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낮은 언덕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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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님. 계속 소설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 유학 이후의 소설부터는 읽다말고 종종 졸아서 문제지만... 언젠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당신의 글에 어울리는 독자가 되고 싶네요.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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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보다는 김어준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리뷰라 안 읽는 것도 좋습니다. 정치 이야기도 없고 좀 길어서요


며칠전 덱스터 시즌 6 첫 번째 에피소드를 불법 다운로드받아 보는데 누가 이런 자막을 넣었더라. ‘4대강, BBK, 미국산 소고기 이것들 전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아니 우리가 무슨 불법 라디오 방송으로 반항하는 ‘볼륨을 높여라’ 같은 틴에이저 무비를 찍는 것도 아니고, 내일이면 회사에 출근할 점잖은 어른들이 은밀한 밤, 팟 캐스트에 올라오는 한 프로그램에 꽂혀서 몸과 맘이 단 건 무엇때문일까. 아니 누구때문일까. 
 

이 책에는 김어준 식으로 말하면 3명의 중요한 우리 인물이 나온다. 이명박도 나오고 박근혜도 나오고 이건희도 나오지만 우리 인물이 아니니 다 제외하고.
 

첫 번째 문제. 지금 말하는 이 사람은 누굴까? ‘이 사람이 가진 전부가 매력이지. 생긴 것부터. 여자들은 이 정도로 생긴 대통령을 갖고 싶어 해. 여자들은 이명박이 어디다 내놔도 부끄러운 대통령이야. 외국 정상들과 나란히 서 있는 장면, 보기 힘들어해. 외국에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1.이명박 2.김어준 3.조국 4.문재인. 5.안철수. (정답은 책에서)

김어준은 ‘사해동포적 진심에서’ 대중정치인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주려는 데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니 그럼 그렇게 끝을 내던가. 또 다른 인물이 나오는데?
 

두 번째 문제. ‘믿지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 아무리 지지율이 높게 나와도 그냥 던져버릴 수 있고, 지지율 1위도 역사를 위해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실제로 존재한다. 어떤 이념이나 이익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고결한 인간의 정신이다. 바로 그런 게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의 본질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혼신을 다하되, 그 안에 정작 자기는 없는 거’ 1.박근혜 2.안철수 3.문재인 4.조국 5. 이명박 (정답은 책에서)

세 번째 인물은 잠깐 덮어두자. 김어준은 누구 때문에 ‘나꼼수’를 시작하고 ‘닥치고 정치’를 쓴 걸까? 의심이 많은 나는 기획의도부터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는 ‘정치를 멀리하는 모두에게 이번만은 닥치고 정치를 외치고 싶거든’

아, 그 놈의 정치. 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집권여당이던 시절. 정치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품고있는 한 방송작가가 연예인 수첩 비슷하게 생긴 국회의원 수첩을 전달받고 벼락치기로 정당과 국회의원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국회의원은 연예인과 비슷했다. 방송국 대신 의원회관에 출근하고 매니저 대신 보좌관이 있다는 걸 뿐. (국회의원이 나오는 60분 휴먼 프로그램이었다는 것만 밝혀 두자)

이번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한 의원은 촬영이 끝난 후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와 의원님이 잡지 인터뷰 촬영이 있는데 괜찮은 코디네이터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말해 깜짝 놀랐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 뉴스에서 완벽한 T.P.O 메이크업을 볼 때마다 요즘은 누가 코디를 해주나 고소를 금치 못했지.

하지만 정치에 냉소적이던 내가 반년 동안 국회의원들을 하나둘 만나면서 깨달은 건, 여의도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의원회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책도 저울질해보고,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보면서. 아, 정치라는 게 이런 맛에서 하는구나. 세상에 이런 재미있는 게 다 있다니! 그래서 남자들이 다 거기 가 있는거구나!

다시 돌아오면. 딴지일보 김어준이 괜찮은 남자라는 건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일단 내 성격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이상한 사람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을 접었다. 일단 마음을 주면 난 다 줘버려야 하는 여자니까.

