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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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때 지구의 종말을 말하는 시기도 있었으나 그저 한 점성가의 예언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새천년의 시대를 맞이했고,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이러한 체제가 계속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아야 할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단 이야기다.

 

유토피아라는 게 무엇인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을 가리킨다. 『유토피아 실험』은 문명이 붕괴된 종말 이후의 삶을 사는 실험을 실제로 했던 딜런 에번스의 고백이다. 직장과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해 부지를 얻어 유토피아의 삶을 꿈꿨다. 자신의 계획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연구했던 학교와 연구 자료에 대하여 비판의 글을 게재했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 혼자 가려고 했으나 아이가 있는 여자 친구를 알게 되어 그들이 살 지역과 가까운 곳에 기거하게 했다.

 

스코틀랜드의 한 곳에 기거할 곳을 정했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상향을 꿈꾸는 애덤과 애그릭이 들어왔고 다르지만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그들이 기거할 유르트를 짓고 식량을 자급자족하기로 했다. 딜런이 유토피아 실험 기간을 1년여로 정했지만, 점점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보다는 자신의 자리 직장과 집을 다 팔아버리고 공동체를 시작했던 것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실험이 끝나면 집도 없는 떠돌이가 될 운명이 불안했다.

 

몇 개월씩 다녀가는 참가자들과 어지러진 유르트 안,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실험은 저만치 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를 우울증으로 이끌었다. 이 실험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1년 넘게 이어졌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공동체에 적응해 가는 듯 보였으나 이 실험의 주체였던 딜런은 자꾸만 회의가 들었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은 소로처럼, 또는 몬태나주에 오두막을 지은 유나바머처럼 이 실험을 혼자 했다면 더 즐거웠을까? (중략) 예전에 코츠월드의 작은 시골집에 살 때 나는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 시간이, 몇 주씩이나 이어지기도 했던 그 나날이 그리워졌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독서를 하거나, 혼자 시골길을 오래오래 산책하곤 했다. 이제 나는 문명과 멀리 떨어져서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 중 하나에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었다. (213~214페이지)

 

나는 더 귀중한 것을 배웠다. 비록 내가 무적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310~311페이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자신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삶의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전히 진행중일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바라보는 건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머니와 동생도 방문했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머니의 엄려스러운 눈빛을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을 것 같다.

 

그가 했던 유토피아 실험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험을 종료하기까지 많은 번민을 했지만, 종료를 결정하고 나서 그가 느꼈던 많은 생각들은 경험한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었으리라. 그가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직접 경험했기에 이런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며 문명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자기 집의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꺼내놓았던 찻잔.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도 그가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는 거다. 그럼에도 딜런은 귀중한 것을 배웠다고 했다. 문명이 붕괴되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봤기에 스스로 헤쳐갈 수 있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유토피아의 현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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