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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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출생이라는 제비뽑기


  • 1982년 6월 아버지는 군에 있던 내게 편지를 부치러 가다가 횡단보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운전자는 스물 한 살 먹은 초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편지는 내게 배달되지도, 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지도 않았다. p.296

  • 막연히 내 인생, 내 소신대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하나씩 짚어보니 의외로 나의 성격,가치관, 생활 방식,취향이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가족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p.300



찬 이성 더운 가슴


  • 유물론은 인간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물질세계가 존재하며, 정신 역시 물질의 운동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p.92

  • 일반적으로 철학적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과 동시에 일어난다. 그런데 자아 정체성을 상실한 중증 치매 환자의 경우처럼 철학적으로는 사망하였지만, 생물학적 의학적 법률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p.94



옳은 일을 필요할 때 친절하게


재단 업무 혁신을 추진하면서 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만 생각했을 뿐, 그 일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훗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과 참여정부 국무위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똑같은 실패를 다시 겪었다. p.182




기적을 일으키는 거울뉴런


  • 맹자의 측은지심과 다윈의 '본능적 동정심'은 같은 것이다. p.247

  • 유복한 집안의 머리 좋은 도련님이었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쓴 것도 바로 이 본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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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알라딘 서재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보통 '북플'로 여러분들은 만나 뵙게 되는데요,

저는 사실 주로 PC환경에서 작업을 많이 합니다.

애써 공들여서 블로그를 꾸며도, 

모바일에 최적화된 북플에서는 다 무용지물이더군요 ㅠㅠ

(모바일 시대에 도태된 젊은 피씨유저..)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사실 글쓰기가 귀찮아서(._.)]

모바일로만 저랑 만나는 여러분들을 위해,

제 블로그를 블로그하는 시간을요!





왼쪽은 제 프로필입니다. 절정 동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저것 보다 한 2kg 불었습니다.


오른 쪽은 카테고리에요. 

저는 저 분류에 따라서 성격이 다른 글을 쓰고 있는데,

모바일로 보니까 두서없이 

영화평 올렸다가 에세이 썼다가 페이퍼 발행했다가 하는 것 같더군요.

하나하나 소개해보렵니다 ㅎㅎ




1. 나의 독서 기록장



첫번째는 <나의 독서 기록장> 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날부터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나름 '대충 철저히' 정리해 왔습니다.

완독을 기준으로 올해는 29권 밖에 못 읽었네요..

(이상하게 부록까지 읽지 않으면 찝찝해서..표시를 하지 않..)

이게 다 대학원 때문입니다. 

(대학원은 책을 읽지 못하는 곳입니..읍읍)



2. 생각하기 좋은 날, 젊은 날의 고전


다음은 <생각하기 좋은 날 : 젊은 날의 고전>입니다.

여기는 제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쓰고있는 제 책의 원고를 업로드 하는 공간입니다.

다른 포스팅보다 문체와 글 흐름에 힘을 많이 주어 씁니다.

창작 블로그에도 동시에 발행하고 있는데..

벌써 1달째 올리지 않...

(거꾸로 다른 페이퍼는 하루이틀이면 쓰는데, 

이건 정말 책을 읽고 해제를 읽고 반복해 읽고 

이것저것 확인하면서 쓴다고 정말 고생한다는 뜻도,,)


펜 글씨로 '생각하기 좋은 날' 이라는 인증마크가 붙어있습니다.

이 마크가 붙은 글은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특히 이 파트에 대한 저작권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서

여기 업로드 함과 동시에 학교 저작권 프로그램에 저작 등록을 해놓습니다.

가끔 글의 사용을 원하시는 분이 있으신데 ,

그럴 때는 제게 사정을 말하면 학습용도로는 

허가해드리고 있습니다. 




3. 비와 당신의 이야기


논리적인 글도 많이쓰지만 

감성적인 글도 많이 씁니다.

글쟁이는 소재를 가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유명해지면? 

자서전 비슷한 형식으로 

여기 이 카테고리에서도 잘 뽑힌 글들을 모아서 

에세이집을 내보려 합니다.

가끔은 술술 읽히는 일상소재의 글도 쓰고 싶어서..




4. 영화를 느끼다



집중력이 안 좋아 영화를 잘 보지 않습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더 찾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에는 더더욱 어떤 기교랄까요,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이런거 잘 못합니다.

