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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최근 가을을 제대로 느끼면서 시집, 에세이집, 일반 순수문학 류의 책을 자주 읽었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추리소설이 몹시 읽고 싶어지는 감정을 갖게 된다. 추리소설에 대한 목마름이랄까. 같은 문학 종류 중에서도 골고루 읽기를 좋아하는데 추리소설이야말로 생활의 활력을 주기 때문인것 같다.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단단히 쪼이게 만드는 역할 때문이겠다. 긴장으로 인해 온 신경이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프리 디버의 소설에 가장 강한 매력을 느낀 작품이 캐트린 댄스 시리즈인 『잠자는 인형』이었다. 사람의 동작을 보고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는 동작학 전문가인 캐트린 댄스의 활약에 굉장히 좋아하게 되어서이다. 제프리 디버의 신작 소식에 캐트린 댄스 시리즈이길 바란 점도 그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번 신작은 링컨 라임 시리즈도 캐트린 댄스 시리즈도 아닌 별도의 작품이었다.

 

제목과 함께 노란 바탕에 권총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에서부터 굉장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살짝 짧은 책이었다. 내용 또한 역순으로 진행된다. 세라라는 딸을 유괴당한 가브리엘라가 자신을 보호하는 샘과 함께 몸을 숨기고 있다. 딸을 유괴하고 옥토버리스트와 함께 미화 50만달러를 내놓으라는 조셉이 찾아와 권총을 발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글의 순서를 볼까. 처음 시작한 부분이 순서의 맨 마지막이다. 내용이 전개될수록 뒷걸음치는 듯 뒤에서부터 앞부분으로 순서가 올라오고, 내용은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된다. 결과가 있고, 사건이 있던 날로 돌아가는 형식이다.

 

가브리엘라의 딸을 유괴한 조셉이 권총을 발사해 누가 죽었는지, 가브리엘라의 딸 세라는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알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역순으로 진행되면서 어떻게 가브리엘라가 경찰의 추적을 받고, 가브리엘라를 도우는 대니얼 리어든과 대니얼의 동료 앤드류나 샘의 정체는 과연 어떻게 된건지 책의 뒷장으로 갈수록 우리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을 읽다보면, 가브리엘라의 정체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를 도우는 대니얼이나 그의 동료들의 정체도 수상하고,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지만, 경찰의 추적을 간단하게 해결해버리는 가브리엘라의 정체가 제일 궁금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잃은 엄마답지 않은 점이 수상했다. 아이를 잃은 엄마라면 이렇게 행동할 수 없을텐데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책의 뒷부분, 즉 사건의 시작을 향해 갈수록 이들의 정체를 더 알수 없었다. 책의 뒷장으로 갈수록 반전의 반전이 전개되는 통에 머릿속으로 사건을 점검해보고, 메모지에 나의 의문점들을 적어가며 책을 읽게 되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특성이 유괴범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주고, 왜 유괴를 저질렀는지, 왜 살인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그에 반해 『옥토버리스트』는 왜 이런 사건이 생겼는지 사건의 처음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때문에 조바심이 생길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영화로 제작되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 책의 제1부 첫장에 가까워올수록 드러나는 가브리엘라의 정체라니. 새로운 시리즈 가브리엘라의 탄생일수도 있겠다. 책의 앞장에서부터 다 읽고나면, 거꾸로 된 순서 때문에라도 책의 뒷장에서부터 앞장으로 다시 읽어야만 한다. 그래야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드러나게 되므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런 식의 제프리 디버의 소설도 참 좋구나 하고 느꼈다. 자, 다시 책의 맨 뒷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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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자전거여행 - 전2권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에세이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하지만,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작가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함이다. 작가의 마음속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이기에.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가 나오면 대부분 구입해서 읽고는 한다. 그동안 김훈 작가는 나에게 어려운 작가, 꼼꼼하고도 날카로운 필치로 글을 쓰는 작가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자전거 여행』이라는 에세이집을 알게 되었다. 책은 품절이었다. 아마도 출판사 '생각의 나무'의 사정이 생겨 품절이 되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편집으로 거듭났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겠지만, 멀리 하는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기란 너무 힘든 일이 될 것이므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은 쉽게 책장을 넘기며 읽을 수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는다. 짧은 문장들이 이어지는 그의 문장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문장 속 깊은 의미를 파악하느라 나는 김훈의 책을 아주 천천히 읽었다. 천천히 읽어도 책을 읽는 기쁨이 컸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을 보라. 너무 아름다운 문장에 나는 이 문장들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은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스미는 풍경은 머무르지 않고 닥치고 스쳐서 불려가는데, 그때 풍경을 받아내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풍경은 바람과도 같다. 방한복을 벗어버리고 반바지와 티셔츠로 봄의 산하를 달릴 때 몸은 바람 속으로 넓어지고 마음은 풍경 속으로 건너간다. 나는 몸과 마음의 풍경이 만나고 또 갈라서는 그 언저리에서 나의 모국어가 돋아나기를 바란다. (2권, 12페이지)

