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싸움

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우리 집과는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피아노를 갔다 오니 우리 집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놀라 냉큼 달려가 보니 엄마가 한쪽 눈 밑이 파여서 빨간 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싸움의 상대는 며칠 전 우리 집에 한 포대의 밤고구마를 팔았던 아줌마였다.

 

그땐 밤고구마를 먹는 건 큰 행운처럼 여겨졌던 때라 그 아줌마 덕에 그걸 먹게 된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너무 밤이라 잘못하면 목이 미어 먹다가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러다 내 아이들 잡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반품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안 된다고 했었던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 뭐 때문인지 기습적으로 돌멩이 하나를 들어 엄마한테 던지더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맞기도 다행이지 잘못하면 실명이 됐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줌마는 시장판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상대를 말 것이지 우리한테 제대로 된 밤고구마 사 먹이겠다고 하다 이런 엄청난 사단을 벌이다니. 그렇더라도 좀 심한 것도 사실이다. 화가 난다고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돌을 던진단 말인가.

 

그렇게 한바탕 했음에도 성이 안 풀렸는지 엄마와 그 아줌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2차전 했다. 다행인지 그땐 부천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와 계셔서 싸움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역시 오빠가 빠지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빠는 그 아줌마의 뒤에 달라 붙어 머리끄덩이를 잡더니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장난기가 역력했다. 오빠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웃어야할지 말아야 분간이 가질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악에 받혀 이것들아, 이년아.”하면서 쓰러졌는데 순간 신발이 벗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역시 할머니가 좀 웃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는 없고 아무튼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맘도 나도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어렸더라도 잔뜩 겁을 먹고 엉엉 울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렇게 쓰러져서일까? 싸움은 생각 보다 빨리 끝났다. 요즘 같으면 누군가의 빠른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시작도하기전에 끝났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혼이 나간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언젠가 여름에 수영장을 다녀오다가 차멀미가 나서 시구문 시장에서 택시를 내리자마자 어느 맨홀 뚜껑에 한바탕 토를 했다. 정말 내 일생 그렇게 많은 토를 해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급한 대로 물 한 양동이를 얻으려고 단골 야채 가게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난이었을까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예의 그 고구마 파는 아줌마가 여전히 누군가의 머리 끄덩이잡고 싸우는 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 놈의 버릇은 어디 안 가는구나 했단다. 글쎄,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 장애라고 이해도 할 텐데 그런 이해가 없던 시절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할지 그냥 혀만 끌끌 찼다.

                   

엄마는 세월이 흐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안 그러겠는가. 나름 점잖은 마나님인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를 단 1도 안 좋아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1 정도는 좋아했다. 그건 하논, 바이엘 이런 걸 치다가 피아노 명곡집인가 하는 악보집을 칠 때다. 특히 거기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이 있었는데 난 그것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난 그때까지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선생님께 같이 배웠던 나 보다 나이 많은 언니가 둘 있었는데(그들은 친자매지간이었다) 그들은 피아노를 유창하게 쳤을 뿐 아름답게 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나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독 <엘리제를 위하여>는 뭔가 낭만적이며 동시에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조바심을 냈던 것도 당연했다. 물론 선생님은 악보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치셨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었는데 몇 곡은 뛰어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런 곡은 재미없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가르쳐 받자 내가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아무튼 그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피아노에 의욕을 보였으니 선생님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운지 얼마 안 돼 선생님은 무슨 사정에 의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를 선생님의 친구에게 인계했다. 새로운 선생님도 나쁘진 않았지만 워낙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하니 엄마가 어느 날 결단을 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기로. 처음엔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정말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다니. 이제 겨우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난 좀 아쉽긴 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의욕을 보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엄마를 위한 내 마지막 헌정 곡이 된 셈이다.

