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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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일상에서 각자가 느끼는 중력은 제각각이라 살아가는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진흙탕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한 튼실한 하체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실한 하체에 비해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만 항상 어지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진부하게는, 가족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미리 깔아놓은 융단 위로 사뿐사뿐 걸어가지만 한번 넘어지면 일어날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 법이구요.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잊기 쉬운 건 제각기 다른 중력을 느끼기 때문인데 역설적이게도,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힘도, 모든 것을 개인의 역량과 책임으로 돌리고 홀로 나아가는 힘도 같은 배경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 배경을 어떤 사람들은 자기인식이라고 부르고 - <아이의 사생활>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성공(성장)Factor라고 했죠 - 어떤 사람들은 열정, 긍정,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 의지라고 하건 어쨌거나 저는 그것을 제 마음대로 대문자 MODE라고 부릅니다. 촘촘하게 연결된 자신과 주변과 사회의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방법과 자신의 삶과 연결지어 나아가는방식인 MODE는 중력을 잊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 방향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이 코리안 델리>는 벤 라이더 하우, 라는 중산층 가정에서 잘 자란 문예지 편집자가 변호사인 한국인 아내와 장모와 소규모 편의점(델리)을 열면서 얻은 2년간의 기록입니다. 일단 무지 재미있어요. 돈을 버는 일이나, 소소한 노동에는 재주가 없는 이 친구가 부딪히는 사건들에는 유머와 따뜻함이 가득해서, 잘 씌어진 미국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었어요. 굳이 비교하자면, <Scrubs>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JD와 비슷한데, 수다스러운 몽상가인 JD가 사건을 읊는 과정과 꽤 비슷해요. 사건이 벌어지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기도 하고,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상상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과 주변을 발견해나가는 착한 결론을 낸달까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서른 살이 넘은 남자의 시선이라고 하기에는 철없지만, 순수한 시선의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악착같이 일하는 한국인 장모와,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가족(주의), 몽상적이고 철없고 아마추어같은 문예지 편집실의 풍경과 편집장 조지의 행동들, 거친 사고뭉치지만 꼭 필요한 점원 드웨인, 그리고 주변부를 오가는 진상 고객에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편의점 생리에 이르기까지. 그 기록안에서 벤은 스스로의 성장을 읽어내고, 독자는 생활을 재발견하게 되요. 하나만 예를 들어보죠.



<파리 리뷰>는 진짜 일터랄 수 없었다. 적어도 가끔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환상이며, 특권의 거품에 둘러싸인 가공의 세상이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중력 없는 세상 속에서만 생존이 가능했다. 델리는 일종의 해독제였다. 순수한 투쟁의 세계가 발산하는 무례하고 우악스러운 행동들조차 큰 매혹이었다. (183p)



그렇지만, 후에 벤은 도서전에서 영업일을 자처하면서 자신이 델리에서도, 편집실에서도 자신을 버리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돈을 받고 자신과 시간과 재화를 판매하는 프로 영업의 가치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벤도 그렇게 언급하지는 않았어요. 이 남자가 그렇게 쉽게 바뀔리도 없고 말이죠) 그에게는 편집장과 장모를 이해하기 위한 경험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조금 더 행복하게 바꿀 것임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에요. 그가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건, 우연히 발을 들여놓은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영토(편의점 세계)에서 얻은 여행의 기록이자, 그 안에서 얻은 다른 삶에 대한 인식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것이 몇 줄 글로 정리를 할 수 없겠지만, 그게 '이야기'와 '여행'의 재미이고 묘미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기록이 가치있는 까닭이겠지요.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수록 저는 보수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을 느껴요. (이것이 딴나라당이나 가카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시적으로만 보면 옳다고 여기는 것들이, 미시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 관념과 패기로 똘똘 뭉쳐 있던 일상이,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는 변명을 덧붙이고 싶네요. 아카데미 작품상을 노리던 '격이 다른 김작가'는 만화와 시트콤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격이 다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듣기에는 최고로 프로페셔널하게 업무를 쳐내던 동네친구 황 모는 아프리카 어딘가로 봉사활동을 떠났고, 평범함의 대명사로 쓰면 좋을 것 같은 선량한 웃음의 전씨 부부는 세계의 농경제와 페미니즘을 고민하러 먼 땅으로 떠났는데, 아주 가끔 그 녀석들의 먹고 살 걱정을(걱정만) 대신 해주고 있어요. 비슷한 업종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꺼칠한 김 모군의 회사에 대한 불평 앞에선 더 나은 삶에 대한 꿈 따위는 소주 잔에 풍덩 빠뜨리고 업무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직도 철없이 방황하는 녀석들에게 감히 사회생활에 대한 진지한 충고를 던지기도 하죠. 때때로 여전히 퍽퍽한 현실의 수렁에서 헤매는 친구들에게는 쌀 한 톨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던지기도 하구요.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감히, 겁없이 던질 수 있는 건, 제가 꼰대가 되어갈 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 무지함을 깨우쳐주는 건 그들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를 성장시키는 건 그들의 이야기죠.