 

 

 

저어기, 전남 여수의 돌산도에서부터 강원도 고성에 이르기까지 그의 자전거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 곳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마치 그의 육성으로 듣는 듯, 그가 설명하는 역사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듯 그의 문장들을 읽는다. 위의 글에서처럼 그의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그 곳의 풍경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듬을 느끼는 것이다. 스미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김훈 작가도 자전거 여행을 하며 가슴속에 스미는 풍경들을 느꼈던 듯 하다.

 

양수리의 두물머리 물가에서 태어났던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매부 등의 숨결이 묻혀있는 곳의 이야기를 할때 우리는 저절로 김훈 작가가 쓴 작품 『흑산』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다산의 치욕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라 그가 한평생 간직했던 침묵이다. 치욕은 생애의 중요한 부분이고, 침묵은 역사의 일부다. (1권, 172페이지)

 

전북 군산 옥구 염전에서 소금을 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가 소금에 대해 말하는 문장을 보면, 햇볕과 바다의 정수가 소금 알 속에서 고요해야 한다. 대체로 알이 굵은 소금이 고요한 소금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염전의 물이 흔들리는 날에는 좋은 소금을 거둘 수가 없다. 소금의 안정이 흔들려서 소금 알이 잘아지고 쓴맛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는다. (1권, 213페이지) 염전 근처에 여행을 가면 30킬로그램 소금을 한 포대씩 구매해 오곤 하는데, 소금 알이 굵은게 좋은 소금인줄 몰랐다. 소금은 크기와 상관없이 다 좋은 소금인줄 알았지.

 

 

 

남도의 여행지중 내가 방문 했던 부분을 읽을때는 반가움이 앞섰고, 내가 미처 가보지 못했던 부분을 읽을때는 메모를 해 가면서 읽었다. 책은 새로운 곳으로의 안내자다. 여행서적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동경을, 여행을 계획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계획서가 된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지역을 다시 꼽았다. 메모지에 메모해놓고 책 맨 앞장에 붙여놓았다. 메모해 놓은, 내가 올 겨울에 가고 싶은 여행지는 안동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부석사 무량수전 등이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거리가 멀기도 하고 일정이 맞지 않아 늘 미뤄두었던 곳인데 올해에는 꼭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파주부분에서는 오랜만에 이승복 동상을 보고는 감회에 젖었다. 초등학교 다닐때 어느 초등학교난 이승복 동상이 운동장 쪽에 있어서 북한의 잔혹성에 대한 반공교육을 일깨우곤 했었다. 요즘엔 북한과의 사이가 좋아져 이승복 동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또한 아픈 과거이리라.

