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알라딘서재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나보다. 집에 있는 아이들용 책들을 시간날때 심심풀이 삼아 하루 한권씩 꺼내서 읽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골라 읽은 책. The case of the missing pumpkins. 리뷰를 쓰려고 했더니 하필 알라딘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 책이다.  



제목: The case of the missing pumpkins (호박이 사라졌다!) 

지은이: Nancy Star

출판사: Scholastic

출판연도: 2006



여기서 호박은 물론 우리가 식탁에서 먹는 호박이 아니라 아래 그림에서처럼 할로윈 용 거대호박.

애들 책 내용은 거의 탐정물 아니면 이 세상 없는 동물, 이 세상 아닌 상상의 세계, 등등, 이런 요소가 들어가야 재밌어하는 것 같다.




겉표지



79 페이지, 요 정도 두께.




뒷표지





읽기 레벨이 표시되어 있다.




글자도 큼지막

어른이 읽기엔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







아이들 책에는 이런게 있기 마련이다.

퍼즐, 퀴즈, 게임.





내용 일부 소개:



한 동네 사는 세 명의 아이들 Dottie, Casey, Leon이 주인공이다.

Dottie는 무엇이든 첫째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이고, Casey는 Dottie의 절친으로 Dottie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러 갈 정도로 늘 바르고 좋은 생각을 제시해주는 친구이다. 또 한명의 절친 Leon은 남자 아이인데 암석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주 모양의 암석을 모으고 있는데 언젠가는 50개주 닮은 암석을 전부 모으는게 목표이다.

때는 바야흐로 추수감사절을 앞둔 10월.

Dottie네 집 앞 계단에 사다놓은 호박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바로 어제 사다 놓은 호박이 다음 날 아침 감쪽 같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호박을 도난맞은 것은 Dottie네 뿐 아니라 이웃의 다른 집에서도 줄줄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임을 알게 된 세 아이들.

며칠 전 부터 Casey네 집 한 귀퉁이에 Calendar club이라는 공간을 확보해놓고 사건 해결소 비스끄름한 모임을 결서하자고 의기투하던 때 세 아이들, 호박 도난 사건을 첫번째 임무라고 여기며 누가 호박을 훔쳐가고 있는지 찾아내기로 한다. (이름이 Calendar club인 이유는 클럽하우스 공간을 제공하는 Casey의 last name 이 Calendar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세명의 아이들이 호박을 훔쳐간 범인을 찾아낼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찾아낼까?


어른이 읽으면 좀 시시할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이 책은 아이들 대상으로 쓴 책이니 아이들 실제 반응이 궁금하다.

내용 중에 은근히 '기록'의 중요성이 여기 저기 강조되고 있는 것을 느끼겠다. 표지에서도 한 아이가 수첩을 들고 뭔가를 적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처럼 말이다. 사건 해결에서 평소의 관찰, 그리고 관찰한 것은 반드시 기록이 되어져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그 기록이 없었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었을지 아이들한테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오늘 아침, 다음으로 읽은 책이 이책.

위대한 네이트 탐정께서 나오는 이 책은 시리즈로 있는데 아들 어릴때 생각이 많이 났다.

곧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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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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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아르 그림 속의 풍만한 여성의 몸은 왜 현실이 되지 못하는가. 여성의 욕구와 몸은 왜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보다 분석되고 해석되어야 하는가. 겉으로 나타나는 것 보다 훨씬 폭넓고 오래된 감정, 억압, 문화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캐럴라인 냅은 자신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하여 여자들의 욕구 아래 가려진 비밀을 발굴해내기 위해 고고학자처럼 분투하였고 그 결과로 이 책을 내었다.

제목 '욕구들'이란 원제 ‘Appetites’를 번역한 것으로, 흔히 음식과 관련해서 쓰이는 단어이나 사전 상에서 찾아보면 그보다 넓은 의미를 가졌다. 저자는 우리에게 가득함과 만족, 완전함의 느낌을 주리라고 상상하는 실체와 행동Appetites라고 보았고, 번역자는 욕구들이라고 번역하여 제목으로 하였다.