나꼼수를 들을 때도 불편한 게 많은 내 마음이, 어느날 빗장을 풀고 스스로 풀어진 건, 어떤 사람을 추억하는 그의 애통함 때문이었다. 그 원통한 마음이 문자로도 읽혀져서 선거에서는 그를 찍지도 않았던 내 마음까지 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마지막 세 번째 인물은 누구일까 아, 좀 슬픈 질문이라서 이번만은 주관식으로...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리고 공적 행사에선 검은 넥타이만 맨다. 내가 슬퍼하니까 어떤 새끼가 아예 삼년상 치르라고 빈정대기에. 그래 치를게 이 새끼야, 한 이후로. 봉하도 안 간다. 가서 경건하게 슬퍼하고 그러는 거 싫어. 체질에 안 맞아. 나중에 가서 웃을 거다. 그리고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연애가 됐든 일이 됐든 정치가 됐든 너무 괜찮았던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있나.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을 다 줘버렸기 때문에 혼자 우두커니 남아 상실감에 치를 떨어본 적이 있나. 그 단 하나의 사람이 없음을 진정으로 애통해하며 울어본 적이 있나... 뭔가를 상실한 후 우리의 삶은 그 전과 그 후로 나눠진다. 절대 그 전과 달라질 수 없다.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건 남자도 아니야. ‘남자들에게’서 시오노 나나미가 그랬다. 진짜 사랑을 해 본 사람은 평생 외롭지 않다고... 외롭지 않은 사람은 강할 수 있다고...

김어준은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라고 밥줄 끊고 입 틀어먹는 세상에 대고 '나꼼수' 라는 그 전까지는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프레임을 짜고 어처구니없는 아바타 방송도 한다. 왜? 

‘지금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건 그게 아니야. 자기 마음을 줄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이 배신당하지 않을 사람을 찾는 거지.’

‘사람들은 여의도가 얼마나 치열하고 비정한 욕망의 전장인지 잘 몰라. 그걸 모르면 그들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걸 알아야 좋은 정치인이 얼마나 드물며 그런 정치인을 드물게 발견했을 때 그들을 얼마나 아껴줘야 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 이런 거 잘 맞춘다. 나가수 1위 다 맞췄다‘

나도 신인 연예인 나오면 누가 뜰지 꽤 잘 맞추는 사람이지만 김어준. 어우. 나 이 책 읽고 감동 먹었어. 당신 진짠가봐. 나 사실 아무나 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진짜마음만은 잘 안 주고 소중하게 아끼는 편인데, 당신 좀 그래. 진짜인 거 같아. 못 생기고 뚱뚱한 여자의 마음은 줘도 안 받을 거 같아서 잘 사지 않는 책도 사서 읽었어. 이러면 아껴주는 걸까 싶어 리뷰도 다 쓰고있지 뭐야.

예전에 김제동이 막 개그맨으로 이름을 알릴 무렵. 그를 촬영한 적이 있다. 6mm 필름을 보는데 한시간짜리 테잎이 다 돌아가도록 그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했던 죽은 김광석을 말하고 있었다. 그 날의 그 슬픈 목소리. 석연치 않은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그 애통한 마음. 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도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진짜구나. 최근 그의 행보도 그런 면에서는 당연하다는 마음 뿐.

 
사람의, 사람을 향한 순정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있다... 

 

김어준은 말한다. 대통령은 행정가이면서 균형 감각도 있는 사상가여야 한다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한 나라의 최고권력자라면 아무리 국민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크더라도 사랑을 달라고 보챌 게 아니라 국민이 먼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 같은 정치 문외한이 보기에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예사롭지 않다. 2011년 일본에서 노다 총리가 당선되었고, 2012년 중국은 시진핑 주석국가체제, 같은 해 연말에는 미국의 오바마 재선, 러시아 푸틴의 징검다리 삼선이 기다리고 있다. 강성대국(!)에 들어선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할지도 모른다.

심장이 약한 나로서는 국내문제 뿐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제발 균형감각을 갖춘 대통령이 당선되길 바랄 뿐이지만... 뭐 다 상관없을 수도 있다. 2012년은 지구가 멸망할지 모르니까!

등소평의 유명한 말이 있다. 흑묘백묘(黑猫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여기서 쥐는 그 쥐가 아니지만 아, 정말 요즘 심정은 뭐가 됐든 꼴보기 싫은 쥐만 잘 잡으면 살 거 같은데... 동북아 정세 걱정까지 지평을 넓혀버린 이 말도 안 되는 리뷰를 어떻게 끝내야할 지 모르니 나 대신 김어준의 마지막의 말로 끝내자.