다시, MODE를 결정짓는 건 우리의 이야기에요. <마이 코리안 델리>는 벤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조지와 케이와 드웨인과 개브와 살림과 에드워드의 이야기이고 그것이 벤의 MODE를 어떻게 바꾸어가는 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농담같은 책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유쾌한 농담인양 즐겁게 풀어낼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요. 벤은 좀 더 행복해진 것 같네요. 더불어, 스토리 텔링은 혹자가 얘기하듯,훌륭한 마케터나 잘 나가는 영업맨, 성공한 정치가나 감동을 주는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건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함께 무지함을 깨달으며 성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딛고 있는 바닥은 여전히 진흙탕일지 모르겠지만, 그 MODE 만큼은 다채로운 이야기와 함께하는 풍성한 것이길 바랍니다. (11/27)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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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늦은 토요일 밤이었다. 구부정한 목을 하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엑셀 화면을 가득 채운 숫자들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애인의 안부 메세지를 보고 퍼뜩 정신을 차린 후, 이게 뭐하는 짓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일에 몰입하고 있을까. 왜 밤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까. 당당하게 '못하다'라고 말하면, 직장을 잃기라도 하는 걸까. 그러면 그 다음엔, 돈이 없어서 거리에 나앉기라도 하는 걸까. 사실은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되는데, 내면에 변화가 생긴 걸까. 주위에 흔하디 흔한 게 워커홀릭 아니던가. 그렇다면 혹자가 얘기하듯 첫마음을 잃어서 그런걸까.

그랬다. 뭐든 할 것 같은 젊은이가 있었다. 내성적인데다 게을러서 매사 귀찮은 것 투성이인, 애늙은이 같은 표정은 싹 감추고 또렷한 눈빛으로 면접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영학과 출신이네. 그런데 신입사원이 경영을 할 순 없지 않나? 엔지니어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건가? 어차피 학부시절에 배운 것은 교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여태 해 온 것들을 보니 일은 열심히 하겠구만. 그렇다고 열심히만 하면 안돼. 잘 해야지. 네,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극이라기 보다는, 군대에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기계발서와, 먼저 입사한 선배들은 회사와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 그것은 사탕발림이었다. 면접관의 눈빛은 군대 고참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스스로의 머릿속에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것들을 일단 강요해서 자기 손을 덜어야 하는 처지의. 그러니까. 2년 2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군 복무는 장소만 바꿔서 계속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첫마음이라면,

