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의 사람들
민혜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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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디멘시아 문학상 공모전 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이라는 소개글이 보이니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디멘시아 북스라는 출판사가 있다. 한 신경정신과 의사를 중심으로 치매 환자및 가족을 위한 후원회가 결성되었고 치매 관련 정보 및 건강 정보 등의 건강지식을 알리기 위한 치매 전문 인터넷 매체 홈페이지가 개설된 것을 시작으로 치매관련 작은 도서관 설립, 이어서 치매 관련 서적 소개와 출판을 위한 출판사가 설립된 것이 디멘시아 북스이다. 이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디멘시아 문학상 공모전이 있었고 2021년 제5회 디멘시아 문학상 소설 공모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2023년에 출판되어 나온 것이 바로 이 책 <레테의 사람들>이다. 책이 나오게 된 배경 소개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에 우선 적어보았다. 갈수록 증가하는 치매에 대한 관심이 문학공모전에까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에 에세이로 등단한 작가이고 그녀의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을 읽어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화자인 윤정인은 엄마 뱃속에 있을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채 홀엄마 손에서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혼자 딸을 키우느라 그닥 살갑지 않았던 엄마와 사느라 아픈 기억이 많은 딸 정인은 결혼도 하지 않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지만 이제는 치매 환자가 되어 버린 엄마와 여전히 한집에 살고 있다. 딸도 못알아 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구는 엄마는 정인으로 하여금 갈수록 돌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엄마의 기억이 자꾸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정인은 지금까지 한번도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얼굴도 모른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알게 된 어머니 인생이 상처 투성이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성장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연과지어진다. 더구나 요즘 들어 자신 역시 예전같지 않은 기억력으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어 갑자기 알게 된 어머니의 일생을 어머니와 어머니의 치매를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계기가 된다.       


이 세상에 어느 딸도 어머니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어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연관성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어머니의 인생으로부터 나에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끈, 쉽게 끊어낼 수 없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나이에 이른다. 어머니의 과거는 자기의 출생과 연관이 있으며 자기가 자라온 방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숙명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부르지 않아도 그렇다.

저자는 이점을 치매와 잘 연관시켜 스토리를 구성하였고 어머니의 과거와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궁금증을 결말까지 가져감으로써 읽는 동안 독자의 관심을 끌고 가도록 하였다. 아쉬운 점은, 주인공의 특별한 노력 없이 그냥 드러나는 가족사와 그것을 너무 쉽게 잘 받아들이고 주인공이 마음의 정리를 하며 맺는 결말이다.

공모전의 취지에 맞게 치매가 글의 중심을 잘 이끌어간 것은 이 작품이 대상작으로 선정되는데 적합했음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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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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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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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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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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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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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
이동연 지음 / 창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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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보고 들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화가 고호. 그래서 한번도 그의 일생을 한권으로 꿰뚫어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의 제목이 저자나 출판사가 지은 것이라면 좀 작위적이지 않나 했는데, 고호 자신이 한 말이란다. 죽고 나서 주머니에서 미처 부치치 못한 편지 한통, 테오에게 보내려고 했던 편지가 나왔고 거기 써있던 글귀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 책을 쓴 저자는 방송매체와 기업에서 예술과 역사 관련 강의를 많이 한 경험이 있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오랫동안 고정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에 대해 다룰 때 고흐를 방송했던 것을 인연으로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강의 경험이 많은 때문인지 글이 편하게 읽혔다.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고흐의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시간 순으로 구성이 되어있어 지루함 없이 따라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된다. 

책 내용에서 언급하는 그림이 바로 그 페이지에 삽입되어 있어 따로 검색해보지 않고 바로 볼 수 있게 구성한 점도 독자로서 마음에 들었다. 긴 일생을 산 고흐는 아니지만 시기와 거주지에 따라 화풍이 다소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나중에라도 그림들이 이 책에 등장했던 순서를 기억해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순으로 어느 그림이 이전 그림이고 어느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 그림인지 대개 가닥이 잡힐 것 같다. 


1853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준데르트에서 태어난 고흐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동생 테오와는 네살 차이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듯, 어머니가 풍경을 그리러 나갈때 가끔 따라다니며 데생을 했다고 한다. 그가 9살때 그렸다는 목탄화 <다리>를 보면 확실히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흐의 원래 꿈은 화가가 아니라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였고 그림은 취미였다고 한다.

형제가 많았던 고흐는 초등학교는 몇년 다니다 말고 동생들과 함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6살에는 화랑에 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학을 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기대를 따르지 않고 고흐는 서른이 다 된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헤이그를 거쳐 벨기에의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에서 미술 아카데미에 다녀봤지만 브뤼셀 왕립미술학교를 1년도 채 못다니고 그만 두었듯이 안트베르펜에서의 아카데미도 너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그만두고 만다. 하지만 고흐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리고는 예술의 도시 파리로 무작정 떠난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누구 못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미술상을 하고 있던 테오로부터 고흐의 그림은 기대만큼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뿐이다.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라는 테오의 조언도 듣고, 파리의 다른 여러 화가들을 만나 그들의 그림을 보고 매료되기도 하면서 자기의 화풍을 구축해나간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연인으로부터 잇달은 실연과 잘못 퍼진 소문, 좋지 않은 결과만 주고 있는 그림으로 고흐는 정신적 불안과 조울증세를 나타내며 힘든 생활을 한다. 이런 가운데 고갱을 만난 고흐는 천재 화가를 만났다며 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를 하고 좋아하는 노란색의 집을 구한뒤 고갱을 불러들인 고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생 테오와 주위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갱과 함께 한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토록 좋아하던 고갱이었지만 이들의 그림 방식과 주관은 사못 달라서 자주 의견 충돌을 보였고 사이가 멀어져 급기야 고갱은 고흐를 떠난다. 