정말 단순하게. 아 재밌다 느낌 좋다 오 괜찮은데? 

정도라서 평론은 절대 못합니다.

다만 영화의 줄거리와 제 경험을 잘 섞어서 풀어쓰는 건 할 줄압니다.

그래서 영화평은 못해도 감상문은 쓴다.. 뭐 

논문은 못써도 에세이는 쓴다..뭐 이런 느낌이지요..



5. 생각의 지도



간단한 서평 혹은 페이퍼를 쓰는 곳입니다.

주로 인문사회 계열의 고전을 많이 적습니다.

학부 4년간 읽었던 책들,

대학원에서 했던 과제물들을 변형해서 올리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작성해 올리기도 합니다. 

근데 서평이라고도 하기 뭐한 것이..

제 주관과 현실 정치사회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섞어서..

뭐 취향껏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책과 사진



제 일상을 비롯해, 책장사진, 새로 산 책 사진 등을 올립니다.

SNS 용도로 쓰고 있어요!




7. 좌안 1.2의 칼럼




정치학을 공부하는 대학원 생으로써 

가끔 기사나 칼럼을 쓸 일이 생기면 

동시에 게재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보니 제 블로그는 책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쓸 수 있는 글은 죄다 쓰는 이상한 곳이군요 ;;





이렇게 측면과 하단에는 광고도 있습니다.

다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선별해서 사실 장식용으로 올려뒀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의 클릭 한 번이 배고픈 독서가에게 10원의 기부금이 됩니다.)


쓰다가 보니까, 

아 이 포스팅 역시 북플이나 스마트폰으로 보시겠구나 

그럼 이 편집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후회를 잠깐 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주소를 동봉! http://blog.aladin.co.kr/hofirst)

그래도 뭐 간다한게 소개 했으니.. 만족합니다. 

힘이 빠집니다. 급하게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그럼, 일요일 주말 잘 보내세요!


2017.11.19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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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11-19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친절한 블로그 리뷰, 아주 좋은데요~^^♥
저도 최근엔 북플로만 쓰다보니 수정하면 사진 순서가 뒤바뀌고 카테고리 정리도 잘 안돼서...ㅠ

프리즘메이커 2017-11-19 18:12   좋아요 0 | URL
ㅠㅠ 그렇다고 알라딘 서재가 글쓰기 환경이 좋은 게 아니라서
pc버전은 또 그거대로 스트레스지요ㅠㅜ.. 폰트 깨지고.. 줄간격 안맞고..ㅠㅠ

sijifs 2017-11-19 1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는 뭐 보기 좋거나 글쓰기 좋으려고 하는건 아닌것같아요. 보기좋고 글쓰기 좋으려면 차라리 네이버가 낫거든요ㅎㅎ

프리즘메이커 2017-11-19 19: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ㅋㅋ 다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군집해있다는.. ‘유효수요‘ 때문에 저는 이용하고 있습니다.

22c 2017-11-1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리뷰가 아니라 소개한다고 하시는 게 맞겠네요. 정확한 단어 사용이 아름답죠.

프리즘메이커 2017-11-19 20:23   좋아요 0 | URL
‘리뷰 :[신어] 전체를 대강 살펴보거나 중요한 내용이나 줄거리를 대강 추려 냄‘
꽤 무례하게 느껴지는 댓글이네요. 앞으론 정확한 댓글 부탁드릴게요.

秀映 2017-11-19 2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북플한지 얼마 안됐지만 PC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지라 편해요
일단 구매한 책들이 나와있고 읽었다는 표지와 서평쓰기도 되니까요
저도 잡다구리하게 제 관심사를 블로그로 풀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요
컴터를 자유자재로 못다루니 스맛폰으로 하는게 편하드라구요
그리고 육아를 하다보니 블로그에 정성을
들일 시간도 없고
북플 친구분들이 소개하는 책을 통해서 책 정보를 많이 얻고 있답니다
이글은 컴으로 작성한건가요?
글쓰기에 대한 애정어린 맘 느껴집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11-19 23:15   좋아요 0 | URL
네 pc로 작성했습니다. 저도 북플을 참 좋아해요.
정말 정리가 편하고 깔끔해서요!
다만 pc버전 서재랑 연동이 조금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글자의 굵기와 밑줄 정도만 표시가 되어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7-11-20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는 물건이라서 리뷰 쓸 때 참고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영화는 DVD나 합법적 다운로드용이 아니라면 다시 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도 영화리뷰를 안 써요. ^^

프리즘메이커 2017-11-20 19:20   좋아요 0 | URL
아 맞습니다..!!

