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스페셜 에디션)
박민규 지음 / 예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의 기억이란 얼마나 믿을 것이 못되는가. 기억들은 때로 자신의 생각대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경험을 했어도 그때의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에 따라 기억 조각들은 다르다.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역시 조금씩 다르다는 걸 경험할 수 있다. 하물며 책도 마찬가지다. 8년 전에 읽었던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내용, 즉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는 거. 그때의 느낌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었다는 거. 작가에 대한 호감을 높였다는 거.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작가의 스페셜 에디션을 읽는 즐거움은 기억을 확인하는 작업 혹은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8년전과는 다른 또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잊고 있었던 감동, 가슴뭉클함. 이런 이야기를 빚어낸 작가의 필력에 다른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책 내용과는 별도로 그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감정들을 보게 된다. 아빠에게 버림받았던 남자,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요한, 그리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늘 고개를 수그리고 다녔던 한 여자의 아픈 삶이 못내 가슴에 와닿았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이 내가 이 소설 속 상황에 있다면 못생긴 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 또한 소설 속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를 무시하고, 그녀와는 말 한 마디 섞지 않을 것인가. 나 또한 이성을 바라볼 때 다른 것 보다는 외모를 먼저 보게 되는데.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나는 잘생긴 사람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걸.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소설 속 백화점에 근무하는 여자들처럼 속물이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분명히 잘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처음 만났던 장면을 다시 읽으며 나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남자가 여자가 너무 못생겨서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던가. 내 기억이 잘못되었던가 싶었다. 못생긴 그녀이지만, 자꾸 눈이 가는 거. 그것이 그에게는 사랑이었을까. 요한의 말처럼 동정이 아니었을까. 누구라도 요한처럼 질문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남자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못생긴 여자였으니까.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주고 싶은 거니? (131페이지)

 

잠시 여기서 생각해봐야할 게 있다. 물론 배우로서 다져진 이미지겠지만, 나는 못생긴 배우 유해진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진짜 못났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가 가진 진정성, 그가 가진 유머를 사랑하는데 못생겨도 어필하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못생겼지만 여자는 책과 음악에 대한 깊이가 있었다. 많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감정들을 그것들과 나눴던 것이다. 그녀와 그를 이어주는 요한이 셋이서 늘 만나던 켄터키 옛집에서의 대화. Beer를 Bear로, Hof를 Hope로 잘못 표기된 그곳에서 그들은 성장을 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 떠나는 길처럼 그곳은 그들의 희망을 향한 기착지였다. 우정과 사랑, 사랑과 사랑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했던 곳이었다.   

 

 

「시녀들, 벨라스케스, 1656」

 

지금 이 시대는 외모지상주의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부터 성형수술을 하며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고자 한다. 사실 거의 대다수의 남자들은 못생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격이 나빠도 예쁜 여자만을 좋아하는데, 오죽하면 남자가 따지는 조건 중 첫 번째도 이쁜 여자, 두 번째도 예쁜 여자일까.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아이의 성형수술을 해주는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도 든 생각이었지만, 다시 읽을 때도 드는 생각이 여자가 성형수술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1985년도라는 소설의 시점상 성형수술은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가진 경제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여자가 가지 자신감 결여, 수군대는 남자들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려는 그녀가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부끄럽지 않은지, 또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곧 부끄러워지는 게 아닐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납득하기가 힘든 거예요. 문제가 많은 여자죠. 그리고 두려워요. 굳게 잠긴 그 방에 누군가 찾아온다는 것이... 들어올 것 같다는 것이... 언젠가 문을 열게 된다면 이제 다시는 그 문을 닫을 수도, 잠글 수도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거예요.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버려진 방을 가져야 한다면 그래서 다시 그곳에 혼자 남게 된다면... 세상의 빛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211~212페이지)

 

그녀의 말 중에 아프게 다가오는 말이, '부끄럽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못생긴 여자와 함께 다니는 그가 부끄럽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 보다는 없는 곳을 거닐었던 여자의 심정이 못내 아팠다.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361페이지)

 

한 남자의 절절한 고백이 마치 액자소설처럼 쓰여졌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희망(hope)으로 포장했던 그 사랑이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건네받을 수 있다. ' 못생겼어도 나를 사랑해 줄 건가요?' 아내의 이 질문으로 인해 탄생한 소설.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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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8-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근래 소설가 중에 박민규를 좋아하는데, 아니 했는데... 표절 시비가 나와서 조금 시들해져버렸지 뭔가요 ㅜ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08-1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0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17-08-10 11:10   좋아요 0 | URL
네에. 다시 읽어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

물감 2017-08-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을 최근에 읽어서 그런지 리뷰만 봐도 아련해져요... 잘 읽고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