 

『자전거 여행』은 김훈 작가와 사진작가 이강빈이 함께 자전거로 여행한 곳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된 글은 김훈 작가가 썼지만, 책 속의 풍경 사진은 이강빈 사진작가의 솜씨이다. 산악 자전거를 끌고 피곤함을 무릅쓰고서 자전거로 달렸을 그 거리에서 수많은 땀을 흘렸을 것이다. 그의 땀내 물씬 나는 글을 읽었다. 그의 땀방울이 여러 문장으로 되어 우리에게 책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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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줘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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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 사랑이 상처가 되는 줄 알면서도 사랑속으로 빠져드는게 사랑이 아닐까. 그게 남녀간의 사랑이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든. 어쩌면 사람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부모에게 상처받았던 것, 그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고, 그 상처를 표출할 수는 없었지만 현재까지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걸 상처라고 말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리 부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은연중에 자식들에게 주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처는 상처로 대물림 되는 것인가.

 

『기억해줘』는 임경선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저자의 작품이 꽤 나온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이 소설로 임경선 작가를 처음 만났다. 첫느낌을 말하자면, 뭐랄까, 사랑은 처음부터 꼭 같이 해야지 사랑은 아니라는 것. 가족으로 묶이는 것과 가족으로 묶이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다른 사랑을 보듬을 수도 있다는 것. 내 사랑법과 맞지는 않지만, 이것은 한 나라에 머물러 있지 않은, 먼 시간을 거쳐와도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라볼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달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순간을 위해 사랑하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해야겠다.

 

내가 하는 사랑법이 다 옳지는 않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성격대로 완벽한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속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까봐 무서워 상처를 받지 않은 척, 사랑에 쿨한 척 하겠다는 것이다. 책 속의 주인공인 해인도 그랬다. 사랑하는 유진이 자신의 화실에서 나갔다 다시 들어와도 아무런 말없이 가는 걸 지켜봤고, 훌쩍 시간이 지난 뒤 들어와도 막지 않았다. 이야기는 한 연인이 헤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자가 다른 사람에게 열정을 품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짐을 싸서 나갔고, 해인은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다.

 

사족을 밝히자면, 많은 소설에서 해인이라는 이름은 여자로 인식되어졌다. 해인과 유진이라는 두 이름 중에서 나는 해인이 여자, 유진이 남자일거라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이름에 갖는 편견이었다. 자세히 집중해서 읽다보니 해인이 남자, 유진이 여자였다. 유진이 떠나간 뒤 해인은 가족일 때문에 미국의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자신의 첫사랑, 아픈 사춘기를 보냈던 그 시간 속으로 젖어든다. 사랑해마지 않았던 안나와의 만남이었다. 백인들이 거의 거주하는 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안나와 해인은 서로 의지하며 그 시절을 함께 보냈다.

 

 

기다림은 기쁨이다. 누군가 나를 만나러 온다는 것도 기쁘지만,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부터가 이미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안나는 약속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는 것을 순수하게 기쁨으로 느꼈다. 그런가 하면 뛰어가는게 기쁨인 남자아이도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 항상 저만치부터 해인은 참 열심히도, 온 힘을 다해 뛰어왔다. 기다려준 사람에게 성의를 다하려는 것처럼. (81페이지)

 

 

뉴욕에서 자신이 머물렀던 거리를 걷고 있다가 해인은 안나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십칠 년 만이었다. 빼빼 말랐고 까만색 눈망울이 유난히 컸던 안나는 이제 예전 안나 엄마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고, 며칠을 같이 보내곤 했던 엄마의 모습을 때론 이해할 수 없었고, 어느 때는 인정하기도 했던 안나였다. 늘 엄마때문에 자신히 피해본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들을 꿋꿋하게 이기려 했던 안나의 모습을 생각한 해인은 안나가 반가웠다. 해인 또한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가까워졌던 두 사람은 상처때문에 멀어지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는 것을 소설에서는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가장 사랑하는사람에게 상처 주는 운명을 떠안고 살아가는지도 몰라. (205페이지)

 

 

소설 속 주인공 해인과 해인의 엄마 혜진, 안나와 안나의 엄마 정인은 모두 사랑을 갈구했지만 자신이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사랑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 건 그들만의 사랑법이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아파했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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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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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느끼는 가을 바람이 제법 차갑다. 옷깃을 여미고 움츠려드는 건 어쩔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가을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때면,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나 뒤돌아보곤 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고보면 그때 좀더 열심히 살걸 하는 후회가 드는 건 어쩔수 없다. 다시 젊어질수도 없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젊음이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감정이 들더라. 이런 느낌은 비단 나 뿐만 아닐것이다.