 '이제 마지막 이야기군.(웃음) 이 말부터 해야겠다. 결국 OOO은 출마하지 않을지도 몰라’ (정답은 책에서)



 

  

 
 
 
낙원 1 블랙펜 클럽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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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스포일러가 없도록 썼지만 주의해서 읽으세요. 

일본 시추에이션 추리 드라마 중에 사건을 거꾸로 푸는 "33분 탐정" 이 있다. 일단 범인의 자백을 듣고 사건은 5분만에 해결되지만 쿠라마 로쿠로 탐정이 진범을 찾겠다고 방송시간 33분 동안 질질 끌면서 시간만 때우는 게 콘셉트다. 애초부터 진짜 범인을 찾으려고 한 게 아니니 마지막에 가서 밝혀지는 반전도 진범은 대개 처음의 그 범인이었다는 식의 허무 개그다. 그러니 시청자 역시 범인을 찾는데는 신경쓰지 않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고 헛다리 잡는 추리 수사나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 묘미가 실은 만만치 않은데 이런 장르가 실제로도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탈락계(다소 힘빠지는) 서스펜스'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범인이 밝혀진 상태에서 사건을 거꾸로 푸는 방식을 택한 추리소설이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낙원" 은 "모방범"의 후속작으로 1권 표지에 실린 줄거리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모방범' 사건으로부터 9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여전히 사건의 트라우마를 껴안고 살아가던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한 중년의 여자가 찾아와서 죽은 아들에게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평소 그림을 좋아하던 아들의 스케치북에 한 소녀가 부모에게 살해되어 16년간 마루 밑에 묻혀 있던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있다는 것. 하지만 사건이 밝혀진 것은 소년이 이미 교통사고로 죽고 난 후였다. 과연 소년은 그 가족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특수한 능력(사이코메트리)이 있었을까?

 

미야베 미유키는 히토시라는 죽은 소년이 정말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으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도하지만 사실 이 건 '맥거핀' 에 가깝다. '맥거핀'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 에서 나온 용어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극적 서스펜스를 높이기 위해 관객이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계속 헛다리를 짚게 만드는 일종의 속임수이다. 사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으니 바로 2권에 나오는 도이자키 가족의 이야기다. 누구 말 따나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바깥에 내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부모도 있었던 것이다.


부모에게 살해당해 16년 동안 집 아래 묻혀 있던 소녀 도이자키 아카네. 관계자들의 조사를 진행하던 시게코는 그녀의 배후에 있던 한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되고 딸의 죽음에 대한 부모들의 석연찮은 태도에도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자기 손으로 딸의 죽음을 불러와야 했던 도아자키 부부의 비극은 어디서 연유했을까?


 
도아자키 가족의 비극은 우연히 화재가 일어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6년 전 당시 15살이었던 불량소녀 도이자키 아카네를 부모가 실수로 목 졸라 죽인 다음 마루 밑에 묻었다고 실토한 것이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라 조사 후 도이자키 부부는 이사를 떠나 잠적해버리고 마에하타 시게코는 남겨진 그 주변 인물들(친척, 회사, 이웃 등)을 하나 둘 찾아다니면서 가족의 사연을 추적하게 된다. 동료 추리소설가인 교구코 나쓰히코와 마찬가지로 다소 장황설로 흐를 때도 있지만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촘총한 이 그물망이야말로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가족이 그렇듯이 가족간의 관계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당사자들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사이코메트리'를 굳이 불러오지 않아도 우리에게도 '제3의 눈' 이 있는 것이다.

도이자키 부부는 버블경제 시대에 평범한 중산층(다소 서민에 가깝다)이지만 주위 이웃들과 왕래가 별로 없는 약간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다행히 작은딸 세이코는 성품이 밝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예민하고 자아가 강한 큰딸 아카네는 답답함을 느낀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서로 잘 안 맞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천사표 동생과 비교되면서 더 삐뚤어지고 급기야 탈선의 길로 빠져든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좋은 예 나쁜 예'가 있듯이 그녀에게는 하필이면 '나쁜 예'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시게코는 문득 예전에 취재 때문에 만난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은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라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결정권은 그의 손 안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이자키 아카네의 불행을 결정지은 것은 가족. 그 중에서도 여동생이 아닐까? 어른이 된 동생 세이코(당시 9살로 집을 떠나 있었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한다)는 히토시 일로 알게 된 마에하타 시케고에게 왜 부모님이 언니를 죽였는지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이 세상 모든 언니와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야베 미유키는 언니에 대한 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작품은 제 꿈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제게 또 한 명의 언니가 있는데, 제가 모르는 사이에 살해되었으며, 그 시신이 집 마루 밑에 묻혀 있다- 는 내용의 꿈이었습니다. '또 한 명'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제게 진짜 언니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언니가 있는데 어릴 때 같은 방을 쓰는 언니의 일기장을 딱 한번 훔쳐본 적이 있다. 하필이면 그 안에 아빠가 동생(=나)을 더 좋아하는 거 같다 는 내용이 쓰여 있었고 나는 너무 놀라 그 후로 다시는 언니의 일기장을 뒤져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 했다.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둘째 때문에 양보만 한다며 일찍 태어나는 건 손해라고 생각하지만 둘째는 둘째대로 첫째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태어난 인형(?)이라는 후발주자의 안타까움이 있다. 자매 관계는 그런 것이다. 
 

