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 73 | 74 | 75 | 7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기택 산문집 다시, 시로 숨쉬고 싶은 그대에게, 다산책방, 2016
#김기택 #다시시로숨쉬고싶은그대에게



1. 김기택 시인의 첫 산문집. 2010년 오월부터 일 년 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 집배원으로서 배달한 시와 감상에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여러 잡생각을 덧붙인 글. 봄·여름·가을·겨울 순 총 4부 구성이고 계절에 맞게 밝고 가벼운 시, 열정과 힘이 드러나는 시,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 추위에 맞서는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시가 담겨 있다. (12-13쪽)
장점은 저자가 선정한 시들이 너무 좋다는 점, 적당한 분량과 쉬운 해설, 시에 관한 얘기와 저자의 경험담의 적절한 조화. 단점? 없다!




2. 보름달 (박동민)

파도는 움켜 쥔 것들을 그 자리에 두고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불길(不吉)은 온몸을 던져 제국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대한제국을 떠나 격랑에 몸 실어야 했던 조상들처럼
까슬까슬한 고목(枯木)과 붙박인 폐선의 배웅을 받으며
앙다문 밀항선의 뱃머리가 벼르고 별러
다다른 거인들의 나라

낯선 생활이 벼랑으로 내몰아도
납작이 엎드려 기어이
깊숙이 닻을 내렸다
낯가림 심한 돌멩이는 몽돌이 되었다

썰물처럼 빠져 나갔던 기억의 실뿌리가
지구 반대편 고향으로 뻗어가는 가을 밤

호미하나 들고 밭으로 가던 어매의 얼굴을 닮은
몽글몽글 속노랑 보름달
주름진 달빛으로 모든 흉을 덮고
바람의 고자질과 파도의 트집에도 웃기만 한다




3. 메모

- 시에는 정직하게 말하되 교묘하게 비밀을 감춰주는 장치들이 있다. 217쪽
허구적 장치(남 얘기인 척), 감정이나 정서나 은밀한 이야기를 이미지나 비유 속에 감추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위장, 반어나 역설을 통해 시치미, 한 번에 다 말하지 않고 말 속에 감추어 놓은 풍부한 말들을 조금씩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침묵과 여백




- 우리 동네 집들, 박형권, 44-45쪽 부분


(전략)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집들은
활짝 열린 입술로
키스할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인다 문을 열고 사람이 나와
골목을 쓸면서
잘 잤어? 하는 것은
사람이 집의 혀이기 때문이다
집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 불 끌까?이다

(후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2015



1. 호모 사피엔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의 관점에서 풀어쓴 종합서다. 인지혁명(언어의 유연성, 문자의 발명,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 농업혁명(최대의 사기, 보편적 화폐, 제국, 종교질서의 창조), 과학혁명(과학, 군사, 산업, 자본의 결합)을 되짚고 인류의 미래(유전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공학)를 전망하고 있다.
인류의 전방위적인 협력망 구축이 생존과 발전의 비결이라는 관점으로 제 분야를 통찰하고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는 것이 놀랍다. 다만 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비판하고 제국주의를 통해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견해와 예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서구의 관점에서 쓰여진 부분들은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까지는 가독성이 높지만 뒤로 갈수록 서술이 늘어지고 중언부언하는 면도 있다. 두꺼운 책이지만 인지혁명, 농업혁명 부분은 꼭 찾아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제1부 인지혁명

-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논쟁은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대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41쪽

- 그렇다면 대체 우리의 언어는 무엇이 특별할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46

- 아마도 뒷담화이론과 ‘강변에 사자가 있다’ 이론은 둘 다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48쪽




제2부 농업혁명

-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122쪽

-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이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 지성사

 

1. 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보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속도의 시대에 나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가는 경쟁자들의 거친 숨소리를 보내고 한 지점에 멈추어 그 하나를 바라보기에는 시간 외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가 물질적 여유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듯이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풍요로운 사랑을 하는 커플을 많이 보았다. 고등학생, 대학생 때 대부분 우리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했지만 마음은 지금보다 부유했다고 생각한다. 시청역에 내려 덕수궁과 정동길을 걸으면 악취나는 은행열매도 내 앞과 옆에 놓인 사랑의 눈빛으로 다 덮을 수 있었다.

