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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휴머니스트입니다 :D


《하나일 수 없는 역사》 서평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서평단을 발표합니다!


Agalma

삐딱한바람돌이

ssuya

키치

베비쥬


당첨되신 분들은 본 게시물 비밀댓글로 2월 21일까지 닉네임/성함/연락처/우편번호/주소를 남겨주세요. - 도서 발송 예정일: 2월 22일(수)  


★ 도서를 받으신 후, 일주일 내에 알라딘 서재와 개인 블로그 또는 SNS 1곳에 서평을 주시고, 본 게시물 댓글로 리뷰 url을 남겨주세요. 

(※ 도서 수령 후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분들은 이후 이벤트에서 당첨 제외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리뷰가 큰 힘이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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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7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8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8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치 2017-02-21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정진우/010-4128-5459/05507/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35 파크리오아파트 227동 1002호
감사합니다 ^^!!

2017-02-27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휴머니스트 2017-03-03 18: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휴머니스트입니다.
아쉬움이 크셨다니... 아쉬운 마음입니다^^;
판형이 큰 것은 도판이 잘 보여지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책의 상도 내용도 독자님의 의견을 보니, 또 다른 관점에서 책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서평 감사합니다!^^

키치 2017-02-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완료] 좋은 책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779636164/9171804
개인 블로그 http://minorstars.blog.me/220946711286

휴머니스트 2017-03-03 18: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휴머니스트입니다.
서평 잘 보았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로 역사의 진실에 찾아간다‘는 점~
국정 교과서 사태 등 독단적인 역사 인식과 관련하여 이 책을 권하는 이유를 느껴보신 것 같아 반가운 마음입니다.
서평 감사합니다!^^

마키아벨리 2017-03-0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완료] 감사합니다. http://blog.aladin.co.kr/aqwerdfgj/9173145

휴머니스트 2017-03-03 18:0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휴머니스트입니다.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더 좋을지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두고 꺼내보시면서 앞으로도 자료로 잘 활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블로그나 SNS에도 공유 부탁드리고요~
서평 감사합니다!^^

2017-03-06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휴머니스트 출간 전 연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화 







미친년들



영화 <님포마니악> 스틸컷 (네이버 DB)



어쩌면 내가 남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늘 석양에 더 많이 바랐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양이 지평선에 닿는 순간 더 장엄한 색채들을…… 아마 그게 내 죄겠지.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 ),

님포마니악Nymphomaniac, 2013.




 어쩌면 나는 영화 마조히스트가 아닐까? 파티 때 식사를 마친 다음 내가 넷플릭스에서 고르는 영화들은 파괴적이고 우울하다 못해 영혼을 할퀴어 분위기를 죽이기로 유명하다. 어느 날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도그빌Dogville로 그런 셀프 영화 채찍질을 한차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면서 저절로 밀려든 흐릿한 생각과 감정의 홍수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상태로 차도에 내려섰다. 갑자기 찾아든 조증 탓에 교통량이나 속도, 방향에 몹시 무심한 상태였다. 그나마 수술실이나 최악의 경우 영안실이 아닌, 가장 가까운 정신병원으로 11일간 휴가를 떠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리라.

 

 친구들은 매일 밤 얇은 병원 담요를 뒤집어쓴 채 벌벌 떨면서 꿍얼대는 신음과 통곡 소리의 합창을 들어야 하거나,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퍽퍽한 닭 가슴살을 먹어야 하는 점심시간의 익살극이 언젠가 내 베스트셀러 회고록으로 재탄생할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시련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문학 대신 정치적이고 학술적인 깨달음이다.

