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살다 - 이생진 구순 특별 서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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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유독 시를 홀대했다. 사춘기 때 문학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고, 문학소년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그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춘기가 영원하지 않듯 시도 사춘기가 떠날 때 같이 떠나보냈던 것 같다.

 

게다가 알만한 소설가들도 그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전향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역시 시는 인생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인가 보다고 멋대로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시인이 그런 시구도 읊지 않았던가, 시 한 편이 300원이라고. 하찮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다시 생기는 것도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최근 내가 시인에 관한 책을 읽은 것만 해도 몇 권은 된다. 이 책도 어떤 면에선 시인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구순이 넘었는데 평생 시를 써 왔고 그때마다 썼던 서문을 모은 책이다. 얼마나 열심히 시를 썼으면 서문만을 모아 책을 냈을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나의 저 시에 대한 하찮다는 생각이 부끄러웠다.

 

시인은 시집만 38, 산문과 편저가 5, 공저를 5권 냈다. 그는 최근에도 시집을 냈다. 시인도 이렇게 자신이 써온 서문만으로 책을 내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인이라 그럴까? 아니면 살아 온 연륜 때문일까? 서문들인데도 아폴리즘 같으면서도 상당히 서정적이다. 글이 너무 좋아선지 아니면 시인의 구순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것인지 어느 순간 계속 밑줄을 긋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누구는 워낙에 많은 서문을 써 온 터라 한 권의 자서전을 보는 것 같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그 보단 왠지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는가에 대해 여기저기에 조금씩 흘려 놓은 것도 같다.

 

시인은 먼저 첫 시집 <산토끼> 서문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는 아니라고 했다. 사람 때문에 시를 희생할 수는 있어도 시 때문에 사람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없고 시만 있는 고독은 시와 함께 그 고독도 싫고, 그 고독도 시도 사람이 있는 고독이고 사람이 있는 시여야만 한다며 철학을 밝힌다. 과연 그렇다 싶다. 그 글이 아무리 명문이라 한들 사람 보다 앞서지 않는다. 읽어 줄 사람 있고 글이 있는 거지 글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글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볼 때 저자의 말은 새겨 둘만 하다.

 

<자기>라는 일곱 번째 시집 후기에선 이렇게 썼다. 살수록 허해지는 시간에 나의 시를 쓰며 남의 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읽는 일은 시에게서 버림받지 않으려는 일이다. 시에게서 버림받는 일 그 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니. 나에게서 시를 빼앗는 일 그 보다 더 큰 재앙이 어디 있겠니.

시야, 너는 참 고맙다. 너는 하늘이 만들어준 내 인생의 날개다. 너는 내 어머니가 만들어준 영원한 양식(37p)이라고 했다. 부지런히 쓰기 위해선 부지런히 읽어야 하는 것은 시도 예외는 아니다.

 

문득 이 구절을 읽는데 마음이 싸해지더라. 나는 내가 시를 버린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시가 나를 버린 거다. 지금이라도 끊임없이 찬미해 주고 사랑해 주면 시도 나를 사랑해 줄까? 하지만 그것이 어디 시만이랴.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내 인생의 날개며, 영원한 양식이라며 찬사를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도 나를 버리지 않는다.

 

시인은 사랑꾼이다.

시인은 평생을 두고 사랑에 열중하며, 시에 있어서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아름답고 했다(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시인의 사랑서문에서). 그러면서 <일요일에 아름다운 여자> 후기에선, 시인은 편한 길만 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길도 다녀 봐야 시에 탄력이 생긴다고 했다. 시는 재사(才思)의 기술로서가 아니라 숙명적으로 떠돌며 얻어지는 마음의 도록(圖錄)이라고 했다.

 

또한 시인은 자연과 하나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사람이지만

악착같이 시를 써서

곤충이 될 거다

풀밭에서 찌르르 우는

곤충이 될 거다

                                         -‘곤충기에서

...... 나를 확대하다 보면 어디서나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이 세상엔 내가 없다는 경지까지 축소해보자. 그때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곤충은 정말 희귀한 생존인 것이다(<개미와 베짱이>후기 61p).

