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지나친다고, 글쎄 일본에 가서도 서점에 들렀지 말입니다.

어설픈 일본어와 친구의 도움으로 마르크스가 있냐 물었더니 

서점 직원이 굉장히 당황을 했습니다.

여튼 거기서 뽀스또 캬삐타리무스(Post capitalism)

후기자본주의라는 책을 하나 샀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겨우 알고,

학창시절 배운 기초일본어가 전부라 

띄엄띄엄 알아먹는 수준의 일어를 구사합니다.

일본어로 된 좋은 책이 많으니 앞으로 빡세게 일어를 배우려합니다.




일본 서점에서는 책 하나를 사도 

이렇게 자기 서점 상호명이 들어간 종이포장지를 감싸줍니다.

교토역 지하상가에 있는 쿠마자와 서점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무언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독창적인 서비스 비법을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당시 나라는 평화로웠다. 조정과 백성 모두가 편안하던 까닭에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와 동년배인 전 전적典籍 이로李魯도 내게 글을 보내왔다.


이 태평한 시대에 성을 쌓다니 무슨 당치 않은 일이오?’

그러곤 조정의 일에 불만을 늘어 놓았다.


삼가 지방만 보더라도 앞에 정진 나루터가 가로막고 있소. 어떻게 왜적이 그곳을 뛰어넘는단 말이오. 그런데도 무조건 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괴롭히니 참으로 답답하오.’


아니 넓디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막지 못한 왜적을 이까짓 한 줄기 냇물로 막을 수 있다니 내가 더 답답했다. 당시 사람들의 의견이 한결같이 이러했고 홍문관弘文館 또한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 pp.37-38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 낼 자신이 있소?"


신립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내가 다시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pp.45-46


당시 요동에서는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다는 말을 얼마 전에 들었다. 그런데 다시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서쪽으로 피란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이윽고 왜적이 평양까지 닿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아무리 왜적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올라올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조선이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이끌고 온다"라고도 했다. p.97



또 순찰사 정언신이 그에게 녹둔도의 둔전 방어를 맡겼을 때의 일이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군사들은 모두 나가 곡식을 거두고 있었고, 진영에는 불과 수십 명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적 기병의 급습을 받았다. 이순신은 급히 진영의 문을 닫고 유엽전을 쏴 수십 명의 적을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러자 적들이 놀라 모두 달아나기 시작했다. (…) 이외에도 이순신이 세운 공은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과거에 급제한 지 10여 년 만에 겨우 정읍 현감에 올랐을 뿐이었다. p.40 (역자주 : 사건의 결과 이순신은 북병사 이일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 했다. 경비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이순신이 강력히 항의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백의종군하도록 명령했다.)




결국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를 보내 이순신을 잡아오도록 하고 대신 원균을 통제사에 임명했다. 

  그러나 임금께서 이 내용이 모두 진실인지 의문을 품으시고 성균관 사성 남이신을 한산도에 파견, 사실을 조사해 오라고 했다. 그가 전라도 땅에 닿자 병사와 백성 모두 나와 길을 막고 이순신이 무고하게 잡혀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남이신 또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p.194





"그는 명장이오니 죽여서는 안 되옵니다. 군사상 문제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또한 짐작하는 바가 있어 나가 싸우지 않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라건대 너그러이 용서해서 후에 대비토록 하십시오."


조정에서는 한 차례 고문을 한 다음 사형을 감형하고 삭탈관직만 시켰다. 이순신의 노모는 아산에 살았는데 그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는 고통스러워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p.195 


그러자 진린은 임금께 이런 글을 올렸다.

'통제사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재요, 하늘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낼 공이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쓴 것은 그가 마음으로부터 감복했기 때문이다. p.213


화살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이순신은 직접 나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총알에 맞고 말았다. 총알은 가슴을 관통하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부축해 장막 안으로 옮겨 놓자 그는, "지금 싸움이 급한 상태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p.217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p.218


그는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했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평소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그는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운이 부족해 100가지 경륜을 하나도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p.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 칼럼은 글쓴이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입니다.