 

 그때나 그 이후로나 내가 경험한 미국의정신보건 의료계는 대체로 가부장적이며 때때로 가학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시스템이었다. ‘히스테리또는 적어도 히스테리적이라는 말은 (“당신이 이렇게 히스테리적이면 퇴원 가능성을 말할 수 없습니다.”처럼) 내가 입원했을 때나 퇴원 뒤 외래 환자로 갔을 때나의사, 사회복지사, 치료사한테 자주 들었다. 수분이 부족하면 자궁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신체 곳곳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그래서 빅토리아 시대에는 물대포를 잘 쏘아 주면 고칠 수 있는 숙녀들의 병이라고 여겼다.)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이론이든,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심신의 증상에 대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분석이든, 히스테리는 수세기에 걸쳐 특정 성에 국한된 정신보건의 개념들을 담고 있다. 히스테리는 심지어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존재하기 전부터 이미 진단서의 행간에 숨어 있었다. 무언의 진단. 간호사! 이봐! 누가 저, 자리에서 벗어난 자궁을 잡아!


(...)


 만약 모든 미친년이나 사이코괴짜만큼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어떨까? 우리가 위에 묘사한 온건한 변화보다 멀리까지 우리의 지평을 펼친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표준의 한 계선을 넘어가는 마음의 상태들이 억눌리지 않고 키워진다면 어떨까?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감정적 관점이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아니라 그래서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원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이상적 페미니스트 사회의 핵심이다. 우리는 억압이 아닌 지지를 정신보건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틀림없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문화는 평범하지 않은 정신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번영하는 문화일 것이다.


 정신건강 환자들의 자율성을 (특히 입원하는 경우) 박탈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아픈개인이 환자로서만이 아니라 시민으로서도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여자들은, ‘히스테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특히 이런 식으로 권리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행복의 일반적인 기준에 순응하지 않는 정신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고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거대한 거짓말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삶은 그저 개인적인 행복 추구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행복의 척도는 돈이라는 거짓말 말이다. 행복이 인간의 기본이라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마음 상태는 다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여겨진다. 현 상태의 부르주아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기껏해야 사회의 해충이고 심하면 테러리스트인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2002년에, 서독의 극좌파 테러리스트 단체인 적군파의 가장 유명한 일원이었던 전직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f가 감옥에서 죽고 26년이나 지난 시점에 그녀의 뇌를 부검했다. 그녀에게 적군파의 테러에 가담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마인호프가 1962년에 수술을 받으면서 대뇌변연계가 손상되었고, 거기서 유발된 감정적 불균형이 테러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개인의 이념과 뇌 손상의 관련 여부와 별도로, 이것은 정치적 여성을 중성화하려는 우리 사회의 욕망을 보여 준다. 여자가 기존 체제에 불만을 (특히 폭력적으로) 드러내면,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비이성이나 감정적 불안의 표현으로 무시당한다. 자궁이 돌아다니고 있다거나 뇌에 멍이 들었다는 식으로, 여자의 행동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겨진다. 슬픔, 불만, 분노의 표현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몰아가고 정당화하는 바로 그 생각의 토대가 뒤흔들릴 것이다.

 

 대다수의 주류 사람들보다 고통과 황홀을 더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원이다. 우울증을 동반하는 비판적인 마음 상태는 세상의 잘못된 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조증과 관련된 민감성, 창의성, 에너지와 함께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에 꼭 필요하다. 소중한 유토피아 사상가들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불행을 억압하고 날카로운 열정을 무디게 만드는 체제인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그 오른팔인 의학을 폐기해야 한다. 영화 제작자인 파스빈더R. W. Fassbinder가 제대로 자각했듯이, 좌절을 못 느끼는 것은 위험한 안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이유도, 어떤 동기도, 어떤 절망도, 어떤 유토피아도 갖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남들에게 가장 쉽게 이용당한다.”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감정적 상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정신의학의 실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억압 때문에 침묵당한 모든 목소리를 해방하기 위해 내딛는 핵심적인 한 걸음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핵심 원칙들 중 행복 또는 순응만이 가치 있는 마음 상태라는 원칙을 들어내고 나면,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하다 결국 무너질 것이다. 우리 세계를 다시 정의하려면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 건강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가부장제가 죄악시하며 규탄하는 것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는 미덕으로 칭송한다. 절망을 드러내고, 소리 내어 불만을 토로하고, 대담하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고, 석양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을 말이다.