2017-11-26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6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1993


※ 본 감상문에는 내용상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혐오가 광기를 낳는다광기는 이성을 표백 시킨다그 시대 나치의 만행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아렌트는 사유하지 않음으로써 악이 평범해졌기 때문이라 말한다그렇기에 아이히만 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순진한 살인기계들이 도처에 널리게 되었다고 말한다이 영화는 정확히 그 반대 케이스를 말한다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다.



 

 인생을 방탕한 호색한으로 살아왔던 쉰들러는 야수적인 본능으로 시대의 돈 냄새를 맡는다. 전쟁과 유대인, 그리고 돈이 겹쳐 보인다. 그는 노벨 기회주의상이 있다면 반드시 수상했을 만큼, 특유의 넉살과 수완을 통해 군납 사업체를 꾸린다. 유대인 회계사 슈텐에게 실무를 맡기고 본인은 나치 간부와 군부를 뇌물과 향락으로 구워삶는다. 나치 독일이나 현대 한국이나 상관없이, 군납하면 3대가 먹고 사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쉰들러는 일약 갑부로 도약한다.

 


▲흑백영화의 유일한 칼라, 붉음. 

피를 상징하는 색, 인간의 몸 안에 흘러 박동하는 색, 인류애를 각성시키는 색

(사진 출처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id=2043184)



 벌어놓은 돈으로 승마를 즐기던 쉰들러는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고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흑백영화에 유일하게 컬러로 등장하는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주검으로 발견된다. 쉰들러는 흔들린다. 마음에 무언가가 밟힌다. 그는 자신의 양심을 때로는 부정하지만, 점점 더 진심으로 유대인들을 도와주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기회주의적 수완가가 양심을 장착했을 때의 진수를 보여준다. 독일 장교를 눈속임하던 로비 능력이 졸지에 구원의 능력이 된 것 이다.

 


그렇게 쉰들러는 1100명의 유대인을 구했다.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했고, 막심한 적자를 감수하며 구해냈다. 전쟁이 끝나자 기업은 도산했다. 그 동안 획득했던 모든 부를 잃었다. 이제 쉰들러는 나치당원이자 군납기업 대표로서 도망 쳐야 할 전범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더 구하지 못했음을 계속해서 후회했다. 늦게 깨달은 자신을 책망했다. 앞서 말한 아이히만은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무죄를 항변했다. 그런 그에게 어려운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쉰들러의 존재자체가 당신에게 반례라고 나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혹자는 쉰들러가 한 것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일이었다고 절하한다본인은 동의하지 않는다. 폭력적인 구조와 시대 속에서 나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고 본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개인이 양심을 발현하여 비뚫어진 시대의 빛이 될 수도 있음을 쉰들러는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미친 세상에 제 정신인 사람은 부패한 기회주의자였으니까. 역으로 부패한 기회주의자라도 의인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니까.



▲가자지구 폭격을 구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유난히 이스라엘 국기의 푸른 빛이 돋보인다.

영화가 묘사했던 마무리, 쉰들러의 죽음을 추모하며 돌을 놓고 가던 유대인들의 행렬.

빨간 코트와 푸른 별은 무엇을 대비하고 있을까?

(사진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6295436)



다만 오늘 날, 그의 의로움이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과거 나치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하던 장면과 오늘 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며 환호하는 장면이 겹친다. 나치즘과 시오니즘. 이 분노와 증오의 샴 쌍둥이는 묘하게 이스라엘로 전해졌다. 이들은 쉰들러를 추모하면서, 아이히만의 길을 택했다. 생각 없이 살육하고 환호한다. 수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죄 없이 죽고 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망각하고 증오만을 기억했다.

