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편지



나는 글씨를 보면 성격이 보인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글씨가 삐뚤삐뚤 하거든요

안경을 바꾸고 펜을 바꿔도 글씨가 똑같아요

꿈은 반대라는 말이 좋아요






나는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여행을 가면 꼭 엽서를 사요 거기에 편지를 써요

썼다가 지웠다가 또 써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요

글씨는 삐뚤삐뚤하지만 상관없어요







나는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려요

편지를 쓰고 보낸 적은 없어요

그런데 가끔씩 답장이 와요







오늘은 아무 생각없이 생각나는대로 써 볼 거에요 

모래와 햇빛, 파도, 웃음, 눈물

그리고 마음에 관해 







삐뚤어진 내 글씨가 좋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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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맨홀





아 오 우 어 

둥그런 광장에서 떠도는 비명들

이곳은 자음이 없는 세상

자음이 없어 받침이 없다







하늘에서 떨어져 어둑한 지하세계로 사라진 

시간과 흐르는 죽음의 악취








단단하게 뿌리내린 몸뚱이를 밟고 지나가는 무리들은

물대포로 이름을 또렷이 새겨 넣었다








안개 속을 뚫고 귀청을 울리는 울음소리가 자꾸

멤돌아 자음과 받침이 있는 꿈속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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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게임



공을 굴리는 것
공구는 것
받고 들이받는 것



말을 많이 하는 것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세요



동우는 칭키즈 칸을 배웠다며 머리를 짧게 잘랐다



몇 번째야?
노란 병아리들은 자기 순서가 오면 굴러 오는 공을 찼다



들어가 들어가
고개 숙인 머리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
붙어 있던 공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머리들이 다시 모이는 것
푸른 잔디를 꿈꾸며 일기를 쓰고 송곳으로 종이를 뚫는 것



심판은 없고
소파가 한숨을 쉬며 푹 꺼지면 끝나는 것


이것이 다다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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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침대





작고 딱딱한 것이 눌렀다

아팠다

눈을 감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변한 건 없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열 스물 서른 

내년엔 떠나야 했다






동이 트면 무작정 걸었다

왼쪽으로 갈수록 알갱이는 작아졌고

사람들은 누워있었다








알 수 없는 사람들과 글자들로 가득 찬 

책장은 넘어가지 않았다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시원해요







문을 열고 그가 들어오면

나는 눈을 뜨고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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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현상
#금단현상



말이 없었고
나는 산소만 한 모금씩 빨아들였어




같이 갈래
다녀와


담배를 끊을게


광화문에서 너를 보았다는 말을 듣고
서점 대신 영화관을 갔어


"갈대처럼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 사랑하자"
"유치해, 어디서 베꼈어?"
"못 쓴다고 했잖아 한 번 썼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벨이 한 번 울리고 끊길 때마다
노트를 꺼내 너의 이름을 적었어


담배를 끊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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