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리커버 특별판)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조선인 혁명가 김산을 만났다

몇 년 전 중국인 혁명가들의 역작을 다뤘던 중국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신적 뼈대는 이들 혁명가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며 우리나라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무척 듣고 싶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선인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시대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밭에 나가 일을 하고 거둔 곡식들은 모두 일본인들에게 착취당했고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던 조선인들은 글을 배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가난과 무지, 이것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인들에게 역사의 기록이란 부르조아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혁명가들은 이런 현실을 매우 잘 알았다. 이들은 산을 깎아 만든 신흥학교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전술과 전투를 배웠다. 제국주의라는 시대격변속에서 식민지 민중이었던 독립군들의 삶은 중국인들의 그 어떤 투쟁보다도  격렬하고 더 방대하였으나, 열악한 환경은 조선 혁명가들의 삶을 역사에 잠들게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이 책 아리랑1941, 미국에서 출판되었지만 곧 사라졌듯이 수많은 자료와 기록들은 일본의 왜곡과 방해로 역사속에 잠들어 있었다.  한국인은 조선혁명가들의 이름보다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같은 이들의 삶을 더 잘 안다. 그것 자체가 우리의 비극이며 우리의 민요 아리랑의 슬픔인지도 모른다. 

 

첫 장을 넘길 때는 님 웨일즈가 김산(장지락)의 전기를 다룬 책이리라 예상하였다. 예상은 틀렸다. 님 웨일즈가 김산을 만났을 때 그는 중국 비밀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님웨일즈는 기자로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만났고 그들의 삶에 주목했다.  그 수많은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김산이었다고 한다. 첫 눈에 매료된 김산에게 님 웨일즈는 책을 집필할 것을 제안하였고 김산의 방대한 일기와 구술을 바탕으로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님 웨일즈가 나중에 안 사실은 김산은 혁명가이면서도 시대에 보기드문 시인의 감성을 가졌었고 작가로서 훌륭한 글을 써왔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젊은 시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마도 조선이란 나라가 자기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p56

 

그랬다. 김산이 기억하는 조선에서의 어린 시절은 죽어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태생적으로 가난했던 조선인들의 삶에서 김산에게는 오로지 민족의 해방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어린 나이에 맨 몸으로 뛰쳐나온 것은 오로지 그 이유였다. 일본인들과 싸우는 삶. 이후 그는 일본과 중국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한 삶을 걷는다. 

 

우리는 조선인이 천성적으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편견을 때려부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용기를 세계 만방에 떨치면서 영웅적으로 죽어갈 생각이었다.-p57

 

내 인생에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 소리에 맞춰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내 세계에서는 하나도 의미가 없다. 바로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다.-p68

 

혁명가들의 신음소리, 오로지 투쟁만 있는 삶이 김산의 일대기이다가출 후 무조건 신흥학교를 찾아가 조선독립을 위해 살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그는 고작 16살이었다. 작은 형의 지원으로 일본에 갔지만,  수 천명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대학살을 당하자 중국으로 피난을 가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의열단에 가입하게 된다. 1924년 의열단은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로 분열이 되기 시작하는데 김산은 이미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이상이었던 톨스토이의 이념대로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같은 노선을 걸었던 혁명 동지들 김약산과 오성륜의 일화는 당시 혁명가들의 얼마나 치열한 투쟁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으며 동시대를 살며 같은 고민을 하였던 안창호와 이광수의 등장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꺼내 돋을새김 하는 과정과도 같았다그만큼 조선 혁명가들의 삶은 생경하면서도 익숙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랑도 투쟁과 같았다. 김산은 여성을 사랑한다는 것이 혁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만, 두 동지들은 사랑도 혁명처럼 했다. 혁명과 사랑에 대한 김산의 고민은 투쟁에 전생을 저당잡힌 한 인간의 고뇌와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김산에게는 낭만적이면서도 혁명이라는 과업 앞에서는 허무한 것으로 여겼고 욕망을 참지 못하는 것도 혁명의 모순이라 이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고나서야 세상에 빛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장면에서는 혁명가의 비운의 삶을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사실하나만으로 그들의 피는 들끓었다. 그 역시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을 했고 그러면서 죽음과 동행했다. 그가 사랑한  아리랑을 일본 감옥과 중국 감옥에서 부르며, 님웨일즈에게도 불러 주었을 때도 그는 아리랑의 비극이 언젠가는 민족해방의 승리로 바뀔 것임을 믿었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p464

 

비극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한 인간의 영광이요, 굴복하는 것은 한 인간의 수치이다. 내게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국주의 전쟁 속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맹목적으로 포기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것은 낭비인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억누르는 데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내게는 비극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자유를 위하여,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하여 싸우다 의식적으로 죽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영광이요 장렬함인 것이다. 죽음은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다. 스스로 믿고 있는 하나의 목적으로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다.-p472

 

이 책은 김산의 책이었다. 님 웨일즈가 만난 김산의 이야기가 아닌 암호로 쓰인 김산의 일기가 그의 책이  되었다.  집필 당시 김산은 전쟁중이었다. 동료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쓰여있고 혁명의 날들이 기록되었기에 김산은 2년 뒤에 출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전쟁 중이며 혁명가로 살면서도 의학을 배웠고 독일어를 배웠고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마르크스 이론에 심취했으며 혁명가로 살기 위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선혁명가 김산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김산의 노력덕분이라는 것이 고마웠고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게 조선의 민족해방을 위해서는 투쟁만이 가치 있는 일이라 했던 김산은 1938년 일본스파이라는 오명으로 비밀 처형당했다. 이후 1983에서야 그의 신원은 불명예를 벗고 회복된다. 

 

아직도 우리는 비극 가운데 있다. 아리랑에 담긴 민족의 한, 그것은 비극이였으며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역시도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국일조차 갈등의 쟁점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아리랑의 마지막 구절은 승리로 쓰고 싶다고 한 혁명가의 염원을 보며 이제 우리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자유는 수 천, 수 만의 조선인이 희생한 댓가라는 것을 잊고 산다면 우리는 또 비극의 역사를 써야만 할 것이다. 


 20181030일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권이 전원합의체로 판결되었다. 그동안 왜곡과 조작으로 강제지용자들을 조선반도 출신의 노동자로 여론전을 펼쳐오며 왜곡의 역사로 일관해왔던 일본은 처음으로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와 맞물려 방탄소년단의 도쿄 공연이 일방적으로 취소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공연 취소는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광복티셔츠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강제징용 청구권 승소에 대한 반발이라는 정치적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아직도 일본과 한국은 길고 긴 투쟁중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헤프닝이기도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지닌 문화적 힘이 정치권력까지 움직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님 웨일즈가 김산을 처음 만난 날은 1937년이었다. 그 당시에 님웨일즈는 조선인을 처음 본 것이었는데 조선인을 보고 한 말이 있다. 아마도 조선인은 극동지역에서 가장 잘생긴 민족이라며  아름답고 총명하고 우수해보이는 민족이 외형상 두드러짐이 없는 작은 일본인들에게 복종하며 살게 된 것이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고. 그 말을 들으니 지금의 한류는 우연이 아닌 우리 민족은 원래 우수했던 것이다. 작금에도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일본의 식민지 만행이 폭로되고 있으니 아리랑의 마지막 구절은 진정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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