다양한 의견 및 관점의 하나로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치가 모두의 언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902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eBook]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예담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삶이었다. 어머니는 열심히 현실을 해결하고, 아버지는 열심히 비현실을 추구하는... p.47


더없이 희생을 하면서도 그래서 늘 어머니는 숨거나, 가려진 느낌이었다. 아니 언제나 아버지에게 

미 안 해 한 다 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 역시 남자가 아깝다, 였다. .p.48


터무니없을 만큼 서로가, 서로를 관여하던 시절이었다. 또 당연하다는 듯 어머니도 숨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더 열심히 아버지를 뒷바라지할 뿐이었다. p.48


아마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미남이었고, 어머니는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던 삼류 배우가 발견한 최고의 숙주였을 것이다. 아마도 p.49



때로 생각한다. 한 장의 얇은 슬라이스 같은 긍정과 부정, 긍정과... 부정으로 자신의 내면을 도배해 갔을 한 여자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그대로 무너졌고, 그래서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쇠약해진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순 있었지만, 증발해 버린 영혼의 부피는 어떤 약으로도 복구가 되지 않았다. pp.51-52


나... 예전의 엄마가 너무 좋았어.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달라고는 말 못하겠어. 그런 일을 당하고 어느 누가 예저너럼 살 수 있겠어. 그래도 죽지는 마. 그것만 빼곤 나 다 괜찮아. 설령 어떻게 변한다 해도 달라진 엄마를 좋아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있어주기만 하면 돼. p.58


내 뒷바라지를 위해 뭐든 하리라, 그런 생각은 말아줬으면 해. 이제부터라도 부디 좀 이기적으로 살아. 산다는 게 어차피 이기적인 거잖아. p.58


작은 거품이 일다 이내 녹아드는 사진들과... 양말이며 구두... 그런 사소한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기억속의 아버지를 완전히 떠나보내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화형(火刑)이 아닌 화장(火葬)이기를, 검은 한 줄의 연기를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빌고 또 빌었다. 모든 걸 pp.67-68




가난한 인간은 피곤하기 마련이고, 피곤한 인간에겐 언제나 한계가 주어지는 법이라고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p.163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두렵습니다. 순수한 만큼 쉽게, 어떤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p.269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고 흡수하고 있었음을... 좋든 싫든, 해서 서로에게 서로가 남아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p.30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12-22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괜찮은 소설이죠^^전 마지막 페이지 덮자마자 통닭 시켰었던 기억이 나네요

프리즘메이커 2017-12-22 16:04   좋아요 1 | URL
켄터키 치킨과 희망을 한잔 하고 싶은 소설이었습니다 ㅎㅎ
 


석사과정을 그만 둘까 

한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곧 스물 일곱이 됩니다.

앞으로 군대도 다녀와야 합니다.



돈을 벌라는 경제적 바톤터치,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야 말았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빨리 다녀오고, 공부를 접고 

그동안 했던거 갈무리해서 더 일찍 취직을 할까..



그리고 그냥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나에게는 이런 고민이 빗겨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과 돈과 배고픔은 녹록치 않습니다.

생존과 자아실현은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것을

점점 더 피부로 깨닫고 있습니다.



-2017.12.21

@PrismMake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yo 2017-12-21 0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가 스물 여섯에 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석사를 포기하고 스물 일곱에 군대를 갔었지요. 그러고는 여직 백수로 살고 있지만..... 요즘은 그때 걍 대학원 갈 걸 그랬다 하는 생각 꽤 많이 하죠 ㅎㅎㅎㅎ
저야 원체 게으르고 노는 거 좋아해서 이렇게 살지만, 프메님은 딱 봐도 크게 될 사람이니까 걱정 말고 원하는 길로 직진하세요!

프리즘메이커 2017-12-21 15:58   좋아요 1 | URL
와...인생궤적.......엄청난 동질감이 랜선을 타고 4d로 쏟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