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 판미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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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거짓의 반대편에 있다. 책을 덮고 머리에 둔중한 울림이 남은 문장이었다. 촛불민심이 혁명의 불꽃으로 점화되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우리는 지난 보수정권의 민낯을 보며 뼈져리게 진실의 반대는 거짓임을 목도해 왔기 때문이다. 온갖 비리와 정경유착의 뇌물로 얼룩진 지도층의 타락은 수백년 전에도 존재해 왔다.

[정조책문]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 전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었을 때가 기억이 났다. 애민정신이 절절히 깃들여 있던 다산문장의 시금석은 어쩌면 정조의 정신적 산물인 『정조책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이 책은 정약용의 애민정신과 똑같았다.


‘공부하라, 탐구하라, 생각하라, 대안을 고심하라!’

책문이란 채찍 책策과 물을 문問자로 왕이 관료를 뽑을 때 냈던 과거시험으로 현재의 논술과 같은 의미이다. 정조의 책문은 그래서 엄격하다. 무엇보다 지도자로서의 고민과 백성을 향한 애민정신이 매우 절절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 제48∼52권에 실린 '책문'(策問)을 한글로 읽는 고전시리즈를 집필하였던 신창호님이 쉽게 해석하여 실은 글들이다.

우리에게 닥친 정치현실에 정조의 책문을 대입해서 읽다보면 200년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작금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촛불로 시작된 민심이 탄핵으로 이어지고 대선에서 국민들은 정권교체로 그 의지를 표명했다.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올만큼 우리의 정치현실은 실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결국 지도자 자신에게 정책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국민들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새삼 깨달았던 해이다. 

저자는 "정조의 책문에는 지도자의 성찰과 애민 정신, 민생을 향한 치열한 투혼이 서려 있다"면서 "정조가 내놓은 수많은 책문은 지도자 자신의 정책 비전이자 지도자로서의 얼굴이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았던 지도자의 얼굴, 그것은 철학이 있으며 비전을 가지고 백성을 위해 고민과 성찰을 하는 모습이다. 결국 정치란 “공자가 시골 사람들의 생활을 목격하고 정치의 길이 얼마나 쉬운지를 알았다.” 라 하듯이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책에서 절절하게 백성의 삶을 살피고 관리들을 획책하며 끊임없이 고민하는 참된 지도자로서의 정조를  확인할 수 있다.

새정부가 들어서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흰 와이셔츠를 입고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며 청와대를 걷는 탈권위적인 모습은 우리들의 삶과 다름없는 서민의 모습이며 지난 정권의 오만과 무능으로 점철된 권위적인 모습들이 얼마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거짓인지를 이제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진실은 거짓의 반대편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정치는 끊임없이 거짓과 싸워 우리들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책문해야 한다.


책속에서
『맹자』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국가를 부흥시킬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지도자는 500년에 한 번 정도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500년 이내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펼치는 좋은 정치를 볼 수 없단 말인가? 10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훌륭한 인간이 나온다고 한다면, 1000년 이내에는 사회의 문란함을 결코 없앨 수 없단 말인가?-p19

한 국가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려면 하루의 해처럼 길고 느긋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혼란은 달콤한 음악이 흐르는 것처럼 다급하고 빠르게 다가온다. -p19

아! 나는 최고지도자로서 이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할 무거운 책임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우주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사이에 ‘진실로 호응하느냐 호응하지 않느냐.’라는 소통의 문제가 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듯하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올바른 길이 열리느냐 닫히느냐가 달라진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니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고 우매하다. 좋은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계책은 얻지 못했다.-p21

국가의 흥망성쇠는 언로가 얼마나 열려 있는가에 달려 있다. 언로는 관리들이 군주에게 말을 전달하는 통로다. 정치지도자와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는 의사소통이므로 국가의 통치행위에서 언로는 매우 중요하다.-p33

『서경』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사리를 밝히는 작업과 통하므로, 인재를 등용하는 기초가 된다.” 어떤 사람을 등용하여 관직을 주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 알아보는 일은 최고지도자인 군주에게는 무엇보다도 큰일이다. -p98

진실은 거짓의 반대편에 있다.-p216

사람의 마음은 편안하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쓸데없는 곳에 마음을 쓰게 된다. 쓸데없는 데 마음을 쓰게 되면 거리낌 없이 멋대로 행동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현혹한다. 그렇게 되면, 올바른 정신을 놓아버려 술 취하듯 취하고 짐승처럼 양육되기에 이른다. 어려서는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서도 스승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검소하게 생활하는 사람에 대해 세상을 속이는 사람이라 하고, 본인은 거짓말을 하며 사람을 현혹하는 짓거리를 수시로 저지른다. 어릴 때부터 늙어서까지도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도덕이 있는 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사람들과 어울려 간단하게 술 한 잔을 나누어도 예의와 법도가 있는데 이런 풍습이 무너진 지 오래고, 풍류를 돈독히 하는 것조차도 어렵게 되었다.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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