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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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


1. 창비에서 주최(1월 17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창비 지하1층 스튜디오 홀)한 장석남 시인 북토크에 초대받았다. 2017년 12월에 발매된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를 낭독하고 질문하는 자리였다. 스무 남짓한 독자들이 모였다.



사회와 진행은 KBS아나운서 출신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상협 시인이었다. 성우처럼 목소리가 좋았다. 지금 소속된 회사가 파업 중이었고, 장석남 시인과 개인적인 인연도 있어서 사회를 본 것이다.



신작 시집의 첫 번째 시 「소풍」두 번째 시「불멸」시인이 직접 낭독했다. 이상협 시인의 말처럼 시집은 악보요, 시인의 목소리는 연주였다. 성우처럼 정갈하지는 않지만 한 단어 한 행에 묘한 리듬이 느껴졌다. 사나운 파도가 아니라 해변을 걷는 내 발을 적시는 하얀 포말이었다.



인간은 고작 백년도 안 되는 삶을 살지만 바위는 그에 비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왔으므로 “바위 살림에 귀화를 청”하는 시인의 마음은 답이 더딜 수 밖에 없다. 「불멸」에서는 “긴 비문을 쓰려” 한다는 다짐을 하는데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 비문을 읽겠다는 마음과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하는 마음은 돌을 정으로 찍어 음각하는 비문보다 훨씬 더 가슴 속에 오래 남을 불멸의 다짐이다.



그밖에 「문을 얻다」 「문을 내려놓다」 연작에서 이 ‘문’은 시인은 질문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들었고 3부의 ‘고대’에 대한 생각 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초록’ ‘죄’ 에 관해 질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아이’의 이미지 색으로 나타나는 ‘초록’의 이미지는 근원과 고대를 탐구하고 열망하는 시인의 색이 아닐까, 「정육점」이나 「우는 돌」에서 엿보이는 ‘죄’에 관해 종교적 사유와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고민해보는 것이 나의 일이다.




조선일보 인터뷰 중에서)

“고대는 시간의 이름이면서 분할 이전의 세계다. 우리 삶 속의 고대성은 무엇인가. 먹고 우는 일처럼 원초적인, 불교적으로 얘기하면 무(無)는 아니지만 조화를 상징하는 틈이 벌어지지 않는 언어다.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탈락하지 않은 언어다.”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 제발 소박하게 써라. 시에 삶이 안 보이고 언어만 보인다. 시가 삶에 작용할지 자문하라. 손으로 공작된 큰 시는 가슴에서 일어나는 가장 약한 시보다 아래다. 간절한 시는 반드시 떨림이 드러난다. 자기가 써서 자기가 먼저 감흥할 수 있어야 한다.



* 메모

- 소풍 10쪽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 입춘 부근 12쪽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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