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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을 지나는 너에게 - 인생에 대한 짧은 문답
김원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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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문들을 하고 대답을 원한다.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할때의 그 안타까움이란 이루말할 수 없다. 많은 고민의 시간을 거쳐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이므로 더욱 그럴게다. 최근의 여러 작품 중에서 누군가의 질문과 대답을 한 작품들이 나와 궁금증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읽고는 한다. 사실 우리가 말을 덜 한다 뿐이지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있으므로 그렇다.

 

김원의 『봄날을 지나는 너에게』또한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글이다. 글은 시원시원하고, 그림들은 아름답다. 봄날을 지나온 우리에게 때로는 우리가 느낀 해답일수도 있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혼자만의 고민들에 대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기도 했다. 또 그의 글은 페이지를 넘겨 읽어갈수록 기억하고 싶은 글, 기억해 지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글들이 많았다. 사실 책을 읽으며 좋은 글을 만나, 누군가와의 사랑의 시작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에게 몇 줄의 글을 전해주기도 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산 사람들은 김원이 전해주는 해답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느낄수도 있겠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미 알고 있어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일들도 많다. 그때 20대, 30대의 생각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 보기도 한다.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붓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세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가능해질 수도 있답니다. (94페이지)

 

나이가 더 어렸던 연애 초기에는 사랑을 많이 주는 반면, 시간이 지나 나이가 어느 정도 먹으면 사랑을 주기 보다는 받고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선물 같은 경우도 내가 먼저 건네 주기보다는 이제는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연애 처음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더 주면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최근의 내 모습 중 전과 달라진 모습 중의 하나는 꽃이나 나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땅에 떨어진 작은 꽃잎, 화단에 피어 있는 아주 작은 야생화 하나에도 눈길이 돌아가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에 담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들의 아쉬움, 오늘의 모습이 현재에는 마지막이기에 그 시간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탓일게다.

 

이런 마음을 대변하듯 에세이집을 읽을때 이처럼 예쁜 풍경, 꽃잎이 흐드러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진을 보는 일이 즐겁다. 어둡고 흐려진 시야를 밝게, 환하게 밝혀주는 느낌을 가진다.

 

왜 혼자 여행다니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느냐, 란 질문에 대한 김원의 대답을 들어볼까.

혼자 영화 보는걸 좋아하고, 혼자 떠나는 여행을 선호한다는 저자는 홀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특별한 느낌'에 대해 말한다.

 

여행지에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굉장히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내면의 세계가 아주 깊고, 그윽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해지니까요.

전혀 외로워 보이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그 넉넉한 인품과 영롱한 아우라에 반하게 되죠. (100~101페이지)

 

 

혼자 여행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그 충만함을, 홀로 여행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약간 외롭고 쓸쓸하겠지만, 두 가지 감정 보다 더한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 사랑에 실패해도, 힘든 일이 있어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할때도 여행을 다녀오면 그 모든 것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을 할수 있는 마음을 얻고 오는게 여행인 것 같다.

 

상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헤처나갈 수 없게 되고, 결국엔 사람들을 멀리하며,

아무도 사랑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답니다.

사랑과 인생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126페이지)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삶과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할 책이다. 나는 글도 좋았지만, 사진들이 특히 좋았다. 꽃과 풍경들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저자의 삶의 방식, 저자의 생각들을 알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느 날엔 행복하고 어느 날엔 우울하고, 때론 상처받고 슬프기도 하겠지. 하지만 저자는 매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매일 행복한 사람이 우리에게 건네 준 말들은 우리를 웃음짓게 만든다. 삶을 좀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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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쓰는 남자, 드라마 찍는 여자
변정완 지음 / 청어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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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드라마에 대한 환상은 가지고 있다.