 

                                                           <기억 수집가- 유년시절 중에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19-04-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를 갔다오니˝ - 피아노 학원에 갔다왔다는 말이죠? 그 시대에 피아노를 배웠다면 유복한 집에서 자란 걸로 생각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저도 칠 줄 압니다. 저는 제 친구들 결혼식에서 웨딩 마치를 쳐 줬어요.(남의 서재에 와서 내 자랑질을 하고 있음.ㅋ)

그런데 피아노를 친 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못 칠 거예요. 다행으로 여기는 건 피아노 배울 때 왼쪽 손의 손가락도 같이 치니까 오른쪽의 두뇌가 발달했을 거라는 거죠. 대부분 왼손은 잘 안 쓰잖아요. 타자를 처음 배울 때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던 경험이 있어서 쉽게 배웠어요. 뭐든 배워 두면 안 배운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이 애들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건 피아니스트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두뇌 발달을 생각해서일 거예요. 양손을 쓰고 발은 페달까지 밟고 눈은 악보까지 보니 두뇌가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만큼 두뇌는 발달하죠. 머리는 쓸수록 발달하니까요.

저도 애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게 했어요. 오른손을 쓰면 왼쪽 두뇌가 발달하고, 왼손을 쓰면 오른쪽 두뇌가 발달하고. 두뇌 한 쪽은 이성과 논리 영역이고 다른 한쪽은 감성, 상상력 영역으로 알고 있어요. 양손을 쓰면 이성과 감성, 다 발달하겠죠. 저는 지금도 왼손을 많이 쓰려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할 때 많아요.

어머님 싸움. 재밌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겠습니다. 저는 불 구경은 재밌는지 모르겠고 - 안타까운 마음에 - 싸움 구경은 재밌을 것 같습니다.
기억수집가. 연재 제목이 좋습니다.
(쓰다 보니 댓글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ㅋ)



stella.K 2019-04-05 14:42   좋아요 0 | URL
긴글 고맙습니다. 저도 제목은 마음에 듭니다.^^

2019-04-0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4-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모 인간이 쓴 ‘창녕‘이라는 제목의 요상한 잡설이랑 느낌은 비슷한데 삼만 배 정도 더 좋네요

stella.K 2019-04-05 14: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마워요. 제가 스요님으로부터 칭찬도 듣고.
그런데 좋긴 좋은데 구독하실 의향은 없으시고~ㅎ
전에 스요님이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란 물질적 요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독자의 눈은 높은 것 같습니다.
감히 작가가 따라 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흐흑~


후애(厚愛) 2019-04-1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시고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9-04-15 14:15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후애님도요.^^
 

지난 3월부터 구독자를 모집하여 이메일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기억 수집가-유년 시절>입니다. 저는 주로 유년 시절을 70년대에 보냈는데요. 그 시절 조그만 계집애가 문화와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며 성장해 가는가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미 구독해 보신 분들은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옛날 어렸을 때가 많이 생각난다고 대체로 재미있어 하셨습니다. 마치 예전에 우리가 TV에서 즐겨 보았던 <응답하라 시리즈> 같다고.이미 3월부터 시작했으니 뭔가 시간적 맥락이 있는 것 같은데 중간부터 읽어도 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디부터 읽어도 부담 없이 끊어 읽기가 가능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그래도 앞에 무슨 내용으로 썼는지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과월호를 한글 파일에 담았습니다. 4500원에 판매하오니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4월은 8일부터 52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분량은, 요즘 시중에 원고료는 A4용지 한 장당 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 A4 용지 2매 반 내지 3매 정도의 분량입니다. 구독료는 지난달과 변함없이 9000원입니다.

 