 

 

2. 「곱추」「소」등 한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기의 최고봉 가운데 한 사람이 김기택 시인이다. 김사인 시인의 말씀처럼 ‘해부학적 시선과 미시적 관찰’이 시의 조제원리다. 설득하는 방식이 아닌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를 엮어 나가기 때문에 누구나 읽고 공감하기 좋은 시들이 많다. 그렇다고 가벼운 것은 아니다. ‘죽음, 노년’을 다루는 시가 많고 풍자를 통해 사회비판적인 작품도 있다. 시 읽기의 초심자부터 난해한 관념과 어지러운 수사에 갇힌 중급자 이상의 독자도 자꾸 들쳐보게 만드는 시집이다.

 

 

- 넥타이 10-11쪽 (김기택)

 

목이 힘껏

천장에 매달아 놓은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공중에 들린 발바닥이 날개처럼 세차게 바닥거린다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넥타이가 목을 껴안는다

목이 제 안에 깊숙이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넥타이에 괄약근이 생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

다리가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

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

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

 

벌어진 입이 붉은 넥타이를 게운다

수십 년 동안 목에 맸던 모든 넥타이를 꾸역꾸역

게운다

게워도 게워도 넥타이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과 발끝 사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이

사람을 맨 넥타이를 든든하고 받쳐주고 있다

 

3. 뒤집힌 폭포 (박동민)

 

윗물이 아랫물에게

쏴아쏴아 침 튀기며 말했다

진정한 용기는 아래를 향한 도약

쏟아내는 폭포처럼

힙겹게 내린 오기의 뿌리를

더 깊게

더 멀리

더 힘차게

 

아랫물이 윗물에게

우아하게 말했다

진공관을 타고 오르는 사이펀 커피처럼

뜨끈한 김을 내뱉는 오줌발처럼

피 튀기게 틔운 오기의 싹을

더 높이

더 넓게

더 향기롭게

 

분수(分數)를 알아야지, 그 말이 역류하니

분수(噴水)처럼 살라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아,

뒤집힌 폭포는 몇 초도 안 돼

고개 숙이고

말라버리고

 

얼어버린 내 발은

오줌 묻은

오줌발이 되었다

 

번복은 반복일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돌베개



1. 고 신영복 선생님이 당신의 글씨가 걸린 장소를 찾아가서 ‘변방’과 글씨에 담긴 소회를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경향신문 연재는 8회로 마감되었는데 아마 건강상의 문제였던 것 같다. 책의 서문에서 각 장소들(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박달재,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오대산 상원사,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김개남 장군 추모비, 서울특별시 시장실의 〈서울〉,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에 대한 간략한 감상이 잘 요약되어 있다.



2. 지구의 역사가 약 45억년이라 할 때 인간의 조상은 약 400만 년 전에 출현했다. 1년을 기준으로 하면 12월 31일 오후 5시에 나타난 것인데, 인간의 역사 자체가 곧 변방의 역사다. 직립보행으로 두 손의 자유를 얻고 불과 도구를 사용하고 문명의 이룩하면서 지구의 중심으로 걸어왔다. 미래에는 지구의 중심을 로봇에게 내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최근 들어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피부에 와닿지 않게 너무 거시적인 관점이라고 생각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로 축소해보자. 선생님의 말씀처럼 ‘변방’이 공간적 개념으로 한정되지는 않지만, 많은 국민들이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인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중심’이나 그 근처에 살고자 욕망한다. 부동산, 교육, 직장 등의 이유로 구심력에 묶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4대문 안, 산업화 이후의 강남이 빨아들이는 거대한 힘에 힘겨워 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심의 과밀화로 인한 폐해를 인식하고 한적한 시골로 귀농하거나 제주도나 심지어 타국으로 이민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젊은 층의 움직임이 반갑다. 중심의 구심력을 견디며 원심력을 잘 이용해 ‘변방의 창조성’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는’ 하는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방이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변방성, 변방 의식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26쪽”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27쪽)”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이라는 변방에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담론’을 제시하셨듯, 나도 바로 지금 여기서 ‘변방의 중심’을 꿈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사람 건너기
윤성택 지음 / 가쎄(GASSE)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성택 사진 에세이집, 그 사람 건너기, (윤성택 글, 김남지 사진), 가쎄



