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하루의 일과. 5시 30분 알람으로 신랑이 잠에서 깬다. 6시쯤 이른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더 잠을 자다가 6시 30분에 알람을 한번 끄고 7시 알람에야 깨어난다. 여름 같으면 6시 신랑이 출근하고 난뒤 침대에서 책을 뒤적거리지만, 이른 아침이 깜깜한 겨울이면 일어나질 못한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7시에 겨우 일어나 라디오를 켜고 디제이의 멘트와 노래 한 곡쯤 듣고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출근 준비를 하다보면 아침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리고 출근. 사무실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때부터 내 시간이다. 고양이를 몇 번쯤 쓰다듬고 씻은 후 라디오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내 할 일을 시작한다. 일주일에서 5일을 그렇게 생활하고 주말에는 어딘가로 여행을 가거나 오전시간동안 침대에서의 독서를 하기도 한다. 출근을 하는 평일은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가는지. 반면 주말 시간은 또 왜그렇게 빨리 흐르는지. 마치 누군가 시계를 빨리 돌려놓은 것만 같다. 시간의 흐름이란 건 마음 먹기에 다른가. 어떤 때는 느리고 어떤 때는 너무 빠르고.

 

저자 사이먼 가필드는 이 책을 시계로부터 시작했다.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초침 소리에 긴장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시계 초침 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것도 없다.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을 굉장히 중요시 하기 때문에 시간을 자주 확인하지만, 정작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지는 않는다. 휴대폰을 열기만 하면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차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슬프기도 하고 어느 누구도 함께해 주지 못할 시계와의 전쟁이었다. 내 눈엔 시계만 보였다. 관중들의 모습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점점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정신없이 서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31페이지)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말하는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아무 옷도 걸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여자 아이. 흑백 사진에서 여자 아이의 벗은 모습과 두려움에 떠는 모습만 보았었는데, 어느 책에선가 여자 아이의 흉터를 말하는 글을 본후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이 사진으로 닉 우트는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베트남 전의 종전이 앞당겨 졌다고도 표현했다. 미국이 사이공에 네이팜탄을 터트린 순간, 종군기자였던 닉 우트가 도로를 걷고 있다가 사진을 찍었다. 찰나의 시간에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으면 이 사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아주 짧은 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불과 1초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에 찍은 사진 한 장이 전쟁의 참상을 폭로한 것이다(사진 한 장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중폭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사진은 무고한 어린 아이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지만 그 후 3년이 지나서야 베트남전이 끝나게 된다. (232페이지) 

 

 

 

한 편으로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여자아이를 챙겼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종군기자였으니 전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남겨야 할 의무가 있었다. 닉 우트가 사진을 찍은후 신문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전 세계 언론사들은 여성의 전면 누드는 신문에 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규칙이란 깨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뉴욕 본사를 설득했던 사이공 지국장이 있지 않았다면 이 사진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시간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가. 한 때는 시간을 낭비하며 보낸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대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한번씩 잔소리하는 게 시간이란 한정되어 있으니 잘 계획해 사용하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하는데, 정작 그 시절엔 나도 잘하지 못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관리한다면 자신의 하고자 하는 것에 금방 다다를 것인데, 이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저자는 시간에 대한 모든 역사를 이론적인 사실만으로 다루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겪은 일과 기사, 혹은 문학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했다. 때로는 쉽고 때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려웠으나 우리가 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각적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실시간보다 약 0.5초 늦다고 한다.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그 신호를 뇌로 보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다는 메시지를 뇌가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그 시간차를 교정하고 유동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한 후 결심을 하고 그 행동을 실행하여 눈으로 보거나 듣기까지는 항상 생각보다 늦다. 따라서 인간은 늘 지금now보다 뒤에 있으며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 (429페이지)

 

어쩌면 인간은 항상 시간 뒤에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산다고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늘 뒤늦은 후회를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때 어땠더라면 하고 만약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위 발췌 문장에서처럼 '인간은 늘 지금보다 뒤에 있으면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말이 조금은 슬프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한낱 미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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