 

가을 바람처럼 스산한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을 만났다.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해 등단한 작가 김기창의 『모나코』란 작품이다. 가질만큼 재산도 가지고 있고, 넓은 집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노인이 있다. 노인에게는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생처럼, 딸처럼 살갑게 챙기는 덕이라는 여자가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돌보며 지내온 탓인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노인은 어느 날 산책중에 한 여자를 보았다. 미혼모로 수녀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있는 진이라는 여자였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수 없는 노인은 생애 마지막 사랑에 빠진 듯 하다. 진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진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은 이십대의 마음 못지않다.

 

노인이 되면 저절로 죽음을 준비하게 될까?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지는 않을까.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재산을 뚝 떼어 아들들에게 나눠주었지만, 아들들의 얼굴도 마주할 수 없다. 가사 도우미를 하는 덕이와 진을 애타게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스산한 가을바람과도 같다. 흔히 혼자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고독사'라고 한다. 노인의 고독사는 사회문제로 번지기까지 했다. 오늘 저녁에 죽을지도 모르는 노인, 어쩌면 내일까지 숨을 쉬며 살아있는게 행복일수도 있는 일임을 매일 깨닫는 일은 슬픔이기도 하다. 진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을 바라보는 그 마음 하나로도 행복임을 알게 된 노인의 마음이 아프다.

 

 

 

가진 게 많은 노인답게 노인은 시니컬하다. 자신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던듯 하다. 나는 아무것도 강요 안 할 거야. 약속도 할 수 없어. 너는 미혼모에 예의도 없고 바보 같아도 나는 지금이 늘 최대치고 한계야. (111페이지) 삶의 마지막에서야 살아갈 이유를 깨닫지만, 노인이 진이 원하는 것을 다 줄 수는 없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냐는 진의 질문에 내일 죽을거야 라는 말을 할수 밖에 없었다. 진과 함께 있는 오늘이 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진이 떠나고 난뒤 진을 잃어버렸음을 알고 목숨을 놓은 건 아니었는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모나코』는 그가 가고 싶었던 모나코의 한 카지노였다. 모든 돈을 잃어버릴수도 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노인이 베팅한 것은 돈이 아니라 수명임을 상상했다. 쓸쓸히 죽어가는 노인은 책 속에서 이름도 없다. 나이도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웃의 노인들처럼 그저 한낱 이름없는 노인일 뿐이었다.

 

 

쓸쓸했다. 그럼에도 노인이 진과 혹은 덕이와 혹은 캐리어 할머니에게 말하는 모습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시니컬하게 내뱉는 말투에서 우리는 슬며시 입가를 늘이기도 한다. 그에게 무언가를 주기보다는 받으려고만 했던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쓸쓸해진 마음때문에 마지막 책장을 덮어놓지 못했던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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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의 딸
최인호 지음, 최다혜 그림 / 여백(여백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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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자식들한테 그리 살갑게 대하신 분이 아니었는데, 맏이라 그런지 유난히 나를 예뻐하셨다는 아버지. 나는 그 사랑을 채 알기도 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룰루랄라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떠난 빈 자리 때문에 몇날며칠을 우셨다는 아버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더 어른 스러운 삶을 살라고 떠나보내는 것이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에 대한 마음을 알겠다. 막 태어났을때 정신없이 키우다가, 한밤중에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가서 밤을 새우고 출근하고 하면서,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지,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어서 빨리 낫기를 기도하셨겠지, 하는 마음들을 이제는 안다.

 

 

아버지에게는 총 네 명의 자식이 있다. 맏이인 나를 비롯해 줄줄이 딸 셋에 마지막에 아들을 낳으셨지만, 막냇동생은 아직까지 장가를 가지 않아, 손자들이라고는 우리집 아이들 둘, 셋째 여동생이 나은 손주 녀석이 있어 달랑 셋 뿐인 손자를 가지셨다. 우리집 딸아이가 큰 아이라 유달리 이쁨을 받았다. 자식은 정신없이 키우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손주가 이쁘다더니, 아버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못하게 하실 정도로 애정을 쏟으셨다. 손주들에 대한 사랑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아이들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하시고, 아이들과 통화해 용돈까지 부쳐주신다.

