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의 삶은 한 시대를 관통한다. 우리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우리의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들 부모 혹은 조부모의 삶이 역사와 맞닿아 있다. 시대를 달리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가는 우리. 우리의 삶이 곧 역사라는 사실을 이토록 감동적으로 경험하는 일도 드물다.

 

만화가인 저자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저자는 어머니의 육성 그대로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늙은 딸과 함께 사는 팔순의 어머니는 과거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전한다. 그 육성에서 애틋함이 묻어나왔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어머니, 형제들. 그리움이 크면 이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법인가.

 

일제 강점기의 1900년대에서부터 해방 그리고 다시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겪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현대사가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일제가 대규모 국토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인들의 토지를 빼앗은 이야기. 제법 토지를 가지고 있던 저자의 조부모와 여러 자녀들 모두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어머니의 기억들을 만화로 들을 수 있었다.  

 

 

작가의 그림을 보는데 무척 그리운 감정을 느꼈다. 연로하시지만 살아계신 엄마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나이 많은 딸. 엄마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작업이 쉽지않았을텐데도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웠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었고, 그런 시간들을 함께하지 못했던 게 못내 안타까웠다. 꽤 오랜 시간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그림을 그리는 작업했던 시간이 부러운 거였다.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를 피하기 위해 원치않은 결혼을 했던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해마지 않았던 아버지가 노름과 술에 빠져 고생했던 이야기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딸과 엄마가 함께 아버지 흉을 보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웃음도 났다. 

 

사랑받았던 사람은 시부모님께도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에게도 사랑받는 법인가 보다. 어머니가 살아온 삶에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읽는데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내가 부족해도 나눌 줄 알았던 어머니의 삶이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림은 다소 투박하다. 최근에 유행하는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은 아니라는 거다. 예전 명랑만화를 보는 듯 하다. 더군다나 컬러도 아니고 흑백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겠지만, 이 책을 알게 된게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소개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꼭 재출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담았다. 이처럼 우리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만화라고 하면 그림 때문에 금방 읽게 되는데, 판형이 크고 촘촘한 글 때문에 더디 읽힌다. 내용 또한 역사 이야기를 보는 듯 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저자의 일상이 무척 다정하다. 지나고 보면 함께 했던 일상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개인의 삶에도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힘이다. 더불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작가의 고백 또한 뭉클해진다.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또한 독자들에게 잊혀져 사라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읽히는 책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한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와 맞닿아 있고, 엄마와 딸의 뭉클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절실하게 깨닫는 때가 곧 올 것임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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