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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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나만의 섬이 있었으면 했다. 바다 한가운데의 섬.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만한 섬. 나의 쉼터. 나의 낙원. 나와 너희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한다. 그럼, 나는 바다를 이루는 물방울이다. 그 물방울이 사는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출렁출렁. 거친 파도가 치기도 한다. 그때, 바다 사이의 이상향(理想鄕)에 가고 싶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새해. 동해를 보러 갔었다. 겨울 바다. 그 바닷가의 모래 위에서 바다 한가운데의 섬을 보았다. 나만의 섬으로 하고 싶었다. 강한 바람을 지나 상상의 날개로 그 섬에 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그 섬은 나의 섬이다. 아주 멀지만 나의 섬. 또, 가고 싶은 섬.


 남도의 작은 섬.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섬에 얽히고 설킨 사람들. 그 섬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섬을 오래전에 떠난 연수. 이제는 예술가로서 높아지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생 딸, 이우. 그 소녀는 가까운 친구 태이를 잃고 슬픔의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담실과 병원을 오가게 되고. 결국, 연수는 딸 이우를 그 섬에 보낸다. 그 섬에 귀향해 살고 있는 어릴 적 벗 정모에게. 정모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삶의 희망도 잃어가고 있었는데, 소금 창고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소금 창고를 도서관으로 새롭게 하려는 희망. 섬의 유지인 영도의 아들이자 친구인 태원에게 받은 소금 창고. 정모는 이우와 함께 도서관을 위해 새 힘을 낸다. 한편, 이우도 정모, 그리고 말을 잃은 섬의 소년 판도와 함께 하며, 슬픔을 지워 나간다. 도서관의 태동(胎動)을 느끼며. 판도에게 태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런데, 영도는 느닷없이 도서관의 탄생을 반대하고.


 '판도는 이런 순간이 좋다. 마치 누군가가 나 대신 써놓은 일기장을 우연히 집어든 듯한, 그냥 읽어나가다 어떤 한 문장에 붙들려, 그 문장의 무엇에 붙들렸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되는.' -59쪽.


 '"아저씨, 내가 올게. 당장은 아니어도, 돌아와서 책을 읽어줄게."' -208쪽.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섬. 그 섬은 쉼터, 낙원, 이상향이다. 즉, 소통과 관심, 믿음과 정(情), 사랑과 공감이 모인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희망을 새기고 치유를 받는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의 이우도, 정모도, 판도도. 섬에서 희망을 보고, 상처가 낫는다. 도서관이라는 희망으로. 이야기라는 희망으로. 그 희망으로 소통과 관심, 믿음과 정(情), 사랑과 공감이 자라난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정미경 작가의 첫 만남을 유작으로 만나게 됐다. 따뜻하고, 세세한 이야기의 그림이 다정했다.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새해, 동해에서 바닷가에 서서 멀리 있는 섬을 바라본 것처럼.


 

 

 덧붙이는 말.

  

 '이 소설은 작가 정미경의 진정한, 그리고 유일한 유고작이다. 다른 원고들은 아내가 세상을 뜨기 전 출판사에 넘겨졌거나 가계약한 상태였지만 이 원고만은 내가 그녀의 방배동 집필실을 정리하다가 책더미 속 박스에서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출력해놓은 듯한 이 원고 뭉치는 하마터면 다른 폐지들과 함께 쓸려나가버릴 뻔했다. _‘발문’, '정미경, 서늘한 매혹', 김병종(화가, 정미경 작가 남편), 중에서.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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