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박질과 성격


작은 아이는 늘 뛰어다닌다.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뛴다.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닌다. 큰 아이는 조금 달랐다. 가끔은 뛰어다니기도 했지만, 주로 걸었던 것 같다. 나는 어땠을까?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늘 뛰어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늘 뛴다. 아침에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으로 갈때 뛰고, 일터 건물 안에서 화장실을 다녀 올때도 뛰고, 회의실로 이동할 때도 뛰고, 외근을 나갈 때에도 늘 뛴다. 퇴근후 버스를 타러 가거나, 버스를 내려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도 뛰고, 약속이 있어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도 뛴다.


작은 아이가 뛰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어린이들은 늘 뛰는 구나. 나도 늘 뛰는데, 그럼 나도 아직 어린아이처럼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큰 아이는 그렇게 뛰지 않았던 것 같다고 기억하면서, 그럼 이건 성격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큰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다녔다는 기억이 거의 없기도 하고, 어느 기억 때문에 잘 뛰지 않는 아이라고 기억한다. 한 서너살 때였다. 잡화점 지하에서 아이가 어느 물건에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내가 물건을 찾기 위해 진열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든 아이가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불안한 마음에 나를 찾기 위해 우다다다 뛰어다녔던 것이다. 아이의 뜀박질 소리만 듣고도, 녀석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소리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나도 뛰었다. 마침내 진열장 모퉁이에서 마주쳤을 때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안겼다. 나는 녀석을 번쩍 안아 올려서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아빠를 잃어버린 줄 알고 깜짝 놀랐으리라. 그러면 큰 소리로 아빠를 불러 찾았으면, 내가 대답을 했을텐데, 녀석은 겁을 먹고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암튼 그때 아이가 그렇게 뛰었던 것이 의외였던 기억이 확실히 남아있다.


또 한 번은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은데, 집앞 공터에 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걸, 애들 엄마가 보고 얘기해주었던 기억이다. 큰 아이는 유난히 겁이 많아 울퉁불퉁 바닥이 고르지 않은 흙길을 무서워했다. 넘어질까봐 겁을 먹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신나서 뛰어노는데, 우리 아이 혼자만 꽤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고 한다. 그 공터에 아이 손을 잡고 가끔 놀러 가는데, 아이는 조금만 경사가 진 길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양 팔을 벌렸다. 안아 달라는 뜻이었다. 나와 둘이서 그렇게 산책을 나가서도 아이는 내 손을 꼭 잡은 상태에서만 뛰어 놀았다. 작은 아이는 반대다. 내가 손을 잡고 있으면, 내 손을 뿌리치고 혼자 뛰어다닌다. 이건 확실히 성격(혹은 기질) 차이인것 같다.


서오능 한 바퀴


크리스마스 날 점심 무렵 아이들을 만났다. 일주일 만의 만남이었다. 지난 주는 저녁 내내 일정이 있었다. 평일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해서,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분식집에서 가볍게 배를 채우고 어디론가 놀러가려고 했다. 아이들은 공원에 가자고 했는데, 아주 작은 소공원 말고, 좀 놀만한 곳은 가장 가까운 공원조차도 버스나 지하철로 한참을 이동해야 했다. 그러다가 서오능이 생각났다. 그나마 버스 이동거리가 짧은 곳이었다. 예전에 차를 팔기 전에는 주말에 종종 갔었다. 몇 해 전 차를 팔고 나서는 한번도 안 갔던 것 같다.


버스를 내려 입구를 찾는데, 풍경이 많이 변해있었다. 대대적인 공사를 한 모양이다. 얼마나 오래 안 왔던 건지 실감했다. 작은 아이는 우리 중 제일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던 모양이다. 입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옛날 기억만 떠올려 익숙한 풍경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입구를 지나쳐 더 걸었다. 결국 한참을 들어가도 내 기억에 있던 그 입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아까 지나쳤던 입구로 돌아가야 했다. 작은 아이는 본인 말이 맞았다며 큰 소리를 냈고, 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서오능 안에서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았다. 나도 가끔 그 장난에 합류했다가 아이들 사진을 찍다가 하면서 돌아다녔다. 예전에 마지막으로 왔을 때, 장희빈의 묘 근처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 아이들 둘 다 그 오르막을 오르기를 거부해서 다시 돌아나왔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과연 한 바퀴를 다 걷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좀 컸으니 가능할 수 있겠다고 내심 기대하며 걸었다.