 


세상의 모든 차별은 혐오를 낳는다. 혐오는 분노와 증오를 먹고 자라 광기가 된다. 미친 세상은 항상 약자를 표적해서 가격한다. 나는 역사를 그런 방식으로 읽는다. 그리고 항상 나를 반추한다. 내가 미쳐 약자를 때린 건 아닐지. 또 우리 사회를 반성한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이 멸시와 혐오의 표적이 된 것을 보면 우리는 다같이 미친 것 같다. 한 어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잊자. 우린 역시 아이히만이다. 유대인들이 나치를 망각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잊으며 산다.    


2017.11.18
@PrismMaker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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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임마누엘 칸트의 역사 철학과 관련한 논문 모음집이다.


총 7가지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으나, 

본 페이퍼에서는 아래 두 가지 논문만을 다루기로 한다. 



1.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6. <다시 제기된 문제: 인류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해 진보하고 있는가?






1. 인간은 도덕세계에 있기에 존엄하다



인간은 오묘하고 복잡한 존재다. 인류는 동물에서 시작하여 고등사유 능력을 가진 인격체로 진화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처럼 쾌락과 충동에 이끌리며 살면서도, 동시에 도덕법칙을 구축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당시 철학자들은 이를 두고 감각과 이성의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철학사에서 말하는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의 두 전통이다. 칸트는 이성과 느낌에 각각 합당한 자리를 마련 하여[1], 인간이라는 이 복잡 미묘한 존재를 규명하려 했다.

 


칸트는 철저히 자연세계와 도덕세계를 엄격히 구별했다. 자연세계는 야생으로 식욕과 성욕으로 가득한 약육강식의 세계다. 이 세계의 지배원칙은 서슬 퍼런 발톱과 핏기어린 이빨에서 비롯된다. 본능과 충동에 따른 자연법칙이자 어쩔 수 없이 생명체에 내장된 타율법칙이다. 단지 동물들은 이미 주어진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법칙을 거스를 이성의 힘이 있다. 이는 곧 동물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도 대체로 동물의 법칙으로 일상을 영위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스스로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본능과 충동의 법칙에 구속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지배할 자기헌법과 이성의 왕국을 만들 능력과 권리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특별하다. 날씨는 흐렸다 개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은 높았다 낮았다 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도덕세계를 직접 만듦으로써 스스로 존엄해진다.



[1표정훈.철학을 켜다. 을유문화사. 2013. p.230에서 인용

 




2. 용기있는 자가 자유롭다



칸트가 묻는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답 한다. 계몽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계몽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대다수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성체로서 스스로 판단할 자유와 책임의 무게를 아는 것이다. 칸트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책임지고 판단하기 보단 권위 있는 타자에 의존하고 결정을 내맡겨버리는 것을 속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성을 타고난 인간이 이성의 사용처를 스스로 막아버리는 이유는 무식하거나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다. 바로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홀로서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타자에 복종하고 지배받던 삶에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배할 헌법과 관리책임을 맡는다는 것 이 생소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동물적 복종의 세계에서 인간적 사유능력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 스스로 깨달아야한다. 깨달은 자는 박차고 나와야 한다. 도덕의 세계에서 자유의 주체로서 책임의 무게를 용기 있게 감수해야한다. 자유의 비결은 역시 용기뿐이다.






3. 자연인, 자유인 그리고 세계시민

 


칸트는 진보의 조건을 자유를 부여받은 존재의 행위로 보았다.[2] 뿐만 아니라 역사의 진보와 인류의 진보는 맞물린 것으로 보았다. 역사발전은 인류의 진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역사가 퇴보한다고, 또 어떤 이는 반복 된다 믿지만, 사실은 진보하고 있다. 인간 안에 이성의 불꽃이 잠재 되어있는 한, 진보의 불길은 언제고 일어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보의 불길은 어떻게 확산되는가?

 


칸트는 인간을 3단계로 보았다. 인류는 동물의 법칙에 예속된 자연인, 용기를 통해 깨우친 자유인, 공적이성을 발휘하여 영구평화에 도달한 세계시민 순으로 발전한다. 그렇기에 칸트는 전쟁을 혐오했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부추기며, 타락을 강제한다. 인간세상을 피투성이로, 도덕법칙의 세계를 야생의 세계로 퇴보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사라지는 영구평화의 세계를 꿈꿨고, 그것이 인류전체의 목표이며 결국엔 언젠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종단계는 전쟁이 멸종한 영구 평화시대의 세계시민이다. 생물학의 한 종으로서의 인류가 자유와 책임을 지는 사회적 어른으로, 그 어른이 다시 공적이성을 갈고닦아 세계시민으로 변증법[3]적으로 발전을 거친다. 즉 용기의 결핍을 극복하는 것이 자유의 확산, 공적이성의 보편화를 촉발 시킬 것이다. 전쟁을 저지르는 것이 동물적 본성이라면 평화를 창조하는 것은 인류의 능력이자 과제인 것이다.

