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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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에는 외할머니댁에 가고는 했다. 그런데, 십여 년 전에 하늘로 가신 외할머니. 이제 명절이면, 외할머니를 추모해본다. 그리고 무언가를 추억해본다. 오래전, 나는 외할머니댁의 다락방에서 골동품을 찾겠다고 했다. 먼지 속에서 찾은 건 촛대, 그릇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외가의 옛 분들께서 쓰시던 것이리라. 그리고 다음에 뵈었을 때, 외할머니는 촛대와 그릇을 소중하게 두고 계셨다. 그저 감사했다. 추모하는 나에게 다가온 추억은 감사였다.

 작가 29인이 추모를 한다. 작가 박완서를 추모한다. 8주기를 맞아서. 작가이기에 글로써 추모하고, 추억한다. 추모하는 각자에게 다가온 추억은 무엇이었을까. 29명의 추모객들이 남긴 추억. 그 추억들을 받아 나도 소중히 간직해본다.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민주의 질문에 박 선생은 아무런 말없이 웃더니,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중에서. (120~121쪽)


 불안. 앞날의 불안. 젊은이들에게 그 불안이 덮쳤다. 불안에는 위로가 다가간다. 불안해하는 민주에게 박 선생은 위로를 준다. 영화관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괜찮아진다는 말. 나도 며칠 전, 아는 동생들과 게임의 엔딩을 봤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 2018)'이라는 게임의 엔딩을. 인터랙티브 무비(Interactive Movie)라는 종류의 이 게임. 선택에 따라 엔딩이 바뀌는 이 게임. 사실, 이 게임의 엔딩을 두 번 봤다. 한 번은 해피엔딩 실패. 두 번째에 해피엔딩 성공이었다. 해피엔딩에 실패했을 때, 슬펐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괜찮아졌다. 실패의 불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견딜 수 있으리라.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공평함에서 시작된 성난 마음을 딛고 언제가 되든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서로를 조금 더 좋아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며.' -윤이형, '여성의 신비' 중에서. (175쪽)


 지혜와 슬기는 서로를 오해한다. 육아, 살림하는 전업주부였다가 다시 취업한 지혜. 전업주부로서 육아와 살림의 달인인 슬기. 둘은 서로를 오해한다. 그리고 질투한다. 여성의 심리 묘사가 뚜렷하다. 귓가에 정확하게, 분명하게 들리는 목소리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서로를 조금 더 좋아하는 법을 배우기를 나도 간절히 바라본다.

 

 이렇게 29편 가운데 인상 깊었던 두 편이었다. 물론, 다른 이야기들도 좋으니, 만나시기를.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는 짧은 소설 29편. 멜랑콜리와 해피엔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갈래의 강에 박완서 작가에게 보내는 작은 편지의 종이배를 띄운다. 각자 다른 색의 편지를 안은 종이배를. 마치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 1995)'처럼 주고받는 편지를. 남겨진 박완서 작가의 글들에 주고받는 편지를. 멜랑콜리한 해피엔딩의 편지를. 이 삶에 대한 편지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풍자와 해학으로 삶에 담긴 역설을 그린다. 그렇게 박완서 작가를 깊이 추모하고, 새롭게 추억한다. 나도 편지를 품은 색색의 종이배를 보며, 추모하고, 추억한다. 그 삶의 무늬가 담긴 추억을 함께 간직한다. 깊이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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