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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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일에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새로운 소설이나, 오랜시간동안 베스트셀러로 이어져온 고전이 된 소설을 읽는다. 고전문학은 고전문학대로, 현대문학은 현대문학대로 늘 즐거움을 주는게 소설이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소설이다.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면 좋다는 식의 자기계발서보다는 다는 한순간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소설이 좋다. 소설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고, 소설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내가 꿈꾸었던, 때로는 꿈꾸지 못했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게 소설이다. 그래서 난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기에 소설가들이 좋다. 소설가들이 좋으면, 그가 쓴 소설들을 살펴보고 소설을 찾아 읽고 소설가가 쓴 산문집 등을 찾아 읽는다.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새로운 산문집이기에 읽게 되었다. 김연수의 산문집을 읽게 되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는 늘 문장에 신경 쓴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그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는데 어찌나 어렵던지, 김연수 작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쓰지 않은 문장을 쓰기 때문에 보통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의 문장이 어렵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처음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을 때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읽던 것이 점차 그의 책을 읽어가면서 그가 스토리 보다는 문장을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나는 소설은 스토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많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은 스토리를 가진 문장이라는 걸, 소설은 곧 문장이라는 걸 조금씩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어렵다고 느꼈었고, 그의 소설보다는 산문집이 더 재미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가장 최근에 그의 산문집 『지지않는다는 말』을 읽고 이번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읽는데, 그의 글에서는 소설가 20년의 연륜이 묻어나와서 일까, 글에서 소설가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것은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소설가의 여유가 그의 문장에 적응되었음을, 그의 문장이 편해졌음을 느꼈을수도 있으니까.

 

 

내가 생각한 젊은 소설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시간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가지 생각만 할 것이다.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30페이지) 소설가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소설가는 누구보다도 본인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작가들이 소설을 고칠 때 스토리를 고치는 게 아니라 문장을 고치는 것이고, 어려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고도 했다. 짧은 리뷰를 써도 여러 번 고치게 되면 문장이 이상해져버리던데, 리뷰어와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도 같다.

 

자주 하는 말이 작가들은 본질적으로 일반인들과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고들 표현한다. 김연수 작가도 산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는 세상만사를 비틀고 뒤집어서 보는 사람이니까.' 라고. 그냥 스쳐가는 사물 하나에도 소설가는 다른 마음으로 보듯, 소설가는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다. 나 같은 일반인은 그저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데 말이다. 다른 시선을 가진 소설가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 그것도 한 번에 하나의 문장뿐이라고. 내용이야 어떻든 쾌감을 주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끝내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이다.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193페이지)

 

 

매일 글을 쓰는 사람과 매일 책을 읽는 사람과의 차이. 한 사람은 작가이고, 한 사람은 독자이다.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은 매일 문장을 고치는 사람의 책들을 간절히 기다린다. 나 같은 경우 소설이 훨씬 좋지만, 소설 외에 이처럼 산문도 좋다는 걸 느끼는 시간들이 참 좋다. 좋은 책은 좋은 문장을 가진다는 것, 스토리는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게 하는 것. 소설가들은 좋은 문장을 고치고 우리 독자들은 그가 써낸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의 글을 쓴다는 것, 더 좋은 문장을 위해 오늘도 책상에 앉아 있을 소설가의 일에 대한 생각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도 매일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소설이 아닌 독서감상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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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8
도쿠나가 케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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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대중반은 어땠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여행다니거나,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거나, 영화보거나 했던 때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게으름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이기도 한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누군가와 사귀다가 채여 며칠을 앓았던 때이기도 한것 같다. 그 시절엔 그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잃어 아파했던 때가 좋았던 것 같다고 훗날 생각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지금의 이십대에게 그 시간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말을 듣는 이십대 들은 편한 소리 한다고 뭐라하겠지만 말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사랑하는 일에도 열정을 다하는 그때가 얼마나 좋은지, 그네들은 나이가 더 든 후에나 깨닫게 되겠지.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라는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만화스러운 책을 만났다. 물론 내용도 약간 만화스럽다. 짧고, 통통 튀는 내용이다. 또한 주인공도 퇴근후 한밤에 만화를 그리는 여자 주인공이다. 정시에 퇴근한다는 이유로 콜센터에서 계약직 상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만화를 그리며 작가로 데뷔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스물다섯 살의 여자 구에다 야카가 있다.

