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시간과 머물러 있는 시간이 있다. 어느 순간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반면, 어떤 순간은 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연을 간직하기에 우리는 늘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잊고 싶지 않아서? 다시는 돌아오지 삶을 삶이라서? 같은 시간이 존재하고 있지 않아도 같은 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겪는 때가 있다. 이 소설에서처럼. 어느 한 순간이 머물러 있는 것처럼. 혹은 머물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시간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나오라고 불리는 한 소녀가 있다. 열여섯 살의 소녀는 교복을 입고 메이드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일기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있다. 아니 지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누군가를 위해. 사람은 마음 속에 있는 고통을 잊기 위해 글로 나타내는 수가 있다. 이 소녀 나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는 나오가 있고, 나오의 일기장을 주운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루스. 소설가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비닐봉지 하나를 주웠다. 쓰레기 봉지일거라고 생각하고 주어왔지만, 여러 겹의 비닐 봉지 속에는 프랑스어로 쓰여진 책 한 권이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이다. 살펴보니 책 내용은 뜯어져 있고 그 속엔 나오의 일기가 쓰여져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 소녀의 힘겨운 적응기라고 해야겠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아이들은 그 도시에서도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직장이 없는 아빠, 멍하게 앉아 있는 엄마의 가난한 집 아이가 되었다면 더더욱. 아이들은 나오를 꼬집고 찌르는등 심한 학대를 하는 이지메를 한다. 견딜수 없었던 아이는 몇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다. 나오가 죽음을 생각했던 건 아빠 때문일 수도 있다. 지하철에 몸을 내던졌던 아빠.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던 아빠는 집 밖엘 나가지 않았다. 할수없이 엄마가 직장을 구해 나갔다. 나오는 아빠와 있는 시간이 좋았지만, 아이들의 이지메를 견디기 힘들다.

 

소설가 루스가 나오의 일기장을 한 편씩 읽고, 일기장의 나오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나오는 할머니와 아빠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루스와 올리버가 읽는 식이다. 나오의 이야기가 안타까와 사실여부를 확인하고자 루스는 인터넷에 작가였다는 나오의 지코 할머니를 검색하며 어떻게든 나오를 찾고 싶어한다. 지구 반대편에 어떤 소녀가 끝없이 자살을 꿈꾸며 자기를 보아달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루스는 나오의 지코 할머니의 유령을 꿈속에서 만나고, 방학 동안에 변화가 필요했던 나오는 비구니로 있던 지코 할머니의 절에 가 있으면서 아빠의 외삼촌이자 지코 할머니의 아들인 하루키 1번의 유령을 꿈 속에서 만난다. 꿈속에서 만난 사람은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한번도 사진을 보지 못했던 지코 할머니를 보았던 루스도, 하루키 1번의 유령을 만나 각자가 가진 진실을 듣는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누군가 한두 명은 있어야 한다. 만약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글로 자신의 마음을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 쏟아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으므로. 나오도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이리라.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랐을 것이므로.

 

일본 도쿄에 있었던 나오의 일기장이 어떻게 해서 루스가 있는 캐나다로 오게 되었을까. 루스는 그게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오가 말한 나오의 가족들을 인터넷에 검색했던 이유가 그들의 생사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오와 루스의 시공간을 넘어서 연결되어 있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자살과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몸부림, 그런 나오를 구하려는 루스는 어떤 끈으로 이어져 교감을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너의 안녕을 바라는, 나를 죽음에서 구해달라는 강한 염원이었다.

 

하루키 1번의 자살, 아빠의 자살 시도. 더이상 이지메를 겪지 않으려 자살을 선택하려는 나오. 그럼에도 자살과 죽음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고픈 강한 몸부림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말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나를 구해달라는 강한 몸부림이었다. 그저 감상적인 소설일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각자의 죽음에 직면한 감정들을 엿보았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죽음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답은 많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진실을 알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나오가 하루키 1번을, 나오가 하루키 2번인 아빠를 이해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를 바라봐 줄 사람과의 온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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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맘 2017-04-04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삶은 살아야하니...그 몸부림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Breeze 2017-04-07 08:48   좋아요 0 | URL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싶었던 거였어요. 어떻게든 삶을 살아야하니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