우리의 욕구는 무엇일까. 우리가 갖고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 개개인이 체중에 골몰하는 일은 체중 외에 더 복잡다단한 불만의 원인들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허리선의 상태를 고민하는 것이 영혼의 상태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더 쉬운 법이니까. (44)


진짜 욕구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사고성찰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밖에서 주어진 틀에 쉽게 덮여지며, 갈수록 비대해져가는 소비시장의 확대와 편승하여 간단하게 해결되고 만다.


여성의 몸은 이 사회가 메시지를 쓰는 장소 (로잘린드 카워드 <여성의 욕망>)


태어나서부터 남자 아이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받는 반면 여자 아이의 경우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뿌리 깊게 인식된다. 그 어떤 존재란 무엇인가. 타인을, 특히 남성을 편리하게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것과 관련된 존재이다. 제공자의 이미지.

단 하나의 경우. 사회에서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여성이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쇼핑'이다. 여자들로 하여금 내가 주체라는 의식을 느끼게 하고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쇼핑, 특히 고급 소비재 쇼핑을 하는 순간이다.

저자는 열여덟살에 우연한 계기로 거식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루 800kcal라는 제한된 식이를 지키는 지독한 결단력으로 지탱해간 고통의 세월이었다. ? 거식증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 정신적인 불안은 한 종류가 아니라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모든 허기들로 작용하였고, 감당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하나의 불안 (체중)에 다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굶기와 강박의 의의가 된 것이다. 굶는 것은 괴롭지만 굶어서 괴로운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굴복하는 이 풍성한 음식들을 거부하는 나 자신이 거의 초월적이라고 느끼는 을 택한 것이다.


그 허기가 나에게는 공기와도 같았으며 나는 허기가 선사해주는 의지의 확인이 필요했고 어떤 극단적인 실험 중 실제로 효과를 발견한 과학자가 느낄 법한 조용한 놀라움을 품은 채 허기가 내게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168)


이렇게 불안이 왜곡되고 은밀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발전 없이 여전히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주입시키고 가르치는 사회이고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정 (rowing)을 시작하게 된 것은 모든 결정을 거식증이 내리는 명령에 따랐고 그리고 남아 있던 에너지를 겨우 일에 쏟아부을 수 있던 무렵의 캐럴라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나는 예전에 여자로서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화롭게 어우러진, 강하고 온전한 하나로서의 몸, 마음과 연결되어 있고 마음에 반응하는 몸, 살아가기에 훌륭한 장소인 몸이었다. (241)


나는 직장에서 여자 화장실로 슬그머니 들어가 거울 앞에서 몰래 이두근을 굽혔다 폈다 했고, 그 모습이 내게 준 작은 전율은 (근육이야!) 한때 야위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느꼈던 전율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것은 자기 돌봄과 자기 파괴의 차이, 내어주는 것과 쥐고 놓지 않는 것의 차이였다. 그 변화는 실로 극적이었다. 음식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 후 처음으로 경험한, 말라가는 것이 아닌 육체적 변화였다. (269)


여성의 욕구는 그 말 그대로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를 의미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와 문화에 의해 규정되어 지고, 한번도 우리의 욕구에 의해,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고 경험하고 느끼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어떻게 포장되어야 하는지에 매달려 남에게 찬탄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갖추라고 학습되지 말고 말이다.

남이 원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생의 소중한 부분을 갈아 넣으며 살고 있는 여성이 아닌 사람, 있을까?


우리가 선택되는 대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257)

만약 우리가 만족과 성공의 내적인 척도들 에도 외적인 척도들만큼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에서 살기만 했더라면.

동시에 공 아홉 개를 공중에 띄운 채 던지고 받고 해야 한다는 강박을 덜 느꼈더라면, 그리고 그 공들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토록 쉽게 자신을 비난하는 성향이 덜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실제로는 상당히 크지만 개탄스러울 정도로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힘을 행사하기만 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관점과 용어로 욕망을 정의하기만 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우리의 외양에 대해, 우리의 몸무게에 대해, 우리의 옷차림에 대해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만 않았더라면. (298)


선진 국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현대 여성도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읽고 배우고 느낀다. 그리고 글로 말로 표현해야 함을 깨닫는다. 고립되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자유롭기 위해서.