테사 스미스Tessa Smith


테사 스미스는 독일 베를린에서 주로 활동한다. (2014-2015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는) 현재 작업은 독일의 시각예술과 영화에서 젠더와 관객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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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출간 전 연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2화 








여자가 여행을 떠날 때



국토 횡단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 지 3주째가 된 2000년의 어느 소름 끼치게 습한 8월 저녁, 나는 사우스다코타 주 래피드 시티의 전화박스에 발을 들여놓았다. 누구한테 전화했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보다, 재빨리 뒤를 돌아본 나는 내 또래의 건장한 젊은 남자가 전화박스에 몸을 기대어 접이식 문을 막고 있는 걸 알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실실대는 그의 친구들 표정도 나를 얼어붙게 했다. 나는 유리문을 밀어 열려고 해 본 뒤 마치 그 짖궂은 장난에 동참하는 것처럼 간신히 억지웃음을 띠고 말했다. “, 재밌다. 근데 나 나갈래.” 혼란과후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갈림길을 지나와 버렸나 싶은 공포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영화 <와일드> 스틸컷 (네이버 DB)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혼자 종단한 경험을 기록한 와일드Wild에서, 내가 전화박스 안에서 겪은 순간들을 전문가의 필력으로 그려 낸다.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쨍그랑 소리 때문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내 전체 (여행) 목적지는 여기였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내가 얼마나 거칠거나 강하거나 용감했든, 혼자 지내는 데 얼마나 익숙해졌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운이 좋았고 지금 그 운이 다했다면, 그 이전의 모든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과 같았다. 이 하루저녁이 그 모든 용감한 나날을 무로 돌릴 터였다.


 

잠시 후 자기 친구들이 다가오자 남자는 기대고 있던 문에서 몸을 뗐고, 무리는 전화박스를 쾅쾅 치고는 큰 소리로 웃고 소리를지르며 위세 좋게 걸어갔다.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귓속에서 울리는 따르릉 소리가 모든 자음과 모음, 모든 억양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문짝이 열려 덜렁거리는 전화박스 안에서, 나는 목석처럼 뻣뻣이 굳은 채 혼자 남아 있었다. 남자들은 희미한 신기루처럼 느껴졌고, 방금 겪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의아했다. 아직 밤도 아니고 가로등도 많은 데니스 식당 주차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불의의 피습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과 일상적인 배경 사이의 절충은 여자로 살아가면서, 그리고 여자로서 길에 오르면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불협화음들 중 하나다.

 

(...)

 

혼자서 무엇을 발견한다고 했을 때, 남자들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자유와 확실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광활한 영토, 인류의 기원, 또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젊은 남자에게 통과의례로 나침반과 지도를 건넬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한테는 어떨까? 여자들도 자유를 요구한다. 우리도 고독을 누리고, 동굴에 틀어박히고, 날개를 활짝 펼치고, 그 어떤 프로그램이나 의제의 가드레일 없이 자연과 교감하며 전인미답의 영토를 밟고 싶다.

 

(...)


그로부터 몇 년 뒤 또 다른 끔찍하게 더운 어느 8월 저녁. 나는 내 1995년형 해치백에 물, 갈아입을 옷, 칫솔같이 꼭 필요한 것들만 싣고 달리고 있다. 엔진은 다음 2,500킬로미터까지 작동하거나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10번 고속도로를 여유롭게 달린다. 이 길을 따라 로스앤젤레스에서 내 가장 오랜 친구와 아직 만나지 못한 대자代子가 사는 휴스턴까지 갈 것이다. 나는 밤새 운전을 한다. 이 계획은 비밀이다.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남서부를 가로질러 가겠다는 내 계획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리조나 사막의 광활함은 어둠 속에서도 나를 압도한다. 내 존재가 마치 여기 있으면서 안전한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책임감과 일상적인 법칙에서 벗어난 채 거인이 된 기분이다. 나는 코로나도 국유림에 다가가고 있다. 표지판에 따르면 전방에 야영지와 모텔이 있을 것이다. 둘 다 포기하고 해치백 지붕을연다. 전조등을 켜고 곰의 흔적을 살핀 뒤 범퍼 가장자리에 베개를 받치고 머리를 기댄 채 저 멀리서 이따금 지나가는 화물차의 윙윙거리는 소음에 귀를 기울인다. 왠지 낭만에 젖어 담배를 피워 문다. 그대로 깊은 잠에 곤두박질친 나는 샌타카탈리나산맥의 산마루에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와 오렌지색 불빛에 깨어난다.