가끔씩 보는 드라마의 내용에 열광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 때문에 설렘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드라마중에서 역사적 인물을 드라마화 한것을 보거나 로맨틱한 드라마를 가끔씩 보곤 하는데 드라마를 기다리는 그 시간들을 즐기는 것도 같다. 너무 길어서, 약속 때문에 한두 회 빠지다 보면 몇 편을 넘기기도 해서 영화를 더 즐기기도 하는데, 드라마의 매력은 엄청나다. 히트친 드라마의 배우들의 광고들을 보면 그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런 드라마의 매력에 힘입어 드라마 애청자들은 방송 작가의 이름을 외워 그가 대본쓰는 드마라를 챙겨보게 되고, 드라마 감독의 새로운 드라마도 챙겨보게 된다. 요즘엔 방송 작가들이 책을 쓰는 경우가 많다. 검증된 글을 보는 기쁨이랄까. 방송 작가들이 쓰는 로맨스 소설은 특히 더 호감을 갖게 한다. 변정완 작가의 『드라마 쓰는 남자, 드라마 찍는 여자』라는 책도 드라마 작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드라마 쓰는 한 남자와 드라마를 만드는 여자의 로맨스다.

 

망한 드라마 감독, 즉 망드 감독인 류수현은 삼촌이 대표로 있는 기획사에서 쫄딱 망했다. 몇십 억의 빚더미에 올라앉은 삼촌을 구하고자, 히트 드라마 제조기이자 스타 작가인 류민과 함께 드라마를 찍어 망드 PD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드라마가 끝난후 떠난 강원도 여행길에서 한 여자가 찾아왔다. 감독이라며 드라마를 같이 하자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동굴에서 아이처럼 울고 있는 그녀를 데리고 그의 별장으로 데리고 와 몇 번의 테스트를 한다. 망한 드라마 PD였지만 그녀의 연출력이 나쁘지 않음을 느꼈다.

 

 

 

로맨스 소설의 정석이자 스테디 셀러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느낌을 기대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안타까움, 좋아하는 이에게 오랫동안 바라보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아파하고, 그럼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들 때문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글을 은연중에 기대했던 듯 하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어서 그런지 이 책은 약간 드라마적이다.

로맨스 소설에서 남녀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설렘이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둘이 사랑하는 모습을 글로 읽으면서 독자의 마음도 자기가 사랑하는 양 그렇게 설레고는 하는데, 이 작품의 느낌에서 그런 설렘은 덜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책 속의 글에서 마음에 드는 글이 있어 느끼는 바가 많았다. 수현은 날아다니는 말의 화살들이 반갑지 않았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들어주되 말은 하지 않는 편이었고, 말을 옮기는 등의 귀찮은 짓도 하지 않았다. (235페이지) 라고 말한 부분이다. 수많은 말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과 말을 하곤 하는데, 때로는 하지 않아야 될 말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칭찬의 말이라면 상관없는데, 어느 누군가의 흉을 보게 된 다음에는 무척 후회를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서, 더군다나 이미 오랜 시간을 같이 해 온 여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말을 할때 쿨하게 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하지만 마음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콕콕 찌를 것이므로 아플 수 밖에 없다. 온통 자기 안의 감옥에 갇혀, 다른 사람은 보지 않고 나의 아픔만 바라보았던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점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열어보려는 변화가 괜찮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기에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이 사람들이 드라마는 안찍고 두 사람들의 드라마만 찍고 있었다는 게 아쉬웠다. 드라마의 현장에서 부대끼는 일들, 드라마를 찍으며 작가로서, 감독으로서의 부딪히는 많은 것들을 보고 싶었었다.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드라마 현장에서 빛을 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아, 갑자기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볼 수 있는 로맨틱 영화나 드라마가 보고 싶어진다. 달달한 사랑이야기에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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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 조선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삶
이일수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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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련 서적을 좋아해 자주 찾아 읽고는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이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 그림을 보고 그에 관련된 책을 읽고는 한다. 그림에서 우리는 한 시대의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생활상, 그림이 그린 이의 생각, 그림이 나타내는 뜻을 알게 된다. 그림이 나타내는 것을 알게 되면 그림에 대한 사랑이 더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옛 그림에서 인생을 만나는 책을 읽었다. 저자 이일수의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라는 제목으로 '조선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삶' 이란 부제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에서 조선 화가들이 그림을 보며 조선 사람의 인생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조선 화가들이 그린 그림은 내가 다른 책에서도 거의 만난 책이다. 저자마다 그림을 소개하는 성격이 다른데, 저자 이일수는 책에서 조선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루었다. 그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우리가 알기 쉽도록 했고, 그림에 대한 애정,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역사적 사실과 풍속 등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처음 소개하는 그림은 신윤복이 그린 것이라고 알려진 「기다림」이란 그림이다.