고통은 고립 속에서 창궐하고 은밀함 속에서 번성한다. 단어들은 고통의 숙적이며, 괴로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 괴로움을 진정시키는 첫걸음이고, 여자가 힘겹게 발을 옮기며 헤쳐 나가는 진흙 수렁-자기 혐오와 죄책감의 몸부림, 공허함과 욕구의 메아리-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 수렁을 빠져나가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304)


마지막 장의 제목은 희망을 향해 헤엄치기”.


어느 정도의 공허함과 불만족은 삶의 불가피한 부분일 뿐 아니라 유용한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

허기는 비록 불편하기는 해도 연료와 비슷하다. 우리가 계속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들며, 그 작은 걸음마를 계속하게 힘을 주며,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새로운 영토로 우리를 떠밀어 주는 것이다. (370)


저자는 그 고통의 세월을 이렇게 끌어안으며 새로이 본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금세 지나가는 순간들이. (371)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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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0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리뷰글입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hnine 2023-09-02 14: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올해 읽은 가장 좋은 책들 중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yamoo 2023-09-1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왜 원할까요? 어떨 때 원할까요? 저도 그것이 몹시 궁금합니다! ㅎㅎ

hnine 2023-09-13 11:59   좋아요 0 | URL
거기에 이렇게 복잡하고 오랜 역사가 작용하고 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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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목을 쓰는데 망설여졌다. 이 소설의 결론을 제시해버린 것 같아서이다. 그래도 내용을 드러낸 것은 아니니 그대로 두기로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두말할 필요없이 일본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다작의 작가이기도 한데 나와는 취향이 좀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동안 내가 읽은 것은 <용의자 X의 헌신> 한 권 뿐이었다. 이 책 <방황하는 칼날>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는데, 앞서 읽은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랬듯이 일단 읽기 시작하니까 페이지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 며칠 안걸려 다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의 경우 스토리는 범행이 일어난 후가 아니라 범행의 시작부터 다 보여주며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누가 어떻게 일을 저질렀는지 독자는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범인이 궁금해서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

아무 특별한 동기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노리개감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지나가던 어린 소녀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하여 유기한 세 명의 범죄자는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 진학도 제대로 안하고 막 살고 있는 세 명의 청소년이다. 아내도 없이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던 평범한 회사원 남자 '나가미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 에마를 잃고 나자, 경찰에 수사를 맡긴 채 그냥 거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범인 청소년들은 경찰에 의해 잡힌다 할지라도 분명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소년원에서 가볍게 처벌 받고 다시 사회로 복귀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남자는 딸에게 짐승같은 짓을 저지르고 살해한 이들을 벌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죄를 심판할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은 안다. 그것은 법원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할 수 있나?

그런 일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원해준다.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그 인간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숨긴다.

그게 형벌일까? 게다가 그 기간이 놀랍도록 짧다. 한 사람의 일생을 빼앗았는데 범인의 인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니. 

그런 바보 같은 얘기가 어디 있나 싶다. 그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 빼앗은 것은 에마의 인생만이 아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인생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134-135)

딸을 잃은 아버지 나가미네의 생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 명의 공범중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도주중이며 나머지 한 명은 직접 가담은 안했다는 명분 아래 도주하는 대신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지만 이들은 이 사건 이전부터 비슷한 범행을 하며 같이 행동해오던 친구들이다. 

살해당한 소녀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복수의 행로를 취하는 동안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도주중인 공범 소년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받으며 그를 쫓는다. 익명의 제보자는 과연 누구일까. 나가미네는 과연 목표대로 복수를 감행할수 있을까.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들 중에도 수사의 의미에 대해 회의을 품는 '오리베' 형사 같은 사람이 있다.

