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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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슬픈 현대사는 아픈 가족사와 함께 한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러했다. 우리 집은 단칸방에서 여섯이 옹기종기 붙어 살았다. 건넌방에는 삼촌이 신혼방을 차려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 정확히 내가 여섯 살에 작은 엄마는 조카를 낳았다. 그것도 집에서. 문지방 너머로 몰래 본 애 낳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은 채 뇌리에 남겨져 있.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그 시절을 일컬어 유신시절이라고 어른들은 불렀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가난했었고 누구나 아픈 시이었다우리 부모님들은 언제나 바빴다. 좋게 이야기하면 부지런한 것이었고 나쁘게 표현하면 죽도록 일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만났다. 오랫동안 봉인 되어 온 기억을 스치기만 해도 툭 터져버리듯 그 시절들이 떠올랐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산동네가 꼭 우리가 살던 달동네와 닮아있었고 매일 같이 싸우는 엄마와 할머니의 싸움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욕설이 난무하고 며느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 환장하시는 할머니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살림하나는 똑 소리나게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늘 할머니 편만 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모두 그랬다. 아내편 들어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주먹으로 자식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버지.

 

그런 동구의 가슴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 어디에나 꼭 존재하는 부잣집의 정원을 비밀처럼 품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정원은 잔디 하나 없지만 낙엽이 융단처럼 깔려 있고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순수의 결정체 같은 비밀의 정원이었다.

 

 

도저히 화목이라고는 눈씻고 찾아 볼 수 없는 이 가족들이 영주의 탄생으로 인해 약간의 평화가 찾아오긴 했다. 며느리라면 쌍심지부터 켜는 할머니도 영주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고 아버지는 영주의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다. 동구는 달덩이 같은 영주얼굴을 보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고 아버지의 폭력과 할머니의 욕설로부터 엄마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영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3학년이 된 동구는 한글을 여전히 못 깨우쳤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동구가 한글을 모른다고 하자, 아버지는 따귀를 때렸다. 동구는 그후 더욱 글을 읽는 것을 두려워했다. 3학년이 되자 동구는 특수 학교로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난독증을 보이고 3학년 담임 박영은 선생은 동구의 상담을 자청한다. 선생님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동구는 부모들에게 받지 못한 애정으로 치유되는 듯 하였고 학년이 끝나갈 무렵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경을 비밀 정원처럼 품는다.

 

 

사회의 격변기를 지나던 시절, 탱크 구경하러 간 곳에서 옆동네 주리 삼촌을 만나고, 처음으로 멍게와 소주를 맛본다. 소주의 맛처럼, 독하고 혼미한 시절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주리 삼촌과 박선생, 박선생의 선배와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 대학시절 박영은 선생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시작된 고백은 이후 박영은 선생의 거취를 예고하는 복선이다.

 

 

나는 두 팔을 높이 쳐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찬미하면서 능소화 꽃 사이에서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 능소화의 찬란한 영혼, 붉은 자주빛 원피스를 나부끼며 떠나가신 박 선생님 같은 그 황금의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p244

 

 

박영은 선생이 실종 되고도 동구의 집은 여느 때와 같, 엄마와 아빠의 싸움을 피해 영주를 무등 태워 감 따러 간 날, 영주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이후 동구의 집에는 파란이 일어난다. 격으로 엄마는 정신이 나가고 할머니의 타령은 더욱 심해졌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죽을 듯이 싸운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성숙의 계단을 오르는 동구는 오랜 비밀의 정원에 이별을 고한다.

 

아버지와 엄마는 돈을 많이 벌고 나를 잘 키우자는 희망이 있다. 나는 나중에 박 선생님을 다시 만나자는 희망이 있다.하지만 할머니의 몫으로 남은 희망은 무엇일까.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고,노래를 불러주고, 말벗이 되어주고, 나들이를 함께 나가던 영주가 떠난 후 할머니에게는 어떤 희망이 남았을까.

 

소설의 큰 틀은 글 한자 읽을 줄 모르던 동구가 할머니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동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동구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힘겹게 한 세계를 깨뜨린 후에야 성장한다. 정원의 아름다움이 흔한 것과 귀한 것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것처럼 자신의 세계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누구나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기차 밖에서 흘러가는 풍경처럼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동구의 비밀 정원처럼 아로 새겨진 민주화 운동을 기억한다. 유신 시절은 누구나 가난했고 누구나 아팠다. 동구의 아픈 가족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였고 슬픈 현대사를 품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책속에서-

영주와 나와 박 선생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지금 같은 새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든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맞닥뜨리게 되면 무능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산만하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게 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그들도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저항할 수는 없을 거라고? 아니야, 독재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또 다른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밑거름이야. 이렇게 기름진 밭이 있는데 독재라는 질긴 덩굴이 왜 성장을 멈추겠어?

 

 

 

인간이 살아가는데 치사하게 답만 알고 과정을 모른다는 것은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라는 설명에 수긍했을 따름이었다. 그 원칙이 산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 전반에 그렇다는 훈계를 듣고는 앞으로 어른이 되더라도 내 인생이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 되리라는 생각에 몸을 떨었고, 인생을 완전한 것으로 해주는 그 '과정'을 찾기 위해 따로 노력도 해보았으나 야속하게도 내 머릿속에 과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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