언니와 내가 그랬듯이 네 살 터울인 여자 조카를 보면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나름 눈에 안 보이는 경쟁이 치열하다. 언니가 잘 못 한 게 있으면 동생이 몰래 고자질하고 동생이 야단 맞고 있으면 언니가 고거 참 쌤통이다 하면서 기분 좋아하는 게 보여서 재미있다. 그러다가도 부모가 자리를 비우면 둘이서 챙겨주고 따르고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언니의 딸인 조카들을 보면서 나는 언니와 나의 관계를 되돌아 보는 일이 더러 생기는데 액자소설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의 '단장' 부분도 그러하다. 작가는 이미 죽은 도아자키 아카네 대신 초등학생으로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귀여운 반항아 사토 마사코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시케고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복도 끝에 서 있는 저 아이는 어린 아카네다. 여기에도 또 아카네가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불완전하다. 몸도 생각도 크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더러 실수도 저지른다. 그러나 아카네라는 소녀의 불행은 실수만 저지르고 어른이 되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반성할 시간을 갖지 못 한 것이다. 결코 용서 못 할 과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도 어른이 되었다면 죄값을 치루고 옆집소녀 나오미처럼 한때 불량청소년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쌍둥이 엄마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악을 옹호해서는 안 되지만 미야베 미유키 역시 그 점을 안타깝게 여겼을 것이다.

이 그림이 슬프고 쓸쓸한 건, 히토시가 아카네란 여자아이를 애도하고 있기 때문이야. 초능력이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르지만, 특별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 있잖아? 히토시에게는 그게 있었던 거야.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눈, 제3의 눈 말이야. 그게 마음 속에 있는 거야

 

본성이 맑고 선한 아이였던 히토시는 나이는 어렸지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것을 '사이코메트리'라고 부른다. 소년은 아름다운 것도 보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추한 것도 보았다.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기억에서 불륜과 성추행을 목격했고 우연히 '모방범'의 산장도 목격했다. 어린 아이에게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세계였고 종종 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또래인 사토 마사코와 달리 도망가지 않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종이쪽지를 봉인해버렸던 소녀와 달리 히토시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능력인 그림으로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죽음이었지만 말이다.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처럼 이 세상을 보는 '제3의 눈'을 가진 사람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예술가(=작가)일 것이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소설보다 드라마보다 더 흥미롭다고 하지만 굳이 책을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세상에 진실이 있다면 좀 더 똑똑히 보기 위해서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히토시를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에 메스를 들이대고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전하려고 한 것이다.

이게 바로 내부에 있는 사람은 모르고, 바깥에서 온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 '가족의 습성' 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이코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 것은, 도아자키 부부가 딸만은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솜씨가 서툰 마술사의 클로즈업 매직 같은 것이다. 정면에서 보는 관객들은 모른다. 하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에겐 그 속임수가 보인다.