모집 기간은 6일 토요일까지 받겠습니다stells15@never.com 로 신청하시거나 댓글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독료 납입 방법을 알려드리구요, 댓글로 신청하실 분들은 본인이 가장 잘 쓰는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독하신 분은 이메일 주소는 따로 알려 주실 필요는 없으시구요, 구독료 납입 유무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메일에 각종 요금 청구서나 스팸 또는 업무 관련된 메일이 주를 이루지 않나요? 그 가운데 작가인 제가 보내 드리는 메일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싸움 / #엘리제를 위하여
    from 네 멋대로 읽어라 2019-04-03 18:54 
    #싸움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우리 집과는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김구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4
조정래 지음,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학교 때 위인 전기 꽤 읽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어린이 위인 전기는 그 구성이나 디자인이 나 때와는 확실히 다르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림도 다채롭고 흥미 돋게 만드는지.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이니 이런 책은 좀 의도적으로라도 읽어줘야 할 것도 같은데 역시 게으른 나는 어떤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결국 일이 무산되는 바람에 의도적으로 읽어 준 셈이 됐으니 부끄러움은 면했다고나 할까? 그것도 이 책 완독 20 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무산이 된 것을 알았으니 그렇다고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어린이 위인 전기로 읽어도 이렇게 뭉클한데 성인용으로 읽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더구나 이달부터 S 본부에서 아침 방송 때 김구의 증손과 모 탤런트가 그 옛날 증조할아버지 의 상해 임시정부 루트를 따라가는 방송을 했다. 그것과 겹쳐 이 책이 주는 감동이 배가가 됐다. 

 

최근 <스카이 캐슬>이란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까발리기도 했지만 선생이 살았던 시절에도 못지 않았나 보다. 천한 신분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천출도 공부만 잘하면 입신양명할 수 있다는 기대에 과거 시험을 보지만 그는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것도 그가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온갖 입시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과거에 선생 같이 천한 출신은 아무리 똑똑해도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마음을 추스리고 관상 같은 돈도 벌 수 있는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그는 그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관상이 얼마나 안 좋은 상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관상은 안 좋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하고 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운명을 뛰어 넘는 뭔가의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 교육 사업에 힘을 썼다. 나라가 일본의 손에 넘어갔는데도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것은 인간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인간의 무지함을 깨우쳐 국민의 주권을 되찾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또한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 사상에 심취했고 후엔 기독교 신앙을 갖고 독립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그의 인생을 보면 역시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늘(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 같다. 그는 몇 번의 투옥과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름도 몇 번을 바꿔 우리가 기억하는 김구로 남는다. 하지만 가장 뭉클한 장면은 상해로 넘어가 당대 쟁쟁한 독립 운동가들 이를테면 안창호와 안중근, 이봉창과 윤봉길 등과의 교우와 활약상은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뭉클한데가 있다. 특히 이봉창이 일본 천황 암살에 실패 하지만 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훗날 윤봉길 의거를 돕는 과정은 어떻게 이런 영화같은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읽으면서도 가슴이 찡했다.

 

의거가 있기 전 둘은 식사를 함께 한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윤봉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임에도 그는 너무나 태연하게 밥을 먹었고, 김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를 지켜봐야 했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한 사람은 이미 속세를 벗어났고, 한 사람은 나라를 구해야 하는 대의명분하에 동지의 죽음을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이들의 마음의 거리는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안에서도 우주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또한 둘의 시계를 바꿔 갖는 장면. 즉 윤봉길은 그 무렵 마침 새 시계를 갖고 있었고, 김구는 낡은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윤봉길은 자신은 이제 몇 시간 후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새 시계가 필요 없다며 기꺼이 김구의 낡은 시계와 바꿔 갖는다. 그리고 죽어서 다시 만나자는 말도 남긴다. 하지만 실제로 김구가 윤봉길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 만나기까지는 얼마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문득 이즈음을 읽고 있는데 김구를 비롯해 당대 독립운동가들은 그렇게 정말 조국의 독립에 몸을 바친 걸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을까? 갈등이 없었을까? 순간 순간 몰려오는 두려움과 피곤함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들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순간 순간 연약한 존재다. 그때마다 다 잡고 이루어냈을 독립이었을 테니 그들의 희생이 어찌 값지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라면 얼마를 버텨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독립운동가의 말할 수 없는 희생이 있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란 또는 한국이란 국호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와 파벌 싸움 등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라는 그냥 지켜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그들의 희생에 값하며 후손으로 사는 것이 될지 매일 매 순간 생각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만 같다.