 


보편적 도덕원칙은 머리를 공명시키고 가슴을 공감시킬 것이다. 보편적 도덕원칙이 보편적 통치원칙으로 제정되면 정언명법의 세계화가, 자연법의 보편화가, 만인의 만인에 관한 평화상태가 창조 될 것이다. 진보란 용기의 계몽이 자유를, 자유의 번식이 영구평화를 몰아오는 과정인 것이다정말이지 칸트의 꿈, 엄청나다.

 


[2]임마누엘 칸트. 이한구 역.칸트의 역사 철학. 서광사. 2015. p128 인용

[3] 본문에서의 변증법은 시대의 한계를 극복해나간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사용하였다.



※ 참 고 문 헌  




※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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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8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폴 라파르그는 칼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며 또 운동가다그는 마르크스가 생전에 그렇게 싫어했던 프루동주의자로 정치활동에 데뷔했으나, 마르크스 엥겔스와 교류한 뒤 정통 마르크스 주의자로 전향했다. 마르크스의 둘째딸 라우라 마르크스와 결혼했고, 그 역시 엥겔스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살았다. 69세가 되자 늙은 몸으로는 운동에 기여할 수 없어 아내와 동반자살로 인생을 마무리했다. 마르크스 일가에는 어떤 묘한 피가 흐르나보다. 그의 최후를 보면 나는 항상 그런 생각에 잠긴다.






1. 버티는 삶에 관하여

 


소제목이 쓰라리다. 안 해본 알바가 없었다. 젊은 날 뿐만 아니라 늘 빈곤했고, 커서는 자립해야만 했다. 돈이 급했다. 등록금이야 공부 좀 하고 장학금을 받으면 됐지만,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늘 문제였다. 야간 편의점·대형마트·예식장·뷔페·학원·이사 등 일거리가 있다면 닥치는 대로 뛰어들었다. 임금수준은 문제가 안 되었다. 일단 일거리가 있고,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해했다. 시간당 만원을 넘어서게 받은 적도 있지만, 야간에 일하고도 푼돈 4천원을 겨우 넣은 적도 꽤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육신이 고통스러웠던 노동은 설날을 대비하는 마트 알바였다. 앞에 다른 일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였다. 가령 친구는 유럽에 놀러가 있는데, 난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먼지나 들이 마시며 등짐을 질 때 빚어지는 그런류의 비애감이었다. 그러나 이 알바는 정말이지 45일간 육신이 녹아내리는 경험이었다. 슬플 겨를도 힘도 없었다. 12시간 노동이야기 하는데 나는 13시간을 했다. 매일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11시에 퇴근했다. 식사는 하루 30분씩 2, 물론 식대는 없었다.

 


6일을 꼬박 다 채워 일했다. 13x6, 무려 주당 78시간을 일했다. 버텨야 했다. 매일 걷는 길에 잠시 망각되었던 통각이 돌아왔다. 발이 저렸다. 발바닥이 항상 아파왔다. 걷는 게 고역이었다. 족저근막염을 앓았다. 자다가 늘 연필을 꽉 쥐고 쉴 새 없이 글을 쓴 것처럼 팔이 저려 깨길 반복했다. 일주일에 하루 있는 휴식은 항상 자거나 목욕탕에서 근육을 풀어줘야 했다. 내 몸에 체취는 사라졌고 파스냄새가 대신했다. 하루하루가 소모전이었고 참호전 이었다. 버티는 삶의 연속이었다.

