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 출간 전 연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4화 









남자에게서 자유로운 세상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난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글이야 어떻게든 쓰면 쓸 수 있을 테니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게 더 맞겠다. 이 따위로 글을 시작한 김에 변명을 잠깐 해 보겠다. 아침에 일어날 때 심상치 않더니 결국 생리가 터졌다. 가랑이 사이로 흐르는 피를 느끼며 난 화장실로 달려갔고 피가 묻은 팬티를 손빨래해 한쪽에 걸어 놓은 뒤 샤워를 했다. 이런 아침을 맞이한 내가 지금 이 순간 써야 하는 글이 페미니스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라니. 이놈의 생리통만 사라져도 그게 바로 내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순간에 이런 거대한 글을 써야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타이레놀을 세 알이나 먹었으니 생리통에게도 양심이 있다면 곧 잠잠해질 거라 믿는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최대한 남성과 마주치지 않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페미니스트인 내가 남성을 만나는 일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매 순간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농담이라고 던진 말이 나에겐 견딜 수 없는 치욕이 되는 순간들을 경험하다 보면 싸우기보다는 피하게 된다.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진짜 알고 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알고 있다고 치고 넘어가자.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사실 난 안 그런 남자를 만나 본 경험이 없으니까. 내가 게을러서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안 가 본 나라는 너무나 많고, 여행에 인생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새파란 청춘이지만 좋은 남자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엔 너무 피곤하고 가난하다.

 

나도 한때는 남자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최고의 남자까지는 아니라도 최선의 남자를 찾아 헤매던 시절도 있고, 데이트를 하며 그들의 잠재적 가능성과 발전 가능성을 면밀히 시험해 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남성 또는 페미니스트 남성을 찾아 헤매었다. 남자들은 언제나 상상 이상이었다. 리본 달린 신발을 신은 나를 보고 생각보다 페미니스트네.”라며 씩 웃는 남자가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현실은 언제나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져 온 한국 정치판의 상황을 보며 내 친구는 평생을 이야기꾼으로 살아가려던 자기 인생의 방향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어떤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내도 뉴스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서 말이다.

 

다시 남자 이야기를 해 보자. 그 시절 나는 그나마 페미니즘이 뭔지 알고 싶어 하는 남자를 만나면 결과가 덜 절망스러울 수 있다고 믿었다. 페미니즘은 지옥에 빠진 악마들이 하는 거라고 믿는 남자를 구마기도를 통해 은사 받게 하는 일보다는 페미니즘이 뭔지 궁금해하는 남자를 붙잡고 페미니즘 강의를 하는 일이 조금 더 가능성 있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또한 내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는 기특한남자와 함께하는 페미니즘 일대일 맞춤 강의는 언제나 왜 휴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인지에서부터 시작한다. 입 아프고 침 튀기는 열정의 강의를 거쳐 겨우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 이해했다면 그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더 절망적인 일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페미니즘 강의를 해도 그 남자가 남자인 친구들과 만나는 한, 우리가 함께했던 그 아름다운 보랏빛 시간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된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처럼 매일같이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봤지만 남자들에게 페미니즘은 자신의 일이 아닌 언제든지 벗어 놓을 수 있는, 내키지 않을 땐 헌옷수거함에 넣어 버릴 수도 있는 모자와 같은 것이었다. 페미니즘이 내게는 세계관이자 인생관이지만, 누군가에겐 배워 두면 좋은 것 정도라는 사실을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누군가 올려놓은 페미니스트 남자 만나는 법이라는 글을 읽었다. 첫 번째 문단을 읽는 순간,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눈물이 다 날 뻔했다. 철학이나 인문학 강좌에 가서 남자를 찾으라는 이야기로 시작해 성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남성, 군대와 애국심에 집중하지 않는 남성 등 어떤 남성을 피해야 페미니스트인 남성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글이었다. 철학이나 인문학강좌에 가서 남자를 찾으라는 이야기가 아예 의미 없지는 않을 거다. 페미니즘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남자들, 즉 사고를 하지 않으려는 남자와 사고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남자들보다야 나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소위 진보 남성들이 저질러 온 데이트 폭력이 몇 년 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어떤 사건이 있었으며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상세하게 여기에 적지 않겠다. 또 성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은 남성은, 알고 보면 관심만 많은 남성일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페미니스트 남자를 아직 만나 보지 못한 건 정말로 내가 게으른 탓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할 일이 이토록 많은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상상 속의 동물 기린과도 같은 페미니스트 남성을 찾는 일에에너지를 써야 할까? 차라리 남자 따위 버리고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법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모든 여성이 남자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배우는 세상이다.

 


은하선 


은하선은 섹스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여성과 퀴어를 위한 섹스 토이샵 은하선토이즈를 운영하고 있다. 다수의 섹스 토크, 토이 파티 등을 진행했고 10대 여성들의 즐겁고 안전한 섹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이기적 섹스: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그럼에도 페미니즘(공저)이 있으며, 2017년 현재 경향신문은하선의 섹스올로지를 연재하고 있다. 여성 파트너와 고양이 두 마리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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