 

(...)

 

앞에 한 이야기는 허구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한 배짱쯤은 얼마든지 낼 수 있지만, 경고와 여행 준비와 독한 아드레날린이 내 평정을 재빨리 흔들어 놓는다. 내 마음대로 차를 몰고 세 주를 가로지른다는 이 단순한 서사를 상상할 때면 각 단계마다 어쩔 수 없이 출구를 향해 기어를 저속으로 바꾼다. 잠재적인 공격자를 상상하고, 그에게 저항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밤새 차를 몰고 가는 나를 멈춰 세우는 고속도로 순찰 경관, 야간 근무 중인 견인차 기사, 차 옆에 누워 별자리를 찾고 있는 나를 넘보는 연쇄 강간범, 그랜드캐니언으로 혼자 하이킹 중인 내게 다가오는 만취한 10대 남자아이들. 사방에서 출몰하는 폭력의 유령.

 

유토피아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10대 때 가출한 전력을 밝힌 작가 바네사 바셀카Vanessa Vaselka는 여성 여행의 뉘앙스에 관해, 여성으로서 여행길에 오른다는 것의 위험과 대중문화에서 여행하는 여성 주인공의 부재를 정교하게 연결하는 긴 글을 썼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욕구를 채우려면 우리는 이제껏 여성들이 뭔가를 얻어 내는 데 이용해 온 유일한 방식,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저항을 펼쳐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지만 유일한 방법이다. 역사 속에서 내내, 표적이 된 사람들은 저항을 통해서만 권력을 손에 넣었다. 우리의 한 표, 투표제도에서 우리가 차지한 자리, 이제는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자주 잊어버리는 것들은 원래 백인에게만 허용되었다.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려고만 해도 믿기 어려울 만큼 신체적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따라서 우리를 대담하게 하는 동시에 지키는 방법은 열린 공간에 혼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 여성의 이상향인 샹그릴라를 이 땅에 지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거기서 반갑지 않은 콘도르들을 몰아내려면, 우리의 소유권을 주장해야 한다. 1967년 보스턴마라톤 주최 측이 감히 그 대회에 참가하려고 한 (최초의 여성) 캐스린 스위처Kathrine Switzer를 공격하면서 내뱉은 여자가 낄 자리라는 말의 불합리함은 오로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녀의 존재로만 불식되고 재정립될 수 있다.

 

(...)


리아 페이-베르퀴스트Ria Fay-Berquist(작가・영화제작자・교육자)

리아 페이-베르퀴스트는 디스코 시대와 샌프란시스코의 에이즈 충격 사이 잠깐 지나간 문화적 반란기에 태어났다. 현재 석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하버드교육대학원 어반 스콜라 과정에서 소년원의 모범적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접근법을 연구하고 있다. 논픽션 작품이 키스 레이먼Kiese Laymon에게 뽑혀 〈고커Gawker〉의 일요일 확장판에 실리기도 했다. 트위터 계정 @fayB에서 대화를 환영하지만 광견병자들은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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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2017-03-0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이 겪은 일을 모든 여자들의 일로 일반화 시키는 데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만 일반 여성들을 부추기고 분노하게 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나 아쉽게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미미 2017-04-18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종현은 글마다 자신의 멍청함을 드러내는 댓글을 다는데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dopic 2017-04-20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이종현은 페미니스트에게 피해망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 남성들을 부추기고 분노하게 함으로서 그들의 기득권을 취하게 하는 것이나 아쉽게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오즈의도로시 2017-05-0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헌데, 서울에만 살다가 전혀낯선 지방소도시에서 지내는데, 논밭 산책을 나갈때도 두려워요~ 타지역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제가 애초에 힘이 강한 남자 였다면,혹은 웃통을 까고도 편하게 돌아다녀도 성적 눈요기거리가 안되는 투명인간 였다면 모르는 타지역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보단 덜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여성으로서 대도시를 벗어난 삶은 두려움이 커지는 삶이어서 어쩔수없이 선택해야는 상황 아닌 이상 큰도시에서 작은도시로의 이주는 여러 이유로 말리고 싶네요~ 원래부터 살던분들이야 늘 익숙하고 편하겠지만, 대도시서 소도시 또는 읍면 단위로의 이동은 정말 숨이 막혀요.. 남자들은 약간 권위적인 부분땜에 오히려 어느 부분은 더 특혜를 받는다고 해야하나~ 지방 아줌마들 특징이 좀 같은 여자로 이해 안되는게..식당가서도 남자가 말하면 금방 쪼로로 오고,여자가 말하면 일부러 한두번 씹는건지 뭔지..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백가지는 될듯한데... 결론은 어렸을때부터 대도시에서만 살았던 분들은 지방가서 3년이상 사는 건 정신건강에 진짜 해로워요 ㅠㅠ 1년은 여행나왔다 생각하고 살만하나..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사람사는데 똑같겠지 하다간 큰코 다쳐요 사고방식 완젼 달라요
 