 

김구는 그토록이나 바라던 조국해방의 그날을 보긴 했지만 그 이후 하나된 조국을 보지 못해 포효하는 듯한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것도 부족해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을 당해야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서글픈 불행이랴. 또 어쩌면 그가 그렇게 갔기 때문에 그의 행적과 뜻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그는 나에게 '마음 넓게, 우직하게' 살아간 분으로 기억됐다. 제발 그를 비롯해 독립 영웅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잘 살아내야 한다고 이 독립 운동 100주년이 되는 싯점에 그분들의 영혼에 머리숙여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더불어 이 뜻이 어린 후손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작가나 독자들이나 노력해야할 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르바나 2019-03-25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혹시 왜수만복(倭水滿腹)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이 단어를 쓰시고 나서
임진왜란 상황을 설명하신 이야기인데 너무 끔찍해서 잊혀지지 않는 말입니다.

이순신장군, 김구선생, 안중근의사 같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없었다면
악마의 얼굴을 한 일본 놈들의 치하에서 아직도 종노릇하고 있을겁니다.
얼빠진 뉴라이트들은 일본이 조선 근대화에 도움을 주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그 놈들은 구한말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이후 그 밑에서 마름질하던 놈들의 후손들이 틀림없습니다.

지금도 잘 나가는 정신나간 현역국회의원이 일본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국민들이 탄 배가 침몰되고 있는데
또 다시 머리를 만지고 마사지나 받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초개같이 던지며
독립운동, 아니 독립전쟁을 치른 김구선생님의 높은 뜻을
후손된 우리는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stella.K 2019-03-25 18:1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 옛날 독립 선조들은 자신을 이렇게 헌신했는데
과연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제발 조상의 뜻에 누가되면 안될 텐데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스스로 나라를 팔아 먹은 적전 또한 있는지라
앞으로 그런 정신나간 일을 하지 말라는 법 없죠.
부지런히 이런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 이야기는 가슴 저미면서도 너무 멋있는데
왜 영화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어요.ㅠ
긴 글 고맙습니다.^^

syo 2019-03-2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사 공부하면서, 요런 책들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소양이 쌓이고 있는 중이에요. 흥미도 막 생기구요. 그야말로 주입식 암기 교육의 혜택(?)입니다.....

stella.K 2019-03-26 10:26   좋아요 0 | URL
ㅎㅎ역사는 시큰둥 하다더니 잘 됐군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요 시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지더라구요.
어린이 위인 전긴데도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어른도 혹할만큼...^^

2019-03-29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3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레이] 레옹 : 극장판 & 감독판 - 풀슬립 일반판
뤽 베송 감독, 장 르노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본 영화다. 내용도 거의 가물가물 했다. 다시 보니 아, 이런 내용이었어? 거의 새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확실한 건 난 이런 폭력적인 영화를 안 좋아한다는 것. 그래도 영화가 위대한 건 싫어도 보게 만든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보게 만드는 건 거기에 사람이 있고, 음악이 있고, 인간 저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욕망을 건드려 대리만족을 하게 만드는 뭐 그렇고 그런 이유 아닐까?

 

이건 정말 만화다. 레옹이 얼마나 실력있는 살인청부업자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오로지 살인하는 그의 비상한 능력만을 극대화 했다. 특히 초반 시퀀스에서 스파이더맨처럼 천장에서 목에 올가미를 씌워 살해하고,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뒤에서 목에 칼을 겨누는 등  당시로는 나름 파격적인 액션을 보여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레옹과 마틸다가 끈끈하게 얽키는 밑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구도가 특이한 건 부패 경찰을 응징하는 살인청부업자의 대결이라는 것. 또 그런 구도가 가능한 건 몸만 성인일 뿐 자아는 아이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레옹이 몸은 비록 아이이나 내면은 어른인 마틸다를 사랑하면서 생긴 구도라는 것.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독이 든 성배고, 촛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것이다. 특히 살인청부업자란 위험한 직업에 사랑은 가당치 않다. 괜히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했다가 둘 다 위험해질 수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 레옹은 끝까지 마틸다를 지켜주고 자신은 장렬히 전사하는 쪽을 택하지만. 애초에 레옹이 마틸다를 알지 못했다면 그는 그냥 살인 청부업자로 늙거나 교도소 몇번 드나들면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더구나 마틸다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었으니 레옹에게 더 집착했음은 당연하다. 그런 사랑은 위험하다.