법을 어긴 자들을 잡는 게 우리 일이다. 그럼으로써 악을 없앤다는 게 표면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런다고 악이 없어질까? 체포해 격리하는 건 달리 보면 보호다. 일정 기간 '보호'된 죄인들은 세상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 대다수는 또 다시 법을 어긴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어떤 보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있나? 오리베는 의문을 품었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534)

제목 '방황하는 칼날'의 의미가 담긴 부분이다.


설사 법이 제대로 정의의 칼날이라 할지라도 그 칼날을 쥐고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칼날이라 할지라도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잘 써진사회소설 한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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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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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개인이 살아온 얘기를 단지 한 개인의 역사로 보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것들을 수집하여 한 시대의 역사물, 아카이브로서 데이터화 하는 경향이라고 한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회고록이고 non fiction이다. 

저자 그레이스는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미국인 아버지가 한국에 와있는 동안 만난 기지촌 여성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저자가 한 살 반, 오빠가 여덟 살 반이던 1972년, 아버지가 살고 있는 와싱턴주 (미국 서부) 셔헤일리스라는 작은 마을로 엄마와 함께 이주하였으니 저자에게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반은 미국인 아버지의 핏줄을 가지고 있는 외형이었지만 이민자를 혐오하던 분위기로 저자는 이방인이라는 의식과, 아메리칸도 아니고 코리안도 아닌 아메리시안 (americian) 이라는 이중의식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천성적으로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엄마는 딸이 학교에 잘 다니면서 인정받기를 마라는 마음으로 친구들이나 이웃을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딸에게는 꿈을 크게 가질 것을 강조하곤 했다.

제목 <전쟁 같은 맛>은 올케가 엄마에게 차려준 음식 중 유독 분유에는 손도 대지 않은 이유를 저자가 묻는 대목에서 나온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이웃에 한국 아이나 아내가 새로 미국 가족이 되어 올 때마다 엄마는 이들을 모국어로 환영했다. 김치 한통을 손에 들고 말했다. “함 묵자.” 같이 먹어보자.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 온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엄마는 김치를 담가 주었다매일 같이 먹고 요리하는 일이 우리가 남겨 두고 떠나온 사람들과 장소에 우리를 연결시켜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엄마는 이들이 잃어버렸거나 이들에게서 지워진 한국의 친족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행동에는 엄마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고 엄마는 이를 통해 살인적인 상황에 맞부딪치며 살아내기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163-165)


한국에서 어린 아이를 입양하는 이웃을 보면 일부러 방문하여 한국음식을 만들어주기 도 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하던 엄마가한 이웃이 어린 아이가 아니라 열일곱이나 된 여자 아이를 입양한 것을 보면서는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인간들은 애를 한 명 더 원한 게 아니야! 식모를 원한 거지!”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여자 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걸 자선사업으로 위장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163, 164)


야생 블랙베리를 따다가 이웃에 싸게 파는 생활력을 보이기도 하면서 이웃에서 엄마에 대한 평판이 새로워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되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기도 하는 엄마였다.

저자는 저자대로 불안한 가정 생활, 혹독한 사춘기, 제한된 교우 관계를 거치며 다행히 엄마가 원하는 수준의 좋은 대학에 진학을 하였고 집을 떠나 엄마를 아주 가끔씩 밖에 못 보게 된다. 그러다가 올케로부터 엄마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살고 있던 엄마에게 조현병 이 발병하였음을 알게 된다. 약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오빠네 집으로 옮겨 살기도 하는 등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음식을 거부하고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며 정체 모를 정령의 목소리를 듣는 등 엄마의 증세는 심해져 가자 저자는 시간을 쪼개어가며 엄마를 방문하는 횟수를 늘리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을 한다. 