이번에 아이들은 장희빈 묘를 만나기도 전에 다리가 아프다며, 배가 고프다며, 피곤하다며, 졸리다며 다시 돌아가자고 졸랐다. 나는 이런저런 말들로 좀 설득을 해보다가 안 되자, 그냥 애들을 두고 혼자 성큼성큼 걸었다. 일단 장희빈 묘까지 가서 다시 생각해볼 예정이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자신들을 버리고 올라가버리자 불안했는지 결국 장희빈 묘까지 따라왔다. 묘 앞에서 잠시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고 돌아나와서 오르막길로 더 올라갈 것인지 내리막길로 가서 입구로 돌아갈 것인지 정해야 했다. 아이들은 양쪽에서 내 팔을 하나씩 붙잡고 찰싹 달라붙어서 돌아가자고 졸랐다. 나는 몇 년 전에 왔을 때, 여기서 너희가 돌아가자고 해서 그냥 갔는데, 오늘은 꼭 한 바퀴를 돌아보고 싶다고 설명하고, 일단 갈 수 있는데까지는 좀 더 가보자고 했다. 더 떼를 쓸 줄 알았던니, 아이들은 어쨌든 따라왔다.


애들에겐 조금 가파른 오르막을 다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내리막길로 가면 더 크게 한 바퀴를 도는 셈이고, 좀 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길은 더 힘들지 모르나, 시간과 거리상으로는 더 이득이었다. 아이들에게 설명했더니 그냥 왔던 길로 되돌아 가자고 했다. 나는 이제 그렇게 돌아가는 길이 더 멀거라고, 여기 오르막이 제일 빠른 길일거라고 설득했다. 아이들은 그 흙길을 무서워했다. 양 손으로 아이들 손을 꼭 붙들고 오르막을 올랐다. 조금만 오르면 평탄한 길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크고 작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하나 만났고, 조금 더 앞으로 가서 아주 길고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만났다. 아이들은 조금 무서워도 내 손을 꼭 잡고 따라왔는데, 여기서는 둘 다 무척 겁을 내며 걸음을 멈췄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가파른 계단이었다. 폭이 좁아서 양 쪽에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갈 수 없었다. 하지만 둘 다 내 손을 잡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었다. 아니 아이들은 무서워서 못 내려가겠다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간신히 설득해서 작은 아이를 옆에 두고 큰 아이는 왼손을 뒤로 뻗어 손을 잡고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내가 마치 아이들을 세뇌시키듯 안 무섭다 안 무섭다 하고 반복해서 말했다. 작은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따라했다. 이 계단은 가파르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또 길어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긴 계단을 모두 내려왔다. 밑에서 우리가 내려왔던 계단을 올려다보며 아이들에게 잘 했다고 격려하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남은 길은 꼬불꼬불 돌아 내려가는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도중에 벤치를 만나서 잠시 쉬었다가 왕릉 하나를 더 살펴보고 입구로 돌아갔다.


밑에서 찍은 사진이라 별로 가팔라 보이지 않는데, 위에서 볼때는 엄청 가팔랐다.



나는 처음으로 한 바퀴를 다 돌아서 무척 재미있었다. 아이들도 신나하긴 했지만, 그 계단을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입구를 나오자마자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 배가 고프다 난리가 났다. 근처에 음식점들이 많아서 바로 뭔가 사먹을까 생각했는데, 큰 아이가 계속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싫다고 했다. 결국 버스를 타고 동네로 돌아가서 닭한마리 집을 갔다. 큰 아이는 처음에 그 집도 싫다고 했으나, 달리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아이가 양보했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떡 사리를 시켜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다시 왔더니 아이들도 예상외로 맛있게 먹었다.