그냥 무심코 볼 수 있는 그림이지만, 저자는 여자가 들고 있는 모자가 스님들이 쓰고 다녔던 모자고, 아마도 그녀는 불가에 귀의한 스님을 좋아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녀의 기다림은 꽤 길어 보인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 것이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무작정 기다린 다는 것, 그 기다림은 길고 애타는 일이다. 그림에서도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엿보여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만든다.

 

 

신윤복, 「기다림」

 

저자는 18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조선의 생활, 평민들의 삶을 엿볼수 있다.

그림이 아닌 글씨의 사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같다. 신윤복의 「기다림」을 설명하며 덧붙여 아래 <원이 엄마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원이 엄마의 편지>는 경북 안동시에서 이름모를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유물이 발견되어 알려진 것인데, 죽은 남편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편지지가 모자라 빈 여백을 채워 넣은 글씨로 편지를 읽고 있으면 울컥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조선 시대의 남편과 아내, 사랑하기 보다는 다른 이유때문에 맺어진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렸다.

 

「원이 엄마의 편지」

 

책에서는 김홍도의 여러 「풍속화첩」들을 소개하며 행상이나 씨름하는 장면, 자리짜기 등을 담은 그림들을 소개해 조선의 사회를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했다. 양반이지만 형편이 어려워 어쩔수 없이 자리짜기를 하는 남편과 능숙한 손길로 물레를 돌리는 아내의 얼굴도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스스로 눈을 찌른 화가 최북의 그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래의 그림은 금강산 여행중에 그 아름다움에 취해 못에 뛰어들어 죽을 뻔한 기행을 일삼은 최북의 「금강산 표훈사도」다. 가보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금강산의 빼어난 풍광을 그렸던 최북의 아래 그림과 함께 한쪽 눈을 찔러 눈을 감은 작자미상의 최북을 그린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최북, 「금강산 표훈사도」

 

아래의 그림들은 신사임당과 윤덕희의 그림들이다.

신사임당의 뜻그림을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백로와 연밥을 함께 그리는 것은 소과와 대과에 연달아 급제하라는 뜻을 담아 그렸다. 가족의 과거 급제라는 염원을 담아 그린 그림인 것이다. 예나지금이나 부모의 마음은 이처럼 어쩔수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저자는 조선 화가의 그림 중에서 책 읽는 그림을 발견할 수 없는데, 아버지 윤두서의 그림을 이어받은 윤덕희의 「책 읽는 여인」이라는 귀한 그림을 소개했다. 다른 책에서도 이 그림을 접했지만 서양화의 책 읽는 그림과는 다른 멋스러움이 있다. 책은 거의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 왔는데 이 책에서 보니 조선의 여성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가 쓴 글에서도 '여자들이 집안일과 길쌈을 게을리하며 소설을 돈 주고 빌려다 읽는다. 여기에 빠지고 혹하기를 마지않아 한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까지 있다.' (283페이지) 라고도 했다. 그만큼 소설 읽기를 좋아하니 당시의 지식인들이었던 이덕무와 채제공 까지도 여자들의 책 읽는 것을 염려하였던 듯 하다.

