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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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 원더풀 라이프, 서커스



1. 수용된 망자(亡者)들이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고르면 이를 재현해주는 회사와 소속된 스태프에 관한 이야기다. 시간적 배경이 1998년 즈음으로 설정되어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1920년대에 때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일본의 패전과 전후 세대의 기억이 자주 등장한다.




망자들의 기억 재생소라는 다분히 상상적인 설정에서, 주된 스토리는 망자들이 스스로의 기억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는’ 작업 과정이다. 스태프들은 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억을 이끌어낸다. 여기까지라면 스토리는 밋밋했겠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스태프들 역시 망자들처럼 기억을 고르지 못해 지상에 남은 또 다른 망자들이라는 설정이 나에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인생에서 하나의 기억만 고른다면? 대개 서너 살 때까지 기억할 수 있다는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동명의 영화가 있지만, 서문에서 저자가 직접 밝혔듯이 이 책은 영상화하지 못한 인물들의 내면이 펼쳐진 독립적인 소설임에 틀림없다.


* 메모




- ‘모치즈키 씨의 피부가 남자치고는 아주 드물 정도로 하얀 것은 눈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며 시오리는 살짝 그가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 살 무렵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귀 청소를 받던 일입니다. 싸늘한 다다미 결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어머니의 포동포동한 무릎의 감촉을 자신의 볼이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01쪽



- “누가 정했나요? 하나만 고르라는 규칙 말이에요.”
가와시마는 깜짝 놀라 이세야 씨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재현해서 영화로 만드는 거죠?”110쪽



- “뭔가 하나쯤 살았던 증거를 남기고 죽고 싶어.”(와타나베)


- 모치즈키는 카메라 옆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추억을 촬영하기 위해 준비된 도구는 움직이지 못하는 전차, 결코 하늘을 날 수 없는 비행기, 종이로 만든 꽃잎이다. 그래도 망자들은 그 안에 몸을 둠으로써 면접실에 앉아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던 세세한 기억이나 생생한 감정을 떠올려주었다. 우리 일의 의미도 그런 데에 있지 않을까. 적어도 그들이 또 하나의 깊은 기억을 떠올리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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