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영향


집에 티비가 없어서 남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면서부터 20년 가까이 티비 없이 지냈더니, 가끔 어딘가에서 티비를 보면 낯선 기분이 든다. 물론 티비가 없어도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보고 싶은 건 대부분 찾아서 보는 편이다. 중요한 스포츠 경기나 영화는 종종 본다. 그러니 티비가 없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난 호흡이 긴 드라마 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가 아무래도 더 좋다. 드라마는 매우 잘 만들어서 긴장감을 팽팽하게 가져가지 않으면 늘 지루함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본 드라마가 거의 없다. 유명한 드라마도 아예 한번도 안 본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한다. 대략 2년쯤 전부터 우리 집에 오면 노트북으로 늘 드라마 켜 달라고 난리다. 예전엔 주로 [청춘시대]를 봤다. 시즌 1과 2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략 서너번 이상 보더니, 아예 장면과 대사를 다 외울 지경이다.


아이들은 얼마전까지는 [뷰티 인사이드]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영화와는 분위기가 완전 달라서 난 처음부터 별로였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영화보다 더 좋아했다. 최근에는 [응답하라 1994]를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다. 이번 설에 부산에 내려가면서 노트북을 가져갔다. HDMI 케이블로 화면이 큰 티비와 연결에 엄마에게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일하느라 바빴고, 겨우 시간이 나도 공중파에서 하는 막장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광고 없이 열심히 드라마를 봤다. 아까 말한 [응답하라 1994]였다.


내게도 딱 그 시절이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였기에, 드라마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X세대라고 앞선 선배들과 많이 다르다고 늘 자부했건만, 이제와 보면 뭐 그리 다를 바도 없었던 것 같다. 


암튼 드라마 덕분에 아이들과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휴대전화가 없었어. 라고 말하면 그럼 어떻게 연락했냐고 묻는다. 집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썼다고 했다.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었고, 유튜브도 없었다고 말하면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삼천포가 서태지 카세트 테이프를 뜯어서 거꾸로 감다가 윤진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묻길래, 먼지가 잔뜩 묻은 비틀즈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서 보여줬다. 노래를 들려줘보려고 낡은 미니 콤퍼넌트에 테이프를 넣어봤는데, 고장났는지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삐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삐삐를 보면 그 옛날 커피숍 테이블마다 놓여있던 전화기들이 생각난다. 일부러 여자아이들과 연락 주고받기 편하게 웬만하면 커피숍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나경이가 매직 아이를 보지 못해 답답해 하는 모습이 나왔다. 애들은 저게 대체 뭔데 저렇게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해했다. 내게 아빠는 볼 수 있었어? 묻는다. 기억에 몇 개의 그림들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매직 아이 책을 요즘도 팔지 않을까? 알라딘에 검색해보았다. 한 권 있었다. 그럼 혹시 중고 매장에는? 아쉽게도 부산에 있는 매장들엔 그 책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주말에 작은 아이와 매직 아이 책을 사러 알라딘 중고 매장으로 향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매장에 딱 1권이 있었다. 아이가 원하는 만화책도 사주고, 나도 읽고 싶었던 인지 심리학 책을 골랐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빨리 매직 아이 책을 보고 싶었다. 과연 다시 보면 그 입체 그림이 보일까?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가 눈동자를 모으고 책을 펼쳤다. 처음엔 계속 해도 안 보이고 눈만 아팠다. 작은 아이는 자기도 해보겠다고 계속 책을 뺐어갔다. 요령을 아무리 가르쳐줘도 잘 따라하지 못했다. 반복 또 반복. 계속 실패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딱 입체 화면이 열렸다. 그 다음부턴 다른 그림들도 잘 보였다. 물론 어떤 그림은 아무리 봐도 잘 안보이는 것도 있었다. 작은 아이는 요령을 잘 터득하지 못하자 금방 흥미를 잃었다. 만화책으로 눈을 돌리더니 더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직 큰 아이에겐 보여주지 못했다. 과연 큰 아이는 볼 수 있을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드라마 덕분에 한동안 옛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만 시간 배경과 달리 공간 배경이 서울이라는 점은 별로다. 아무래도 같은 시대라도 부산과 서울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들 중 마산 출신이 많아 익숙한 사투리는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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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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