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VS 아이


근대화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곳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똑같이 농사를 짓고 말을 몰고 사냥을 하며 살아간다. 예컨대 2008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야마다 카즈야 감독의 1999년 다큐 <푸지에>작은 인간에게 매혹당한 근대인이 몽골의 초원에서 살아가는 소녀를 세 번 방문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미에서 시작해 아프리카까지 자전거로 횡단하던 의사 세키노는 몽골의 초원지대를 지나다 말을 타고 양떼를 몰고 있던 소녀를 우연히 만난다.



푸지에 Puujee, 2006


 여섯 살 소녀 푸지에는 낯선 여행자들의 침입에 소란스러워진 양떼를 진정시키면서 새침한 아가씨처럼 화를 낸다. 세키노는 자기 딸보다 어린 푸지에의 양몰이 솜씨에 매혹된다. 푸지에는 집에서 방목하던 수백 마리의 양떼들을 하나하나 식별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정부는 국가의 말단에 속한 유목민들을 샅샅이 찾아내 인구로 계산하고 국민으로 만들려고 한다. 푸지에는 근대적 교육을 받으러 울란바토르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비극적이면서도 너무나 근대적인 죽음을 맞는다. 더불어 다큐는 초원에서 양을 기르던 유목민들이 지구온난화와 근대화에 노출되면서 어떻게 서구화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며,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지를 근거리에서 기록한다.


근대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은 어른과 음란한 성적 농담을 주고받던 조금 작은 사람일 뿐이었고, 어른과 동일한 도제 수업을 받으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7세기에 도덕론자들과 교육자들은 모든 면에서 불완전한 연령기인 아동기와 청년기란 범주를 만들어 그들을 어른들의 성과 사회적 기능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그러면서 순수하고 깨끗한 아동, 미숙하고 무력한 아동에 대한 책임을 학교와 부모에게 맡겼다.


아이들과 어른이 좀 다른 게 있다면


비록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만난 게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만난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미숙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문제를 어른들처럼 이해하고 그것을 풀기 위해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작은 어른들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지 못하게 막는 건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나 선생과 같은 어른들이었다. 그 어른들은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야 한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전제를 갖고 대화를 시작한다. 이 사회는 대화를 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들으려 하지 않는 어른들, 혹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의 긴급한 문제를 외면하는 어른들이 주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울하고 분노하고 무력감을 느꼈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어른과 좀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이 시인이라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학교와 집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 세계로부터 동시에 수신할 수 있다

 

이들은 단지 학교와 집에만 갇혀 있지 않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과잉 사회화되면서 근대적인 의미의 아동 개념으로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절반쯤 벗어나고 있다. 오늘날 아이들이 문제라면 그들은 학교와 집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 세계로부터 동시적으로 수신할 수 있을 만큼 탈근대적 상황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 도덕화된 성이 얼마나 유치한지 이미 알고 있다. 어른들이 성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성은 어른들의 공포와 무관하게 흥미롭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이답지 않은 아이들, 선생과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 부모와 선생 몰래 성장하는 아이들의 등장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학교를 때려 칠 만큼의 용기도, 집에서 나갈 만큼의 용기도 없지만, 자신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만은 자각한다. 그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적 문제인 것은, 그들이 더 이상 학교와 가정을 어른들처럼 신성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학교와 가정을 신성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곳이 자신들에게 유익하고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들 때문에 볼모로 잡혀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대적 신화이자 관념인 아동을 과감하게 버릴 용기와,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자각이다.



이제부터 몇몇 예술가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예민한 존재들의 말하기가 무엇인지 보여주려 한다. 자기들의 언어로 계속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을 때, 그들은 결국 비행청소년이라고 호명된다. 나는 이 아이들을 사랑스런 아이, 예민한 아이, 살아 있는 아이, 우리가 잊은 아이, 에너지, 리비도라고 고쳐 부르기를 간구한다.






  4월 출간 예정인불구의 삶사랑의 말(가제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책이 당신에게 가수, 시인, 작가, 예술가가 될 기회를 열어주기를.

당신의 표정 없는 얼굴을 흔들 바람이 일기를. "



<불구의 삶, 사랑의 말> 알라딘 바로가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