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에 벽시계가 생겼다. 누군가에겐 저것이 시작이겠지. 째깍째깍. 문득, 내가 쳤던 모든 발버둥들이 사실 어른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일었다. 나는 줄곧 어른답기를 원했으나, 막상 닥쳐오는 시간의 추궁에 몸서리 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른이 되기가 두렵다.


너는 그동안 무얼 했니?”

근의 공식, 아니 당신을 증명하시오

 

스무 살의 독립은 기특한 것이지만, 스물 예닐곱의 앞가림은 당연한 것이야. 아르바이트는 직장이 될 수 없고, 그곳의 월급은 새로운 용돈에 불과해. 용돈벌이 알바생과 월급쟁이 직장인의 차이는 수열의 극한을 고쳐 씌운다 해도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것이지. 아무렴. 

 





2.

 

한 번 더 모험을 걸어 볼 용사, 어디 없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코인이 부족합니다. 게임오버. 나가

 


단돈 100원으로 끝판왕을 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동네 고수 형이 아니었습니다. 이럴 땐 코인 이어달리기

용돈을 다 털어봅시다비트코인처럼 동전 오락실도 역시 존버가 답입니다.

"존버를 못하면 장가를 못가요. 아~ 미운 사람~"

 

그런데 웬걸? 시간이라는 코인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호주머니에 감각이 없고, 분주한 손가락의 헛손질은 마지막을 암시하고,

어느 샌가 내 뒤에 손도장을 찍은 다른 동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오락실의 법칙.

 




3.

 

방정식에 답이 없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 해가 무수히 많아서 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능, 아예 해가 없습니다.



우리 열차 부정, 부정 역입니다. 다음 역은 불능, 불능역입니다

 

그것은 줄어드는 가능성과 불어나는 책임과의 관계를 시간에 관한 함수로 나타낸 것입니다. 자의식 과잉은 사실 자존감의 결핍이듯, 갈 길이 많아 갈피를 잡지 못하던 스무 살은 결국 아무것도 잡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은 것을 주워 먹습니다.


가자 노량진으로! 오라 신림동으로!”


 



 

4.

 

새가 되려다 파충류조차 되지 못한 시조새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어른이 되려다 어린 아이로 남아버린 푸석한 화석은 여기 있습니다.

어른 연기를 열심히 했던 어린 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어른이라기엔 대책이 없었고 아이라기엔 연식이 오래된 중고였지만,

또 다시 어른이라는 배역을 받았습니다. 이젠 발 연기는 싫습니다.

다시 한 번 존버의 기합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북극곰에게 미안해. 딱 한 번만 더 타올라주렴.

꼭 푸른 불꽃이 아니어도 좋아. 불꽃만 일어다오.

 


-2018.03.10 @PrismMaker


p.s 한 동안 포스팅이 뜸했습니다. 대학원에 복학해서 그렇습니다.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하고 논문과 아르바이트와 씨름했습니다.

종종 스케쥴과 체력껏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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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의 주인공은 학사모가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우리 어머니였다). 


 

1992년 5월의 스물하고 두 번째 날아니 옹알이를 하다 말귀라는 게 생겨먹은 이후 처음으로 나는 어머니의 입에서 일가기 싫다는 말이 나오는 걸 들었다못난 불초자는 뒤늦게 두 가지를 깨달았는데하나는 여인의 살아온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내뱉은 적이 없던 말이라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그 시대의 여자 벌이'로 모질게 가정을 꾸려오면서 매일 매일 똑같이 가기 싫었을 여러 일터를 숨 한번 안 돌리고 지나쳐왔다는 거다아홉 시와 여섯 시의 바깥에서만 그녀를 봐왔던 나는 정말이지 이 여자가 '철의 여인인줄만 알았던 게다그러던 어머니가 나름대로 밥벌이의 지겨움을 최초로 토해냈으니나는 눈보라를 처음 맞은 열대지방 원주민처럼 얼어붙을 수밖에.