 

그런데 난 왠지 사랑을 위해 죽는 죽음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물론 사랑하면 위험하고, 상처도 받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생의 속성이 그런 거라면 사랑을 모르고 살다 죽는 것 보다 그렇게 살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생이란 이해될 수 있는 것 보다 이해 못할 부조리가 더 많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비록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꽤 볼만하긴 하다. 어차피 부조리한 상황을 부조리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영화 아닌가? 벌써 25년된 영환데 지금 다시 봐도 꽤 스타일리시하다. 영화가 뭐 있나? 똥폼이라도 확실히 보여주면 그게 영화인 거지. 게다가 마지막 엔딩 때 흐르는 스팅의 노래란 가히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허리우드 영화가 시큰둥해 지면서 유럽 특히 프랑스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제작을 프랑스와 미국이 합작해서일까? 좀 그 정서가 섞여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도 그래서 나쁘지 않게 봤던 것 같고.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9-03-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영화(액션영화로서)지만,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레옹의 경우 지금 시각에서 본다면 롤리타 영화라고 비난을 받을수 있단 생각이 드네요^^;;;

stella.K 2019-03-20 18: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주인공이 유아 성욕자란 말도 있었죠.
그래도 뭐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롤리타는 아예 설정부터가 그랬고.
난 롤리타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구요.
책을 못 읽겠더군요.
영화야 욕 한마디 하면 그만이지만 원작가가 워낙에
유명해 그럴 수도 없고. 과연 명성만큼 감동스러울지 모르겠더라구요.ㅠ

moonnight 2019-03-2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틸다@_@;;;; 어린아이의 모습에 어른의 눈빛을 하고 있어서 놀랐지요. 스팅의 음악이 좋았고요. 저도 영화로서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네요.

stella.K 2019-03-20 20:30   좋아요 0 | URL
그냥 뭐 똥폼잡는 영화였죠.ㅎㅎ
저도 스팅의 음악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레옹 보단 그랑블루가 좀 낫지 싶은데
그걸 다시 못 보고 있네요.ㅠ

레삭매냐 2019-03-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좋아하던 뤽 베송이
맛이 가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뭐 그래도 재밌긴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오프닝은 정말 쵝오였던 것으
로 기억합니다.

stella.K 2019-03-20 20:30   좋아요 0 | URL
오, 뤽 베송을 그전에도 많이 보셨나 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랑블루와 제5원소까지 봤지만
역시 제 취향의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오프닝씬은 정말...!

cyrus 2019-03-2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영화를 보면 중년과 소녀의 로맨스를 ‘낭만’으로만 포장할 수 없어요. 실제로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찍고 난 후에 중년 남성들의 팬레터를 많이 받았대요. 그런데 팬레터라기보다는 중년 남성들의 더러운 성적 욕구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종이쪼가리였어요. 그녀를 성희롱하는 내용의 편지였거든요.

stella.K 2019-03-20 19:36   좋아요 0 | URL
그런 적이 있었니? 처음 알았네.
영화에서도 레옹 보단 나탈리가 열심히 유혹하잖아.
거기에 레옹은 그냥 우정, 의리로 포장하고.
그런 코드가 있긴 했을 거야.
요즘 같은 미투운동에선 결코 용납되지 않겠지.
글치 않아도 뤽 베송 성추문 있지 않았나?
요즘엔 워낙 많아서 헷갈릴 정도다.
게다가 연일 버닝썬과 정준영, 승리 때문에 더 정신이 없고. ㅠ

2019-03-21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은 적어도 30년 전부터 있어 온 말이다.

정말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책을 보니 왠지 그 말이 더 실감이 난다. 예전에 이런 사이즈의 책은 시집 외엔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바로 이 문지를 콕 찝어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소설이 이렇게 나온다는 게 왠지 책 안 읽는 시대에 뭔가의 자구책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그것도 작가 한 사람이 아니라 무려 네 사람의 작품을 담았다. 게다가 인터뷰까지 들어가 있다. 마치,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 늬들(독자들)이 진짜 안 읽을 거니 하는 것도 같다. 또 가격을 얼마나 착한가? 오지게 착하다.

