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펭귄클래식 32
너새니얼 호손 지음, 김지원 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알고 있어서,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 없으면서 마치 읽은 것 처럼 착각하고 있는 책들이 더러 있다. 이 책도 나에게는 그런 책 중 한권이었다. 집에 민음사것과 펭귄클래식것, 두권이나 가지고 있었는데 여태 읽지도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해설이나 부록 같은 자료가 좀더 풍부한 경향이 있는 펭귄클래식으로 읽기로 했다.

재미있는 것은 출판사는 달라도 표지 그림은 똑같더라는 것. Hugeus Merle의 <주홍글자>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작품이 쓰여진 때는 1850년이지만 작품 속 시대배경은 그보다 200여년 전인1640년에서 1650년 사이이다. 공간적 배경은 영국에서 청교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뉴잉글랜드 지역 (영국의 입장에서 뉴잉글랜드'식민지'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는)의 어느 마을. 너새니얼 호손 자신이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이라는 곳, 유서 깊은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소설의 첫페이지는 감옥과 주변 묘사로 시작된다. 감옥 앞에는 곧 있을 구경거리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거리며 떠들고 있다. 곧 감옥 문이 활짝 열리며 형리 손에 이끌려 젊은 여인이 나온다. 여인은 생후 3개월 쯤 되는 갓난 아기를 안고 있다.

여인의 외모는 어떠했을까? 키가 크고 완벽할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그녀의 모습이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 설명되어 있다. 감옥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어떤 후광이 비칠 정도의 아름다움이었고 귀부인다워 보이기까지 했다고. 그녀의 어디에도 불행의 먹구름이나 의기소침, 침울함의 흔적은 없었다. 이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헤스터 프린의 인상이다. 그리고 곧 그녀 가슴에 수놓아져 있는 글자 얘기가 나온다. 그녀의 우아하고 귀티나는 모습에서 결국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그녀의 가슴 위에서 빛나던 주홍글자였다. "A" (for adultery).

처음에 묘사된 헤스터의 이 모습은 이후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성격과 어긋나지 않는다. 아기를 혼자 힘으로 키워야 하는 책임감이 그녀를 당당하게 했을까. 비록 그녀의 마음은 고통 받고 있었을지라도 그녀는 자기 앞에 닥친 벌을 피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초라한 오두막집에 딸과 함께 살며 오랜 시간을 꿋꿋하게 견뎌낸다.

누가 봐도 그녀가 죄인임을 알수 있는 주홍글자를 가슴에 달고 사는 헤스터와 대조적인 인물이 있다. 딤즈데일 목사, 그리고점차 쇠락해져가는 딤즈데일을 옆에서 보살펴준다는 명분으로 그의 주위를 맴도는 의문의 의사 로저 칠링워스이다. 로저 칠링워스가 돌봐준다고는 하지만 나아지는 기색은 없이 딤즈데일 목사는 갈수록 더욱 약해져가고 누구에게도 말못하는 괴로움과 고통, 강박에 시달리는 듯 하다. 의사의 돌봄 마저 마다하는 그의 고통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의사라고 하는 로저 칠링워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 있는 헤스터에 대해 알고 싶은 것보다 독자는 어느 새 딤즈데일 목사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간다. 헤스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이 잘못이 맞다면), 그래서 결과가 어떤지에 대해선 그녀가 달고 있는 주홍글자로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홍글자를 달고 사는 사람의  치욕보다 더 버티기 힘들게 하고 더 괴롭게 하여 결국 인생을 마감하게 하는 것, 즉 보이지 않는 주홍글자를 달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눈에 모이는 주홍글자보다 더 치명적인 그것을 딱히 무어라고 이름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는 말중 <양심>이 그것 아닐까? 이 세상 어느 법보다 무섭고 가장 나중까지 효력을 발생한다는 양심. 자신만이 아는, 자신에게 향하는 잣대. 남이 억지로 가슴에 붙여놓은 주홍글자보다 더 무서운 그것은 남으로부터 선고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괴롭히는 것이다.

나는 헤스터의 초라하고 고독한 삶보다, 밖에서 보기엔 사람들의 존경받는 삶을 살았던 목사 딤즈데일의 삶에서 오히려 더 인간의 나약함과 비애를 느낀다. 사실 목사를 괴롭혔던 것 중의 하나가 그것이었다. 자기가  알고보면 어떤 사람인지 마을 사람들은 결코 모른다는 것, 자기가 나는 이런 사람이오 라고 설사 폭로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라는 것. 그것이 목사를 안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볼때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며 살아가는 헤스터를 구원해주어야 하는 역할을 했어야 목사를 오히려 헤스터가 그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려 하지만 작품속의 또 한사람, 바로 로저 칠링워스의 미움과 복수심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헤스터가 죄인이라는 표시로 가슴에 달고 있던 주홍글자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겁게 짓누르며 어떤 사람의 인생을 의도와 다르게 몰고 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딤즈데일에게는 양심이었고 로저 칠링워스에겐 미움과 복수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대로의 생각일지 모르겠고 그것이 작가의 의도와 빗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의 해석이어서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있다.

 

민음사판에는 없고 펭귄클래식판에는 있는 것이 책 앞의 <세관>이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이다. 너새니얼 호손이 <주홍글자>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200여년 전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마녀사냥이 있었고 작가의 조상이 그 마녀사냥에 참여했었다는 기록을 우연히 발견하고서 작품 <주홍글자>를 쓰게 되었단다. <세관>은 주홍글자 본문과 달리 짧기는 해도 과연 에세이인 것이, 이 작가의 성격이 이 문장 저 문장에서 거침없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사물과 사건을 보는 관점, 그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사람들과 친했으며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는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비록 우리말로 번역된 가운데서도 단순하지 않으며 통찰력있는 문장 표현들을 발견할 때마다 몇번 반복하여 읽고 싶게 만들었던 재미때문에, 본문 주홍글자만 읽지 말고 <세관>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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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12-0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착각이 아니길 바라게 되네요. 저는 세로 줄로 된 전집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오래전에요.

영화로도 봤던 기억이...

독서 목록은 예전부터 있었고 영화 목록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언제부터인가
중단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본 영화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앞으론 책이든 영화든 본 것은 무조건 기록하는 걸로... ㅋ

<세관>을 꼭 읽고 싶군요.

hnine 2016-12-08 17:11   좋아요 0 | URL
저도 착각하는 책들이 많고 이 책처럼 확실히 안읽었으면서도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는 책들은 전혀 모르는 책보다 오히려 더 안읽게 되더군요. 그런데 이제서 접선(!)이 되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제가 막연히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깊은 뜻이 있어서 저에게는 분명히 소득이 되었답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책으로 작가의 단편선이 집에 한권 더 있는데 그것도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