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펭귄클래식 2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라고 시작하는 시로 유명한 푸시킨이 남긴 소설 중 제일 잘 알려진 것이 이 <대위의 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초등학생용 세계명작전집에도 포함되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푸시킨은 1799년 모스크바에서 귀족가문 출신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에티오피아 왕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즉, 푸시킨은 반은 아프리카 혈통) 왕실귀족학교에서 교육받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유로운 생활과 친목을 다지며 시인의 기질을 키워오던 그는 스무살 갓넘어 발표한 시가 당국의 검열에 걸리는 바람에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검열은 모스크바로 호송되어 시인으로 인정받고 창작 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도 계속되어 사망할 때까지도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배기간 동안의 경험과 새로운 창작의 비전에 눈을 뜬 그는 러시아 민중의 삶과 지방의 삶을 담아 문학 비평, 역사 연구, 저널리즘, 희극, 소설 등으로 작품 세계를 넓힌다.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푸가쵸프 반란에 대한 연구는 이 소설 <대위의 딸>을 쓰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그가 1837년 단테스 남작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싸우다가 치명상을 입어 사망하는데 38세라는 이른 나이였다.

소설보다 시로 먼저 출발했고 시인으로서 먼저 인정받았던 푸시킨이지만 이 소설 <대위의 딸>은 러시아 문학사와 문화사에 큰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 근대 장편소설의 효시이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으로 이어지는 역사소설의 근원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점은 작품 해설을 찬찬히 읽어보고 알게 된 사실일 뿐, 읽는 동안엔 그만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유는,

1. 주인공 표트르가 미로노프 대위의 딸인 마리야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너무 갑작스럽다. 한눈에 반할 수 있는 것이 남녀 사이라지만 무관심에서 호감으로 변하는 상황이라는게 좀 억지스러워보였다. 상대방의 매력을 표트르 자신의 감정과 눈으로 찾아냈다기 보다 제3자인 시바브린의 오해로 엮어진 관계 같은 느낌이 들었다.

2. 표트르가 모시던 미로노프 대위는 물론 그 아내까지 잔인하고 포악한 푸가쵸프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미로노프 대위를 모시던 표트르 역시 교수대에 올라가 처형되려는 찰라 푸가초프가 표트르를 알아보고 극적으로 처형에서 면하게 해준다. 일전에 서로가 누군지 모르던 시절 표트르가 푸가초프에게 적선하듯이 주었던 토끼가죽 외투와 포도주 한잔 때문이었다. 이후로 표트르가 푸가초프와 노선을 같이 하거나 도움을 준것도 아닌데 마지막까지 푸가초프가 표트르를 모든 제재와 탄압에서 예외대상으로 선처를 베풀어줌으로써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무사히 진행될 수 있게 해준다.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포악하고 무자비한 살인을 서슴치 않는 무법자 같은 푸가초프가 말이다.

3. 주인공 표트르는 매우 평범한, 너무나 평범한 인물이다. 갈등을 뛰어넘고 극복해나가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고 난관을 헤쳐가는 인물이라고 보기엔 부족해보인다는 것이다. 이 표트르라는 인물의 성격을 짚어보자면 도의에 크게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는 것, 의리를 저버리는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는것 등을 들수 있는데 그런 성격이 이야기 속에서 크게 두드러지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정도는 아니다. 정치적 혼란의 시기 속에서 목숨을 보존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무사히 지켜서 결혼까지 가기까지 주인공의 어떤 결정적인 역할이나 모험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상황이 그에게 유리하도록 잘 흘러준 덕이 더 커보인다. 따지자면 오히려 그의 충복 사벨리치의 행동이 더 용감하고 결단력있어 보인다. 물론 자기의 의무가 표토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데서 나온 행동이지만 말이다.

20대부터 죽을때까지 계속 검열의 눈길을 피해야했던 푸시킨으로서, 자기의 생각을 맘놓고 직설적으로 소설 속에 표현하기 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포장하고 둘러서 표현해야했다는 것이 작품 해설에서 읽은 내용이고 이해가 간다. 푸시킨은 주인공을 앞세운 소설보다는 역사적인 사건을 소설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형식을 택한 것일까? 그럴만큼 그 당시 러시아는 안팎으로 몹시 불안했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예카테리나 여제와 푸가초프는 실제 인물이고 푸가초프의 반란 역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시대가 아무리 혼란스럽고 불안하더라도 선의를 지키며 살라는 것을 주제로 본다면 얼추 그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와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12-1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hnine 2018-12-20 05:27   좋아요 1 | URL
서재 시작한지 오래되긴 했지만 서재의 달인 선정에 대해선 그냥 덤덤해요. 저보다 열심히 활동하신 분들 중에 안되신 분들도 계시고,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보다 서니데이님 좋은 이웃이었다는 말씀이 더 기분 좋습니다.
연말이자 또 새로운 해의 시작이 코앞에 왔어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

2018-12-19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12-20 05:28   좋아요 1 | URL
액자에도 걸려있고 노트 표지에도, 책받침에도, 편지지 그림에도...단골 문장이었죠. 출처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눈에 익었어요 ㅋㅋ
아, 말씀하신 것 처럼 어느새 그 문장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오는 나이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