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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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글자들이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한 글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거의 두 글자로 된 음절들을 사랑했다. 책의 제목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휘파람 소리를 내어보았다. '휘'라고 소리를 내어 발음을 해본다. 휘파람처럼 여운이 있는 글자다. 한 글자로 된 음절 속에서 이름 끝에 따라오는 여운을 음미해 본다. 바람소리처럼, 누군가의 부름처럼, 휘라는 글자가 나에게 다가섰다.

 

단음절로 된 글자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글자로 다른 글자에 기대에 사용하는 글자들의 제목이었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라는 제목을 가진. 단음절로 된 제목 앞에서 우리의 주변에서 보았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조해 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여운을 남기고 우리의 머릿속을 부유한다. 단음절의 제목을 새기고, 그 속에 깃든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이렇게 소설로 나타난 글들에서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휘」 라는 단편에서, '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자신을 두고 떠난 부모를 찾는다. 악(樂)이라는 이름자가 들어간 아버지. 그래서였을까. 그가 '악'하고 소리를 낼때마다 사라진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찾겠다고 나간 어머니 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때, 제 이름 마냥 바람이 되어 사라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볼 수도 없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인은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노인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창틈으로 들어와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이름 없는 바람이었다. (22페이지, 「휘」)

 

내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못내 불편했던 단편이 「종」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고, 그러므로 가족에게 혹은 모두에게 종이었던 누이. '누구든 누이를 쳤다'라고 시작한 단편에서 한 사람이 무너질 수도 있구나. 그런 누이를 자신 또한 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는 이의 목소리는 비감에 차 있었다. 어머니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누이는 밤마다 아버지와 함께 잤다. 그런 누이가 더렵다고 느꼈고,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자기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누이. 주인공은 모두의 종이었던 누이가 어느새 누이를 위해 울리는,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기울였다.

 

 

모든 단어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휘라는 단어에 이름이 되지 못해 바람소리처럼 흩어지는가 하면, 또다른 이름이 되어 나타났다. '종'이라는 단어에도 누군가의 종이 되었다가, 어디선가 울리는 종소리의 종이 되었다. 「홈」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책상위에 조금씩 깊에 패여가는 홈과 가정을 나타내는 홈이 이중적 의미로 나타났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의 교실, 전교 십 등 안에 들지 못한 십일 등의 자살 소식에 이어 십 등의 자살이 이어졌다. 이제 구 등 차례인가. 언제부턴가 십일 등의 책상에 조그맣게 홈이 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이 지나갈수록 홈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볼펜이 들어갈 홈에서 점점 커져 다른 것도 끼워넣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홈은 깊게 패어버린 마음의 상처인가, 동시에 집안의 아늑함을 나타낸 것이었던가.

 

 

우리는 종종 동물이 인간을 바라보는 세상을 소설 속에서 경험한다. 「개」 라는 단편에서도 개가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았다. 개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외국인 아내를 둔 할배와 며느리뻘이라 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엄마. 그리고 진구라는 아이가 있는 가족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혹시나 도망갈까봐 집밖에 못나가게 하는 할배. 할배를 피해서 창고에 짐을 싸놓고 나가길 주저하는 엄마. 점점 자라 반항의 시기를 겪는 진구.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개의 시선을 바라볼 수있다.

 

그녀가 들려주는 연애가 한낱 블로그에 연재하는 이야기였음을 나타내는 「못」과 한 소녀가 장난으로 떨어뜨렸던 것들로 인해 비밀을 가진 「톡」, 불면증을 앓고 있는 남과 여의 이야기인 「잠」이 이어졌고, 마지막엔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초」라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소설을 쓴 시점이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세월호에 대해 말했는데, 거짓말처럼 세월호는 인양되었고, 다시 3년전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날들에서부터 간절한 바람으로 지켜보았던 마음,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달았던 노란색 리본이 다시금 보이고 있는 현재다. 조금만 대처를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며, 아직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비수가 되어 날아드는 감정들을 말했다.

 

 

비는 좌절의 상징이다. 우비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내다보면서 나는 더는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베어내고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웠다. 진실을 가리는 차양이 될까 봐 망설여졌다. (247페이지, 「초」 )

 

 

단음절로 된 단어들은 이처럼 많은 뜻을 내포한다.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그러지 않을까.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길은 엇갈리고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지의 길 앞에 있는 것처럼 한 글자로 된 말들은 우리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어두운 공간 속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지만, 모두들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 빛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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