1. 4,5년을 다녔던 까페가 내일이 마지막 영업이다. 부천을 떠나 서울 강서구로 재오픈 한다고 했다. 매일 아침 7시 30분쯤에 문을 여는데 일찍 출근할 때 가끔 들러 커피를 사가거나 잠시 앉아 쉬다 가곤 하던 곳이다. 건물 임대인과 재계약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떠난다고 하면서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아쉬워하셨다.




“죄송하죠.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이 1000명은 될 거에요.”
“아쉽네요. 가게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가게 이전한다고 인테리어 신경도 많이 못 썼는데, 사진도 다 떼버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커피를 들고 나왔다. 이전하셔서 돈 많이 버시라는 말씀대신 건강하시라는 말씀만 드렸다. 건강하게 여기에서처럼 주변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길 바랐다.





2.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헤어짐 뿐 아니라 근무지, 아끼던 물건, 강과 나무처럼 작별을 반복한다. 윤성택 시인의 사진 에세이 집에 실린 흑백 사진들과 실린 글을 보면서 이별과 만남, 고독, 말하지 못하는 것들의 외침을 생각하게 되었다. 실린 글들은 산문이 아니라 대부분 시적인 것과 시(詩)들이다. 시집으로 묶어내지 않고 왜 사진과 결합한 에세이집을 낸 것일까. 글을 쓰고 사진작가가 그에 알맞은 사진을 덧붙인 것인지, 시인이 사진을 보고 글을 쓴 것이지 궁금했다. ‘존재에 대한 성찰’과 ‘사랑과 고독’ 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어라고 생각한다. 것으로는 웃고 떠들고 밝아야 하는 사람, 그 밝음의 그림자에서 웅크리고 우는 사람,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부딪힌 멍’을 보며 서글픈 사람, ‘사랑을 견디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메모


- 식물인간 266쪽
나의 반생은 아직 잠들어 있는 방입니다./ 중략 / 몸은 지방에 있고 생각은 혈액에 담깁니다./ 내가 잠들어 있지만 당신은 새벽에 깹니다./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지도가 없는/ 막차일 때, 당신이 놓친 인연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잠은 일지에 적혀 있고/ 당신 몸 어딘가 점에도 찍혀 있습니다/ 아직 깨어나지 못합니다 가습기, 링거,/ 심전도 그래프가 전부인 내게/ 식물은 아름다운 나의 잉여입니다.




- 다시 한 사람 282쪽

몸이 생각을 앓고 나면/ 다시 생각이 몸을 추슬러 한 사람이 된다.//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부딪힌 멍을 샤워하다 발견할 때./ 차가운 물이 눈동자에 닿기 전 순식간에 감는 눈의 반응에,/ 몸이 나보다 더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느낀다.// 화초 잎을 가위로 자른 다음 다시 가위를/ 화초에 가까이 대면 화초도 운다./ 잎맥 사이로 급속하게 전기저항이 일면서 안으로 부르르 떠는 것이다.//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니 / 내 몸도 나 아닌 마음이 있는 걸까./ 내 몸에 들어가/ 갑옷을 입듯 깨는 아침.// 내 몸이 가만히 부르르 떤다.




-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198쪽

일기예보처럼 예감이 두렵다./ 오늘 비는 너의 창가에/ 한동안 서성일 것이다./ 아직 돌아 나오지 못한 길목,/ 가로등이 환하게 아픔을 켜고 있다./ 너는 파문처럼 번지고/ 나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것,/ 사랑은 그렇게 무릎걸음으로 너에게 가는 것이다./ 기어이 아파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 73 | 74 | 75 | 7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