 

 

어느 날 자전거로 근하다가 편의점앞에서 어떤 남자와 쾅 부딪혔다. 봉투에 들어었던 만화 투고 원고가 날아갔고 그 남자가 주워주었다. 회사에도, 다른 누구에게도 만화를 그린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는 아야카는 그 남자에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사무실에 출근했고, 이어 아픈 센터장을 대신해 온 사람이 아침에 자전거와 함께 부딪힌 그 회색빛 옷을 입은 신사다. 자신을 스파이라고 했던 센터장 대리 기무라 이치로와 야기를 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일부러 계약직 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스물다섯 살의 아야카는 오늘의 청춘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스파이라고 했던 기무라 이치로 센터장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만화의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하기도 한다.

 

책 속의 주인공이 만화를 그려서일까. 오래전에 순정만화에 심취했었던 때가 떠올랐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이 아니었을까. 만화 캔디캔디를 보고, 베르사이유 장미 등을 보았던 때. 아마 순정만화는 고등학교까지 보았던듯 하다. 지금도 나는 명랑 만화보다는 순정만화가 좋은데, 책 속의 주인공은 이처럼 순정만화를 그린다. 커다란 눈, 반짝이는 눈동자, 손가락의 섬세함, 소년과 키스하는 소녀를 그리는 순정만화. 거의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 잡지라 자신의 나이가 너무 들었지 않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아야카의 마음이 참 싱그러웠다.

 

내 철학에 따르면 말이야, 인생이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가 아니야. 즐거워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딱 한 번뿐이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아깝잖아?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진검승부를 내야 하는 거지. 게다가 전력을 다하는 데 있어서는 본인이 즐거워야 하고, 그게 제일 중요해. (101페이지)

 

 

뒷편에 책 속의 주인공 아야카가 쓴 「내가 사랑한 스파이」라는 글이 보너스로 들어있다. 만화의 내용이기에 짧은 글이지만, 한 권의 만화로 나올수 있는 스토리다. 만화가를 꿈꾸었던 작가 답게 만화적인 스토리였고, 택배회사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어 아야카의 직업을 제대로 표현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만화가를 꿈꾸었던 작가의 그림 몇 컷이 소설 속에 삽입되었으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앞쪽에 한국 독자들에게 하는 인사말에 있던 그림처럼 말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이십대 시절을 생각나게 한 작품이었다. 순정 만화에 빠져있었던 때도 떠올라, 다시금 그 시절에 보았던 만화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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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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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는데, 작년에 읽었던 박향 작가의 『에메랄드궁』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모텔이나 호텔이나 격만 조금 다를 뿐,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고 느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 각자 나름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고 방문하지만, 그걸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있다는 것.

 

이곳에도 사람사는 곳이니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많은 없는 곳이 호텔이란 곳이다. 호텔 로열의 사장이 되면 호텔 로열의 안주인이 되면,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혹은 행복해 질거라고 생각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많은 러브 호텔이 생기고,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던 호텔들은 조금씩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곳 호텔 로열에도 『에메랄드궁』에서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한다. 호텔 로열을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작소설로 쓴게 『호텔 로열』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직접 호텔 로열을 경영해 십대때부터 호텔을 청소하는등 호텔 일을 도왔던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경험이 묻어나왔다. 작가는 말한다. 서서히 성에 대해서 알아야 할 시기에 결과부터 알게 되었다는 말을. 그래서인지 작가는 성에 대해 거침없이 묘사하는 소설을 썼다고도 했다.

 

자, 일곱편의 연작 소설들의 내용들을 볼까. 「셔터 찬스」사진 잡지에 투고할 누드 사진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남자친구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스무살 차이나는 주지 스님의 아내가 되어 절을 이끌어나간 이야기인 「금일개업」, 아버지의 호텔 접수처에서 청춘을 보낸 여자와 의부증에 걸린 아내를 둔 사람의 이야기 「쎅군」, 「거품 목욕」에서는 좁은 임대아파트에서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통에 남편과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쌤」에서는 부모가 가출해버려 있을데가 없는 여고생과 아내의 불륜때문에 힘들어하는 교사의 이야기가, 「별을 보고 있었어」는 열살 연하의 남편과 살아가며 호텔 로열에서 청소하는 여자의 이야기이고, 「선물」에서는 호텔 로열을 짓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일곱 편의 작품들은 각자의 작품으로 읽혀지고, 또한 같이 읽혀지기도 한다. 각각의 연작 단편 속의 사람들은 호텔 로열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었다.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애인과 남편과 혹은 절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들에서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기 보다는 그들의 행동에 순응하게 된다. 남편과 관계를 가질 수 없어 호텔 로열에서 거품 목욕을 하며 한 번의 정사를 나누는 부부나, 호텔 청소를 마치고 늦은 퇴근을 한 뒤에서도 열 살 아래의 남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듯 읽었다. 호텔 로열을 거쳐갔던 사람들은 몰락한 호텔 로열의 모습과도 닮았다. 세상과 마지막 조우를 하듯 호텔 로열을 찾았다. 그들의 모습은 공허해 보였고 어딘지 모를 우울함을 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우리들의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가정도 집안을 들여다보면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어느 것이 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 꽤 괜찮다. 이름을 기억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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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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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황혼기,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어쩌면 겨울이라고 해도 좋을 계절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11월, 전 같으면 나는 겨울이라고 우겼겠지만, 이제는 가을이라고 우길련다. 가을이 참 좋다는 것을 나는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높다란 파란 하늘과 그에 대비되는 울긋불긋한 단풍들 때문에 그저 가는 가을이 아쉬울 뿐. 내가 느끼는 계절의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참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시간들 속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탓일게다. 어느 순간이라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은, 최근의 나는 더욱 이러한 감정들이 피부에 와닿는다.