저자는 엄마의 음식 거부 증상이 음식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분유라든지아놀드 슈와제네거의 이름을 딴 아놀드 빵이라든지매우 구체적인 것임을 발견하고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엄마의 결정이 주체성의 표현이자 거대한 권력 구조에 대항하는 작은 반란 행위임을 깨달았다. (41)


저자는 엄마의 살아온 나날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에서의 전공과 관련하여 엄마의 존재와 생애를 개인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해보고자 하는 목표가 생긴다.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하며 두게 된 거리, 새로 접하게 된 생각과 비판적 사고는 결국 엄마의 조현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찾는 길로 이어졌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면서 내가 품은 한은 엄마의 한과 더 끈끈히 엉켰고 감정적 응어리가 쌓이고 또 쌓이며 내가 살면서 내리는 결정에 더 많은 힘을 실었다. 우리의 한을 풀어내려 할 때마다 나는 1986년으로 되돌아 갔다. 열다섯 살에 나는 사람들이 엄마를 한 번 쓰고 쉽게 내버릴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았고 엄마가 당신 인생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채 이 땅 위를 유령처럼 떠돌게끔 방치됐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236)


엄마의 한을 푸는 것이 곧 이방인처럼 살아온 나의 한을 푸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은둔생활을 하는 엄마가 집 담장 너머의 지평선을 상상하며 소리 내어 묻곤 했다.

저기 밖에는 뭐가 있을까?”

밖은 어디고 엄마가 있는 곳은 어디였을까.


1998년에 나는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 등록했고 쓸모없다고 느낄 정도로 엄마의 정신을 산산조각 낸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찾아내겠다고 결심했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다음 두 문장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모든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매춘부였어요. 그리고 쓸모없어. (325)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일 이년 만에 이루어진 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최소 두 세대의 삶에서 축적된 한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성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항상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을까. 오드리 로드가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이라는 글에서 적었듯.

나의 침묵은 나를 보호해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입니다.” (460쪽 번역가의 말)


기지촌 여성이라는 특수 신분, 그리고 가족사를 밝히는 내용인만큼 확인 작업도 많이 필요했고 가족들의 동의, 공개 허용을 묻는 과정도 특별히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나온 책이라서, 더 귀하게 읽게 된다.

한국의 아픈 역사를 읽는 마음이 역사서를 읽을 때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런 의미 있는 기록물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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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8-2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저도 방금 그레이스 조가 가족에게 소송당했는지 관련 기사를 찾던 중이었어요. 마지막 문단에서 말씀해주셨듯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등의 절차가 정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hnine 2023-08-26 22:35   좋아요 1 | URL
http://geulhangari.com/archives/12147
안녕하세요. 위의 링크를 저도 여기 알라딘 친구분께서 알려주셔서 읽어보게 되었답니다. 사실 저자의 어머니로부터도 생전에 확실한 동의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저자의 말로 밖에는 확인할 수 없어서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예상되었어요.
현재 얼마나 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 제기가 될 소지가 있어서, 저자의 원래 의도와 노력이 좌절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양희은 님의 에세이 제목에 담박에 공감이 갔다. 

똑같진 않지만 '그러라고 해', '그럴수도 있겠군' 이라는

비슷한 말을 나도 평소에 종종 하기 때문이고 언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책 제목으로 보니 더 뭔가 있어보인다.


'그러라고 해' 이 말은 즉각적으로 감정 가득 실어 하는 말인데 반해

'그럴 수도 있겠군' 이 말은 한참 후에, 어떤 때는 한밤 자고 다음 날 새벽에서야 하게 되는, 감정 많이 수그러뜨린 후 하는 말이다.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 또 내가 자주 하는 말은 '그래도'

'그래서'가 아니라 '그래도'.

이말도 즉각적으로 나오는 말이기 보다는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한 후 하는 말일때가 많다. 감정 깎고 부족한 이성 끌어모아, 사소한 일들에 영향받지 않겠다는 의지, 내 루틴을 계속해나가겠다는 결의, 내 인생을 그대로 진행시키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 책 제목으로 '그래도' 는 어떨까 상상해보았더니, 세글자는 어딘지 부족해보인다.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처럼 다섯 글자가 입에도 잘 붙고 좋다.


<그럴 수 있어> 책 표지 그림은 양희은 님이랑 정말 닮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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