 


2013년 2연거푸 대학 입시에 미끄러진 어떤 모질이는 바짝 벌어들인 돈으로 부산행을 준비했다불안한 눈매를 감추지 못했던 중년의 경기도 여인은 나의 하행을 탐탁지 않아 했다모친만큼 모질었던 나는 내 벌이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라며자기를 위해 쓰고 살라며 겹 띠동갑의 인생 선배에게 주제넘은 훈수를 두었고벌어둔 300만 원을 챙겨 그냥 부산에 내려가 버렸다나는 진심으로 그 여인에게 자기 욕망에 충실한자신의 삶을 되찾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내 뒷바라지에 인생을 더 희생하질 않길 바랐기에참으로 무정한 놈은 일방적으로 반년 동안 연락을 끊어버렸더란다

 


그놈결국에는 이것저것 하면서 오기 반 성질 반으로 최저생활 언저리의 돈을 꾸려 버텼고친구 하나 없던 이 땅에 제법이지 괜찮은 뿌리를 갖게 되었다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걸까그 뿌리를 믿고 어쩌면 내 힘으로 하는 마지막일지 모를 공부에 뜻이 섰기에 대학원에 들어갔고늘어난 학비를 대고자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여느 때처럼삶의 일부처럼 해왔던 일인데스물여섯이나 먹어버린 그 녀석 입에서 불현듯 "일가기 싫다"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입에 잘 안 붙이고 살던 말인데, '거참 모전자전 일세나는 너털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2015년에는 그녀의 둘째가 대학에 갔다두 번째 분신도 어미를 닮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제 돈 제가 벌어제 앞길 제가 가렸다상아탑의 돈이 굳는 덕에 벌이는 적지만 등산도 다니고 카페도 가는 버릇이 들었고종종 외식도 할 줄 알게 되었다그녀가 꽤 괜찮은 표창을 여럿 받고 졸업한 맏아들을 여전히 밥풀떼기나 흘리는 칠칠맞은 어린애로밖에 보지 못했던 것처럼나 또한 서른 즈음부터 슈퍼우먼처럼 여자 혼자 벌어 모든 것을 겨우겨우 기꺼이 떠안아 버텨내던 그 시절의 그녀만 기억했던 것이다그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입에서 일가기 싫다는 말이 최초로 나왔더랬다그제야 나는 그녀에게서 언젠가부터 늘어버린 주름과 먹지 않는 화장의 들뜸과 잔 고장 많은반세기를 버텨낸 신체를 발견했더랬다명절에 두 번방학에 두 번 어머니를 찾는 게으르게 바쁜 아들은 갈 때마다 늙어있는 어머니의 인생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2017년 2월 24일 자로 나는 졸업을 했다한때 슈퍼우먼과 그녀의 두 번째 분신은 큰 걸음으로 내 자취방에 찾아왔다낯 뜨거운 말을 서로 잘하지 못하는 탓에여자는 자신의 고된 삶을 보상해주지 못한기대치에 못 미쳤던 큰 아들의 입학을 제때 축하해주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한이라고 했다그래서 별 볼일 없는 졸업식이라도 기어이 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나는 결국 치우기를 포기한 냉장고를 들키고야 말았고방 청소에 일가견 있는 전문가 두 사람의 능숙한 손길과 부지런한 잔소리에 내 방은 금세 묵은때를 벗겨냈다.

 


공부했으면 참 잘했을 머리를 가진 나의 어머니는 일곱이나 딸린 동생들의 인생으로 인해어쩌다 연좌제의 늪에 빠져 대학의 문턱도 밟지 못했다어머니와의 왕래가 줄어갈수록 나의 자유는 높아만 갔지만직접 자식의 대학생활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고 또 늘 궁금해했다당신께서 참 좋아하는 해리포터 속 펜시브로 읽혔으면 하고 바라면서나는 이 글을 적는다공부를 하다 사랑을 했으며이별을 하며 글을 읽었고 아니 글에 읽혔으며생각을 적다 마음을 쏟았고밤을 기다리다 낮에서야 잠이 들곤 했으며허겁지겁 가파른 언덕의 대학을 오르내렸고유쾌한 웃음으로 여러 벗을 사귄 만큼 날 선 논리로 아울러 풍족한 적을 두었노라그게 간추린 내 대학 생활이라고깨끗해진 방에서귀에 잔뜩 얹은 한소리가 고마워서뒤늦게 이 글을 바친다



-2017년 2월 23일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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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운전치고 제법 능숙했다. 바람같이 달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인생의 예외란 항상 자신은 아닐거라 자신하는 사람을 빗겨간다. 우연은 행운을 담보하지 않지만, 불운은 늘 필연을 달고 온다. 항상 질주하던 우리는 달리지 않는 자동차를 인정하지 않았다. 차의 시동이 꺼졌다. 