 

 

한때 나의 삶에 비관적인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독서로, 여행으로,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견뎌왔다. 책은 나의 벗이자 친구가 되었고,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때는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와야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덧없고, 하찮은 인생같지만, 우리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책 속의 문장에서처럼 인간은 덧없고 하찮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계속되고 있다.

 

황정은 작가의 단편 몇 편과 장편 두 편을 읽었다. 계절의 영향 탓인지, 황정은 작가의 글에 적응을 한 탓인지 황정은의 소설이 몹시 좋았다.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말은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끊긴 뒤 이어가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이 한 마디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효과가 있다. 시선을 한 곳에 모아주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삶에 지칠때, 그만 삶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계속 살아보겠다, 라는 의미를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이런 의미로 읽혔다. 책 속의 주인공 소라 나나 나기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삶을 살기 보다는 아웃사이더처럼 살아가는 것도 같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보다는 그들끼리만 뭉쳐있다고 해야겠다. 이들은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한다. 본인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소라와 나나, 나기가 그들이다. 이들 이름이 한글 이름 같지만, 모두 한자로 된 이름을 갖고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한자 이름에 대한 뜻풀이부터 시작한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다. 자매에게는 애자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가 있다. 엄마에게는 금주라는 남편이 있었다. 금주 씨가 일하던 공사장에서 죽었다. 아빠 금주가 죽은후 엄마 애자는 삶의 방향을 잃었다. 소라와 나나가 있었지만, 엄마 애자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보다는 남편 금주가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이런 엄마 애자를 소라와 나나는 '애자씨' 라고 부른다. 나나는 자신을 가리켜 '나' 라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인 '나나'라고 부른다. 언니 소라에게도 마찬가지. 아주 절박할 때만 언니라고 부를 뿐, 평소엔 늘 소라다.

 

 

이 두 자매인 소라와 나나의 곁에서 마치 세 개의 물방울이 하나의 물방울로 뭉쳐지듯, 때로는 다정한 오빠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는 나기가 있다. 이들은 펼쳐진 나비의 날개 혹은 데칼코마니처럼 활짝 펼쳐진 듯한 집에서 처음 만났다.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227페이지)

 

 

소라, 나나, 나기의 순서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지막에 나나의 짧은 이야기를 한다. 덧없고 하찮은 인간이더라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나나의 말처럼,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더 힘든 일이 찾아와도 우리는 견뎌낼 수 있으며, 괜찮아, 괜찮아, 잘 할수 있어, 라고 말할수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나의 속삭임에 우린 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 나나가 계속해보겠다고 읖조리는 때부터 나나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어떻게든 견딜 것이고, 어떻게든 버틸 것이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소라 나기와 함께. 소라나나나기나비바가 되어. 하나의 물방울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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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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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2박3일동안 짧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여행이라기 보다는 올레길 걷기라고 해야 더 맞겠다. 규슈에 있는 올레길을 가게 되면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규슈편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책을 다시 읽을 시간이 부족해 아쉽게도 그냥 출발했다. 일본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배에서 시간이 날때 교토편 두 번째 편을 읽었더니 일본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친숙했다.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 있지만,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많이 알지 못하는데서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본은 우리와 역사를 같이 한 부분이 많지만, 정작 일본 역사에는 무지하다는 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피해의식만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총 4권으로 나뉜 일본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면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알았다. 우리에게서 건너간 문화유산도 자기들 식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일본 문화를 형성한 것도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유홍준 교수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은 그 첫 번째로 규수편을 엮었고, 두 번째가 아스카, 나라편이었다. 세 번째 편이 교토의 역사 였고 이번 네 번째 책이 교토의 명소를 다루었다.