휴머니스트 출간 전 연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1화 



동네 급식소



 국제정치학에서는 전쟁의 원인이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복잡한 문제의 전문가라는 것이다. 유명한 합리주의자로버트 맥나마라조차 안개(fog)”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이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전쟁의 원인은 단 한 가지, 누군가 혹은 우리가 원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말한다면, 유토피아는 없다는 뜻이지만 우리가 원한다면 실현될 수 있다.


 요즘은 외식이 일반화되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 외식은 특별한 날을 의미했다. 사실 지금도 세끼를 모두 외식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시 말해, 우리 앞 세대뿐 아니라 지금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식사 준비와 그 스트레스로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걱정이 오늘 저녁 반찬이었다. 1938년생에 고교 국어교사. 대학원 졸. 그 시절 보기 드문 배운 여성이었지만, 전업주부가 되면서부터 엄마의 관심사는 식구들 먹을거리가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업주부가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흡연을 비롯한 당신의 잘못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식성은 까다로웠다. 할머니는 늘 희진 애비 건강으로 엄마를 닦달했다.


 엄마는 인간이 두 끼만 먹어도 전쟁이 멈출 것이라고 매일 짜증을 부리셨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계급성을 음식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완벽한 식단에 대한 강박과 자부심이 컸다. 내가 어른이 되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 문제였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을 남의 밥걱정을 하고 살아야 한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

 

 나는 2000년대 초반 미국에 유학 갈 예정이었다. 9.11 사건 전이라 운이 좋았다. ‘명문대에 장학금이 제공되는 드문 기회였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합창하듯 말했다. “식구들 밥은 어떡하고?” 그때 나는 분노를 넘어 충격 받았다. 왜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인간들이 식사 준비를 비롯해 아무것도 안하면서, 남의 앞길을 가로 막는가? 자기들이 밥을 하면 죽는가? 식사 준비가 저급한 노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나는 밥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 유학을 포기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분노는 조절 장애상태다.


 《성의 변증법에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집집마다 같은 시간에 모든 여성들이 똑같은 식사준비를 한다고 썼다. 그녀는 이러한 현상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분리 통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정마다 한 명씩 미래의 혁명가가 배치된 것이라고 썼다. 내 생각을 보태면 이것은 환경 파괴이자 여성에 대한 족쇄, 인권 유린이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취업, 계층, 비혼 여부를 불문하고 머릿속에 오늘 뭐 할까를 고민하고 산다. 계급을 초월하여 남성들은 이 고민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그들은 그 시간에 정치와 문학과 술과 여자를 논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여성주의 이론에서 여성들 간의 공통점, 즉 여성 정체성의 정치가 가능한 것은 섹슈얼리티(성폭력과 모성)이라고 보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밥이다.