 

좌, 신사임당, 「노연도」, 윤덕희,「책 읽는 여인」

 

책 읽는 여인의 모습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만큼이나 싱그럽다. 책 한 권을 통해 다른 세계로 젖어 드는 눈빛과 그 세계를 점점 넓혀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마치 내가 책을 읽는 것처럼 감동적이다. 특히 조선 시대이기에 더욱 그렇다. (282페이지)

 

내게 익숙한 그림들이 많았지만, 그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여러번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그림과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이다. 주로 전시 기획일을 많이 하는 저자 이일수의 다양한 그림과 설명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선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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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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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승우 작가를 알게 된 건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였다.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진행자들의 입담에 꽤 즐겁게 듣곤 하는데, 어느날엔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를 소개했다. 두 진행자가 말하길, 서로에게 너무도 좋은 작품이었음을 말해 꼭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다른 책들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문학을 좀더 읽고 싶어 이승우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이란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분명 소설인데 식물관련 서적이 아닐까 싶은 제목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장부터 식물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며 읽게 되었는데, 자동차를 끌고 여자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한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였다. 첫 문장에서부터 마음에 와 닿았다. 첫문장, 첫 장을 읽어보면 작품의 느낌이 전해져 오는데,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군더더기 없는 유려한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식물들의 사생활』속에서는 사랑의 두 가지 모습이 보인다.

먼저 대학생이었던 형과 형의 여자친구 순미, 그리고 '나' 기현이 있다. 삼수생인 기현은 형의 여자친구를 보고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순미가 집으로 찾아와 형의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형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을 엿들었다. 형이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순미의 냄새가 배어있는 형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 무언가를 훔치고, 형을 위해 불러주었던 노래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훔치기도 했다. 사랑에 관한한 거칠것이 없었던 기현은 순미네 집으로 찾아가 하루종일 기다려 순미를 당황스럽게도 했다. 그리고 형의 전부였던 카메라를 훔쳐 가출을 해버렸다.

 

 

또다른 사랑을 볼까. 여태 몰랐던 엄마의 사랑이 있다. 어머니가 스물한 살때 사랑했던 남자였다. 권력을 가진 아내를 둔 남편이었으나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남자였다. 둘만의 낙원이었던 남천에서 며칠을 머물렀고 원치 않는 이유로 헤어졌다. 그런 어머니를 사랑한 사람이 아버지였다. 집안에서 어느 누구와도 말도 잘 건네지 않은 아버지가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식물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식물들은 감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략) 식물도 감정을 가진 생명이다. 고통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행복도 느낀다. 사람이 거짓말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식물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거짓 사랑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식물과 교감하기 위해서도 진실해야 한다. (137페이지)

 

이들의 사랑을 보자면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한 남자가 그여자의 뒷모습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형 우현을 사랑하는 순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기현이 그랬고, 삼십 년이 지나도록 한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봐야 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사랑을 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랑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내 품에 안겨서 그 말을 되풀이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 나는 말해줬다. 너는 이미 나무다. 나무를 꿈꾸는 사람은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이미 나무인 것이다. (251페이지)

 

 

나무가 되고 싶었다는 형은 숲 속의 소나무와 소나무를 친친 감고있는 때죽나무의 부드러운 가지를 자신과 순미의 모습처럼 보았고 스스로 자신이 그 소나무가 되길 바랐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그 사람의 나무로 비춰졌던 야자나무는 또 어떤가. 우리나라의 토양에서 절대 자랄수 없을 야자나무가 버젓이 살아 큰 가지를 만들어 이국적인 정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밤마다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어 사랑하는 이를 어루만졌던 나무의 이야기는 어쩌면 신화처럼 보인다. 이 소설에서 나무는 사람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나무가 되고자 했던, 나무로 승화된 사랑이었다. 식물과 교감하며 식물과 사랑의 의미 또는 식물로 인해 사랑의 완성, 화합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아, 책이 정말 좋구나!