 


수십 번을 도망치고 싶었다. 탈주기도는 늘 머릿속에서만 그쳤다. 설령 도망친다 해도 세상이, 이 나라의 경제가 나를추노(追奴)’할 테니까. 이 상황에서 나는 개인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일 년에 40여권 가량 책을 읽는 본인은 단 한권의 책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나 피곤하고 당장 아파 죽겠는데 잠이나 자야지, 책이 뭐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내가 알게 뭐람!’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래서 깨달았너무 지칠 대로 지쳐 기진맥진한 사람은 체제의 변화와 부조리의 시정을 이야기할 여력도 관심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그래서 빈곤보수의 등장을 

깊이 있게 포착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몰입해서 읽었다내 삶이 몸으로 깨달은 내용을 참 잘 정리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2. 자본주의 정신과 저주받은 노동윤리, 그리고 피로사회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따르면, 사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그리 역사가 길지 않다. 지금이야 당연히 월급 오를 때 바짝 시간 늘려 일해서 최대한 많이 벌어두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는 월급이 오르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먹고 놀았다. 이윤보다는 자신의 삶과 만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에세이 건투를 빈다에서도 이 같은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아테네 올림픽 때 만난 그리스의 어부는 고품질의 물고기는 자신과 가족이 먹고, 남은 물고기를 시장에 팔았다. 한다. 더 비싸게 팔아 돈 좀 더 안 벌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벌어 보려는 오늘날의 사고방식과 반대였다. 무언가 어느 날 세상의 영혼통치술이 바뀐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항상 필요 이상을 생산한다. 체제의 소화력은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증식욕구대로 무한정 제품들을 쏟아낸다.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휴식과 여가를 즐길 균형 상태를 이 체제는 허락하지 않는다. 과잉생산과 과잉공급이 야기한 불균형은 노동자를 굶주림으로, 자본가를 탐욕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 노동자는 과잉 노동을 담당하고 자본가는 과소비를 도맡게 된다. 주기적 공황은 자본주의의 예고된 고질병이다.

 


기존의 좌파 이론가들은 자본가 계급이나 자본주의 구조자체에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라파르그는 노동자의 잘못도 아울러 지적한다. 즉 노동자 스스로가 자본가 계급의 윤리의식과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스스로를 불구덩이에 경제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과소비와 낭비만하는 유한계급으로, 노동자는 생산의 고역을 담당하는 무산계급으로 불균등한 역할배분에 동조하고 부역했다는 것이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착취가 나쁘다면서 왜 그렇게 사람들은 착취(고용)당하길 원하는가?’ 라며 마르크스주의자를 공격한다. 라파르그는 잘못된 노동윤리가 퍼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노동윤리가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동은 신성한것이며 게으름은 악이라는 자본가들의 윤리를 노동자계급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너도 나도 일단 앞뒤 재지 않고 일하려 들기 때문에, 항상 노동의 과공급이 발생하고, 노동조건은 계속해서 열악해진다. 일단 일부터 하자는 발상을 노동자 스스로 끊어야 이 바닥을 향한 경쟁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르트르 식으로 표현하면 인간은 노동하도록 저주받은 존재다. 아니 자본주의 체제하의 인간은 노동하도록 세뇌당한 존재가 더 옳겠다. 우리는 항상 노동이 신성하다고 배웠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와 같은 직설적인 것에서부터, 세련된 포장지를 둘러싼 노오력자아실현까지 말이다. 특히 한국인은 더 그렇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 세계에서 밤낮없이 가장 열심히, 가장 오래 일하면서 노는데 죄의식을 느끼는 나라다. 이쯤 되면 노동윤리가 아니라 노동저주다.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런 라파르그의 문제의식을 물려받은 현대의 철학자는 한병철이다. 그는 자신의 저작 피로사회에서는 착취방식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기존의 착취방식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한경쟁을 강요하며, 기계에 의해 축출될 예비실업자들이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다. 새 시대에는 구시대적 계급착취에 새 시대적 자기착취가 포개졌다. 자기착취의 고리에 얽힌 자는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의 과다 지출을 내면화한다. 무비판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무한경쟁에 스스로를 감사히내던진다. 병든 노동윤리는 이제 유한한 인간 존재를 환각시켜, 사람을 자본주의의 가미카제 전사로 탈바꿈 시킨다.


 


신자유주의가 탈구축한 한국은 피로사회다. 집단적 일중독 상태에 놓여있다. OECD 통계가 너무 많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공부하다 죽고 어른은 일하다 과로사 한다. 늙어서 폐지 줍다 병사한다. 그 과로할 일자리조차 없어 과로사 직행열차에 태워달라고 고용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이러니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도 부릴 수가 없다.

