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더위가 상당했고 거의 모든 것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덥다는 핑계로 리뷰도 안 쓰고 있었고, 쓰고 있던 글도 멈췄다. 그리고 지금은 겨울의 초입이다. 밀린 리뷰를 쓰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뭔가 갈무리는 해 두는 게 좋은 것 같아 간단하게 써 두기로 한다.

 

내가 집 밖을 나가는 걸 딱히 좋아하는 성미는 아닌데 지난 여름은 너무 더워 거의 매일(?) 집 밖을 나갔던 것 같다. 그것도 집에서 3분 거리인 동네 도서관에. 거긴 에어컨을 짱짱하게 틀어주는 터라  그렇지 않으면 집에선 책 한 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거기 가면서 이 책을 들고 가 읽었다.      

 

제목이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번역가(?)로 살아 온 저자의 책에 이만한 제목이 있을까 싶다.

 

책 내용은 주로 저자가 번역한 책들에 대한 후기 또는 번역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쓴 것인데,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답을 다는 것에서 저자의 진지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으니 아무래도 저자의 번역본도 자연 읽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번역가라 그의 번역본 한 두권쯤은 읽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창래 작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는데, 이창래는 아직도 내가 접수해 보지 못한 작가 중 하나다. 언젠가 중고샵에서 그의 책을 발견하고 살까말까하다 결국 내려 놓은 걸 후회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뿐만 아니라 영화와 문학평론, 본격 에세이에도 발군의 글 솜씨를 뽐내기도 했는데 글이 우아하면서도 살짝 어려운 것이 되게 만족스럽고, 판형도 마음에 들어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책이 나왔던 것으로 아는데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언제 읽었을까? 막 더워지기 시작했을 때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크아이즈님의 책을 평소 읽어보고 싶긴 했었다. 그런데 보기 보다 소심한 나는 평소 친하지 않은 관계로 책돌이 하실 때 나에게도 한 권 보내 달라는 말을 못했다. 

 

그런데  다크아이즈님 내 마음을 어떻게 아셨을까? 먼저 한 권 보내주시겠다고 해서 어찌나 반갑던지. 그럴 줄 알았으면 먼저 손 내밀어 보는 건데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제서야 난 받기만 할 수 없어 책이 도착한 비슷한 시기에 내 책 한 권을 답례로 보내드렸다. 

 

내심 사인본을 보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책은 너무나 깨끗한 상태였다. 그런 것으로 봐 다크아이즈님은 무척 심플한 성격의 소유자 같다.

 

제목 밑에 '일천 글자 미니 에세이'라고 쓴 글이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난 올드하게도 만연체(?)를 선호하는 편이라 이 소제목에 조금은 의문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천 자 내외로 과연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난 숫자에 약해서 어느 작가가 몇 천자, 몇 만자 썼다고 하면 그게 감이 잘 안 온다.

 

그런데 정말 천 자 내외로도 글을 쓸 수 있구나. 그것도 아주 잘. 뭔가 에세이의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글의 길이는 대략 책 3 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다. 또 이게 얼마나 편하게 느껴지던지. 천 자 내외의 글이라면 깊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글 쓰는 내공이 깊다. 나도 글을 써야한다면 천 자 내외로 써 보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편한데 다른 사람들도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까지 생각만하고 한 번도 실천해 보지 못했다. 나란 인간은 참...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다크아이즈님 이전에 내셨던 소설집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제고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이미 언급한 바도 있지만, 나는 라디오를 듣는다면 거의 유일하게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언제부터 들어왔냐면 김미숙 씨가 진행할 때부터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어느 후배로부터 소개 받고  듣기 시작했다.

 

그걸 들으면서 구성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쓸까 궁금할 때가 많았다. 매일 두 꼭지의 글을 쓰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는 아닐까 싶은데 거르는 법이 없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가 매일 두 꼭지의 글을 쓴다는 건 방송에 두 코너가 있다는 말인데, 언젠부턴가 작가는 <그 말이 내게로 왔다>는 코너의 글을 쓰기도 했고, 난 지금까지 작가가 맡은 코너 중 이게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다. 마치 감성사전처럼 한 단어를 선택해서 그 단어가 지닌 뜻과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는데 그게 참 좋았다. 

 

보통은 이런 라디오 구성 작가들이 나중에 글을 모아 책을 내기도 하는데 그래서 김미라 작가가 내놓은 책이 몇 권 되는 걸로 알고 있다. 한마디로 꿩 먹고 알 먹고다. 나도 다음 생이 있다면 방송 작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비교적 열심히 청취해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알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몇 개만 기억이 날뿐 처음 들어 보는 단어나 신조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중 지면상 한 단어를 소개해 보면, '어반 뭉크족'이라는 게 있단다. 먼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지금 이곳에서 여유와 평화를 이루겠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허무함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보다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되는... 일명 '도시의 수도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있다고 갈굼을 당하는 한 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특히 모임의 두 후배가 은근 나를 갈군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내가 일반 핸드폰을 사용한다고 놀리면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최첨단 문명족임을 은근 과시한다. 하지만 난 거기에 꿈쩍도 안 한다. 글쎄, 그동안 내 핸드폰이 고장이 났으면 바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아직도 고장 한 번 안 났고 언제 고장 날런지 기약도 없다. 난 원래 기계치인데다가 새로운 기계를 사면 새롭게 작동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고 싫다. 

