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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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를 사랑한다. 그저그런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전체적으로 음악이 흐른다면 지겹지않게 볼 수 있는 게 음악 영화다. 음악이 가진 힘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얼마전에 본 「맘마미아!」 또한 진부한 스토리지만 추억의 아바의 음악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고, 엄마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던 배우의 열연으로 눈이 즐겁지 않았는가. 셰어와 앤디 가르시아가 부르는 '페르난도' 또한 굉장히 좋아 음원까지 받았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영화 원작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 또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란 영화의 원작이다. 책을 보기 전 그 느낌을 먼저 알고 싶어 영화를 찾았으나 구하기 힘들었고, 아주 짧은 예고편 동영상만 만났을 뿐이었다. 책을 읽으며 귓가에 어른거렸던 음악을 만나는 그 완성이 영화를 보는 것인데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세계를 떠도는 버지니아 호에서 대니 부드먼이라는 선원의 눈에 띈 아이 하나. 아메리카!라고 외치며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났을 때 배에서 낳은 아이는 이처럼 버려지는 수가 있다. 대니 부드먼은 그 아이를 주웠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뭔가 멋진 이름을 붙여 주고 싶어 대니 부드먼 T. D. 레몬 노베첸토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노베첸토는 20세기를 가리키는 말로 레몬 노베첸토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이름이었다.

 

대니 부드먼이 죽은 후 선장은 비로소 그를 배에서 내리기로 결심하고 당국에 신고했으나 노베첸토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손님들 사이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의 나이 11살 즈음이었다.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노베첸토였다.

 

그는 일급 피아니스트였다. 우리는 음악을 연주했고, 그는 어딘가 달랐다. 그가 연주한 것은 .... 그가 연주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어디에도 없는 그런 것. (23페이지)

  

그는 존재하지 않은 자였다. 그 어디에도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육지에 절대 내리지 않았고 오로지 배 안에서만 연주를 했다. 1등실, 혹은 2등실, 3등실에서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었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노베첸토의 소문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영혼을 울리는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은 하나같이 그를 칭찬했을 것이므로. 그의 소식을 들은 재즈의 창시자 젤리 롤 모턴은 그의 실력이 궁금했을 것이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버지니아 호에 올랐다. 노베첸토와 대결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즈의 창시자와 일급 피아니스트의 대결,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까. 그와 대결을 펼치고 싶지 않은 노베첸토는 화음이 맞지 않은 듯한 연주를 했고 사람들은 야유를 했다. 그러면 그렇지 라는 마음으로 그를 노려보던 젤리 롤은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노베첸토는 그의 연주를 가리켜 '아름답기 그지없더라' 라고 했다.

 

하지만 노베첸토가 누구던가. 불을 붙이지 않는 담배를 피아노에 올려 두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청중은 숨죽이고 그의 연주를 들었다. 넋을 잃고 그의 연주를 지켜보았고, 젤리 롤은 배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훌륭한 연주란 그런 것이다.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노베첸토였다.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해도 자신만의 연주를 하기에 오죽하면 지휘자가 정상적인 음악을 연주하라고 했을까. 그는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였다.

 

책을 읽는내내 노베첸토가 연주하는 음악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온갖 피아노 곡이 머릿속에 떠다녔는데 아마도 내가 듣지 못한 음악이었으리라. 어떠한 곡을 연주했다고 나오지 않으니 나 또한 어떠한 음악을 상상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영화 예고편 속에 나왔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그나마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영화 예고편을 먼저 보았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노베첸토의 여정을 따라가는 모놀로그 형식으로 소설을 그렸다. 그래서 한편으로 무대위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관객을 바라보며 말하는 트럼펫 연주자의 목소리, 무대 위를 흐르는 노베첸토의 피아노 연주가 있는 극의 형태. 한 배우와 감독의 극을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는데, 이 소설은 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생애가 들어 있는 수작이었다. 짧은 소설이지만 그 감동은 커다란 소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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