그렇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들도 있었다. 꿈, 사람들은 꿈을 얘기했다. 꿈은 많다. 비꼬아 말하는 게 아니라, 사장이 되어도 좋다.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추게 되면 그걸로 사회에 좀 더 폭넓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  한 십여 년만 벌고, 적게 쓰고 느리게 살고 싶다. 꿈은 많다. 그게 열정을 불러오고,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 그래서, 일만 하고 살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5년이 흘렀다. 아, 모래구덩이에 빠졌구나.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온 힘을 다해 즐겁게 모래를 퍼 낼 수록 사람들은 칭찬을 늘어놓았고, 조직은 인센티브로 보상을 해 주었다. 때로 지칠 때 쯤엔 적절한 보상이나 미래에 대한 당근이 주어졌고, 더욱 지쳤을 땐, 그래도 일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혹은 모두가 다 그렇게 지쳐간다고 설득하곤 했다. 노동이 열정이 되고, 열정은 노동이 되고, 피로는 공동의 불안과 불평 속에서 지워지곤 했다. 그랬다. 그 구덩이 속에 모두가 함께 있었다. 그 안에서 우리 모두는, 딱히 다른 일을 한다고 해서 다르진 않았다. 증권가에서도, 건설업계에서도, 제조업에서도, 공무원도, 영화를 하는 녀석도, 음악을 하는 녀석도, 옷을 파는 녀석도, 옷을 만드는 녀석도, 선생님도, 학원강사도, 글을 쓰는 녀석도, 글을 파는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활기와 열정이 있건 없건, 피로와 낙심은 찾아드는 법이었고, 젊음을 그렇게 보내고 서점 자기 계발서 코너에서 쉬이 발견할 수 있는 찬란한 상패를 손에 쥐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니까, 꿈이나, 초심이나 열정, 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책상 옆에 있는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이 쓴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에서 얘기한 내 얘기인 듯, 아닌 듯,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은 다시 이 책에서 정돈된 문장으로 사회 곳곳을 흝어간다.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제도화되어버린 '열정'이라는 단어를 담보로 노동을 착취하는 세계를 탐사한 책이다. 책의 설명에 따르자면  언젠가부터 모든 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그 논리가 다시 내면화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그 논리가 견고해져왔다. 그 사이에, '열정'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착취'라는 단어가 2위쯤 차지하고 있었는데, 1위와 2위사이에 다툼은 전혀 없었다. 그냥 함께 가는 거였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냐. 네가 열정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냐. 너 정말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 한 게 맞냐. 열정은 애정과 열렬함을 뜻한다고 알고 있다. 그럼 저런 질문들이야 말로 애정없는 것이 아닌가. 이 책에는 그래도 애정이 깃들어 있다. 열렬함까지는 모르겠지만.

아, 열 시구나. 이거 빨리 끝내놓지 않으면, 내일 과장님이 고생하실텐데. (7/22)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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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를 얘기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의 비주류적인 화법(혹은 문체)과 특이한 상상력, 그리고 적당히 의미있는 그의 메시지를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박민규의 매력은, 소심한 사람의 그 매력에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심한 사람들은 티를 잘 못 내지만 속으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함께 술에 취할 만큼 가까워졌을 때 들을 수 있는 그들 마음 깊숙이 있는 숨겨진 폴더의 이야기들은 슬프고, 짠하고, 답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야기들에 대해 위로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듣는다.




 

속을 알 수 없어서 싫다고 얘기하는 대범한 인간들이 갖는 소심함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욕망과, 자신이 보기 싫은 자신의 다른 면을 알고 싶지 않음에서 기인한다.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블>의 LP판 이미지는 기막히다.




 

<지구영웅전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더블>, <카스테라>, <핑퐁> 등등 박민규의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들은 평범한 일상의 바닥에 찰싹 붙어있는 것들이다. 야구, 히어로물, 속물, 예쁜 여자, 아버지, 흘러간 팝송과 무협지, 레슬러, SF, 게임, 80년대와 90년대를 오가는 길바닥의 술주정들. 쓰고 보니 대개 남성적인 취향의 B급 문화들이 많은데, 팬층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상의 바닥에서 건져올린 소재를 갖고 딱히 뒤집기를 시도한다기 보다는 그냥, 쓴다고 느껴질 뿐이다. 뒤집으려면 호쾌하게 기존의 벽을 부수든지 해야 하는데, 박민규는 차마 그러질 못하고, 그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에둘러 서술하고 있다. 그걸 읽고 있노라면, 함께 취한 소심한 그 사람이 주저리주저리 읊은 이야기들을 녹음해 뒀다가 다시 노트에 옮겨 적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주인공들은 단 한번도 앞서 이야기한 소재들에 있어 진짜 영화 속 주인공인 적이 없는, 엑스트라들이다. <더블>의 '낮잠'에서 말하듯, "헵번의 영화에 출연한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엑스트라일 뿐"이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인 게다. 그게 박민규의 세계가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의 핵심이 아닐까. 폭력적인 이 승자독식의 각개전투 속에서 치고 싶지 않다면 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공놀이하다 꽃을 줍는 우리가 루저임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삼미...>, 보잘것 없는 인간들이나 보여주기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결국 위로하는 것밖엔, 사랑하는 수밖엔 없는 이 세계의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죽은 왕녀...> 한달음에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뛰어갈 수 있는 존재도 삼성을 이기지 못하는 그런 세계다.<더블> 




