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1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실한 이야기의 힘

그 김영하 작가가 권했다.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작가로서의 역량, 그에 더해 방송이나 강연을 통해 접했던 통찰이 담긴 안목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시리즈의 첫 권을 일독해 본다.

이야기인 즉슨, 일제시대 북녘 함흥, 원산에서 태어나 자라고 풍파를 거쳐 지금 한국사회을 살아가는 어미의 살아온 이야기를 딸이 거친 듯한 그림체와 북녘 말을 살려 그려낸다.

마치 마술적 상상력처럼 우리 서사에서 사라진 북녘의 풍경들을 생생히 되살려 내는 것은 이야기의 힘도 힘이지만 따라 읽어보면 정겹게 살아나는 말투와 리듬이다. 백석이 노래했던 그 말들. 이용악이 읊었던 그 말들.

그 것만으로도 값질 것인데, 그 이야기 마저도 곡절과 사연이 어찌나 구구절절한지. 눈물도 자아내고 떼굴떼굴 구르는 웃음도 풍성하다. 정녕 보석같이 소중한 우리네 삶이고 역사임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

한 개인의 삶이란 그 자체로 세계이고 역사이며 경청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하여 그저 아쉬워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바램이 있었으니. 내 주위의 구술사를 담아내는 것.

여순사건 때 산넘어 온 산사람들 이야기 해주던 여수 토박이 할머니, 처가에 데릴사위로 일해주며 할머니를 만났고 6.25 당시 군 복무를 했던 할아버지, 광양 산골에서 자식 셋을 둔 첫 처를 잃고 재취 우리 외할머니와도 여섯을 낳아 기르다 엄마 여섯살때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구로공단에 돈벌러 간 엄마 만나러 서울역에 와선 낯선 이에게 요구르트 얻어먹고 잠이 들어 들고온 짐을 모두 뺏겼다는, 내 고등학교 모교 에서 하숙집하시던 아주머니였다던, 가장 그리운 외할머니....모두들 이젠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셨다.

하지만, 일제시대 일본유학을 거쳐 고등고시 붙은 할아버지 를 따라 전성기 일본제국의 심장 동경, 만주국 신경, 하얼빈 등에 사셨다는 저 멀리 북녘 북경성 군수네 딸, 처가 할머님, 그 할머님이 딸들은 북한에 두고 아들들만 데리고 1.4후퇴 미국 상륙선 타고 부산에 피난갈 때 갓난아기였다던, 피난시절 부산을 거쳐 서울에 홀로 유학와서 40년 교편을 잡으신 장인어른, 광양 산골에서 자라다 구로공단에 돈 벌러 가선 일요일 잠깐 쉬는 날 동무들과 창경궁 가는 버스타고 놀러 가면 서울역쯤 멀미가 심해 홀로 다시 돌아갔다던 우리 엄마, 박정희 시대 3년을 백령도 군생활 하면서 여수 고향집 가는 길이 편도 이틀 꼬박 걸리는 길이라 단 한 번 휴가 나왔다는, 전라도 말투 쓴다고 그렇게 경상도 선임한테서 맞고 지냈다던, 극단의 시절을 오로지 몸으로만 뚫고 살아온 아빠. 이 모든 게 듣고 기록하고 싶은 나의 역사이고 살아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더 듣고 더 기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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