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그림자들 마지막 왕국 시리즈 1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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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소설, 떠도는 그림자들, 문학과지성사


1. 키냐르의 『마지막 왕국』시리즈의 첫 번째 책, 『옛날에 대하여』와 『심연들』『은밀한 생』등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제목이 없는 본문, 단편적인 나열, 곳곳의 주석들이 어색하지 않다.

태아시기인 ‘최초의 왕국’과 출생이후의 ‘마지막 왕국’ 사이에, 태어났으나 언어를 말하지 못하는 통로가 둘을 이어주고 ‘최초의 왕국’ 언저리와 통로에 키냐르의 핵심 개념인 ‘옛날’이 안개처럼 이들을 감싸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초의 빅뱅처럼, 최초의 울음처럼, 최초의 언어처럼 신비로운 언어와 음악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열광할 것이다.

이제 《섹스와 공포》 《로마의 테라스》만 읽으면 국내 번역된 키냐르의 책은 다 읽은 셈인데, 다시 《은밀한 생》《혀끝을 맴도는 이름》을 읽어야겠다. 이 두 책은 《섹스와 공포》와 함께 키냐르가 독자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꼽은 책이다.




- “내가 죽으면 그림자들은 어디로 갈까?” 이것은 고대 세계의 마지막 왕이, 엔 주(州)를 굽어보는 흰 대리석으로 된 성을 떠난 후에 했던 질문이다. 그림자란 이미지에 대립되는 것이다. 46쪽



- 말로 표현되려고 애쓰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알기도 전에 느끼는 것, 그것은 틀림없이 글을 쓰는 움직임이다. 한편으론 언제까지나 혀끝에서 맴도는 말로, 다른 한편으론 손끝에서 달아나는 언어의 집합으로 글을 쓴다. 발견의 시초에 소위 알아맞힌다고 부르는 것이다. 알겠다! 뭔지 알겠어! 이어지는 것에도 초발심의 강도로 다시 불을 붙이기.



- “당신들 중 어느 누구도 함께 사는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지 말았으면 하오.” 그의 고통은 4월에서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이상한 왕국을 떠올리는 이유는 『마지막 왕국』의 책들, 황야들, 하얀 파도들, 노란 금작화들, 낭떠러지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210쪽

- 여름날 저녁에 뜨거운 목욕탕에서 나온 로마인들의 왕이 느꼈던 쾌락은, 베르길리우스가 목동들과 함께 그랬던 것처럼, 비서관과 또 다른 이들을 거느리고 떡갈나무 그늘에 앉아 쉬면서 차가운 적포도주를 마시거나 고대 시들을 암송하는 일이었다고 소피우스가 설명했다. 215쪽 * 소피우스: 로마인들의 마지막 왕의 비서관

옮긴이의 말) 송의경, 프랑스 상스에 은둔해 있는 파스칼 키냐르를 찾아서

프랑스어 ‘ombre'의 경우 무엇보다도 라틴어 ’umbre'를 떠올리게 하지요. ‘umbre'란 사자(死者)들의 모습이 살아 있는 자들의 꿈속에 아직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과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그늘, 어슴푸레함, 어둠의 의미도 가지고 있지요. 229쪽



- 독서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라고 정리해둘까요.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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