어쩐지, 탁상공론이나 술자리의 주정에 불과할 것 같은, 이 세상을 씹는 이야기들이 박민규의 손을 거치면 재미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항상 리얼리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실은 현실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판타지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판타지물 속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고, 승리자가 되는 주인공들을 통해 대리만족하지만, 박민규의 글에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얻는게 아니라 공감을 느끼고, 그 다음에 다시 걷게 된다. 에둘러 말하는 듯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사실은 대놓고 씹는데, 그의 나이듦과 함께 문장도 능청맞아 지는 것처럼 보였다. <죽은 왕녀...>에서 좀 가르치려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더블>은 시간을 두고 곱씹을 수록 카타르시스가 있달까.

 

우린 사실 그런 소심한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듣고 싶은 거다. 문득, 허리가 아플 정도로 일을 하며 살다가 연차를 내고 쉬다가, 외풍을 막으려고 이불을 창에 걸어놓은 침침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더블>을 펴 놓고 눈물과 웃음을 얻고자 하는 거. 자다 깨다, 엎드렸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벽보고 이 글을 쓴다.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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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를 얘기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의 비주류적인 화법(혹은 문체)과 특이한 상상력, 그리고 적당히 의미있는 그의 메시지를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박민규의 매력은, 소심한 사람의 그 매력에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심한 사람들은 티를 잘 못 내지만 속으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함께 술에 취할 만큼 가까워졌을 때 들을 수 있는 그들 마음 깊숙이 있는 숨겨진 폴더의 이야기들은 슬프고, 짠하고, 답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야기들에 대해 위로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듣는다. 속을 알 수 없어서 싫다고 얘기하는 대범한 인간들이 갖는 소심함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욕망과, 자신이 보기 싫은 자신의 다른 면을 알고 싶지 않음에서 기인한다.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블>의 LP판 이미지는 기막히다. <지구영웅전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더블>, <카스테라>, <핑퐁> 등등 박민규의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들은 평범한 일상의 바닥에 찰싹 붙어있는 것들이다. 야구, 히어로물, 속물, 예쁜 여자, 아버지, 흘러간 팝송과 무협지, 레슬러, SF, 게임, 80년대와 90년대를 오가는 길바닥의 술주정들. 쓰고 보니 대개 남성적인 취향의 B급 문화들이 많은데, 팬층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상의 바닥에서 건져올린 소재를 갖고 딱히 뒤집기를 시도한다기 보다는 그냥, 쓴다고 느껴질 뿐이다. 뒤집으려면 호쾌하게 기존의 벽을 부수든지 해야 하는데, 박민규는 차마 그러질 못하고, 그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에둘러 서술하고 있다. 그걸 읽고 있노라면, 함께 취한 소심한 그 사람이 주저리주저리 읊은 이야기들을 녹음해 뒀다가 다시 노트에 옮겨 적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주인공들은 단 한번도 앞서 이야기한 소재들에 있어 진짜 영화 속 주인공인 적이 없는, 엑스트라들이다. <더블>의 '낮잠'에서 말하듯, "헵번의 영화에 출연한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엑스트라일 뿐"이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인 게다. 그게 박민규의 세계가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의 핵심이 아닐까. 폭력적인 이 승자독식의 각개전투 속에서 치고 싶지 않다면 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공놀이하다 꽃을 줍는 우리가 루저임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삼미...>, 보잘것 없는 인간들이나 보여주기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결국 위로하는 것밖엔, 사랑하는 수밖엔 없는 이 세계의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죽은 왕녀...> 한달음에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뛰어갈 수 있는 존재도 삼성을 이기지 못하는 그런 세계다.<더블> 어쩐지, 탁상공론이나 술자리의 주정에 불과할 것 같은, 이 세상을 씹는 이야기들이 박민규의 손을 거치면 재미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항상 리얼리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실은 현실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판타지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판타지물 속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고, 승리자가 되는 주인공들을 통해 대리만족하지만, 박민규의 글에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얻는게 아니라 공감을 느끼고, 그 다음에 다시 걷게 된다. 에둘러 말하는 듯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사실은 대놓고 씹는데, 그의 나이듦과 함께 문장도 능청맞아 지는 것처럼 보였다. <죽은 왕녀...>에서 좀 가르치려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더블>은 시간을 두고 곱씹을 수록 카타르시스가 있달까. 우린 사실 그런 소심한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듣고 싶은 거다. 문득, 허리가 아플 정도로 일을 하며 살다가 연차를 내고 쉬다가, 외풍을 막으려고 이불을 창에 걸어놓은 침침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더블>을 펴 놓고 눈물과 웃음을 얻고자 하는 거. 자다 깨다, 엎드렸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벽보고 이 글을 쓴다.