다만 의문이 있다면 도이자키 세이코라는 여동생의 존재이다. 나는 혹시 그녀가 범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동생이 실수로 언니를 죽이고 부모는 이 사실을 덮기 위해서 이 사건을 무덤까지 끌고가려고 한다고. 일부러 나 같은 독자의 눈을 흐리게 하기 위해 '어딘가 차가워보이지 않아?' 라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런 암시도 몇 번 주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미야베 미유키가 그녀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세이코는 아름다운 여자다. 타고난 천성도 천사같은 성격이라 주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 그래서 이를 질투한 언니에게 종종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부모가 언니를 죽인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남편하고 이혼까지 당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어린 시절이라 언니를 잘 기억하지도 못 한다. (나는 살인을 저지른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부모 말로는 사건 당시 집에 있지도 않았다는 점이 더 수상하다. 아홉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말이다. 읽으면 읽을 수록 남편 다쓰짱이나 하기타니 도시코에게 어리광이나 부리는 등 점점 더 안 좋은 모습이고 어쩌면 부모나 작가나 세이코를 변명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언니를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세이코는 딸국질을 했다. "도이자키 아카네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엄마나 아빠나 훌륭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은 저를 위해 언니를 그렇게 만들었던 거예요. 저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신 거죠. 저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죠?" 시게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목처럼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낙원'에 대해 얘기해 보자. 우리 인간이 기억하지 못 하지만 늘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 어떤 사람은 현 생애에서 그 장소를 발견하는 행운도 누리지만 대개는 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유토피아. 그 '낙원' 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부모는 세이코의 행복을 위해서 또 다른 딸을 죽였지만 그 딸이 술에 취해 이렇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낙원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그녀가 부모와는 다른 이유로 살인자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잃어버렸다 되찾은 손에는 당연히 피가 묻어있다. 그 피 묻은 손으로 낙원에 들어갈 수는 없다. 아무리 작가가 면죄부를 주었지만 세이코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마에하타 게이코가 그토록 냉정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그런 찜찜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있잖아요. 행복해진다는 거, 참 어려운 거예요. 핏줄이 이어진 사람이란 말이죠. 끊어버려야만 할 때도 있는 법이에요. 쓸모없는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렇죠? 쓸모없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제 언니 말이에요. 제 부모님은 그렇게 해주셨어요. 그런 경우도, 있는 거예요. 마에하타 씨는 몰라. 절대 이해 못해.


이 소설과는 상관없는 사실이겠지만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나와 세이코처럼 여동생이다. 우리 여동생들은 살아남아 여동생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
  

시게코는 내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이코의 표정. 마치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아카네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와, 수기에 적혀있는 말들. 그 안에 담겨있을 생각들. 살아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와 설명을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도이자키 세이코는 지금까지 아주 훌륭하게 그 작업을 해왔다. 확실히 그녀는 강하다. 그것을 차갑다고 해석하는 게- 아주 이상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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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 로렌 와이스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도입부처럼 말하자면 적어도 대한민국 여성 10만 명 정도는(어쩌면 1만명 밖에 안 될 수도...)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직업을 그만두고 나왔다. 다시 태어나도 20대에는 또 한번 선택하고 싶을만큼 멋진 일이었지만 10년 가까이 되니까 나는 너무 지쳐 버렸다. 한 순간이라도 다른 데 눈을 돌리면 의심부터 하고보는 질투심 많은 남편처럼 직업은 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 말고는 제대로 사생활을 누릴 자격도 없는 것 같았다. 동료들도 술에 취해 불평은 늘어놓았지만 다들 워낙 일을 즐기는 워커홀릭이었다. 한때는 새벽 두시에도 빈 사무실에 남아 취재 전화를 걸만큼 열정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일은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피 냄새를 쫒는 하이에나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이러려고 어른이 되었나.
 

어떤 사람은 그동안 틈틈히 공부를 해서 다른 직업으로 바로 디졸브를 하거나 동화 속 공주님 침실같은 카페를 차리거나 퇴직금을 모아서 세계 여행에 도전하기도 한다. 나보다 더 형편없이 술에 취해 있었던 캐나다의 사회부 기자 제레미 머서 역시 적어도 프랑스 파리의 서점 '세익스피어 & 컴퍼니' 로 도망가는 액션이라도 취했다. 하지만 게으른 나는 아무것도 전혀 계획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로 내 일이 나를 떠나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동생 말따나 낙오자의 변명이지만 약육강식 사회에서 도태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 가난하니까 좀 재미없어지긴 했다.
 

그 어느 누구도 가난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부자 아빠가 부자가 된 키라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패리스 힐튼처럼 힐튼 호텔에서 상속녀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공부의 신' 처럼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해야 하고 젊은 남녀는 '부자의 탄생'을 보면서 부자 애인을 만나는 꿈과 기술을 익혀야 한다. 내 세대에는 불가능하면 우리 아이라도 국제중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주부는 '내조의 여왕' 과 '강남엄마 따라잡기' 가 필수다. 

