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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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은 수없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자주 만들어 지지만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형식의 글로 나타난다. 마치 변주곡처럼.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왜 작품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녀의 책이 꽤 많이 나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도, 읽어본 작품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의 모티프를 따온 작품이 아니었으면, 난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은 유럽의 중세 사상에 빠져있는 에스파냐 귀족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라는 이름을 가진 귀족이다. 반면 푸른 수염의 젊은 아내는 직업때문에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아름다운 사튀르닌으로 나타났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에게 넓고 깨끗한 집, 더구나 시세에 비해 저렴한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세입자를 구한다는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저택으로 간 사튀르닌은 열다섯 명의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여성들이 집을 구하고 있었고, 그 집에서 세를 살았던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 여덟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집을 구하는 사튀르닌은 그 집을 포기할 수 없었고, 옆에 앉은 여자의 말처럼 대기실에 있던 여자들중 가장 젊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녀가 저택의 새로운 세입자가 되었다.

 

사튀르닌도 궁금해 한 사항이지만, 나도 제일 궁금했던게 돈 엘레미리오가 여덟 명의 여자들을 어떻게 했느냐 이다. 물론 사튀르닌이 첫날 그를 마주했을때 그가 주의해야 할 것을 한 가지 말한다.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 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13페이지) 라고.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라 '설마 나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문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여덟 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그렇게 행동했고, 돈 엘레미리오는 사튀르닌에게 그렇게 경고했다.

 

어디서나 문제인게 사람의 호기심때문이다. 금기를 하면 할수록 금기의 문을 열어보고 싶은게 인간의 호기심이다. 그 먼 옛날 그리스로마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도 마찬가지이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한 것을 열어볼 수 밖에 없는게 인간의 호기심 혹은 욕망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아내를 엿보지 말라고 했어도 남편은 아내를 엿보고 말아 사람이 되지 못한 천년묵은 여우이야기도 있잖은가.

 

 

 

 

하지만 보통의 여자들과는 다르게 사튀르닌은 돈 엘레미리오가 금지한 암실을 엿보지 않았다. 다만 그와 호화로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최고급 샴페인을 사다놓으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샴페인을 마시며 그와 이야기 하는 걸 즐겼다. 그가 감정을 드러내면 차갑게 그 식사 시간을 끝낼 줄도 알았다. 이는 사튀르닌이 보통의 감정적인 여자들과는 다르게 이성적인 사람이었음을 드러낸다.

 

 

이런 결말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눈 대화에서도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것을 느꼈었다. 통통 튀는 대화 속의 위트에 아멜리 노통브만의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뻔한 내용, 결말을 다 알고 있음에도 『푸른 수염』을 읽는 것은 아멜리 노통브 만의 느낌을 찾기 위해서다. 작가 고유의 느낌을 통해 우리에게 다른 '푸른 수염'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색으로 발현시켜 특별한 색깔을 대입시킨 점도 독특했다. 오래전엔 파란색에 빠져있다가 최근엔 노란색에 빠져 있어, 옷을 살때 노란색 위주의 옷을 자주 구입한다. 사람도 때로는 색에 빠져있을 때가 있는 것처럼, 아멜리 노통브는 푸른 수염 속의 주인공을 파란 색에 대입시키지 않고 노란 색에 대입시켰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금색, 노란색의 향연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푸른 수염의 돈 엘레미리오는 금색의 여자를 찾아 헤맸는가. 비어있는 금색을 끼워맞추기 위해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사튀르닌을 궁극의 색인 금색, 궁극의 여자로 태어나게 했다.

 

 

『푸른 수염』을 새롭게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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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도 할겸 건강도 유지할겸 주말이나 공휴일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산행을 즐겨한다. 지난 주말엔 경북 청송에 있는 주왕산을 다녀왔고, 이번 한글날엔 신랑 직원들과 함께 부부동반 무등산 산행을 했다.