 

나도 나이가 더 들어 손자들을 보면 아버지처럼 하게 될까. 아이들이 성장하니 아주 어린 아이들이 이쁜것을 보면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것 같다. 이 모든게 나이들어가는 증거려나. 지나가는 어린애들을 보면 그렇게 예쁠수가 없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예쁜것 같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가 돌아가지 못하는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많은 소설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작가인 최인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에 하도 많이 나오니까 읽었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었다. 『유림』이나 『지구인』, 『제4의 제국』등을 읽었구나. 그의 영화속에서 나오는 여자 주인공인 '다혜'라는 이름이 작가의 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마 다 알 것이다.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절부터 작가가 딸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으면 딸의 이름을 작품속에서 사용할까, 많은 부러움을 안고 있었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손녀딸을을 손녀딸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나의 딸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길 좋아했던 작가는 작가의 딸에서부터 그 딸의 딸에 대한 사랑을 글로써 나타냈다. 침샘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딸의 딸에 대한 글을 쓸수 있기를 기도했던 그의 애정어린 마음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딸이 처음 태어나던 날의 기억, 시간이 갈수록 자라오는 과정들에서 아빠로서 느꼈던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딸이 딸을 낳았을때의 기쁨, 정신없이 키웠던 딸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손녀딸을 바라보는 기쁨과 행복이 글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처럼 한없이 쏟아붓는 사랑을 받은 딸과 딸의 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느 누구도 이처럼 자식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네가 걸어가는 길은 언제나 비 오고 눈 오고 바람이 불 것이다. 그것은 이 애비로서는 어쩌지 못한다. 네가 홀로 떠날 수 있을 때까지만 이 애비는 겨우 우산을 씌워줄 뿐. 우산으로 가릴 수 있는 비바람은 아주 조그만 부분일 뿐. 나머지는 너의 몫이다. (43페이지)

 

세상에 막 나왔을때부터 40년간의 딸에 대한 기록과 딸의 딸에 대한 12년간의 기록은 최인호 작가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이토록 큰 애정을 가지고 있고, 애정을 표현한 사랑은 드물 것 같다. 최인호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작가의 딸과 딸의 딸은 무척 행복했겠구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이토록 독차지 했었구나.

 

뒷부분을 읽을때는 작가가 투병을 했던 와중에도 딸의 딸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고통을 참았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아껴서라도 딸의 딸을 향한 사랑을 적어내려갔을 그의 고통이 생각나서이다. 리뷰를 쓰는 시간에도 다시 뭉클해졌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우리를 기쁘게 한다. 어린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는 생명의 소리며, 어린 아이에게서 맡을 수 있는 향긋한 냄새는 천국에서 갓 배달되어온 화원花園의 꽃향기인 것이다. 어린아이를 안을 때 느끼는 그 포근함은 우리를 창조한 하느님의 품을 연상케하는 대리만족이며, 어린아이의 그 천진스런 눈망울과 표정은 분명히 존재하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천사들과 천상의 언어로 대화하는 천상의 표정인 것이다. (239페이지)

 

사랑은 어쩌면 기록인것 같다. 사랑은 어쩌면 표현이다.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고, 자식에게도 얼굴 보고 이야기 해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사랑한다는 말도 습관처럼 하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최인호의 글에서 다시 알았다. 사랑하면 사랑한다도 표현해야겠다. 자꾸 딸들에게 무심하다고 뭐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냥 흘려듣지 말아야겠다. 표현을 덜 하실 뿐 아버지도 우리를 최인호 작가만큼 사랑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딸들과 딸들의 딸과 아들들에 대한 사랑때문에 자주 전화를 하시고, 안부전화 잘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께 이번엔 내가 먼저 전화를 드려야겠다.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리라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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