그러나 노력은 했지만 내가 머리가 나빠서 전문대학에 진학하고 겨우 들어간 직장도 비정규직인데다 얼굴이 못 생겨서 데이트 신청을 못 받아 노처녀로 늙고 있다면. 어쩌다 다행히 결혼은 했다고 치더라도 아파트 대출금 이자를 값느라 미용실에는 발길 끊은 지 오래고 아이 키우고 직장생활하느라 집에 돌아오면 자기계발은 커녕 자기 바쁜 불량주부라면. 이상한 일은 더 많은 시간을 더 열심히 더 노력해서 일하는데도 점점 더 우리는 더 차상위 계층의 가난뱅이로 올라가게 될 것이고 자기계발서에 따르면 노력하지 않았으니까 가난해졌다는 비난에 시달리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 책 첫머리에 나온 저자의 말을 옮기자면 그렇게 되면 좀 더 노력해보라는 둥, 세상을 위해서 일하라는 둥 설교하려는 놈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회를 위해 고생이 되더라도 노력한다 → 세상이 나아진다 → 떡고물을 얻어먹는다' 는 건 부자들이 듣기 좋으라고 내뱉는 말이지. 이렇게 하면 우수한 노예가 될 뿐이야... 거짓부렁! 뻥이야! 그만두는 게 좋다구.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나중에는 새 발의 피 같은 돈 부스러기나 얻어 쓸 수 있을 뿐이니까.

그에 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 좀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 → 몸부림친다 → 어떻게든 된다(무슨 수든 쓴다)' 는 생각을 해봐.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방식 아냐? 이거야말로 얼마나 인간답고 즐거우냔 말이야. 조오타. 이렇게 된 바에야 멋대로 살아볼까! 야호! 시시한 놈들이 지껄이는 말은 듣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보자. 우리 가난뱅이가 이 세상을 한바탕 걸지게 뒤집어보자! 좋아 좋아! 정했어! 축제란 말이다! 시끌벅적 한판이닷!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글이다. 근데 잠깐만 기다려! 당신들, 덤비지 말구 내 말 좀 들어봐!! 세상은 의외로 빡빡하다구. 기죽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근처 공원에서 매일 낮잠이나 자보라지! 그런 과격한 행동을 개시하면 어떻게 될까? 그 대답을 알기 위해서는 마쓰모토 하지메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 도쿄에 사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마쓰모토 하지메. 1974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올해 37세다. 어린시절 초등학교 비상연락망이 공란인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뛰어가야 했던 가난한 슬럼가인 가메이도에서 자라났고 어느날 갑자기 작가가 되려고 회사를 그만둔 아버지는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오늘은 먹을 것이 없다' 는 선언을 했다. 어머니는 한술 더 떠 고등학교 때 이혼을 한 후 자급자족 생활을 하겠다며 아나키스트가 되어 일본 전역을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 정말 그랬어요? 놀랍게도 너무나 쿨한 그의 대답이 돌아온다. 콩가루집안이죠. (ㅋㅋ)

본격적으로 그가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호세대학에 다니던 1990년대 후반쯤부터다. 등록금이 저렴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야간대학에서 노숙 동호회 활동을 하던 그는 대학 경영진이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돈벌기 노선으로 갈아타며 학교 규칙을 산더미같이 정하기 시작하자(요즘 한국의 대학을 보는 거 같다) 울화통이 치밀어서 '호세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우선 바가지를 씌우는 학생식당 앞에서 투쟁을 한 것을 시작으로 난로투쟁, 찌개투쟁, 술투쟁 같은 재미있는 투쟁을 몇 년 동안 이어갔다. 결국 대학에서 지나치게 소동을 피운 탓인지 출석을 안 했는데도 학점을 주어서 강제적으로 졸업했다.

거리로 나오니 이 역시 따분하기 짝이 없어서 또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결성했다. 역 앞에서 게릴라 음주회를 열고 악의 우두머리 롯폰기 힐스 오픈을 기념하여 크리스마스 찌개 집회를 열었으며 수백명 규모의 데모신청을 하고도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찰 바람맞히는 집회를 여는가 하면 밥상을 들고 월세 공짜를 위한 데모도 대대적으로 펼쳤다. 나는 지금까지 화염병 데모만이 데모인 줄 알았는데 본인의 말처럼 읽는 사람도 감탄하게 만드는 '아하, 정말 웅대하고 통쾌한 데모였다'  내친 김에 그는 선거에도 나갔다.