건강이 더욱 악화된 고흐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아를을 떠나 생레미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외롭고 힘든 요양원 생활을 하지만 여기서도 그의 그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당시 그의 그림을 보면 우울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다. 비탄에 빠진 노인, 단체로 운동하고 있는 죄수들, 황혼의 풍경등. 

자신의 건강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안 고흐는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파리 근교 시골 마을 오베르로 가서 오베르의 전원 풍경을 그리며 마지막 창작열을 불태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나무 뿌리와 기둥>은 그가 오베르에서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1890년 그의 나이 37세,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고흐는 총알이 가슴에 박힌채 하숙집으로 돌아왔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난다. 아직도 그것이 고흐 자신이 쏜 총인지, 다른 누가 그에게 총을 쏘았는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그가 죽은지 6개월 후 동생 테오 역시 세상을 떠났다. 


왼쪽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뚝 솟아있는 그의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은 1889년 그의 요양원 시절에 그린 것, 강물에 가스등 불빛이 마치 별그림자 처럼 비추고 있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빈센트의 방> 등은 1888년 아를에서 그린 그림이다. 자연을 즐겨 그린 고흐이지만 비교적 작은 정물을 그린 그림들에서 유독 더 쓸쓸함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낡은 구두, 뒤집어져 있는 게, 말라비틀어진 청어.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의 작품들이 생전에 그렇게 하나같이 인정을 못받았다는 사실이 나같은 보통사람에게 예술이라는 세계에 대해 난해함만 던져준다. 그리고 작가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 공황상태, 조울증에 시달리는 상태에서도 음악, 미술, 문학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것이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라면 가능할까? 

고흐의 37년 생애를 따라가며 그림 감상까지, 느끼고 정리하기에 좋은 기회를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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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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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2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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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고흐 책을 읽고 그의 인생이 좀 안 됐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림을 그릴 땐 행복했을까요?
불행한 삶이 예술을 방해하기보다 오히려 예술적 작품을 탄생하게 만들기도 하죠.
행복한 예술가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예술가들의 인생에는 고독 우울 불행 소외. 이런 것들이 따라다니는 듯합니다.

hnine 2023-10-19 12:53   좋아요 0 | URL
정말 불행한 일생을 살다 간 화가이지만, 그나마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떨쳐내는 결단력이 있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던 용기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행복이 뭘까요?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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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하고 구입하긴 했지만 읽기 시작하자 마자 너무 내 얘기 그대로 써놓은 것 같은 내용에 아예 밑줄 치기도 포기하고 그냥 죽죽 읽어갔다. 

김소연 시인이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이 나처럼 저자에 공감할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이 세상이 모두 캐럴라인 냅 같다면, 나 같다면, 그건 아닐 것 같으니까. 

고립은 일종의 자기 보호, 자기 방어 기제로서, 나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되어 선택된 것이지, 고립된 삶 그 자체가 좋아서 선택된 것은 아닐 것이다. '명랑한' 은둔자라고 한 것은 나의 이런 삶을 명랑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이다. 은둔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명랑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때 고립고독이 된다. 저자가 말했듯이 고립과 고독은 다른 차원의 것. 원서에는 어떤 단어가 쓰였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lonelyness 와 solitude가 아닐까 추측된다. 고립과 고독이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사이가 분명하게 구분이 가는 것은 아니어서, 둘의 관계는 쌍둥이 같기도 하고 마치 미끄러지는 경사로 같은 것이라고 지적한 저자는 과연 예리하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늘 분명하거나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두 상태가 늘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고독은, 내 경험상,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경사로다. 처음에는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종종 아무런 경고도 자각도 없이 훨씬 더 어두운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상태다. (20쪽)

우리가 할 일은 고립의 상태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관리하는 일. 그 어느 은둔자도 고독을 즐기는 것이지 고립을 즐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혼자 있는다는 것은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5쪽)

그러면서 저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될 것도 각오해야한다.

"이게 정상일까?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지 않은 나의 작은 세계인 것이다.


저자 캐럴라인 냅은 미국의 작가이자 컬럼니스트로 1959년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성장하였고 브라운 대학 졸업후 보스턴 휘닉스지 칼럼니스트로 8년 동안 일하면서 쓴 그의 칼럼을 묶어 첫번째 책 <Alice K's guide to life>를 출판하였다. 이후 본인의 알콜중독 경험을 내용으로 한 <Dringking>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고 다이어트 강박증과 식이장애 경험에 대한 책 <Appetites>, 개에 대한 애착을 내용으로 한 <Pack of two>등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였으나 폐암으로 2002년 42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였다. 