재밌게 놀면서 산책도 하고, 맛난 음식으로 배도 채웠으니 성공이었다. 다음 날이 휴일이라면 함께 늦잠을 자며,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장난을 칠 수 있을 텐데, 월요일이라 아쉬웠다. 게다가 난 출근할 생각에 급 우울해졌다. 닭과 함께 소주 한 병을 비웠건만, 술이 땡겨서 막걸리를 샀다. 아이들은 과자를 먹고, 난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책 읽고 싶어, 기타 치고 싶어















올해 마지막으로 구매한 책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들이다. 예전에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앞부분만 조금 읽다 말았는데, 그 책부터 먼저 읽고 하나씩 마저 읽어야지. 연말에 바쁘긴 하지만 꼭 하루 휴가를 내서 책을 읽어야겠다.



아이와 함께 갔던 광화문 집회에서 "근혜는 아니다 근혜는 아니다" 노래를 들은 큰 아이가 크리스마스 노래라고 알아듣길래, 집에 와서 이 영상을 보여줬다. Walk off the Earth 는 예전에도 기타 하나를 다섯명이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펠리즈 나비다]를 그렇게 연주했다.



이 동영상은 한동안 계속 무한 반복으로 봤었다. 기타를 다섯명이 치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연주 솜씨가 훌륭해서 더 놀라웠고, 세 명의 보컬 모두 개성있는, 매력적인 목소리가 좋아서 또 놀라웠다. 처음엔 여성 보컬의 외모에 자꾸 눈이 갔는데, 자꾸 반복해서 보다보니 화면 맨 오른쪽에 수염 기른 아저씨가 제일 귀여워서 그 아저씨만 보고 있게 되었다.


아, 다시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고향집에 있는 기타는 네크가 휘어서 못 쓸텐데, 하나 새로 살까 말까 하는 생각을 벌써 2년째 하고 있다. 사려니 사놓고 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묵혀둘까봐 걱정인데, 가끔 이렇게 치고 싶은 때는 아쉽다. 큰 아이가 기타에 관심을 가지면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그냥 확 사버릴텐데, 녀석은 가야금과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2년 전 술 자리에서 나와 같이 기타가 치고 싶다고 막 공감했던, 그래서 곧바로 기타를 샀던 친한 형은 이후 기타를 몇 번 만져보지도 않고 방치해 두고 있다고 했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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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2-2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께서는 기타를 치시는군요^^: 자신만의 악기를 가지고 계신분들이 부럽습니다.

감은빛 2016-12-28 17:09   좋아요 1 | URL
기타를 안 친지 거의 20년이 다 되었어요.
물론 그 동안 가끔 기타를 잡아서 몇 번 튕겨볼 기회는 있었지만,
제대로 안 친지 벌써 그만큼 되었네요.

이젠 코드도 많이 잊어버렸고, 주법도 예전만큼 안 되겠지만,
다시 연습하다보면 또 금방 되리라 생각해요.
문제는 늘 시간이 없다는 것이겠죠.

마녀고양이 2016-12-2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삼릉이랑 서오릉 완전 좋아요.
사람도 많지 않고, 고즈넉하고, 다리 운동하기 딱 좋고.

음..... 출근할 생각을 하면 급우울해진다는 말에 백번 공감하며,
내년에는 즐거운 일, 행복한 일 가득하세요. ^^

감은빛 2016-12-28 17:10   좋아요 0 | URL
서삼릉은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다음에 가봐야겠네요.

마녀고양이님도 내년에는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yureka01 2017-01-0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또 시간의 트랙위를 달려야죠..
한해도 늘 활기차게 달려기로 해요..

새해도 화이팅~되시길 바랍니다 ~

서니데이 2017-01-0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더 좋은 일들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은빛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