 

더구나 잡지 형식이다. 격월이나 계간처럼 정기적으로 나온다. 또 문고본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한 30년 전 삼중당 문고와 범우사의 문고본이 생각이 난다. 거의 쌍두마차 아니었나? 그러다 책의 고급화 전략에 따라 거의 사라지다 얼마 전부터 다시 나오는 줄로 알고 있다. 반갑긴 하다. 휴대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나 같은 경우 마음은 있으나 소설을 생각 보다 많이 읽지 못해 요즘 작가들이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다른 책을 사는 김에 끼워서 샀다. 7, 8천원만 해도 안 샀을 거다. 

 

좋기는 한데 한편으론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들이 장편을 잘 안 쓴다고 하는데 더 안 쓰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도대체 신인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좀 스폰서 제도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이 좀 안 팔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상이나 타야 겨우 작가를 알아 보는 구조니 이 문학상 한 번 타 보겠다고 난리 브루스를 칠 작가지망생들만 늘려 놔서야 되겠는가? 그런 시상 제도에 의존하지 말고 잘 쓰던 못 쓰던 꾸준히 쓰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발굴 계속 후원한다는 쪽으로 흘러주면 좋겠다. 지난 몇년 간 우리 문학계는 많은 자성과 비판, 질타들이 오고 갔을 텐데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런 얇은 책을 통해 요즘 작가들의 작품 성향을 알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어떤 독자는 특정 작가에 대해 작품이 나오면 막 환호하고 그러던데 난 뭘 몰라서 그런지 환호할 정도인가? 의아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환호해 줘야할 것이다. 그래야 그 작가가 클 수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약되는 경우가 빈번해졌나 본데 반가운 일이긴 하다. 이것도 다 한류의 영향은 아니겠는가? 케이팝은 물론이고 음식, 영화, 뷰티쪽에서 강센데 문학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제발 문학에서도 한류 열풍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작년에 김봉곤 작가를 처음 발견했다. 물론 그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아니고 무서운 신예 작가라고 치켜 세우던데 그때 그의 책 표지가 제법 심쿵했다.  

 

그런 소설이 있기는 한다. 책에 나온대로 온전히 자신을 재료삼아 쓰는 이야기. 화자가 곧 작가 자신이어서 어디를 갔으며 무엇을 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밝히는. 나도 한때 습작이긴 하지만 그렇게 써 본 적이 있기는 하다. 쓰는 작가로서는 이것만큼 사실적이고 잘 아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작두를 타는 느낌이다. 과연 이래도 되는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게이로서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이성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니 오래 전 어느 연예인이 우스갯 소리로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럼 남자가 여자 좋아하지 남자 좋아하겠냐고 했던 말. 그건 자신이 바람둥이로 오해 받는 게 싫어 애둘러 말한 건데 그때는 그런 농담이 통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 똑같은 말로 사람을 웃기려고 한다면 뜨아할 것이다. 요즘은 성적 취향이 고려되는 시대니까. 

 

내용에 보면 화자의 이성 친구 혜인이 갑자기 자신에게 가슴을 밀착시켜 빤히 쳐다보더라는 설명이 나오던데 문득 그녀는 왜 그랬을까 싶다. 적어도 독자인 나는 화자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정말 이성에 관심이 없는 거니? 뭐 그런 의아함. 다시 한 번 보라는 의미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성적 취향이야 감히 뭐라고 얘기는 못하겠다만 난 좀 보수적이라서 그런지 자꾸 이성간의 관계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러다 다음 세기 땐 역전이가 돼 오히려 이성간의 관계가 특이해 보이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창조주가 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는지 재조명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고 의미있게 읽은 건 조남주의 <가출>이다. 나도 읽으면서 얼핏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이 났다. 부재로 인해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재인식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아버지의 부재가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게 또 그닥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는 평생 살림하느라 이골이 났건만 그래도 가족회의를 위해 가족이 모인다고 먹일 반찬을 해 대는 걸 보면 그것 밖에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건 거의 본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평생 뼈빠져라 가정에 헌신했으니 마지막으로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고 해서 가출한 건데 이게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의 무거움, 굴레. 자유에 대한 갈망. 그렇더라도 가장이 된 건 오래 전부터 당신 자신의 선택이니 끝까지 지키면 안 되는 걸까? 뭔가 이제까지 그럭저럭 지켜왔던 삶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 같아 짠했다. 하지만 일시적이더라도 그런 기간은 필요한 것 같긴하다.