여기 실린 글들은 1992년에서 2000년사이, 그녀가 30대에 쓴 것들로서 역시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들이다. 어찌 보면 일기 같고 자기 분석의 결과물이기도 하며 어둡고 우울한 내용들일 것 같지만 글쓰는 능력이 유려하고 유머 감각을 놓지 않으려했던 덕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저 느낌과 감정에 치우칠수도 있는 내용이었을텐데 어쩌면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이렇게 철저하게 분석하여 객관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우울한 은둔자가 아니라 명랑한 은둔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끊임없는 연습과 자각이 필요한 과정이다.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계속 줄타기 해야하는 여정이라고 할까.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I am a merry recluse.)"

그녀가 스스로 그렇게 불러보았듯이 한번 흉내내본다. 명랑이란 말이 여전히 낯설다. 나랑은 안어울리는 단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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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10-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립과 고독이 다르다는 말 와닿는데요. 자신의 성향인 은둔을 받아들이지만 그걸 고립이 아니게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hnine님 리뷰에서 느껴지네요. 저도 읽으려고 사놓은 책인데 hnine님 글 읽고 빨리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hnine 2023-10-05 06:07   좋아요 1 | URL
정신분석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저자가 자신에 대해 참 잘 알고 있었어요.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이지요. 고독과 고립에 대한 차이점 정도는 우리도 쉽게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상태가 별개의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가역적으로 계속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러려면 자기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저자는 어딘지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져요.
번역이 매끄러워서 더욱 더 가독성 있는 책이었어요. 사놓으셨다니 금방 읽으시겠네요.
 
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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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름을 보고 쥬라기공원을 쓴 미국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인줄 알았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친숙한 이름이어서인가 보다

퍼핏 쇼의 작가 크레이븐도 현재 영국에서 열광하는 추리소설 작가라고 한다. 한때 추리소설에 빠져있던 때 읽던 작품들은 이젠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고전이 되었고 요즘에 나오는 추리소설 중에선 예전만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드문데도 예전의 관심이 남아있어서인지 끊임없이 어디 재미있어 보이는 책 없나 흘끔거리고 있다가 그나마 간간히 읽어보고 있다. <퍼핏 쇼>도 그렇게 읽게 된 책이다.

'퍼핏쇼'. 꼭둑각시놀이. 상징적 제목일까, 실제 그런 내용일까? 책 표지에 다 타버린 성냥이 1, 2, 3, 4, 5 번호가 매겨져 나란히 누워있다

첫 페이지부터 바로 한 노인이 환상열석 가운데에서 철제 대들보에 묶인 채 불태워지는 끔찍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불태워지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고의적으로 불태운 사람이 있다. 동일한 수법의 이런 끔찍한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세번째 시신까지 발견되자 영국 국가범죄수사국 (NCA)의 중범죄분석파트가 수사에 들어간다

NCA의 스테파니 플린 경위는 사건 수사를 위해 예전 상사였으나 정직당하고 고향 컴브리아 (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에 내려가 있는 워싱턴 포를 복직 시켜 불러들이고 또 한사람 중요한 임무를 해낼 사람으로 20대 천재 데이터분석가 틸리 브래드쇼를 팀으로 합류시킨다. 플린의 권유를 받고 처음엔 내키지 않아 하던 포가 복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불태워진 세번째 시신의 가슴팍에 마치 다음 희생자로 지명하는 듯한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 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태워진 시신들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이들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다가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낸 것이 실마리가 된다. 이들은 모두 수십년 전 어떤 자선행사에 참여했었다는 것인데, 세븐파인스 보육원을 후원하는 크루즈 자선행사에 초대되었었고 그 보육원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이 사건에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관련이 있다면 어떤 관련이기에 수십년 지난 지금에서 같은 장소에 있던 세 사람이 동일한 수법으로 불태워 죽임을 당한 것일까?

고대 마녀사냥도 아닌데 불태워 살인한다는 수법도 그렇거니와 범행 동기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고도로 치밀하게 엮여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읽는 재미는 물론이고 범인이 거의 드러나고 나서까도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저자의 뒷심이랄까,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끈기가 담겨있는 작품이다.

계획된 복수는 오래 준비되었고 치밀한 과정에 의해 행해진다. 그의 계획과 조종에 의해 차근차근 이루어지는 꼭둑각시 놀이이자, 원한을 맺게 한 수십년 전 그 사건도 일종의 꼭둑각시 놀이였다고 볼수도 있다. 조종하는 자와 조종당하는 자가 있다는 점에서.


이십 몇년 전에 가보았던 영국 남부 솔즈베리의 스톤 헨지가 떠올랐다. 황량한 벌판 가운데 우뚝 서있는 환상열석이 예상보다 경이롭고 신비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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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2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2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2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젤름 키퍼가 전해주는 가을은 너무 어려워.

전시를 보고 나와, 오래 된 동네를 걸었다.

빈 집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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