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음성 매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음성은 휘발되기 쉽다. 말은 논리공백이나 비약을 얼버무려서 넘어가기 좋다. 정치 뒷담화는 재미로 듣는 것인데, 몰입하고 믿는 순간 종교가 될 확률이 크다. 팟캐스트에서는 재미(혹은 분노)와 논리가 구별이 잘 안간다. 반면, 활자에는 틈이 적다. 있어도 금방 들통 난다. 더군다나 내용을 습득하는데 나의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단단하다.

 


2.


기본적으로 자기 읽을거리는 자기가 골라야 한다. 요새 언론의 수준이 처참하고, 아무리 기레기들이 활개 친다지만 선구안을 기르는 것도 하나의 훈련과정이다. 페북에 좋은 글 쓰시는 분도 많다. 주간지 정도로 고르면 성향 안따지고 지뢰밟을 확률이 적다. 언론에 대한 반감과 신뢰성 부족으로 팟캐스트를 고른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겐 어차피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니 진짜 조선왕조로 회귀하자라는 말로 들린다. 불량식품은 맛있지만 탈이 날 확률이 높다.


 
3.



싸움의 시대가 가고 건설의 시대가 오면, 진짜 실력이 뽀록난다. 보수정권 9년에서는 사방천지가 다 적이니, 어딜 향해 던지든 누구 하나는 맞았다. 그러나 우리가 집권한 이상 무언가를 비판하는 것에서 창조하는 곳으로 영역이 옮겨온다. 그럼 전문가와 장사꾼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보수 시절에 전문가인줄 알았던 양반들이 몇몇 국면에서 본 실력의 하찮음이 드러난다던가 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해진다. 전문가는 방법을 찾지만, 장사꾼은 음모를 찾는다. 팟캐스트가 다루는 영역은 주로 후자다.

 


4.


아 무엇보다도, 정치학 4년 배우고 대학원까지 다니면, 음악 듣는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굳이 재미로 듣자면 차라리 침펄토론을 보자. 팟캐스트보다 침펄 토론이 훨씬 더 유익하다. 제발 한국인이라면 호랑이 응원합시다.



-2018.11.25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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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시큰둥하고 무덤덤하게 세상을 삽니다. 이미 가버린 과거의 추억보다 오늘의 기쁨이 중요합니다. 어제, 아니면 오늘 어머니가 죽었습니다만, 그것은 삶의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여인과 몸을 섞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친구를 사귀는데, 그 친구의 치정문제에 엮입니다. 남의 싸움에 휘말린 뫼르소는 졸지에 아랍인을 죽여 재판을 받습니다. 칼날에 햇빛이 번뜩여 총을 쏘았답니다. 판결이 나옵니다. 사형.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뫼르소라는 한 이방인에 대해 카뮈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고작 몇 가지 전혀 관계없는 상황으로 한 인간의 내면과 인생 전반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원래 미친 사람이 결국 저질렀구나’를 원하는 사회의 시선은 뫼르소라는 사람의 인생을 제 입맛대로 짜 맞춥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솔직을 강요하는 세상의 위선, 이것이 바로 카뮈가 지적하는 ‘부조리’인 것이지요.


세상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믿는 의지의 인간형이 있습니다. 사는 거 마음대로 되는 게 몇 없으니, 큰 기대하지 말자 믿는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할 수 있다’의 긍정형 인간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인간이 있다면, ‘꼭 뭐가 되어야 하오?’라고 반문하는 잘생긴 룸펜도 있습니다. 사소한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도저히 잠 못 드는 사람, 귀찮음이 억울함에 앞서는 뫼르소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오해의 간격이란 결코 좁힐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책은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합니다. 망막에 맺혀 마음을 거쳐 간 활자의 수만큼, 지면의 여백에 한 사람의 세계가 가득 채워지는 것. 그래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알 도리가 없는 타인의 내면을 부드럽게 훔쳐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고집스럽게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인간 내면의 복잡함, 세상만사의 우여곡절을 조금씩 알게 되면, 한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워집니다. 누군가는 예의 없이 함부로 넘기도, 벽에 숨기도 합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읽고 싶습니다. 우리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은 가깝게 하고 살자고 말입니다. 이방인들의 독서, 우리는 모두 경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저는 편견 덩어리에 앞으로도 성급한 실수를 반복하여 저지를 테지만, 적어도 한 권씩 거쳐 가는 책과의 만남 속에서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어쩌면 조금도 가까워질 수 없는 당신과 나는 한 달에 한 걸음씩, 일 년이면 열 두 발자국이나 가까워질지 모른다는 묘한 설렘을 기대합니다. 당신의 서사를 탐냅니다. 한 이방인이 다른 이방인에게.