그렇다면 그도 인간인 이상 먹고 입고 잠은 자야할텐데 물가 비싼 일본에서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마쓰모토 하지메는 재활용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고엔지 기타나카 거리에서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을 하기 시작한다. 이를 시작으로 아는 사람, 지나가다 동료가 된 사람 등이 차례로 점포를 개업하여 어느덧 12호점(실제로는 7호점)에 이르렀다. 바가지 씌우는 경제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신품이 아닌 중고품을 돌려쓰는 가난뱅이 계급의 물자공급 센터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중심으로 그 동안의 데모와 선거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마추어의 반란(나카무라 유키 감독)" 이 만들어졌고 "가난뱅이의 역습" 이 책으로 나왔으며 작년 9월 한국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건만 그는 자비를 들여 3박 4일 동안 한국에 다녀갔다. 

여기까지가 '애고 어른이고 까부는 사람은 질색'이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평범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까뿐 마쓰모토 하지메의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성격이 재미가 없어 이 책에서 생활의 기술만 훔쳐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배려해 저자도 '여차할 때 써봄직한 가난뱅이 생활 기술' 을 책 처음에 넣었다. 집을 싸게 얻는 법. 밥값 절약 기술. 저렴한 이동 수단. 입을 옷 구하기. 미디어 만들기 등등.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터넷 '짠돌이' 라고 검색만 해도 나오는 이 같은 기술이 아니다. 옮긴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까부는 것도 하나의 절실한 표현이며 전략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현재 일본사회의 90퍼센트 이상이 가난뱅이 계급이라고 말하는 마쓰모토 하지메가 자발적 가난뱅이가 되었든 타발적 가난뱅이가 되었든 가난뱅이로 살기 위해서 누누이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지역에서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솔직히 가난뱅이라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믿어보려고 해도 부자보다는 가난한 삶이 재미없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은가. 그러나 일단 가난뱅이가 되어버렸다면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자신도 없다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다음 백수회관에 가입하고 친구를 찾아보자. 그리고 연대하자. 혹시 아는가 재미있는 일이 막 벌어질지?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면, 진짜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생활보호나 복지제도 같은 행정에 기대는 방법도 있지만 나라 사정이 안 좋아지는 순간 굶어죽을 수도 있는 방법인 만큼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다. 어느 날 수상이 책상다리를 하고 "돈 못 주겠어! 아무리 야단을 떨어도 못 준단 말이야!! 삶아 먹든 구워 먹든 맘대로 해!!" 하고 손바닷 뒤집듯 딴소리라도 하는 날에는 어쩌겠는가. (한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가능한 한 제멋대로 살아가기를 주제로 삼고 있으므로, 남의 힘을 빌리기 보다는 '가난뱅이가 뭉치면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가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작전을 챙기고자 한다. 그럴 때 상점가를 비롯한 지역이 무지 중요해지는 거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작전을 궁리해보자!

그 작전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고? 그럼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고 저자도 한번쯤 사겨봐도 나쁘지 않을 만큼 생겼다.
 

 



 
 
LAYLA 2010-03-23 00:16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근데 근데 근데...표지에 좀 공을 들였더라면 이 근사한 책이 더 잘 팔렸을거 같네요 아쉬움 ㅠㅠ

snowdrop 2010-03-23 08:51   URL
라일라님 오랜만이에요. 모두들 표지 얘기를 하네요.
근데 그 표지가 그쪽 방면에서 유명하신 분이 그린 건가봐요 ㅎㅎ
나름 명화 패러디인데 반응은 안습...
선거철을 맞아서 의미있는 책이 될 거 같습니다.

hanicare 2010-03-23 10:32   댓글달기 | URL
한 줄 한 줄 머리에 쏙쏙 박히는 명강의같네요,
스노우드랍님. 너무 오랫만인 거 아니에요????
칫칫칫.
(보고 싶었단 말씀!)

snowdrop 2010-03-23 19:15   URL
하니케어님 오랜만이에요 잊지않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동안 책을 너~~무 안 읽어서
양심상 서재활동은 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대부분이 책 속에 나오는 글을 옮긴 것에 불과해요
저자가 명강의를 한 셈이죠
올해는 오랜만에 책읽기 해로 정하고 활동 좀 할려구요~

 
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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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마음은 왜 변할까. 오징어잡이배를 아쉬워한 당신의 글을 드디어 보나요?


 
 
2009-10-21 02:32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