 어차피, 식사 준비가 남성의 성역할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최후의 페미니스트 혁명으로도 불가능한, 마르크스주의도, 민족주의도, 히틀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평생 섹스를 못하게 한다고 해도,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대도, ()을 전멸시켜도 그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브라질 중부의 보로로족 사회에서는 남성이 하는 일과 여성이 하는 일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특히 남성이 요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서 결혼한 남자만이 아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따라서 미혼 남성은 굶는 이들이 많다. 탈북한 여성들의 인터뷰를 보면, 북한 남성들도 아내가 먹을 것을 구해 와서 밥을 해 댈 때까지 생쌀을 쳐다보기만 하고있단다.


 내가 아는 어느 환경운동 공동체에서 남성들에게 새벽 4시에 일어나 식사와 도시락 준비를 하게 했다. 1주일을 버틴 남성이 없었다. 그들은 어떤 일이라도 하겠으니, 이것만은 못 하겠다고 버텼다. 그 공동체에서 해 본 모든 프로그램 중에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물론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

 

 무임금 노동인 끼니 준비는 여자의 일이면서, 스타 셰프나 음식평론가는 남성이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일을 주면 된다. 급식소의 식단, 안전성, , 고용 상태 감시, 음식 문화 무료 강좌할 일 많다. 나는 이 일이 그렇게 엄청난, 어려운,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위에서만 실험해보면, 이주민으로 그 동네는 인구가 폭발할 것이다. 지자체장의 월급은 주민 수에 따르니 그들도 주민 증가가 반가울 것이다.


 아, 일단, ‘처갓집’, ‘장모님’, ‘어머니’, ‘할머니이름이 들어간 상호부터 불법 조치해야 한다. 이는 마치 석탄회사 이름이 깜뚱이 광업’, 안마 시술 업체 이름을 장님산업주식회사라고 하는 이치와 같다. 여성도 남성도 가끔 밥을 할 수는 있지만, 타인에게 밥을 해주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없다.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여성학・평화학 연구자다. 저서에 《아주 친밀한 폭력》,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가 있다. 최근작 《양성평 등에 반대한다》의 편저자이며, 50여권의 공저서가 있다. 300권 이 넘는 책의 해제와 서평을 썼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글쓰기 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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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김 2017-02-1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드디어 한국인 여성학자에 의한 21세기 페미니즘의 고전이 예상된다. 페미니즘이 단지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서 편성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지구상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가 스스로의 가치를 새로운 감수성으로 재편성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겠다는 위기감에서 세상의 모든 질서를 처음부터 함 제대로 보고자 우리 눈길의 방향부터 다시 살피는, 본격적 문명전환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제 드디어 남들 흉내를 내며 바깥세상을 훔쳐보던 망원경을 거꾸로 돌려 우리 스스로를 그것도 아주 제대로 탐색하는 길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이종현 2017-03-07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회에서 누구도 여자에게 밥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맡은 책임일 뿐이다. 매일 밥을 짓게 하였을 때 일주일을 버티는 남자가 없다고 하였는가? 그렇다면 남편이 맡고 있는 일을 아내에게 시키면 1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페미니즘이란 겉으로는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체를 파고들면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이전 세대의 남녀 불평등을 핑계로 여자들의 특권을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17-05-25 19: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종현님과 같이 일하는 동료중에 여자가 없나봐요? 일반 직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tmtkt 2017-07-31 03:07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을 ‘여자들의 특권주장‘으로 보신다고요? 저에게는 이종현님이 특권을 놓고싶지않아하는 남성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요즘 사회에서 누구도 여자에게 밥을 강요하지않는다고 하셨지요. 저와 제 주위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 강요를 겪었고 아마 내일도 겪을 것 입니다. 부당함을 목격하지 못했다고해서 그것을 실재하지않는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위험하고 폭력적이고 무모한 발상입니다.

미녹스 2017-03-24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는 왜 밥을 하지 않는가. 왜 반찬을 차리지않는가.
왜 그들은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데서 첫 시작을 하는 것이 인상깊습니다.
어릴때부터 동일한 질문을 할때마다 받아온 대답은 ‘넌 여자고 그들은 남자니까‘ 였거든요.
동일한 위치, 둘다 학생인 상태에서 저와 제 남동생에게 동시에 ‘밥‘ 이란 단어는 차려야하는 일, 받아도 되는 서비스 라는 각각 다른 관점으로 존재했었고, 이게 무척이나 성차별적인 부분이라는걸 느껴왔습니다. 앞으로도 기대가 되네요.