계절비가 내린다. 세상은 아직 한 편의 수묵화다. 그러나 빗방울이 먹을 씻기면, 곧 봄이 올 것이고 꽃잎은 나름의 방식으로 부풀 것이다. 마른 햇살이 여기저기서 부스러질 것이며, 작은 도랑이 넘실거릴 것이다. 그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봄의 기운을 응원한다. 우리네 삶도 덩달아 수채화였으면 좋겠다. 2월의 마지막 날, 부산의 끄트머리에서.


-2018.02.28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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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세비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해서


1. 국회의원 세비는 금권정을 막는 안전비용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월급에 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청와대 청원엔 27만 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세비를 깎자는 쪽엔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국회의원의 안정적인 세비를 '금권정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흙수저들도 정치할 수 있도록 만든, 노동계급의 피나는 노력이자 참정권 영역에서의 기회의 평등이기도 하다고 알고 있다.

    

만약 국회의원 연봉이 연 2천이라면, 악덕 기업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국회의원을 매수하는데 드는 돈이 연 2천만 원 밖에 안 든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명절마다 떡값(이라쓰고 뒷돈이라 읽는다) 쥐여주면 우리는 X파일 시즌 2, 3, 4... 시리즈물로 볼 수 있을 거다. 국회의원 세비 제도는 엄한 데서 검은돈 받느니, 그럴 바에 국민이 합법적으로 국고에서 액수를 정하자는 거다. 김영란법처럼 말이다. 그대신 뒷돈 걸리는 순간 얄짤없이 의원직 날아가고 감옥 가는 거고. (감옥 갈 일 했으면 받은 돈 도로 몇 배로 토해내게 하는 건 적극 찬성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권력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은 현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당위를 적어둔 것이다. 권력이 특정 지역, 특정 계층, 특정 계급을 위해 복무하지 않도록, 공익을 해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둔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세비는 그 안전비용 중 하나다.    

 

 

2. 세비를 아끼면 좋은 정치인일까?

 


              (@ 세계일보)


   

자기 세비를 기부한 정치인이 있었다. 이명박이다. 이명박이 착해서? 아니다 굳이 국민에게 빚져 가며 정치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그래서 제 맘대로 정치했다. 눈치 안보고 어차피 자기 돈, 자기가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돈으로 자기 정치하면 되니까. 그걸 원해서 청와대에 27만 명이나 청원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돈이 부족해서 책 팔러 전국을 바삐 돌아다녀야 했다. 유시민 같은 글쟁이도 펀드 만들고 별 궁리를 다 해서 자금 만들고 했다. 여하튼 능력 있는 흙수저들은 생계와 정치, 두 탕을 뛰면서 하라는 소린데... 세비는 가난한 정치인에게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부유한 정치인에게는 의도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빚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세비를 깎자는 말을 나는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런 말이 대한민국을 지주공화국으로 만들자와 같은 소리로 들린다.

   


 (@연합뉴스)


3. 잘못은 세비가 아니라 나쁜 정치인을 자꾸 당선시키는 제도와 지역주의에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국민이 국회의원의 최대주주여야 한다. 외려 국회의원 숫자가 늘고 세비가 일정이상 국고에서 나와야 기업이 관리를 못 한다. 국회의원의 자금줄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게 대의제 원리에 합치된다. 또 이 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 제 12항 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과 자금은 기업에서 혹은 내가 잘 벌어서 나온다. 내가 잘났으니 시혜의 개념으로 봉사도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명박이 상징하는 특권층들의 귀족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 부자건 빈자건 같은 보수 받고 같은 원리에 따라 의회에서 앉아 글과 말로 정치하는 거다. 그게 민주정치다.

  

부패한 정치인은 안 뽑으면 되는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세비가 아니라 그들을 자꾸 당선시키는 지역주의, 선거구 제도에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세비는 적어도 기업의 뒷돈을 틀어막진 못해도 상쇄하는 효과는 있다. 세비도 받고 뒷돈도 챙긴다면 수사를 강화하고 몇 배로 징벌하는 제도를 신설하면 되는 것이다. 발전은 기본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 기본을 해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울컥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겠으나,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논의가 아닐까?

