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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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도 최악의 총기사건이 일어났다. 라스베가스에서, 한 미치광이 노인이 쏜 무차별 총기난사로 무려59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다쳤다. 살인범의 신원에서는 별다른 이력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은행 강도 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이 그 살인범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부유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했던 범인의 동거녀는 그가 평소 다정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며 범행 전에도 생활비를 보내주었던 살인의 전조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십 개의 총기, 호텔에 설치한 감시카메라와 같은 것들은 그가 총기난사라는 범행을 벌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귀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건이 터졌을 때 읽기 시작한  '콜럼바인'은 총기난사의 주인공들과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겹쳐보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건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살인마들의 취향이나 성향을 분석해 보곤 한다. 평소  잔인함이 있었다던가, 집안 내력에 병명이 있다던가, 아니면 성적으로 왜곡된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가정생활이 불우했던지에 대한 탐색이 그제서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들이나 살인마들은 너무도 평범하고 착한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 왜곡된 접근으로  언론은 날개를 돋쳐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범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희대의 악마의 얼굴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말하였듯이, 모든 악은 평범하다. 콜럼바인의 총기 사건을 일으킨 두 아이, 에릭과 딜런 역시도 평범한 10대 소년들이었다. 10대에는 누구나 세상을 향해 분노와 우울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노와 우울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극복해 나가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겠지만, 그들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콜럼바인 총기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들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악마로 묘사되곤 하였고, 하위 문화에 속했던 고스 족의 범행으로 보았던 언론사도 있었고 게이와 호모들의 반란으로 묘사한 언론사도 있었다. 그런 추측성 보도들로 인해 피해자들의 신변 파악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하긴 바로 어제까지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자기들을 죽으려고 총기를 난사한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긴 하다. 과장과 왜곡 보도는 순식간에 미국 전역을 덮어가며 콜럼바인 고등학교는 점점 끔찍한 곳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과장된 기사거리들은 실제로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했다. 사건 초기 잘못된 접근과 과정된 자료들은 이후 에릭과 딜런이 썼던 일지로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19개월만에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는 점이다. 


에릭의 일지를 통해 분석한 결과 에릭은 사이코패스 성향이 맞았지만, 반면 딜런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청소년이었다. 그들의 부모들은 모두 유복했고, 자녀 교육이나 환경에 민감한 편이었다. 엄격한 유대인이었으며 군인 가정에서 바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들 가족이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이 부모들을 향한 비난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부모의 어긋난 교육이 아이들을 그렇게 망쳤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반대였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놀라웠던 부분들은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이들을 분석하는 줄 알았는데 이후 에릭과 딜런의 일지를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게 되니 조금 달라진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했던 에릭은 가면을 끊임없이 바꾸며 자신을 감추는데 능숙했으며 이런 사이코패스와 한짝패가 되었던 딜런의 우울증은 둘을 환상의 커플로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우울증 환자와 가학적인 사이코패스가 만날 때 폭발적인 짝이 된다.'(P408)  토네이도를 만들려면 냉기와 열기 둘 다 필요한 것처럼 에릭의 열기는 딜런의 냉기와 너무도 잘 맞는 짝패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이코패스를 알게 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까지 현대 의학에서 사이코패스는 치료방법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정신적인 치료는 사이코패스를 악화시킨다고 한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은 에릭과의 상담자료가 사이코패스의 치료법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이 콜럼바인의 총기난사 사건을 저널리즘 형식으로 새롭게 재조명된 가치는 바로 이점에 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평범성의 연관은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한다. 


'어금니아빠'의 사이코패스 성향은 40점 만점에 25점이었다고 한다. 25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보는데 범행에 비해 낮은 점수에 속하긴 하지만 커트라인은 넘겼다. 평소 10대 청소년들의 상담가를 자처하며 아내를 위한 사랑과  난치병 딸을 살뜰히 보살피는 천사의 얼굴을 하였던 어금니아빠 이영학이 사이코패스로 밝혀지며 그가 해온 범행 역시 낱낱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딸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으며 아내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차마 입에 담기도 , 상상하기도 힘든 범행들을 보면서 악마는 선한 가면을 쓴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에릭과 딜런의 부모님들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몰랐어요.' 라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는 사랑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보여지는 성향들을 무심히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아이가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단초들이다. <비극에 대한 완벽한 보고서>는 사이코패스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의 보고서이다. 악마는 착한 가면을 쓴다. 바로 옆에 착한 가면을 쓰고 있는 누군가가 살인마로 돌변할지 모르는 불안과 위기 속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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