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수구초심, 나는 죽으려면 한참 멀었는데 자꾸 고향이 그립다. 그런데 '고향'이 어딘지 모르겠다. 출생지 부산, 초중고등학교를 창원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직장은 부천에서 보내왔다. 추석같은 명절엔 합천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사촌 누나, 동생들과 냇가에서 고동을 잡고, 산에서 알밤을 주웠다.

내 고향은 어디인가? '전설의 고향'처럼 설화나 판타지의 장소인가? 
돌아가고 싶어도, 아득한 그리움으로 뿌옇게 흩뿌려진 고향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제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나중에 내가 여우가 되었을때 어디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죽을까? 
고향을 찾아 안개속을 헤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637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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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




파도의 눈두덩이가 부었다

포말 속에 떠다니는 방울은

빗물인가 바닷물인가

맛이 없다








바다가 앙상한 뼈를 드러낼때까지

볏짚으로 억새로 갈대로

이엉을 엮는다

넘설거리는 청보리 베개 베고

유채꽃 한 송이 누워 있다








바위에 서서 손 흔들던 아이는

옹이 진 솔나무 가지 꺾어

수런대는 파도에 꽂았다





파도의 토악질은 멈추지 않고

바람은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다




#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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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초(草)

고깃국에 살점 하나 더

찢어주지 못했다

귀대시간 앞두고 들어가기 

싫어, 칭얼거림에 행여 붙잡을까

안아주지 못하고 

그럴거면 다신 휴가나오지 마라,

며 모질었구나






영하20도에 눈 치울

아들도 있다며 토라진 

어깨죽지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무초가 몸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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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쫓던 개, 개 쫓던 닭





닭 쫓던 개, 개 쫓던 닭이

콘크리트 담벽에 기대며 터얼썩

주저 않는다

모퉁이를 돌아나가는 자동차는

반품되는 택배처럼

이중 삼중 주름 잡힌

바람을 실어나른다





언젠가는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오겠지

두레박 타고 하늘 가면은

밑은 쳐다보지마

누가 먼저 올라가든 서로

울어주는 거야






닭 쫓던 개, 개 쫓던 닭은

하늘을 보며

등을 맞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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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주제가 술과 자연스레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술 좋아하세요?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사람들의 대답도 제각각입니다.

1. 술은 잘 못하는데, 술자리 분위기는 좋아해요
2. 그냥 소주 1병 정도. 분위기 맞추는 정도에요
3. 저는 술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졸려요.

​저는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술을 잘 먹고, 술자리에도 끝까지 남아 어울리고 싶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소주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급격히 졸음이 몰려 옵니다. 몸이 술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죠. 

​흔히 ‘남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 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업무와 관련된 얘기도 나누고 사람들 뒷담화도 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쌓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제 잘 들어가셨죠? 점심때 해장 하셔야죠!!’ 
이 모든 상황이 저의 로망입니다. 

​저를 처음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제가 술 잘먹게 생겼다고 말합니다.
‘술 잘먹게 생긴게 어떻게 생긴겁니까?’ ‘너 같이 생긴거!’

​그렇습니다. 제 얼굴은 술꾼으로 강하게 추정받나 봅니다. 처음 뵙거나 한참 연배가 높은 분들이 주시는 술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술을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발령받은지 얼마 안되서 과장님이 주시는 술을 마셨습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과장님 앞에서 잤더니, 사람들이 술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직장 분위기가 ‘술 권하는 사회’에서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몸소 느낍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저는 술 못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었지요.

‘술을 못하는 것’ 자체로 아쉬움도 있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저녁시간에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기타를 칠 수 있습니다. 숙취가 없으니 지각할 일도 없습니다. 자연히 생활이 규칙적입니다. 항상 6시에서 6시 반경에 일어나서 라디오를 듣고 7시 40분쯤 밥을 먹고 8시쯤 커피를 들고 회사에 도착합니다. 9시까지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습니다. 매일매일 하다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양심적 음주거부자’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 가짜팔로 하는 포옹을 읽고(150919)


나는 자칭 양심적 음주거부자다. 내가 먼저 술자리 제의하거나 주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술 마시는 모임에서 맥주 한 두잔, 소맥 한 잔 정도 마신다. 사회생활에서 술잔에 담긴 술은 그냥 술이 아니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글자를 담은 편지다. 나도 정성스레 편지를 써 모르던 사람, 알고 지내지만 서먹한 사람에게 편지 한 장 건네고 싶다. 하지만 편지 쓴 후의 어지러움과 졸림의 고통이 편지를 쓰는 즐거움보다 커서 자꾸 미루고 피하게 된다. 술 잘먹게 생긴 사람이 술 못 먹는 고통은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 못 먹는 고통만큼 크다.


단편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규호는 옛 애인 정윤과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시면서 알콜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피존씨'에 대해 말한다. 동대문 근처에서 옷가게를 하는 피존은 이혼남이고 몸집이 커서 닫히지 않는 셔츠 단추까지도 꼭 채워야 한다. 창문과 모든 문을 닫아야 직성이 풀린다. 


'술은 물보다 강합니다. 물은 몸에 에너지를 주지만, 적당한 술은 우리의 몸에 초능력을 줍니다.'(109쪽)



규호는 피존의 언행을 술자리에서 담담하게 풀어낸다. 풀어냈을 뿐 피존이 닫는 문과 채우는 셔츠단추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관여하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김승옥의 '1964년 겨울'에 만나 여관방에 묵는 남자들처럼. 공감없는 동정이 바로 가짜팔로 하는 포옹이 아닐까. 매일 마주하는 사람과 사물에 대해 가짜 얼굴로 웃음짓는 것은 아닌지, 다음에는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과 마주치는 사물을 진짜팔로 하는 포옹을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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