악아 2017-03-25 2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윗 댓글 중 이종x 독자님의 댓글에 약간의 반박을 하자면, 남편의 일을 아내에게 시켰을 때, 라고 하셨는데 전 애초에 그 가정 자체가 집안일이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을 가진 상태로 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부족하여 역할을 맡은, 이를테면 ‘전업주부‘들은 우리의 기성세대에나 많았지 세대가 바뀌어가면서 능력되는 여성들, 맞벌이 부부들이 대부분인 추세에 왜 하필 ‘식사‘라는 문제만 기성세대의 법칙(여성이 그 가정의 식사 책임을 지는 것)을 따르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부터 이 글이 시작되는데, 윗 이종현 독자님께선 논점이탈을 하신 것 같네요. 필자는 1930년대에 흔치않게 능력이 좋으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서술했는데, 능력이 안된다는 이야기와는 아예 반대인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신체의 한계가 아니고선 성별마다에 역할을 정해놓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게 양성평등이론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상대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낮기 때문에 양성평등을 위해 여성인권운동을 하는겁니다. 제대로된 페미니즘을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생사계 2017-03-2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에서 예로든 어머니의 얘기는 분명 그 시대에 심심찮게 존재했던 가부장적인 사고에 틀에 박힌 가정사를 말한다고 볼수 있다.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에서 말하는 현재도 밥은 여전히 여성들의 전유물이고 3시세끼 외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현실을 생각하고 얘기를 하는 것일까. 회사만 다녀봐도 야근은 밥먹듯이 하는게 일반적인 서민과 중산층의 삶이고 그들은 대부분 세끼 모두 외식을 할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제불황으로 맞벌이가 많아지는 요즘 집안일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닌 부부의 분담으로 나눠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정주부로 남는경우 그것이 과연 여성의 전유물이기에 집안일을 하는것인지, 역할분담을 통해 여성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인지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과거 어머니들 시절의 이야기를 끌고와 자신들에게 노모들이 겪은 차별의 고통에 대한 프레임을 아무런 차별도 겪지 않은(혹은 약간의 차별을) 자신들의 겪은 고통인양 차별을 주장하고 그것에 대한 이득을 원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

수지 2017-03-2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죄송한 이야기지만, 중국에서는 남자들이 밥하는 일이 너무나 흔합니다. 장보러 혼자 가고, 생선과 채소를 사들고, 길에서 오늘 산 채소에 대해 다른 남자들과 얘기하고, 마트 셔틀버스를 타고, 집에서 웍을 들고 음식을 만들고, 손님이 오면 식탁을 차리고 과일을 깎아주고.. 다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한 일입니다. 이런 식의 문화권이 분명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간까지 읽었을 때는 밥이 어떤 메타포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니 좀 과잉된 느낌이 드네요. 물론 중국에서 밥을 남성들이 한다고 해서 권력이 역전된 건 아니기 때문에 중국 상황의 ‘밥‘이 또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에카니스 2018-04-26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력이란다 ㅋㅋㅋ 좃도 능력 없는 남자들이 능력있는 여성을 끌어내려 철밥통 만들어 세상 망치고있는것이 현재 세상인데 ㅋㅋㅋ 여자가 학교성적은 물론 온갖 고시 성적 휩쓸고 있는것은 안 보이나보지? 그래서 남자들이 무엇을 했나? 여자들이 성적이 높은게 문제라면서 면접위주로 정책을 바꾸고 있잖나. 무능을 능력으로 포장하는건 남자들이다. 그리고 무능하니까 밥하고 집안일한다 따질것이면, 밥과 집안일을 유급 노동으로 치환하면 그 가치는 남자들이 깽깽대며 벌어오는 고작 몇백만원보다 더하다. 밖에서 만원짜리 밥 먹는 대신에 여자를 갈아 만든 인건비없는 무료밥 먹어 놓고, 여자는 능력이 없다고 개소리 시전하면 그걸 누가 믿나. 남자들아, 정신승리 그만하고 현실 똑바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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