 

 

일본편 네 번째 권인 이번 책에서는 교토의 명소 중에서도 주로 일본의 정원을 다루었다. 일본 정원의 모습을 일본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과정들을 알수 있었다. 일본에 관한 사진에서나 실제로 본 일본의 정원은 우리나라의 정원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정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일본 정원은 우리나라 정원과는 좀 다른 면을 보였다.

 

제1부는 일본 최초의 선종 사찰인 기온 지구의 건인사와 동시대의 정토종 사찰인 지은원을 답사했다. 제2부에서는 무로마치시대가 열리게 된 역사적 배경과 함께 상국사, 금각사, 은각사, 용안사, 남선사를 답사했다. 제3부는 다도의 본가인 우라 센케와 대덕사를 답사했고, 센노 리큐에 의해 일본의 다도가 완성되는 과정등을 답사했고, 제4부에서는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별궁인 가쓰라 이궁 등의 일본 정원들을, 제5부에서는 느긋하게 교토 시내를 거닐면서 본 대로, 느낀 대로,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것들을 엮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여행지에 관련 된 책을 읽거나 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려 여행기를 읽고는 하는데,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를 읽는 일은 우리의 문화 유산과 함께 역사를 알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한 책이다. 우리나라 답사기를 읽을 때는 우리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문화 유산을 더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졌다. 반면 일본편을 읽을 때는 생소한 일본의 역사를 접하면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일본 역사를 알고 난후의 문화 유산은 더 이해하기 쉽고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좌, 뒤를 돌아보는 불상 우, 수월관음도

 

대부분의 불상이 정면을 향하는데 반해, 위 왼쪽 사진의 불상은 뒤를 돌아보는 불상이다. 저자는 이 불상의 모습을 가르켜 아미타여래가 극락으로 돌아가면서 중생들이 잘 따라오나 걱정되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오른쪽의 사진은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이다.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국보 중의 국보가 되었을텐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한다. 우리가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수월관음도」의 사라를 시스루 패션이라고도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대덕사의 「수월관음도」는 용왕과 용녀가 등장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어 더욱 특별하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아름답다.

 

스토리텔링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일본은 은각사의 비와호 소수 수로를 따라 남선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길은 일본 근대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가 즐겨 산책하던 곳이라 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한다. '철학의 길'을 걸을 때는 왠지 사색하며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쓰라 이궁의 연못 풍경

 

우리나라의 정원이나 일본의 정원이나 정원을 바라보거나 거닐면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낀다. 자주가는 담양 소쇄원의 모습을 좋아하는 이유도 소쇄원을 밖에서 감싸고 있는 대나무들과 돌로 된 담벼락, 자연스럽게 흐르는 연못의 물과 고요하게 앉아있는 듯한 정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에서 일본 정원은 자연을 재현한 인공적 공간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한국 정원은 자연공간 안에 인공적인 건물이 배치되고 나무가 심어지고 화단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정원의 나무에 철저히 가위질을 하여 인공이 가미된 자연으로 경영하면서 어쩌다 잘생긴 소나무나 흐드러진 수양벚나무를 자연 그대로 맡겨둔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원에서는 자연의 멋을 있는 그대로 살리면서 무성한 곳을 다듬거나 빈 공간에 멋진 나무 한 그루를 배치하면서 정원을 조성한다. (......) '돌 10개를 놓으면 일본 정원사는 9개를 반듯이 놓고 나서 1개를 약간 비스듬히 틀어놓으려고 궁리하는데, 한국 정원사는 9개는 아무렇게 놓고 나서 1개를 반듯이 놓으려고 애씁디다.' (243페이지)

 

마루야마 공원의 벚꽃

 

 

어떤 곳을 가게 되면 늘 처음 찾는게 박물관을 먼저 찾게 되는데, 유홍준 교수 또한 박물관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교토국립박물관은 주로 헤이안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교토에서 생산된 문화재를 수집, 보관,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은 특히 사찰의 소장품이 많다고 한다. 교토에 가게 되면 꼭 방문해서 보고 싶다. 벚꽃이 활짝 필때 가면 더욱 아름다운 공원이나 가모강변의 산책길도 추천했다. 평소에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딱 좋을 산책길이기도 할 것 같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 일본편을 읽으면서 일본에 대해 무지했었다는 걸 알았고, 일본의 문화유산과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의 연관성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를 알고 난 뒤에 일본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일도, 그곳에 스며든 사연까지 알고 나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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