 


최근에야 한국에서도 게으름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정운 교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기존의 노동과 여가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비판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주장했다. 전쟁보다 자살과 과로로 더 많이 죽는 이 나라에서 위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직 한심한 전 정권의 여당 대표는 복지하면 국민이 게을러진다며 핀잔하지만 말이다.


 


3. 기계화 시대의 게으름

 


소설가 김영하는 자신의 에세이 보다에 일본소설 한 구절을 인용했다. 너무 인상 깊었기에 여기에 다시 소개한다. 이해가 안 되네. 로봇은 고장 나면 큰돈을 들여 고쳐야 하지만 나는 다쳐도 좀 쉬면 낫는데……. 게다가 건강보험도 들어있어 치료비도 거의 안 드는데, 웬만하면 값싼 나를 쓰지 우스우면서도 꽤 슬픈 이야기다.


 


기계가 발전하면 기계가 줄여주는 만큼 인간은 쉬고 놀아야한다. 라파르그는 하루 최대 3시간 노동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쉬는 만큼 기계의 힘이 메워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발전된 기계로 더 사람을 굴린다. 기계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인간은 즉각 교체된다. 기술발전과 기계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기계를 자본주의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즉 기계의 증대된 생산력을 노동해방의 구세주가 아닌, 착취율을 증가에 앞잡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는 것 싫어하는 인간은 없다. 게으름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기에 라파르그식 진보는 본성 회귀적이다. 그리스로 돌아가야 한다.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맡고 인간은 노동고역에서 해방된 뒤 자유로이 노니는 세상. 게으를 권리는 이른바 노동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을 뜻한다. 인간 본성의 회복이다. 기계로 인해 인간은 게을러 질 수 있다. 우리는 게으름을 위해 기계를 사용할 수 있다. 게으름은 축복이다. 기계는 모든 인간을 유한계급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우리는 문제의식을 여기에 집중해야한다.

 



4. 게으름은 진보의 원동력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말미암은 계급투쟁이야 말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 말했다. 진보의 원동력을 투쟁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베블런의 지적처럼 사람들은 피곤해서 투쟁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마르크스는 가뜩이나 피곤해 버티기에 급급한 노동자에게 투쟁까지 요구한 무심한 사람일 수도 있다. 라파르그의 말처럼 인간은 육체적 발전이 정점에 이르러야만 최상의 에너지와 도덕적 활력을 얻기때문이다. 피로에 찌들어 노곤한 육신을 달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란 사람이나, 하루하루 밥벌이의 지겨움에 종속된 자는 버틸 뿐 발전할 수 없다.

 


역사발전 5단계 이론에서 다음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물적 잉여가 축적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무언가를 많이 생산해서 진보하던 시절은 지났다. 관념 차원에서의 진보역시 함께 가야한다. 정신적 잉여는 게으름이다. 게으름을 축적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즐기고 놀아야한다. 자본이 뭐라고 하든 말이다! 우리의 놀이와 작당에서 창조가 비롯된다. 21세기 게으름은 단순한 재충전과 재생산을 넘어 창조의 밑거름이다.

 


부지런의 대명사인 개미집단에조차 게으름뱅이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쉴 새 없이 일하는 개미 중 20-30%는 놀고먹는다. 자연의 섭리는 이들에게도 역할을 부여했다. 이들이 놀아야 집단이 장기 존속 한다는 것이다. 모든 개미가 일해 피로가 쌓일 경우, 갑작스러운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 반면 게으른 개미가 한 축을 차지하는 집단은 변화에 유연하다. 덕택에 오래 존속 할 수 있다. 이렇듯 게으름은 유연성을 낳는다. 자연의 법칙이다.

 


신자유주의는 비효율을 적출해낸다고 하지만, 마른수건 쥐어짜기의 명백한 퇴보다. 위기에 한방에 무너지는 비상사태다. 사람이 어찌 무한정 전시상태로 살 수 있을까? 위기에 짓눌려 눈에 보이지 않는 평형수의 중요성을 간과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모두에게 부지런을 강요하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무한동력을 요구하는 현 체제가 개미집단에게 배워야 할 차례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어서 게으름을 허하라.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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