나호선 (정치외교학 석사 17)


본 서평은 필자가 <부대신문>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7802&fbclid=IwAR0ETDqUgxjkuqMmIJT9hkWMglS-u-RltfdDdBrBFfhSZdMfCx6st1ZQO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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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반작용이다. 페미니즘의 탄생 자체가 휴머니즘이 역사로서의 인간의 범위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소외시킨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보편의 논리보다는 당사자라는 입장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데 그게 잘 안된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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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재인 재기해"라거나 "유좆당선 무좆탄핵"이라는 구호가 시위중에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원래 직접시위는 그런 메세지 까지 안고가는 거다. 분노가 논리적이면 왜 직접 시위까지 하러 나왔겠나. 촛불집회에도 군데군데 "이석기를 석방하라"라는 함정카드가 숨어 있었다. 진짜 재기하라고 해서 재기할 것도 아니고, 생식기의 유무로 지도자 당락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냥 "허허 거참"하며 뭔가 화난게 있나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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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를 사용했다면 책임을 지면 된다. 지지율이 70%에 달하며 전에 없이 몰카퇴치를 비롯해 실효성있는 여성 정책에 갓 나선 대통령을 겨냥했다면, 그 유명세를 이용해 자극을 줄지 도리어 안좋은 인상을 풍겨 역효과를 낳을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 영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마 직접 시위에 가담했거나 지근거리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정하고 책임지면 된다. 문재인을 공격해서 주목받았으면 됐다거나, 문재인을 공격하는 바람에 4시간치 시위내용이 덮혀버렸다거나는 알아서 판단할 문젠것 같다. 다음 시위기획에 반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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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부의 의견이라던가 이런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자의 한 사람으로, 그 다른 의견을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꽤 이 이슈에 관해서 오래전부터 주시하고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사서 읽고 있는데, 이쪽도 엄연한 분야라 그런가 유행이 있는 모양. 그다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지는 느끼지 못했다. 다양한 의견 중에서 넷페미니즘의 강성 의견이 과대 대표되는 것인지, 아니면 가부장제의 강고함 앞에서 그것 외에 아예 자라지 못한 것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마 나의 무지 탓이거나 접근성에 크게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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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만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강경하고 선명한 목소리가 득세하기도 좋고 주목받기도 좋고 꺾이기도 좋다. 기득권의 횡포가 강할수록 모종의 강대강의 구도가 고착되는 경향이 있고, 치받음 끝에 더 약한쪽이 진다. 담론과 행동이 크게 지속적으로 일고 있으니, 그 동력으로 정치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운동에서 정치로 넘어가면 게임의 난이도와 복잡성이 한껏 올라간다.정치는 무언갈 생산해야하니까.).이대로 소모적으로 끝이날까봐 걱정스럽기도 하나... 자유란 실패할 기회로 사용하는 것마저 포함되니까.. 좌충우돌하다 보면 열정과 피로 사이에서, 누적되는 실패와 성공사이에서 또 다음단계로 진화하겠지 낙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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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체성 정치의 한계라기보다는 그냥 140자로 이즘과 니즘을 설파하려는 넷담론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댓글로 정치학을 배울 수 없고, 나무위키로 역사를 배울 수 없고, 인스타그램으로 문학을 배울 수 없다. 140자로 진행되는 논쟁은 그냥 소모적이고 피로만 줄뿐이다. 나의 인식을 바꾼 것은 활자라기 보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이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뭐 생각 뒤죽박죽인데 이만하고 자야겠다.

-2018.07.08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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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9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재인 재기해‘가 혐오발언이라는 주장을 듣고 웃었어요. 대통령이 언제부터 사회적 약자였나요? ㅎㅎㅎ

프리즘메이커 2018-07-09 23:05   좋아요 1 | URL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문재인보다는 ‘재기해‘라는 단어에 방점을 둔 것이겠죠. 재기해는 운지해의 미러링이니까요. 일베식 어법에대한 비판이고 그 비판도 나름은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양손잡이 2018-07-10 09:51   좋아요 3 | URL
재기해 남기해 태일해 주혁해 등등의 단어를 쓰는 순간 모든 당위성을 잃는다고 봅니다. 저런 표현을 쓰는 게 현재 페미니즘 운동의 주류에다가 자정작용도 없어서 여러가지로 걱정이 듭니다.
 



※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입니다.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원주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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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입니다.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원주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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