 

[별첨1] 노르딕 국가의 국회의원이 무료 봉사직인 것은 그 나라가 복지제도로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구가 고작 500~1천만 남짓한 소국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거로 들려면, 국회의원의 세비가아니라 한국의 열악한 복지제도와 넘치는 인구규모를 책잡아야 한다.


[별첨2] 아테네 추첨제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아테네의 지리적 크기와 인구 규모를 우선 고려해야하며, 추첨제를 위해 솔론과 페리클래스가 어떠한 재정적,정치적 개혁을 이끌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시는 것을 권한다.


[별첨3] 한국은 인구와 경제 규모에 비해 국회의원수가 적은 실정이다. 보좌관의 숫자는 더 적다. 국정 감사기간에 행정부 100만 공무원과 맞서는 보좌관의 수는 다 끌어모아야 2천명이 안된다. 이래서는 행정부의 비리를 적발할 수가 없다. 3권분립의 강화를 위해서, 행정국가화를 막기 위해서 국회의원의 정족수 증가 및 보좌관 증원 조치, 국회도서관 사서 및 연구원 추가 채용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2018.02.17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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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2-1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베리 그냥 옳소!! 문제제기를 하는건 좋은데 본질을 놓지는 득

프리즘메이커 2018-02-18 05:0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정치가 실망감을 많이 주기도 했구요.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달라야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02-17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명박 !

프리즘메이커 2018-02-18 05:05   좋아요 0 | URL
잔머리로 어디까지 정치할 수 있을지를 끝까지 보여준 그...

syo 2018-02-17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합니다 프메님♡

프리즘메이커 2018-02-18 05:05   좋아요 0 | URL
히힛...!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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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된 책이다. 여기 사례로 나오는 07학번은 이미 30대가 되었고, 09학번은 김광석의 노래가 절절히 와닿을 스물아홉이 되었다. 그 사이 힐링 열풍과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이 책이 지적하는 20대들의 차별의 위계질서는 여전히 강고하다. 해서 좀 된 책이 오히려 숙성된 묵은 맛을 깊게 드리운다. 책에게는 여전히 읽힐 가치가 있다는 데서 행운이지만, 사회 전체에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더 심하게 앓고 있다는 데서 불행일 것이다.




존재감과 인정욕,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차별화가 낳는 차별. 그렇게 탄생한 투명한 골품제.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야 어찌됐든'이 윗세대의 차별이었다면, '과정이 공정했다면 결과야 어찌됐든 받아들여야'가 우리 시대의 차별이다. 한번의 노력이 평생 가길 원하는, 마치 그 기업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것 마냥 자기소개서에 소설을 꾸며 적는 것이 우리들의 마지막 문학 수업인, 생존과 자아실현을 동시에 이룩하고자 하나 어느 하나도 제대로 허락치 않는 시대에 고생하는, 바닥의 기준이 워낙 높아져 위대하기보다 평범해지기 조차 어려운 20대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서술은 구어체에 가깝게 쉽게 쓰여져 있다. 눈의 흐름 그대로 읽어 나갈 수 있다. 뿐만아니라 저자의 경험과 저자가 표집한 사례들이 나는 20대의 대표성을 뚜렷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다니면서 한번쯤 보아왔을 그런 사례들 말이다. 이렇게 가끔은 구성원 밖에 있는 사람이 내부자보다 더욱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대학에 20대로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편향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비웃음과 조롱, '니 주제에?' 주제파악이라 적고 깔봄이라고 읽히는 냉소의 연쇄가 학력의 위계질서를 타고 20대의 말초신경과 무의식까지 잡아먹은 것이다. 각자가 뭘하든, 어디서 얼마를 벌든, 좀 존중해주면 어디 덧날까? 자기 인생. 손 안벌리고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는 것, 그 발버둥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치열하게 깔보는 소리 좀 이제 그만 들을 순 없을까?



-본 리뷰와 리뷰 속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희망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돈이 있어야지만 가슴도 뜨거워질 수 있단 얘기다. p.212

이처럼 아무도 ‘키‘라는 걸 경쟁의 잣대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키‘는 경쟁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p.216

그렇게 ‘힐링‘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 없는 세상이 등장할 때, ‘아픈 청춘‘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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