이승우 작가의 글에 반해버렸다. 작가의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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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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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는 사람은 세상을 눈으로만 보려한다.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눈으로만 보고, 그것만 보는 사람들은 다른 것들의 내면을 잘 보려하지 않는다. 눈으로 세상을 보듯, 생각도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타인의 감정을 생각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책에서는 우리가 여태 보지 못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보지 못했던 감정들, 세상을 보는 시각을 열어준다. 김연수 작가가 번역한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대성당』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다시 느꼈다. 내가 눈으로 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 마음으로 풍경을 그리고 성당의 모습을 그릴 수도 있다는 것. 눈을 감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종이 위에 대성당의 모습을 그리며 내가 생각한 대성당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 눈으로 보지 않아도 내가 상상한 대성당의 모습의 마음으로 그대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감정을 느끼므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린다. 작가가 말하는 글을 읽으며, 작가가 글을 썼던 시기의 감정들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때로 작품 속에서 작가가 처한 상황을 알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에서도 그렇다. 열두 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대성당』의 단편들을 보면 아이에 대한 생각들, 잦은 음주 습관때문에 아내와 헤어진다든가 하는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 실려있는「깃털들」을 보면, 회사 동료인 버드의 집을 아내 프랜과 방문하게 된 잭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잭과 프랜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지만, 버드의 아이를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레이먼드 카버가 실제 열아홉살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술에 빠져 살았다 한다. 그래서 일까 그의 작품 속에서는 알콜중독자인 사람들이 꽤 나온다. 알콜중독자였던 집주인 셰프의 집에서 지낸다며 같이 보내자는 남편 웨스의 전화를 받고 그곳에서 여름 한철을 보내는「셰프의 집」에서도 그렇다. 샴페인 때문에 아내와 다른 거처에서 지내는 남자의 이야기인 「신경써서」와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서도 술을 끊기 위한 시설에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술을 끊기 위한 시설의 포치에서 굴뚝 청소부 였던 J.P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에게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하는 남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았다.

 

 

 

 

「칸막이 객실」이나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아들에 대한 마음들을 나타냈다. 「칸막이 객실」이 아내와의 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이혼까지 가게 한 아들을 만나러 스트라스부르를 향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며,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는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던 아들을 바라보는 부부의 심정들을 담은 이야기이다. 부부는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아들을 지키며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 한밤중에 걸려오는 전화와 결국 죽고만 아들때문에 힘들어했다. 죽은 아이때문에 너무 슬퍼 다른이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싶었던 부부는 빵집으로 향하게 되고, 빵가게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제목처럼 별것 아닌 같은 아주 작은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대성당』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아내의 오랜 친구인 맹인 로버트의 방문으로 불편함과 약간의 질투를 느끼는 한 남자의 마음을 담은 내용이다. 오랜 시간을 녹음된 편지를 교환했던 아내와 로버트는 아내의 사생활들을 잘 알고 있으며 표현하지 못할 감정으로 묶여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술을 몇 잔하고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TV속에서 나오는 여러나라의 대성당의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다. 대성당의 모습을 로버트에게 설명하던 중 로버트의 제안으로 흰 종이에 '눈을 감고' 대성당의 모습을 그리며 로버트가 느끼는 마음, 시선들을 느낄수 있었다.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고, 그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는 그에게 마음의 눈이 열렸다. 로버트처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아무것도 진심으로 바라보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장면을 자신이 보고싶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들의 시선은 조금씩 굴절되어 있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야만 상대방의 진심을, 함께 보고자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단편 읽는 기쁨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연수 작가가 번역했다는 이유로,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이유로 읽은 책이었는데, 내가 기대했던 내용보다 훨씬 좋다. 각 단편의 내용들이, 느낌이 마음속으로 스며왔다. 평범한 내용들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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