 

이내 더 잘 된 건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그동안 억압된 것들이 뭔지 모르게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질서가 생기려고 하고 있다. 우린 그 누군가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도 그 누군가가 없이도 잘 사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우린 누군가 가출하면 클 나는 줄 알고 일탈이라며 죄인, 부적응 뭐 이런 이미지를 덧씌우기 좋아하는네 여기선 오히려 긍정적인 면들이 보인다. 그건 또 아버지가 어딘가 살아 있다는 수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런 긍정적인 변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들은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떠나 홀로 있다 죽는다고 하던데,  자신이 죽을 때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사별의 슬픔을 덜 느끼게 해 주려면 가출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싶은 것이다. 나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를 가족들에게 미리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우린 애정의 집착을 떠나 그 사람이 그곳에 잘 있겠거니 하는 믿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 역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믿음인 건지, 소문과 추측만 가지고 그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람은 이렇게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변절자, 악덕업자, 천하의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떤 게 그의 진실된 모습인지 시간만이 그 진실을 밝혀 주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몰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에 순응 못하면 짤리거나 그만두는 건 확실히 폭력적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걸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흘러 간다는 것을 또 한 번 각인시켜준 소설이다. 또한 세상의 가짜 뉴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약한 인간을 잘 묘사한 것 같아 좋았다. 내가 좋다고 말하는 건 생각할 꺼리를 줘서 좋다는 거다.

 

정지돈은 나에게 언제나 그렇듯 잘 이해가 안 되는 작가다. 그러다 어느 무가지에 짧은 소설을 연재하는 것을 보고  꽤 색다른 느낌이었다. 작가가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새로운 자각 뭐 그런. 그러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작품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내가 싸우듯이>이가 생각이 났다. 보통 작가들은 현실에서 문제 의식과 부조리함 뭐 그런 걸 끄집어 내지 않나? 그런데 이 작가는 무슨 문화계 르포르타주 형식이라고나 할까? 일반인들이 문화계 전반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니 이렇게라도 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 있는 거지만 난 왠지 작가의 특이함이 긍정도 부정도 못하겠다. 하나 확실한 건 난 이 작가와 친해지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것. 

 

그러지 않아도 그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것을 뒷받침 해 주었는데, 인터뷰어인 김신식(이 사람은 또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문학평론가인가? 아님 출판사 편집 일을 하나? 이런 거 정도는 밝혀주면 좋을텐데)이, '...지돈 씨가 염두엔(이거 오타 같다. '염두해' 아닌가?) 둔 향후 계획을 공유 해'달라니까 그가 그런 말을 한다. "미래를 생각하진 않습니다.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한다. 그래도 이 작가가 어디까지 가나 궁금하긴 하다.

 

얼마 전, 2019년 봄-여름호가 나왔나 본데 기회있는대로 사 봐야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3-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읽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김봉곤 작가의 출현이 어쩌면 문학계에 새 바람을 불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이들의 사랑이야기 자체도 새롭지만 작가 자신이 게이임을 드러냄 또한 흔한 일이 아니라서요.
낙서처럼 막 쓰는 듯한 글 스타일이 노래로 말하면 꼭 랩을 듣는 듯하더군요. 저는 적응이 잘 되지 않더군요.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를 읽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19-03-18 14: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김봉곤은 좀 적응이 안 되더군요.
무슨 사소설이라고나 할까?
물론 가끔 사소설이나 자전 소설이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선 혹 할만하다 싶기도 해요.
이런 소설도 먹히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어서.
솔직히 저도 이렇게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역시 사람은 간사한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2019-03-1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8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