 

평소엔 4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고 있는데, 이번 산행은 총 5시간을 걷는 산행이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춥고 낮엔 여름 기온을 하고 있어서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렸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여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을엔 더욱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직 많이 춥지않고, 한낮은 따뜻해서 돌아다니기도 좋은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탈 줄 안다면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면 더욱 좋겠지만,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관계로 책으로만 자전거 여행을 즐길수 있겠다.

 

김훈 작가의 소설은 꽤 읽었지만, 정작 에세이는 읽지 못했다.

지인의 말이 그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이 그렇게 좋다 했지만 품절되어 읽지 못했었다. 그 책이 이번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오게 되었다.

예판판매중이다. ㅋㅋㅋ

 

 

 

 

 

 

 

 

 

 

 

 

 

 

 

 

덧붙여,

여기저기서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를 말하는 글들이 많다.

그의 작품을 꼴랑 한 권 읽었지만, 무척 좋았기때문에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다 찾아 읽지 않을까.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이 이렇게 많이 출간된줄은 몰랐다.

그의 책들을 살펴보니, 거의 문학동네에서 나온 책이다.

문학동네에서는 그의 책을 다섯 권 정도 더 출간계획을 잡고 있다는데,

문학동네, 대박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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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0-1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트릭 모디아노 생소한 작가인데 이 기회에 읽어봐야 겠습니다.
어떤 책이 가장 재미있을까요? ㅎㅎ
 
이노센트
이언 매큐언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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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참 많은 것을 앗아가지만, 또 새로운 사랑이 피어나기도 하는게 전쟁인것 같다. 전쟁 속에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도, 일상생활은 계속 되고, 아이들 또한 계속 태어나는 걸 보면 사람의 삶이란 어쩔수 없는가란 생각이 든다. 수많은 로맨스 영화중 전쟁에서 피어난 사랑도 많았잖은가. 아마 전쟁이라 더 애틋했을 것이고 모든 마음을 바쳐, 목숨을 다해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왜 갑자기 전쟁 이야기를 하냐면, 이언 매큐언의 『이노센트』는 그의 다른 작품 『속죄』의 연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냉전체제의 베를린에서 머문 한 청년의 이야기는 전쟁이 남긴 상흔의 베를린에서 첩보활동을 도운 영국인으로,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남자가 하는 사랑은 마치 전쟁처럼 속절없이 빠져드는 사랑이기도 하다.

 

 

스물여섯 살의 영국인 레너드 마넘. 그는 체신국의 전신 기사다. 창고로 위장한 미군의 레이더기지에서 소련 육상통신선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돕게 된다. 일명 작전명 골드로 실제 영미 공조작전( CIA와 M16 합동작전)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허구를 가미해 탄생한 작품이다.

 

 

낮에는 지하 터널에서 일을 하고 밤에 베를린 시가지를 걷던 그는 밥 글래스를 따라간 무도회장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마리아를 깊이 사랑하게 된 레너드는 그녀의 집에서 머물며 마리아를 깊이 사랑하게 되고 낮에는 지하터널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와도 말을 터놓지 않았고 오직 글래스하고만 이야기를 했다. 순수한 청년이었던 그가 마리아를 사랑하면서 그녀가 전쟁에서 진 나라의 여자라는 사실에 갑자기 그녀를 강간하듯 원했고, 그녀는 그녀의 부모가 있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상실감에 빠져있었던 그는 글래스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녀가 돌아왔다. 이제 마리아와 레너드는 더욱 사랑하게 될 일만 남은것 같다.

 

 

 

 

하지만 삶은 항상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나간다. 그와 마리아의 약혼식이 있던 날. 친한 몇몇의 사람을 초대해 약혼식을 치뤘고, 약혼식이 끝난후 마리아의 집에 돌아가 기다리고 있던 한 사람으로 인해 그녀와 레너드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한 손으로 들지도 못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레너드는 베를린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이제 곧 영국으로 소환되려고 하는 때에, 마리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 때에, 레너드는 가장 참혹한 경험을 하고 말았다. 그와 마리아와 함께 하고자 했던 삶도 물거품처럼 되어버렸다. 레너드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백퍼센트 순수함 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수로, 정당방위로 한 행동이라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악랄해 질수 있는지를 레너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사랑했던 여자에게서도 멀리 도망가버리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엿볼수 있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수한 청년의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하며, 인간의 본성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화된다는 것도 알았다.

