에 내려가는 것도 가능하다. 게대가 기찻값도 아끼고, 오랜만에 걔네와 수다도 떨고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곧바로 내려가는 기차를 취소하고, 친구 동생 차에 한자리를 예약했다.


게다가 이번 추석엔 어머니가 어쩐 일로 먼저 우리끼리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아직 입금이 되진 않았지만, 마침 지난 번에 동네 쉼 활동가 프로그램에 뽑혀서 휴가비가 지원되니, 그 돈으로 짧게 놀다와야겠다 싶었다. 아직 어딜 갈지는 정하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원하는 곳으로 갈 생각이다.


아직 짐을 싸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무슨 책을 가져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 권을 가져갈지, 두 권을 가져갈지. 가방이 작아서 두 권은 무리다 싶어 한 권으로 정하려는데, 최근에 구매한 책이 좀 많아서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이책 저책을 놓고 저울질하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 계단]으로 정했다. 최근 다시 읽은 [제노사이드]의 영향이 컸다. 얼른 이 책을 다 읽고 [KN의 비극]도 읽어야지.
















자, 이제 씻고 애들 만나러 가야겠다. 그 전에 볼빨간 사춘기 노래 한 번만 더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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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3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감은빛 2017-10-03 16:16   좋아요 1 | URL
늘 먼저 인사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겁고 편안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7-10-11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카노 가즈아키 책 참 재미있어요. 즐겁고 편안한 휴식시작 되셨기를...

감은빛 2017-10-19 20:1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재밌었어요.
이제 사놓은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할텐데,
책에 손 댈 여유가 안 생기네요. ㅠ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