 

유서를 쓰듯 쓴 시. 며칠을 살자고 울다가 떠난 매미처럼 벗어놓은 껍질이 이 시집이다. 그 껍질을 들고 매미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도 이 시집에 포함된 한 편의 시(하늘에 있는 섬 서문)라고 했다. 시란 이렇게 하찮은 것에 마음을 두고, 끊임없이 무위자연해지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그렇다면 시인의 마음은 어때야 할까?

도시의 높은 빌딩에서 악수를 하고 나오는 젊은 비즈니스맨도 알고 보면 불청객이고 외딴섬 풀밭에 앉아 땀을 씻는 불청객이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처럼 낯설다. 그런 낮으로 호박꽃을 본다. “호박꽃도 꽃이냐얼마나 섭섭한 말인가. 그래도 오늘 아침 호박꽃은 명랑하다. 외로운 데서 얻은 아름다움. 나는 그것으로 시를 썼다. 시집<섬마다 그리움이> 후기에 나오는 말이다.

... 남들은 모른다. 시심을 먹고사는 시인의 마음을 모른다. 조금은 가난하게 조금은 외롭게 조금은 춥게 살아야 시심이 생기는 시인의 마음을 모른다(‘거문도후기)고 했다. 이 외로움이 아니면 하찮아 그냥 지나쳐 버릴 것도 다시보고 새롭게 보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시심에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시를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인가?

서른여섯 번째 시집 <섬 사람들>에서, 정월 초하루 00, 보신각종이 울리는 순간 어린 학생처럼 일기장을 꺼내 무엇인가 쓰고 싶다. 앞으로 365, 이 많은 시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를 쓰겠다는 다짐. ...... 시 때문에 내가 살아나는 것이다. 시는 생존의 기록, 나를 만나게 하는 기록, 그것이 시를 쓰는 재미라고 썼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했다. 삶의 질곡까지 기쁨으로 맞아들이는 시가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시인은 평생 시와 함께 살아보고 이런 말을 남긴다.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나보다

이런 결말에 결론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거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90이 되어도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과

셋째 밥 먹듯이 시를 써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제정신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

그 사람이 시를 쓰며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믿지만 그렇게 살라는 강요는 아니다 시인은 언제나 부족한 자리에서 만족해왔으니까(‘무연고서문에서)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으며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는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과연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외로움과 고독을 발견했고 그것을 천명으로 받아들이며 시를 썼겠구나 싶다. 그리고 저 문장을 만났을 때 뭔가 쓸쓸하지만 꽉 차 있고, 꽉 차 있지만 쓸쓸했다. 과연 뭔가에 뜻을 품은 사람은 저래야겠구나 싶다.

 

스물다섯이 되면 어떻게 사나 싶은 때가 있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너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자신은 빨리 늙고 싶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는 나 보다 3살 위였을 뿐이다. 생각해 봤더니 그때 내가 정말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나이든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스물다섯 그 나이 보다 훨씬 많은 인생을 살고 있다. 아이러니 한 건, 젊었을 때는 중년을 감히 가늠하지 못했다. 젊음이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이든 나를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덧 중년이 되고 보니 노년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상적인 노년의 삶을 보는 것도 같다. 노년은 인생의 저주가 아니다. 노년을 감사하게 살면 그건 오히려 선물이다. 시를 사랑해야지, 시인처럼 살아야지 싶다. 고독을 응시하며 순간순간 치밀어 오를지도 모르는 노욕을 지그시 누르며 시인처럼 늙어야지 한다 

 

덧붙이자면, 시인이 처음 시집을 내기 시작한 건 1955년부터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어도 우리가 시인의 책을 접할 수 있는 건 반도 채되지 않는다. 이 기회에 절판된 책들이 다시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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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1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작의 수를 보니 대단한 분이시군요.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 저는 몸 건강하고 돈 걱정 없고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저는 90까지는 안 됐지만 연로한 친정어머니를 보며 살아서 그런지 아직 몸 쌩쌩한 게 감사히 생각되더라고요. 산책하면서도 느낍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제가 너무 늙은 생각을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당~~ㅋ

stella.K 2018-12-15 14:42   좋아요 0 | URL
언니는 늘 긍정 갑이시잖아요.ㅎㅎ
저도 언니와 같은 생각을 해요.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 보다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2018-12-14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5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8-12-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되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8-12-15 14:48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님도 행복한 주말되시길...^^

bic 2018-12-22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대로입니다.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