 

정치적인 상황, 1955년 여름 베를린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초반엔 좀 더디게 읽힌 책이지만, 결말을 다 읽고 나서는 왜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좋아하는가, 그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게 된 작품이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이번 작품 『이노센트』까지 총 네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을때마다 반하게 되는 건 그의 문장 실력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한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긴장을 하게 되며 읽게 되는게 그의 글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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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티쳐와 나
이정숙 지음 / 청어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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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김하늘과 김재원이 주연한 「로망스」라는 드라마를 기억한다. 고등학생인 남자 주인공과 아직 어린 여선생님과의 로맨스 때문에 그때 김재원이라는 배우는 '살인미소'를 짓는다며 꽤 인기를 끌었었다. 연상의 여자와의 사랑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을때의 이야기라 더욱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드라마였다. 교사와 학생간의 사랑이야기 때문에 논란이 있었고, 여섯 살의 나이 차이가 그때는 굉장히 컸었지만, 사랑스러운 주인공들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응원했었다.

 

 

이제 연상 여자 연하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진부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소설 속에서든, 영화나 드라마에서든, 실생활에서든 너무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참신한 것은 없었지만, 고등학교시절 한때 놀았던 날라리 여선생과 모범생의 표본인 남학생의 유쾌한 사랑이야기는 가볍게 읽을만한 작품이었다. 때로는 책속의 내용을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로맨스 소설을 읽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가볍게,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이 소설은 진부함을 또하나 가지고 있다. 연하남과 연상여자의 사랑, 학생과 교사간의 사랑, 또한 사고로 인해 학생과 교사의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도 가지고 있다. 교복을 입고 껌 좀 씹는 여고생으로 변장하고 일진 여학생들을 휘젓는가 하면, 종례를 할때도 공부할 녀석들만 공부 열심히 하라는등 보통의 교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특별과외를 받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담임의 여고생 변장 장면을 본후 어이가 없는 모범생 문재걸과 그 모습을 들킨후 혹시라도 학교 관계자나 친구들에게 말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진다. 물론 스물여섯 살의 교사가 어리다면 어린 나이긴한데 열아홉 살의 남학생인 문재걸은 어떻게보면 이지은 선생보다 더 어른스럽다.

 

 

 

책을 읽으며 일곱 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이들 두 사람이 과연 사랑을 할 것인가였다. 어느 정도의 호감을 품고 있되 요즘에 자주 쓰는 말로 '썸타는 사이'에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랬다면 실망할 로맨스 팬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영혼이 바뀌어 서로 반대의 생활을 하는 장면에서는 충분히 있음직한 일들이 발생했다. 반면 이성의 사제지간인데도 바뀐 몸을 받아들이는 부분은 깔끔하게 빼버렸다. 몸보다는 서로의 상황에 더 치중했던 면이 컸다.

 

 