 

얼마 전까지 배우 주윤발도 핸드폰을 써 왔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평생 모은 적잖은 재산을 기부했다는데 그야말로 어반뭉크족 아닌가? 언제고 그 아해들 또 한 번 스마트폰 사용 안한다고 놀리면 그땐 어반 뭉크족이라 그런다고 말해 줄까 한다. 역시 단어는 위대하다는 걸 이 책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ㅋ

 

이 책을 두번째로 읽었다. 나의 작업에 대한 욕망을 불태워 버리려고 읽었는데 역시 그 욕망 보다 앞서는 건 게으름이다. 그래도 이 책은 정말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사람이다.

영국에서 태어났고, 원래는 중국 선교에 비전을 두었으나 거기서 아내를 잃고 슬픔 중에 우연찮게 중국을 드나드는 조선 상인들을 접하게 된다. 그후 조선 선교에 뜻을 두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와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했으나 선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선 하자마자 사살되고 만다. 원래 제너럴 셔먼호가 해적선이라고 하고, 흥선 대원군 치세 아래 있었던 때라 그가 그런 뜻을 가졌다는 건 순교를 각오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평양 대부흥운동의 초석이 되는데 난 역시 이게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그가 죽을 때 성경을 주변에 흩뿌리고(?) 죽었는데 그때 박 모라는 사람이 자기 집 도배지로 쓰겠다고 그 선경을 가져가 도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성경 말씀이 눈에 들어와 결국 기독교를 받아 들이고 그의 집이 교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새롭게 눈에 들어왔던 건 그는 영민할뿐만 아니라 선교사로서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는 것(어찌보면 위인전기의 전형을 보는 것도 같다). 교회 생활을 하려면 교회에서 받으라는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는데 나처럼 훈련을 요리조리 피하고, 적당히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읽으면서 좀 찔리긴 했다.

 

불교에서는 면벽수행도 한다는데 훈련이든, 수행이든 신앙인이 된다는 건 나를 부인하는 과정 아닌가? 이게 참 안 된다. 내가 글을 자주 쓰다 중단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관련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 기계처럼 하지 말고 수행하는 것처럼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이게 참 안 된다.

 

참 흥미로운 소설이다. 난 역사엔 별로 흥미가 없는데 만일 공부를 한다면 우리나라 1930년 대 전후를 공부해 보고 싶긴 하다. 이 소설도 바로 그 무렵을 다루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당대 유명했던 세 여자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을 사회주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좀 올드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싶다. 다룬다면 당연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다뤄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과거 같으면 이념을 앞세워 이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당대 유명했던 지식인과 어울렸던 여성들이라니.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시대 여성들은 배운 것도 없이 무조건 무지하고 못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좀 잘못된 생각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소설이 다룰 정도라면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그때의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을지 알고 싶어진다.

 

두 권으로 분권이 되서일까? 곧 2권도 읽겠다고 하곤 여태 못 읽고 있다. 이 책을 막 읽고 8월에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좋은 일이 생겨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가을을 보냈던 것 같다. 올해가 가기 전에 2권을 마져 읽어야 할 것 같다.   

 

살인적이긴 했지만 난 여전히 여름을 좋아한다. 내년 여름은 올해 같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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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겨울은 더 춥고 내년 여름은 더 덥다는데요....
스텔라님의 독서 생활에 지장이 없기를.

stella.K 2018-12-03 18:49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슴다.
그럼 내년에도 동네 도서관에서 살아야겠죠.
그때 동네 도서관이 바글바글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앉을 자리는 꼭 있었다는 게
기특하더군요. 거기선 책 밖엔 못 읽겠으니 오히려
좀 부지런히 읽게되는 것 같더군요.
제가 책을 되게 천천히 읽거든요. 저 정도면...ㅎㅎ

hnine 2018-12-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래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랍니다. 왜 요즘 신간이 안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미스마플이 울던 새벽은 지난번 영국 여행갈때 가져갔는데 비행기 안에서 다 읽고 왔어요. 글 한꼭지가 길지 않아서 읽기 수월하더군요.
무덥던 여름이었지만 좋은 일이 생겼던 여름이었다니 좋으셨겠어요~~

stella.K 2018-12-04 15:2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이창래 작가 호감 가는 작간데
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언제고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그렇죠? 다크아이즈님 정말 글 잘 쓰시고 편안하게 읽혀 저도 좋았어요.
뭐 예전에 하던 일이었는데 그 가치를 새로 본 거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하게될 것 같은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