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우선


바쁜 와중에 강의 청탁을 받았다. 바빠서 왠만하면 안 받으려 했다. 근데, 일부러 추천해주신 분이 계시다는 말씀에 마음을 바꿨다.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보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 최근 지출이 늘어서 재정적으로 쪼들리기도 했다. 강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까봐 걱정이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밤이라도 새서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리고 정말 이틀 밤을 새서 강의 원고를 썼다. 근데 담당자가 이론 강의가 아닌 실무 강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보낸 원고는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에서부터 한 발짝씩 문을 열고 들어와 방을 하나씩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는데, 앞 부분의 큰 그림과 몇몇 세부 내용을 사족으로 본 것이다. 이런 태도를 예전에도 몇 번 겪었다. 실제 강의는 최대한 담당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더라도 큰 그림을 놓치지 않고 가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도 사전에 담당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원고를 보낸 것은 내 잘못이 분명하다. 그 담당자의 문자를 읽었을 때, 그래서 부끄러웠다. 나중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 의도를 설명하고, 그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강의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담당자도 내 설명을 듣고 받아들였다. 


어쨌든 강의는 무조건 듣는 사람이 필요로하는 내용으로 해야한다. 뻔히 다 아는 내용을 혼자 떠드는 강사는 아무 쓸모없다. 듣는 사람들이 뭐 하나라도 꼭 챙겨갈 수 있는 강의를 만들어보겠다.



악몽이라고 해야할까? 불쾌한 꿈이라고 해야할까? 최근 깊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깬다. 그리고 깰때마다 꿈 때문에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다양한 꿈을 꾸곤 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묘하게 기분 나쁜 내용이라는 것. 그러니까 확실히 기분 나쁜 요소가 꼭 포함된 꿈이다. 그럼에도 설레게 하는 요소가 꼭 있다. 이러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방식이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다시 군대에 입대한다. (아오! 진짜 민방위도 끝난는데 다시 입대라니!) 말도 안되는 미션을 수행하며 고생하다가 누군가 면회를 온다. (실제 군생활에선 부모님께서 신병교육대 끝나는 날 딱 한 번 찾아온 걸 제외하면 한번도 면회 온 적이 없었다.) 그 누군가는 나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준다. 그러면 당연히 내가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잠에서 깬 후의 내가 다시 떠올려보면 누군지 모르겠다. 암튼 꿈 속 기준으로 그 누군가와 함께 짧고 즐거운 면회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왔다가 갑자기 뭔가 큰 일이 벌어져서 실전에 투입된다. 주위 다른 병사들은 모두 젊고 경험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만, 나는 실제 군생활 당시 전방 철책선 근무 경험도 있고 훈련을 하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와중에 누군지 모를 적이 총격을 가하고, 나는 꿈 속 시점에선 신병이지만, 병사들을 이끌어 전략적 행동으로 적을 격파한다. 하지만 우리 소대는 큰 피해를 입고 흩어지게 되고, 우리 분대는 어느 기관 사수 임무를 받는데, 대규모 적의 습격으로 동료들이 차례로 전사하고, 나 혼자 전장을 이탈하여 도망친다. 도망치는 와중에 정부 권력자들과 돈 많은 기업인들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이미 안전한 지대로 다 도망치고, 시민들은 남겨졌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군은 대비 없이 실전에 임했다가 큰 피해를 입고 각개 격파 당해 국민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후방에 각개 격파당한 패잔병들을 모아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도망 중에 만난 군인들이 내게도 그쪽으로 합류할 것을 명령하는데, 나는 억지로 다시 군대에 끌려와 전쟁에 휘말린 것도 억울한데, 다시 합류할 순 없다고 그들에게서 도망친다. 도망 중에 갑자기 아이들이 생각나고 (아무리 꿈속이지만 느닷없이 아이들이 나오다니!)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애들 엄마와 애들이 머무는)으로 찾아갔다가 폐허가 된 마을에 생존자가 없는 상태를 발견하고 울다가 잠에서 깬다.


깬 상태가 무지 슬프고 막막한 감정이었기에 그 감정에 휩싸여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결국 말도 안되는 꿈이란 걸 깨닫고 다시 입대한다는 설정 자체에 화가 나서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다 문득 짧았던 면회 시간이 떠오르고 누군지 모르지만 나를 아끼고 사랑해줬던 그 느낌만 남는다. 특히 현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일이 없다보니 꿈에서 느낀 그것이 무척 그립고 소중한 기분이 든다. 결국 별것도 아닌 꿈일 뿐이지만, 그 꿈의 느낌과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본다.


운영위원장


먹고 살기 위해 돈 버는 일외에 다른 일과 활동을 병행하면서 살아온 지 제법 오래 되었다. 돈 한 푼 못 버는 일이지만, 의무감, 소속감, 보람, 즐거움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계속해왔다. 그런 일들은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해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최근 몇 년은 그런 일들을 계속 줄여왔다. 이제 돈 버는 일만해도 너무 힘들고 버거웠기 때문이다. 올해는 다시 역할이 좀 늘어났다.


그 중에 하나는 녹색당 지역 모임에서 오랜만에 다시 운영위원을 맡은 것이다. 초기부터 계속 운영위원을 맡았었고, 긴 시간동안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해야지 생각했던 게, 3년을 직책없이 평 당원으로 지냈다. 물론 그래도 활동당원이라 불리며 활동은 계속했다. 직책만 맡지 않았을 뿐. 올해는 다시 주도적으로 당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운영위원에 지원했다. 그리고 운영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 


첫 운영위 회의에서 여성 1인을 포함한 공동운영위원장을 호선해야 했는데, 아무도 지원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누군가 나를 추천했고, 나도 운영위원은 다시 하고 싶었지만, 대외적으로 위원장까지 맡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후 길게 논의가 이어줄수록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명백해보였다. 결국 그 깨달음이 1년만 위원장을 맡자라는 판단으로 이어져 공동운영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녹색당 당규 상으로 여성을 포함한 공동운영위원장을 선출해야 하기에, 나 혼자는 운영위원장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일 여성 운영위원들은 모두 여러 사정을 이유로 어렵다고 했다. 결국 일주일 이상 시간을 두고 열린 두 번째 운영위에서 한 분이 다시 공동운영위원장 직을 맡기로 하면서 남녀 각 1인의 공동운영위원장단이 구성되었다. 올해는 녹색당 활동을 통해 여러가지 추억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또 다른 단체가 있다. 지역의 환경단체로 2년 전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올해가 3년째다. 며칠 전 올해 처음 운영위 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에서도 운영위원장 직을 맡을 뻔했다. 신임 운영위원을 제외하고 연임한 운영위원 중에 위원장을 뽑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두 명의 연임한 운영위원 중 다른 한 분이 나를 추천하는 바람에, 다들 내 얼굴만 쳐다보는 상황이 되었다. 이거 가만히 있다가는 또 운영위원장 직을 하나 더 맡겠구나 싶어 다급한 마음에 현재로선 어렵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다행히 바로 운영위원장을 선출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다들 공감했다. 한 서너달을 운영위원장을 공석으로 두고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어쩌다가 이 단체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면 그 무게감에 어깨가 무너져내릴 뻔했다. 다행이다.


늘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잘 거절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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