오랜만에 이정숙 작가의 글을 읽게 되어서 반가웠는데, 너무 드라마적인 재미에 치중하지 않았나 싶다. 로맨틱 코미디 형식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각각의 에피소드가 살아나겠지만 소설에서 보는 두 사람의 관계는 너무 평이했다. 문재걸이 졸업한 후 두 사람이 맺어지는 과정에서도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짓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가. 연하인 남자의 나이차가 두세 살 차이면 그래도 봐주겠는데, 일곱 살 이상 차이나면 좀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사회인도 아니고 아직 고등학생인데. 나이가 들수록 고지식해 진다더니 내가 딱 그런것도 같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의 성격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활달한 캐릭터가 좋다. 또한 날라리 여선생이었지만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른 교사들과 똑같이 행동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약간은 아쉬웠지만 가볍게,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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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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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뉴스에서는 일본의 나가노현 온타케산의 화산 폭발로 인해 몇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화산폭발을 감지하지 못해 예보가 없었기에 그 사상자가 더욱 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천에 지진이 있었다고도 했다. 최근의 기후를 보면 예전과 다르게 불안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사계절이 있다고 하던 우리나라의 기후도 마찬가지이다. 해일이 생겨 도시가 잠기는 것도 그렇고, 미국의 남동부를 강타한 토네이도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생긴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기후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모든 이유가 지구의 환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구는 안전한가에 대한 불안감이나 의문이 생길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의문을 가질수 밖에 없는 일이 자꾸 일어나고 있는데, 언젠가는 일어날수도 있는 미래의 일이 아닐까 하는 책을 만났다. 캐런 톰슨 워커의 『기적의 세기』라는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열한 살의 소녀 줄리아가 지구의 자전 속도에 변화가 생겨 하루가 사십 시간으로 늘어났던 일 년간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맨처음 그들의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하늘의 새들이 땅으로 떨어진 일이 발생했을때부터 였다. 하루의 시간이 6분 정도씩 늘어나는 현상을 그들은 '슬로잉'이라고 부르게 됐다. 어른들은 지구의 종말이 왔다며 물건을 사재기 하고, 지하실을 파는등 미래에 대해 불안해 했지만, 열한 살의 줄리아는 그저 자기에게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관심있을 뿐이었다. 단짝 친구인 해나의 부재가 불안했고,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것에 대해 불안했다. 아직 밋밋한 가슴 때문에 브래지어를 할수 없다는 것과 관심있는 남자아이 세스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에 관심있을 뿐이었다.

 

하루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자 정부에서는 태양이 더 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시계대로 생활하자는 '클락 타임'제를 실시하게 되었고, 학교나 직장을 시간 대로 움직이게 했다. 이에 반해 일부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하는 '리얼 타임'에 맞춰 생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기후의 변화, 지구의 변화에 따라 줄리아의 가정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엄마는 '슬로잉 증후군'에 시달렸고, 아빠는 이웃집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는 것 같았다.

 

 

 

슬로잉이 시작된 후 사람들의 운명과 삶이 바뀌었다고 책 속의 줄리아는 말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가 고향이 아닌 사람들은 캘리포니아를 떠난 사람이 많았고, 리얼 타임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사막으로의 이전도 생겨났다. 또한 슬로잉은 사람들의 외모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클락 타임으로 살아가는 마흔 살의 엄마가 갑자기 늙어버리는 모습과 이와 대조적으로 리얼 타임 생활을 하는 이웃집 실비아 선생님이 아름다운 외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에도 변화가 생겨났던 것이다. 시계가 움직이는대로 살아가는 게 나을까, 아니면 태양의 움직임에 맞춰 태양이 뜨면 일상생활을 하고 태양이 지면 잠을 자는게 나을까. 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정말, 지구의 종말은 올까?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에 일어날 일일 수도 있는가. 사람은 기후의 변화에 따라 생체 리듬이 달라지는 것 같다. SF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우리에게 다가올 현실적인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것에 소설이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원래의 속도로 되돌아 올것인가, 아니면 계속 40여시간을 진행중에 있을까.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가 마지막 먹은 농산물이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난뒤에야 깨달았다. 줄리아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줄리아는 학교에 다니고,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의 종말이 다가와도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 것이며, 늙어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일상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후의 줄리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좋아했던 세스와도 연락이 끊기고, 칠판으로 햇볕을 차단한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집에서 줄리아는 누구와 함께 그 시간들을 견디고 있을까. 어두어질때만 밖을 내다보는 줄리아의 무표정한 모습이 그려진다. 아주 행복하지만은 않겠구나. 그럼에도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줄리아의 곁에 머물고 있음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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