 
 
 
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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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개 회사에서는 주로 도움될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들 하지요. 그러면 보통 저도 그닥 많이 읽지 않은 고전을 읽으시라고 얘기합니다. 이게 정답이기도 합니다만, 질문이 잘못되기도 했습니다. 취향도 모르고, 무엇이 도움될 것인지도 모르는데 뭘 추천하겠습니까. (혹은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내성적인 성격이나, 감수성, 높은 지적 수준 등을 짐작하고는 하는데 별 근거없습니다. 거의 혈액형으로 성격파악하는 거랑 같은 수준이죠.)
 
책을 읽는 이유나, 책을 읽어서 도움되는 점에 대해서 논하라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제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세계와의 대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좋아하는 류의 책은 사회학 쪽인데, 그건 Fact들 뒤로 숨겨져 있던 다른 관점이 연구자들의 통찰력을 통해 나타날 때, 그리고 그 관점을 통해 볼 수 있는 사회심리와 힘의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때때로 좌절을, 때때로 희열을 주면서 이 세계 안에서 호흡할 힘을 줍니다. 이렇게 쓰고 보면 다른 장르라고 해서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문학은 공감하기에 탁월한 친구이고, 경제학은 논리에 밝은 친구가 쓴 또 다른 '책'일 뿐입니다. 그러면 왜 고전은 고전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는 계속해서 달라져왔는데, 그 시대에 의미가 깊었던 책들이 시대가 지나도 계속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세계와 대면하는 방법에 있어서, 그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왜 고전은 잘 읽히지 않을까요. 그건 고전이 너무나 많이 해석되어서 일 것이고, 그것이 주류가 되면서 갖게 된 해석의 권력이 있어서일 겁니다. 햄릿의 고뇌와, 줄리엣의 사랑,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순된 투쟁과, 톨스토이의 용서, 디킨즈의 휴머니즘이라던지 (제가 좀 단순하게 썼지만) 익히 알고, 익히 주어진 해석들에 대해 우리는 고전에 대해 특정한 시각으로 보게끔 어느 정도는 강요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그 뒤에는 혜안이 숨어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대다수 혹은 지배가치나 권력에 의해 왜곡된 해석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래서 다시, 고전은 읽을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지금 여기에도 가치있는 것이라면 받아들이면 되고, 아니라면 그 뒤에 숨겨진 맥락을 읽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럼 남는 것은 '의지'입니다. 읽으려는 의지와, 해석의 권위를 내 것으로 해석할 의지입니다.
 
이정원의 <전을 범하다>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 고전소설을 다시 읽으려는 의지를 담은 책입니다. 우리의 고전소설들은 대개 권선징악으로 대변되는 교훈적인 해석으로 가리워져있었습니다. <전을 범하다>는 열 세 편의 고전소설을 다시 읽어봄으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시대의 아픔과 현 시대에도 되풀이되는 예리한 질문들을 건져내고 있습니다. <춘향전>에서 '열녀 춘향'이 당시에도 판타지였음을, <토끼전>의 잔인한 욕망들을, <장화홍련전>에서 모두가 가부장제의 희생양이었음을, <홍길동전>의 홍길동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지 못했음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재밌게 읽은 것은, 저자가 가진 해석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세계와의 대면이고, 그것은 우리의 좁은 시야를 갖고 해석한 것들을 어떻게 갖고 노느냐의 문제니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편하겠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런 '허무해지기'는 고전에 도사린 예리한 현실 비판의 칼날을 덮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춘향의 사랑과 심청의 효행에 드리운 도덕의 폭력과 협잡, 그리고 이 모든 더러운 지배 이데올로기의 공격과 이에 몸부림치는 예술의 응전을 '권선징악'이라는 근사하고도 조금은 어려운 말로써 감춤으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고단한 삶들은 그 이유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